|
|
출처: 대한민국풍수지리연합회 원문보기 글쓴이: 하남촌장
삼성가(三星家)의 발복지(繼증조모의 음택 발복력과 양택 발복력)
1. 무엇이 문제인가?
삼성그룹은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1980년대 현대에게 밀려서 재계2위를 한 것외에는 줄곳 재계1위를 지키고 있다. 당연히 풍수인들은 그 발복처를 추적하는데 결론은 여러가지로 나누인다. 발복지는 어디인가가 첫째 문제이고 둘째는 여러 묘가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발복을 주는가(다시 말하면 合墳, 複墳의 효력) 하는 문제이며 셋째는 계(繼)증조모의 묘가 발복지가 되는가?(다시 말하면 혈연관계가 없는 후손에게 발복이 되는가?)하는 문제이다. 둘째, 셋째 문제를 먼저 본다.
2. 복분의 효력
* 삼성의 발복처로 여러개의 선조 묘를 제시하는 풍수가 있다.
명당인 선조 묘와 흉지인 선조 묘가 섞여 있을 때 길흉은 어떻게 되는가? AI에게 물어보니, 풍수고전은 “흉지 하나가 백개의 명당을 무너뜨린다”고 한다. 사견(私見)으로, 길흉은 각각 작용하며 서로 충돌할 때에는 더 강력한 길흉의 등급인 묘가 작동한다고 본다. 명당도 흠결없는 곳은 없다.
* 옛날 사대부 집에서는 청룡이 약한 곳에 묘를 쓰면 보완책으로 청룡이 좋은 곳에 초혼장을 쓴다는 말이 전해온다. 이것은 여러 명당의 발복력이 집합하여 큰 발복을 준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부(富)B급(수천억) 명당이 여러개 있다하여 부A급(수조원)의 성과는 이룰 수 없다고 본다. 수혜자에게 발복을 주는 주(主)된 발복처가 있고 다른 명당은 보조적 효력이 있을 뿐이다.
* AI에게 물어보니, 후손은 여러 선조 묘의 기운을 받는 그릇이 되어 선조 묘의 길흉을 누적해 담아 합산(合算)한 결과가 선조 묘의 발복 또는 흉사라고 하고, 풍수와 무속인이 경험한 사례를 연결해 준다. 그러나 길흉합산이란 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3. 혈연관계가 없는 후손(예컨대 양자)에게 발복되는가?
* 이 문제는 음택발복의 구조(메카니즘)에 관한 문제로 풍수학에서 오랜 난제 이다.
이제까지의 통설은 동기감응설 즉, 사망한 선조의 유전자(DNA)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에게 감응하여 길복(吉福, 반대로 凶禍도 동일한 구조이다)을 준다(發福이라 한다)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화장 등으로 DNA가 소멸되었거나 초혼장 등으로 DNA가 없는 묘소는 발복과 상관없고, 직계 혈연관계에 있지 아니한 후손 예컨대 방계후손, 양자, 친생관계가 아닌 계(繼)자녀(혈연이 아닌 법적 또는 사회적 후손 관계) 사이에는 발복(發福)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발복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혼령이므로 혈연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도 발복이 있을 수 있다는 혼령설 또는 혼령이 유골의 영향을 받을 때 강력한 발복력이 있고 동일한 유전자가 없는 제3자에도 단기적 발복력이 있다는 절충설이 있다.
* 최근 화장이 대세가 됨으로 인하여 화장 발복이 있는가 즉 화장 매장에도 명당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기풍수는 인정하는 쪽이고 형기론과 이기론에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화장발복은 동기감응론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혼령설이나 절충설에서 취하는 입장이고 그 이론을 일관하려면 양자, 계자손 등에게 발복을 인정해야 논리모순이 없게 된다.
4. 이병철 가계
* 36세 曾祖이재봉(첫 부인 진양강씨 3子, 두번째 부인 광산 김씨, 소생 없음)---37세 祖父이홍석(홍석 창석 지석 3형제)---38세 父이찬우(이홍석의 장남, 처 권여사)---39세 本人이병철(병각 병철 2형제)---40세 이건희(3남5녀 중 3子)---41세 孫이재용(5대손은 총12명)
* 족보1---이병철 가계
* 족보2---광산김씨가 계증조모라는 사실
5. 묘소
* 삼성가는 풍수와 명리를 믿어서 장용득과 박도사를 중용하였다. 삼성 발복처에 관하여 여러 풍수가 추적하였는데 의령 마두리에 있는 증조부모 묘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하 묘소를 본다.
