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82] 한강 밑에 흐르는 우중수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5.02.16.
한자 문화권에서는 물을 1번으로 꼽는다. 화(火)가 2번이고 목(木)이 3번, 금(金)이 4번, 토(土)가 5번이다.
왜 물이 1번인가? 첫째는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오행의 순환이 수(水)에서 시작한다.
둘째는 물이 민심이요, 정치의 요체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정치는 민심을 읽는 일이다. 우선 다스린다는 의미의 ‘치(治)’가 그렇다. 높은 언덕에서 물을 바라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 하나 유명한 문구가 ‘수가재주(水可載舟) 역가복주(亦可覆舟)’라는 대목이다.
역대 통치자들이 가장 명심하고 있었던 잠언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어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민심이 정권을 만들 수도 있지만 몰락시킬 수도 있다. 민심의 특징이 물과 같다는 통찰이기도 하다.
물이 잔잔할 때는 별거 없는 것 같지만 파도가 칠 때는 공포로 다가온다. 해일이 몰아닥치면 모든 것을 쓸어 버린다.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 화재보험은 있지만 수재보험은 없다. 물이 생명을 주지만 여차하면 모든 것을 갈아엎는다.
물을 관찰하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실전에 들어가보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표면이 아니라 속에서 흐르는 물을 관찰하는 게 어렵다. 한강 밑에는 우중수(牛重水)가 흐른다.
우통수라고도 부른다. 물이 좀 무겁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쪽에서 흘러오는 물이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서 물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물의 비중이 높으면 다른 물과 잘 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우중수는 한강 밑바닥에서 수백km 흘러내려오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다.
서울 북촌의 양반들이 한약재를 달일 때 이 우중수를 떠다가 약을 달였다.
하인들이 우중수를 뜨려고 배를 타고 강 중심에까지 갔다. 항아리 뚜껑에다 줄을 매달아 수심 3~4m 깊이의 물을 떠오는 게 일이었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보니까 민심은 우중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의 껍데기 물과 속에서 흐르는 물이 달랐다. 신문의 칼럼을 쓰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 이 우중수를 못 보면 헛다리를 짚게 되어 있다. 한번 헛다리 짚으면 유턴하기도 쉽지 않다.
자존감도 매우 상하고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민심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칼럼을 쓰는 일은 우중수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게 핵심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방법은 카메라 렌즈를 줌인 하다가 줌아웃 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대관세찰(大觀細察)이다.
광화문에만 있으면 세찰은 되는데 대관이 안 되는 수가 많다. 지혜를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오대산 금강연 牛重水
오대산의 물은 옛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오대산 다섯 봉우리에서 시작된 물이 계곡을 따라 금강연(金剛淵)에서 만나 서울의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금강연은 바닥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세종지리지와 김정호의 청구도등에서 한강의 시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몇 년 전에 일본의 생수업체 몇 곳을 돌아보면서 깨닫게 된 이치는 실버 산업의 핵심이 먹는 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고령 사회에서 영양제나 건강식품을 매일 복용하는 것보다는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좋은 물을 먹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좋은 물을 매일 먹는 것은 곧 약을 먹는 셈이다.
‘물이 좋아서 장수한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는 오랜 체험에서 우러난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 앞에 좋은 샘물이 있는 집터를 최고로 친다.
전남 구례에 사도리(沙圖里)가 있다.
1000년 전쯤 지리산의 어떤 도사가 도선국사에게 풍수의 이치를 모래에 그려서 알려주었다는 동네이다.
여기에 도선국사가 개발한 ‘당몰샘’이라는 유명한 샘물이 있다.
이 당몰샘 옆에 사는 80대 토박이 노인에 의하면 ‘윗대 선조가 전국의 좋은 물을 찾아다니다가 이 당몰샘 물을 저울에 달아보니까 무거워서 여기에 집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물은 무겁다는 게 핵심이다. 무겁다는 것은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는 뜻 아닐까?
서울 한강의 가운데로 흐르는 물을 강심수(江心水)라고 해서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다.
우중수(牛重水) 또는 우통수라고도 한다.
우중수 역시 무겁다는 부분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강원도 오대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비중이 높아서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한강의 가운데로 흐른다고 한다. 이 우중수, 강심수는 임금님이 즐겨 마시던 물이었다. 임금님 세수도 이 물로 하였다. 서울의 양반 집안에서도 한약을 달일 때는 하인을 시켜서 이 우중수를 길어다가 썼다. 그만큼 품질이 좋은 물로 평판이 자자했던 물이다.
그렇다면 우중수를 어떤 방식으로 떠 왔을까?
배를 타고 한강 가운데쯤으로 가서 두꺼운 뚜껑이 달린 옹기 또는 도자기를 강물 속으로 집어넣는다. 강물의 2~3m쯤 깊이로 옹기가 내려갔다고 여겨지면 옹기 위의 뚜껑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긴다.
물론 옹기에도 줄이 연결되어 있고, 뚜껑에도 따로 줄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줄을 잡아당겨 뚜껑을 열어 우중수가 옹기 속에 들어가면 다시 뚜껑을 닫는다.
이런 방식으로 오대산에서 수백㎞ 내려온 한강 물을 길어 갔다.
오대산 월정사 앞 금강연(金剛淵)이 이 우중수의 실질적인 발원지이다.
지난 장마에 갔을 때는 오대천이 범람하여 금강연의 물이 용출하는 장면을 못 보았다.
