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음이 있어야 그 자리에
저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이때를 놓치면 공부하고 싶어도 못 한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실컷 놀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할 때다.”
요즈음 여러 가지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향해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좋아진단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다 거짓말처럼 여겨집니다. 사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도 지금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부는 고등학교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하는 것이었고,
어른이 될수록 책임감이 커져 더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세상 안에 거짓이 많아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요?
함께 동반하고 있는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청소년들은 시간이 지나면 잘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보다는 분명히 잘 되는
근거 있는 희망을 만들어가고 품어 가는 과정이 참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바로 주님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
그 나라에 대한 희망이 지금에 더 충실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라는
거짓된 희망이 아닌, 주님이라는 진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명령을 하십니다.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을 껴입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많은 것을 챙겨주어서 기쁜 소식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시니 이해하기
참으로 어렵기까지 합니다. 더군다나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제자가 아닙니까?
특히 악이 가득한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는 것이 불안하지 않으셨을까요?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것에 희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의 것에 희망을 두고
세상의 것을 채우다 보면 주님의 자리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빈 마음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빈 마음이 있어야 그 자리에 주님께서 사랑으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있을까요? 주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만이 희망 없는
세상 안에서 참된 희망을 품고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에페 1,3)
글 : 張旭鍾 Anthony 神父 – 광주대교구
하느님의 사랑
저는 살면서 다양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공예와 시각 디자인 분야의 일을 했고,
지금의 연기자가 되기 전에는 광고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로 일하며
소품 제작도 했습니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로 매일 야근을 하면서
개인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적금에 붓기도 했습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시기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살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던 때였습니다.
IMF 경제 위기도 겪었고, 사진 작업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되는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매니저도 그때 만났고,
큰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습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고, 코뼈가 내려앉는 부상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돌아본다며 3개월 동안 묵언수행을 하였고,
시신과 장기기증까지 할 정도로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며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중 가장 특별한 순간은 제 아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가난한 어시스트와 여대생의 만남.(이 이야기도 참 재밌는데요!)
하느님께서 열심히 살고 있는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대생과 저는 지금은 소중한 동반자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가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있었던 저의 교통사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실장님과 동해 쪽으로 촬영을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차가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받고 돌다가 덤프트럭 세 대와 부딪쳤고, 저희가 탄 자동차는 엉망이 되었으며,
트렁크 쪽은 칼로 자른 듯 사라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가드레일을
받고, 덤프트럭에 치이기 전까지 그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이렇게 죽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죽음이라는 순간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필름 형식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저는 티끌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레커차와 앰뷸런스(ambulance)가 도착했을 때, 구급대원들은
망가진 차와 저를 번갈아 보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인근 식당에 계신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으셨습니다.
혹시 근처에서 사고가 났냐고, 인명 피해는 없었느냐고 말이지요.
사고는 났지만,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니, 정말 다행이라며
그곳은 교통사고가 잦은 곳이라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직 할 일이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 그렇죠? 제가 아직 할 일이 남은 거죠?
제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이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글 : 지진희 요한 – 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