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해설사
관람객이 뜸한 시간이다. 평일 오후다. 문학관이어서 시집은 물론, 인문학 또는 문학 관련 책이 많다. 길상호 시인의『우리의 죄는 야옹』을 읽는 중이다. 시집을 읽다가 잠시 밖으로 나갔다. 바로 앞에 시인의 시비 공원이 있다. 박두진 시인의 대표 시, 「해」를 비롯하여 「도봉」을 쓴 시비가 의연하게 서 있다. 시비에 손을 얹으니 유월의 햇살이 데워 놓아 따뜻하다. 마치 시인의 온기를 느끼는 것 같다.
며칠 전 공원 잔디를 깎아 시인의 성품처럼 정갈하다. 「도봉」 시비 앞에는 주변은 잔디인데 토끼풀이 보자기를 깔아 놓은 것처럼 펼쳐져 있다. 토끼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행운의 네 잎이라도 보일까. 토끼풀 꽃송이가 보인다. 반지를 만들곤 하던 그 꽃이다. 오늘은 그저 바라만 본다. 외떡잎식물 바랭이가 사이에 섞여 흔들리고 있다. 꽃송이도 풀잎도 약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바람이라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는 듯하다. 음악은 발라드일까. 가만히 리듬을 탄다.
안성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열여덟 살에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나 역시 안성에서 나고 자라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박두진 시인을 공부하다가 시인의 시절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돌아가신 큰아버지 시절쯤 되셨을 것이다.
시인은 『시인의 고향』이라는 산문집에서 이렇게 고향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고향은 소중하지만 내게는 유별나다. 나의 알고갱이 같은 시절을 보냈으니…. ’ 여기서 말하는 알고갱이라는 말은 배추의 노란 속을 안성에서는 고갱이라 말한다. 가끔 다른 지역 분들에게 물으면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다.
시인의 시비 앞에 토끼풀 꽃이 피는 것을 시인이 보셨다면 참 좋아하셨을 것이다. 봄이면 동산에서 뛰어놀다가 꽃 방망이를 만들기도 했던 소년이었다. 고장치기에서 뛰어놀던 자연이 시인의 자양분이 아니었을까.
토끼풀 꽃을 한창 들여다보고 있는데 벌 한 마리가 바쁘게 꽃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 꽃에 앉았다가 저 꽃에 앉았다가 바쁘다. 내가 해설지를 몇 군데를 근무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 강점기에 2일간의 해방을 이룬 유일한 고장임을 알리는 삼일운동기념관, 천년 고찰인 석남사, 안성맞춤 박물관에 이어 박두진 문학관에 근무 중이다. 올해로 십오 년 차다. 바쁘게 꽃을 찾는 벌을 보다가 나의 초심을 생각한다. 그동안 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나는 해설사로서 잘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내 고향을 알리는 마음이 뜨거운 것일까. 박두진 시인을 공부하면서 요즘 느끼는 것은 시인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뜨거웠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박두진 문학관에서 해설사로 있기는 하지만 나는 듣는 해설사일 때가 종종 있다. 후배 시인들이 오시면 시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시기도 하고 제자들이 삼삼오오 와서 은사님에 대한 추억을 말하기도 한다. 내게는 그런 이야기가 생생한 시인의 해설이 되는 셈이다. 어느 날은 허영자 시인께서 어른 두 분을 모시고 온 적이 있다. 나는 멀찍이서 그분들을 보고 있었다. 은발의 노신사분이 시인의 초상화 앞쯤 가시더니 마치 시인을 만난 듯이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 왔어요.”
아직도 시인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평생 군더더기 없이 냉철하기만 하셨을 것 같은데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는 분이 계시는구나, 하고 그날도 나는 내가 말하는 해설사가 아니었다. 일반 관람하시는 분들도 때로는 당신들 이야기를 한참 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냥 듣는다. 어딘가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는가. 문학관을 들어서는 분들의 마음이 이미 촉촉하신 분들이 많다.
토끼풀 꽃에 먼저 왔던 벌은 날아가고 다른 벌이 날아왔다. 꽃에 꽃잎이 이렇게 촘촘하게 박혀있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다른 벌도 빠르게 꽃 속을 더듬다가 바로 옆에 있는 꽃으로 날아간다. 참 부지런하다. 해설지를 옮기다가 어쩌면 나는 박두진 문학관에서 나의 해설사 끝을 정리하게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 벌들이 부지런히 꽃을 찾는 것처럼 나도 초심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싱싱한 목소리로 때로는 촉촉한 시심이 배인 목소리로 시인을 알리고 싶다.
시인의 대표 시인 「해」, 시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따뜻하고 눈이 부시다. 굴곡진 근현대사를 지식인으로서 살아내신 시인의 기운을 느낀다. 꼿꼿한 선비의 기상을 한 번도 접지 않으신 기운이다. 오늘은 시인이 전하는 해설을 듣는다. 무언으로 전하는 말은 더 진하고 묵직하다.
벌들은 날아가고 토끼풀 꽃과 바랭이 풀잎은 아직도 리듬을 타고 있다. 하늘을 좋아했던 안성의 소년은 시인이 되었고 토끼풀 꽃을 바라보는 나는 오늘도 시인을 공부하고 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듣고 있다.
2024. 6. 7.
안영미
안성시 문화관광 해설사
010 2631-7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