엊그제 오대산 문화포럼에 강연하러 가서 보니까 지름 3~4m, 깊이 5m 금강연에서 솟아오르는 물을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2020.10.12 오대산 금강연 牛重水 조용헌 칼럼
은하수가 흐르는 강
잔잔하게 나리는 빗소리와 게으르게 흐르는 물의 청량함에는 우리를 안정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 유수의 명상센터들은 모두 계곡의 여백 속에 오롯이 존재하곤 한다. 소위 말하는 백색 소음이다.
비가 와서 물이 불자, 내가 사는 월정사 앞 오대산 계곡 역시 자못 장쾌한 남성미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세종실록 지리지'에 수록된 한강의 발원지가 숨어 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흔히 한강의 시원하면 태백산 검룡소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검룡소는 일제강점기에 최장거리 개념에 의해서 확립된 곳일 뿐 연원이 오래지 않다.
예전에는 어느 곳이 강의 가장 먼 곳인지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여러 후보지 물을 가져와 어떤 물이 최고의 물인지를 평가해서 발원지를 결정한다.
평가 방법은 그릇에 물을 찰남찰남하게 붓고, 동시에 바늘을 하나씩 찔러 넣는다. 이때 표면장력이 커서 더 늦게 넘치는 물이 최고의 물이 된다.
이런 물은 금속 성분이 많은 물인데, 이 때문에 ‘무거운 물이 좋은 물’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다. 또 이런 무거운 물은 강을 흐르더라도 비중 차이로 인해 다른 물과 섞이지 않으며 중앙으로 흐른다. 이래서 나오는 말이 바로 강심수(江心水)다. 강심수는 조선 시대에는 임금님이 사용하는 전용수였다. 이 강심수의 시원이 바로 오대산에 있는 금강연이다.
'세종실록'은 금강연의 물을 중령천(中泠泉)에 비견한다. 중령천은 당나라의 유백추가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으로 평가한 양자강 최고의 물이다. 이런 정도라면, 조선이 공인한 최상의 물이 바로 금강연의 물이라고 하겠다.
조선이 한강의 발원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것이 한양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한양이라는 명칭도 ‘한강의 북쪽에 있는 양택(陽宅)’을 줄인 말이다. 강의 북쪽을 예전에는 양이라 하고 남쪽을 음이라고 했다. 즉 강북은 한양, 강남은 한음인 셈이다.
한음에 산 분으로 유명한 인물이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져 있는 한음 이덕형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덕형이야말로 진정한 강남스타일의 원조라고 하겠다.
지금에야 서울이 커져서 한강이 수도를 관통하는 형국이지만, 과거 한양은 한강의 북쪽에 위치한 사대문 안에 그칠 뿐이다. 이 때문에 명칭부터가 강북인 한양인 것이다.
한강의 ‘한(漢)’하면 장기판이 떠오르곤 하지만, 사실 이 글자는 은하수를 의미한다. 즉 한강이란, 지상을 흐르는 은하수라는 말이다. 넘실대는 낭만 속의 별천지가 현실에 존재하는 곳, 이곳이 바로 한강이다.
한강이 은하수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은 은하수가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한강 역시 남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게 뭔 소린가 하겠지만, 예전 우리 선조들은 남한강과 북한강 등을 합해 한강이 남북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하늘에는 은하수, 대지에는 한강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강 기록하기의 첫 걸음은 오대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제겐 시작부터 혼란입니다. 한강의 발원지가 태백의 검룡소라고 알고 있던 까닭입니다. ‘인문의 풍경학교’ 첫 강의 핵심은 아마 이 혼란을 해소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강은 지리학적인 발원지와 인문학적인 발원지로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검룡소는 지리학적인 발원지입니다. 현대에 와서야 측량을 통해 정해졌을 뿐 문화적인 근거가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제가 그곳을 발원지로 알게 된 것처럼 지자체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통해 알리고 있지만 아직 그것을 문화라고 부르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대신 고려와 조선의 수많은 기록에서 한강의 발원지로 기록한 것은 오대산(동대, 서대, 남대, 북대
, 중대.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해서 그렇게 불립니다) 서대에 위치한 염불암(수정암 혹은 백련암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옆의 ‘우통수(于筒水)’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 양촌 권근의 <수정암 중창기>, 삼연 김창흡의 <오대산기> 등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우통수에서 시작해 상원사를 거쳐 월정사까지의 물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월정사 옆 금강연(金剛淵)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매년 가을마다 지방관의 주재로 ‘한강대제’를 올렸다는 곳입니다. 이곳을 우통수에서 흐른 물이 고여 비로소 한강의 물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출처] 한강을 기록하다(1) / 오대산 우통수~금강연
새로운 자원 해양 심층수
해양 심층수란 햇빛이 도달하지 않는 수심 200 m 이상 깊은 곳에 있는 바닷물로, 극지방에서 가라앉은 찬 바닷물이 심층 순환을 따라 이동하여 전 세계 바다로 퍼져서 생성된 물이다.
수심 200 m보다 깊은 곳에는 표층의 바닷물이 내려오지 못하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플랑크톤의 활동이 거의 없다. 따라서 심층수는 표층수 속에 있는 병원균, 오염 물질 등이 없는 깨끗한 상태이다. 또한, 심층수는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지구 전체를 순환하는데, 그 순환 속도는 매우 느려 보통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 2,000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렇게 오랜 세월 천천히 지구를 도는 동안 심층수의 수온은 거의 2æ 정도로 일정하며, 무기 염류가 풍부하고 산소도 많이 녹아 있다.
이러한 심층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될 수 있다. 온도가 낮은 심층수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찬물에서 서식하는 어류도 양식할 수 있다. 또한, 심층수에 녹아 있는 유용한 물질을 뽑아내어 건강 식품과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으며, 무기물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담수화하여 식수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양 심층수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이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