①증조부 이재봉(1853졸)과 광산김씨(1815~1847) 묘는 의령 마두리 산57
조부 이홍석이 부친 이재봉의 유골을 궤짝에 넣어 두고 10년간 돌아다녔는데 스님이 정성에 감복하여 잡아준 곳이라 한다. 의령에는 금섬복지(金蟾伏地; 금두꺼비가 엎드린 형) 국부(國富)혈이 있다는 설화가 있다. 증조부 묘가 금섬복지라는 견해와 당판이 옆으로 기울어진 탓으로 혈이 아니라는 반대 견해가 반반 정도 된다.
광산김씨 묘(소생없다)---증조부의 백호쪽에 있다. 명당이라는 견해가 다수이다. 복호산 복호혈이고 전순 끝 개울가에 크다란 바위가 복호이다. 내백호에도 힘찬 줄기가 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산등에 임도가 없어서 마을에서 등산을 하여 찾아가야 했고 풍수들이 잡비를 주고 마을 사람을 안내인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옛 풍수들도 이 묘를 명당으로 보았고 근래의 풍수도 계증조모인 줄 모르면 이 묘를 발복처로 본다. 그런데 이 묘를 발복처로 본다면 계(繼)증조모의 음택 발복을 인정하는 난제에 부딛치게 된다.
* 계증조모 광산김씨---
* 증조부 이재봉---백호쪽으로 당판이 기울어졌다(사진 퍼옴)
②증조모 진양강씨(1810~1845, 36세 졸)는 의령 정곡면 죽전리산1-1 남단에초장하였다가 1977.6 남양주 별내동 산208-1로 이장, 다시 2023년 의령 정곡면 중교리 산76-1(861의 남쪽경계)로 이장하였다.
초장지는 흉지에 가까웠다. 첫 이장지인 별내동 산208-1은 장용득 소점으로 파구터이다, 장용득은 파구터를 선호하여 그의 신후지도 파구터이다. 이 묘소에 대하여 찬반 양론이 있는데 위성지도상으로는 평범하게 보이고 유족도 나쁘다고 생각하여 이장하였다.
두 번째 이장은 홍라희 여사가 주도하여 이장했는데 표면상 이유는 별내동 묘소가 공원부지에 편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라 하였으나 지금도 공원이 아니다. 중교리의 최종 이장지는 초등급은 된다고 생각되나 이재용에게 5대 조모이므로 발복유효기간이 지났다. 접근성 좋고 보기에 좋으면 된다.
③조부 이홍석(문산,1838~1897) 조모(1835?졸)부부와 父 이찬우(1879~1957)
母 권재림(1881~1959)부부 묘는 67.4.5에 수원 이목동 산64 선영으로 이장합봉하였고 이병철, 이건희는 수원 선영에 초장하였다. 출입제한으로 감평 적다. 위성지도로 보면 조부 묘는 명당으로 추측된다.
* 조부와 부모 묘는 처음에는 의령 정곡면 중교리886 부근(문산정 뒤)에 있었다는데 바람맞이에 당판이 생기지 아니하여 흉지에 가깝다. 비문을 보면, 1967.4. 25 부친 이찬우는 양주 도농산에서, 모친 안동권씨는 고향 문산정 뒤에서 수원 선영으로 이장합봉하였다. 부친은 조부 문산공의 묘를 6~7차 천장하였으나 땅을 얻지 못하였는데 병각 병철 형제가 유지를 받들어 수원으로 이장하였다고 적혀 있다.
부친은 고향에서 언제인가 양주 도농산으로 한번 이장한 것 같고(이때도 장용득 소점?) 모친은 고향 문산정 뒤의 초장지에서 이장합봉한 것이다. 조부 문산공은 7~8차 부친이 이장하였고 조모 묘는 초장으로 있었다.
