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건축물을 무너뜨리는 찰나의 순간, 발파 해체 공법
서울공대 상상 예비 공대생을 위한 서울공대 이야기 2019 Autumn vol .29
건축물도 인간처럼 삶을 살아갑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면 건설되었다가 파괴되는 것이 건축물의 삶이고,
그 과정을 건축물의 생애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과는 달리 건축물의 삶에는 특별한 점이 있는데요,
바로 탄생 이전에 죽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소 심오하지만, 쉽게 말해 유한한 땅 위에서 무한히 건축물을 건설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새로운 건축물을 건설하려면 이전의 건축물을 파괴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건축물을 어떻게 지을까?’에 못지 않게 ‘건축물을 어떻게 파괴할까?’ 역시
건설에서 주요한 논의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다양한 건축물 해체 공법이 존재한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다양한 건축물 해체공법 중 하나인 발파 해체 공법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폭파로 건축물을 무너뜨리는 발파 해체 공법에 대해 알아볼까요?
글 이지훈, 기계항공공학부 1
편집 김소현, 기계항공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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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은 ‘건물 폭파’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영화 속 테러리스트가 버튼 하나로 고층 건축물을 무너뜨리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인지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흔히 건축물 폭파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죠. 하지만 걱정과 달리 폭파를 이용한 건물 해체는 안전할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건물 해체 공정입니다. 이렇게 폭파를 통해 건축물을 해체시키는 방법을 아울러서 ‘발파 해체 공법’이라고 한답니다.
발파 해체 공법을 사용하기 전에는 건축물을 무너뜨릴 때 기계적 충격에 의한 공법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크레인 선단에 철로 이루어진 공인 강구를 매달고 수직 또는 수평으로 흔들며 건물을 타격하여 그 충격으로 건축물을 파괴하는 ‘강구에 의한 공법’ 또는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쇠로 만든 연장인 정을 반복적으로 타격시켜 콘크리트를 파쇄하는 ‘수동공구에 의한 공법’ 등이 대표적인 기계적 충격에 의한 공법입니다. 하지만 기계적 공법은 큰 단점을 가지는데요, 바로 진동, 소음, 분진 등의 공해를 발생시켜 인근 주민들에게 오랜 기간 피해를 입힌다는 점입니다. 또한 건축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대형화, 고층화된 건축물이 등장하면서 기계적 공법만을 이용해서 건물을 해체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바로 발파 해체 공법입니다. 발파 해체 공법의 가장 큰 장점은 짧은 시간 안에 건물을 해체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약을 터뜨린 후 수 초 내에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짧아 경제적이고, 또 피해를 입는 기간과 규모도 줄일 수 있었죠.
그렇다면 발파 해체 공법에는 어떤 원리가 작용할까요? 화약을 터뜨리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폭발력이 작용한다는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발파 해체 공법의 핵심 힘은 바로 ‘중력’입니다. 폭발력에 비해서 중력은 한없이 작은 힘으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력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파 해체공법의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발파 해체 공법을 위해서는 건물 전체가 아니라 건물 하단에서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 보, 벽체 등의 지지점에 화약을 설치해야 합니다. 지지점이 파괴되면 건축물은 불안정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중력에 의해 건축물이 아래로 가라앉게 되는데, 이때 건축물 내부에서 자체 중력이 작용하여 상층부와 하층부가 충돌함으로써 건축물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랍니다.

▲ 단축 붕괴 공법 ▲ 내파 공법
▲ 점진 붕괴 공법
발파 해체공법의 핵심적인 힘이 중력인 만큼, 중력이 폭파 중인 건물에 어떻게 작용하냐에 따라 다양한 발파 해체공법이 존재하는데요, 그 중 세 가지 공법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건축물이 수직 방향으로 가라앉도록 폭파하는 공법을 ‘단축 붕괴 공법’이라 합니다. 이는 건물이 존재하던 구역 안에서 파괴되기 때문에 피해 범위가 좁고, 따라서 도심지역과 같은 주변에 건축물이 많은 지역에서 사용됩니다. 다음으로 건축물의 중앙 부분이 먼저 수직 방향으로 가라앉고 양쪽 끝부분이 안쪽으로 함몰되도록 폭파하는 공법을 ‘내파 공법’이라 합니다. 내파 공법도 단축 붕괴 공법처럼 피해 범위가 좁기 때문에 도심에 위치한 폭이 넓은 건물을 파괴시킬 때 주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점진 붕괴 공법’이 있는데요, 이 공법은 화약을 차례대로 터뜨려 건축물을 점진적으로 붕괴시키는 공법입니다. 점진 붕괴 공법은 부분적으로 건물이 붕괴되기 때문에 소음 피해를 줄일 수 있고, 땅에 가해지는 진동도 분산시킬 수 있답니다.
흥미롭게도 건축물의 붕괴 공법을 결정하는 것은 오래 지속되는 폭파 이후의 현상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작용하는 폭발력입니다. 그렇기에 발파 해체 공법은 적절한 시간차를 두고 화약을 터뜨리는 기술이 정말 중요한데요, 이러한 화약 발파 기술을 ‘단발발파’라 지칭합니다. 사람의 감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단발발파를 위해서는 화약의 기폭 장치인 뇌관이 사용되는데, 뇌관 중에서 화약이 발파되는 시간을 지연작용●으로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을 지발뇌관이라 합니다. 단발발파를 위해 사용되는 지발뇌관은 크게 MS지발과 DS지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MS지발의 지연시간은 약 0.025초이고 DS지발의 지연시간은 약 0.25초입니다. 이토록 찰나의 순간을 조절하여 거대한 건축물을 무너뜨리는 공법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 지발뇌관
지금까지 건축물을 폭파시켜 해체하는 발파 해체공법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폭파라는 둔탁한 단어 아래에 이토록 체계적인 과학적 원리와 기술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건축물 폭파는 영화 속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일어나는 파괴적인 공격의 수단이 아니라 공학 기술자들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는 일상적이고 안전한 건물 해체공법이랍니다.
주해
● 뇌관의 점화옥과 기폭약 사이에 연시약을 삽입하여 시간 격차를 주어 뇌관을 폭파시키는 것
참고 문헌
김상수·황현주, 국내 도심지 건물폭파해체 사례와 평가,
대한토목학회지 제41권 제1호, 1993.2.
김희창, 건물해체 공법과 전망,
화약·발파 제11권 제3호, 1993.
그림
출처
1. Designing Buildings Wiki, Explosives, 2017.06.05.
2, 3, 4. BS다큐, 원더풀 사이언스 순간의 과학 발파해체 (www.youtube.com/watch?v=FprYxbw6TX8)
5. 아이올리고: 기술사(www.iolli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