* 父이찬우의 비문---
* 비문 측면---1967.4.25
조부 문산공은 손자 이병철을 위하여 서당(문산정)을 지어줄 정도로 열성이었고 재력이 있었다. 공의 부친과 계모 김씨를 명당에 모실 정도로 풍수고수이었다고 전해오지만 자신과 부인의 묘 그리고 친어머니 강씨 초장지를 흉지에 잡은 것을 보면 헛소문이다.
④이병철 이건희는 수원 선산에 모셨다. 위성 지도상으로는 무해무득으로 보인다.
6. 검토
* 이회장 발복처에 관하여 ①7대조와 고조부 묘(의령 정곡면 죽전리 산183 중앙, 집장지)를 제시하는 풍수가 있으나 재물발복은 인물 발복보다 조기발복 조기종료(부자3대 가기 어렵다)한다. ②또 어떤 풍수는 저 먼 곳에서 맥로가 이 회장의 어머니 초장지로 와서 수십 회절의 대명당을 만들었다면서 이 묘가 발복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발복 중이던 어머니 묘를 1967년 수원으로 이장하였으니 그 뒤에는 삼성이 망해야 될 것 아닌가? ③귀족풍수는 계증조모 묘가 부A 대명당이고 삼성의 발복지이고 이건희도 그 발복이며, 증조부 묘는 동네길지급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증조모라고 밝혀지자 그 묘를 빼고, 고조 묘(의령 죽전리 부B), 친 증조모(남양주 이장지 부A), 조부 이장지(수원 이장지 부A), 모친 구광터(의령 중교리 초장지 부A)라고 주장하고 있다.
* AI가 제시하는 자료에 의하면 ①삼성은 1950년대 전반은 제일제당, 제일모직을 설립하여 재산축적의 기틀을 마련하고 1950년대 후반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으로 재계1위에 등극하고 ②1960년대 초 대한민국 부호1위로 공식 확인 되고 ③1970년대에는 삼성과 럭키의 양강 구도이었다가 ④1980년대에는 중동붐을 탄 현대가 1위가 되고 삼성, 럭키, 대우가 뒤쫓는 4강 체제가 10년간 지속되었고 ⑤2001년 IMF이후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순위로 되고 ⑥이후 삼성이 25년간 재계1순위를 지키고 있다. (2026.5기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순위이다)
* 이 회장의 선영은 1967년 수원으로 이장하여 집장할 때까지 계증조모가 중등중급명당이고 다른 묘는 괄목할 곳이 없다 그럼에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회장은 1950년대 전반부터 현재까지(1980년대를 제외하고) 재계의 1순위를 확보하고 있다. 1967년 이장 묘의 발복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때까지 계증조모의 음택 발복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음택발복처는 없다. 어디가 발복처인가? 의령 정곡면 중교리는 16대조가 연산군 때 낙향하였던 고향이고 생가인 중교리723은 조부 이홍석이 건축하였는데 대지가 570평이었다. 일반인은 물론 풍수도 모두 좋다고 하는 명당이다. 생가지는 이 회장가(家)의 어떤 음택보다 높은 등급의 명당이다. 이건희까지는 생가터, 이재용은 수원 조부모 묘가 발복처라고 본다. 재벌이 몇백년 유지 될 수는 없는데 이재용은 아들에게 경영승계를 시키지 않겠다고 하므로 그때 끝나는 것일가?
* 끝으로 계증조모 광산김씨의 음택은 어떤 효과가 있는가? 혈연이 없다 하더라도 가족이었던 사람이 흉지에 들어가서 좋을 게 없듯이 반대로 명당에 묻히면 주도적 발복력은 없드라도 보탬은 되리라고 본다.(2026.8)
* 생가---분가하여 살던 집은 옆에 있다(미공개로 관리하고 있다) 그 일원이 다 좋다.(사진 퍼옴)
* 청룡쪽 어깨---위험 속에 돈 있다.

첫댓글 삼성가는 발복지를 찾을 수 없다. 금섬복지도 혈지가 아니며 그 옆에 계신분도 비혈지다 수원의 선영도 용맥에 맞추어 용사를 하였으나 산수동거하는 곳으로 혈지는 없다. 삼성가는 발복지지를 꼭꼭 숨겨둔 듯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삼성가 사람도 모르는 어떤 곳 일수도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