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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생. 한국 나이로 72세인 김중배 감독은 한국축구 최고령 감독이라고 할 만 하다. 백발이 성성한 김 감독은 현재 전남 드래곤즈가 운영하는 유소년 클럽인 리틀 드래곤즈의 중마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유소년 지도자이다. 전남은 광양의 송죽, 중마, 광양읍 3군데에 리틀 드래곤즈를 운영하고 있고, 그 중 중마 지역이 바로 김 감독이 담당하는 구역. 그는 7세부터 13세까지 구성된 7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면서 축구를 지도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저보고 할아버지라고 불렀죠. 그런데 제가 아이들을 불러서 할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하라고 주문합니다. 아이들 눈에 제가 할아버지인 것이 현실이지만,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아요. 그러면 제가 금방 도태될 것 같았거든요.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하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저도 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김 감독의 이력은 나이만큼이나 재미있다. 이리동중 시절 잠시 축구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1960년 광주사범대 체육과를 졸업하고 체육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40여년을 교사로서의 삶을 살았고, 구례중 교장선생으로 재직하다가 2001년 정년퇴임했다. “이리동중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했는데, 체격이 너무 왜소하다고 해서 결국 포기해야 했죠. 그래도 워낙 축구를 좋아하다보니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축구부를 만들어서 면 대표 등으로 나가곤 했어요. 광양에는 1968년에 왔는데, 광양농고에서 축구부를 만들어 지역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죠. 광양중에 축구부를 만들어서 구례중과 지역대회 공동우승을 시키기도 했고요.” 이러한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에게 KFA 3급 심판자격증을 취득하게 했고, 2000년에는 62세의 나이로 KFA C급 지도자 코스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정년퇴임 후에는 바로 광양 중앙초에 여자축구부를 만들어 2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C급 지도자자격증에 도전했을 때, 장원직 전 KFA 부회장님이 강사이셨어요. 축구를 잠시 하긴 했지만, 비축구인인데다가 당시 디스크 수술로 인해 몸도 좋지 않은 상태였죠. 젊은 친구들 틈에서 힘들었지만, 끝까지 해보겠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준비하고, 공부하고,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그 결과 C급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죠.” “이후에 장원직 선생님이 지도자 교육을 할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김중배라고 교장선생을 하던 분이 60이 넘는 나이에 교육을 받았는데, 모범을 보여줬다. 배워야 한다’라고 하셨다고 하더군요. 광양 쪽에 있는 지도자 후배들이 그 이야기를 해주는데 너무 감사했어요.(웃음)” |
정년퇴임 후 지도했던 광양중앙초 감독직을 제자에게 물려준 김 감독은 중마동에서 축구교실을 열었고, 성실한 그의 지도가 소문이 나면서 규모는 점점 커져 후배와 제자들의 도움까지 받아야할 정도로 성장했다. 결국 김 감독을 유심히 지켜보던 전남은 리틀 드래곤즈를 지도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2008년 9월부터 중마 리틀 드래곤즈를 지도하게 되었다. “작년 8월에 전남 이건수 사장님께서 만나자고 하셔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장님 말씀이 리틀 드래곤즈를 더 활성화시켜서 앞으로 전남 구단에 도움이 되게 만들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 평소 꿈이 폐교에 잔디구장 만들어서 아이들 지도하는 것이었고, 그와 비슷한 기회를 얻게 된 거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게 됐습니다.” 김 감독은 1달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8년 10월부터 정식 개소한 중마 리틀 드래곤즈를 담당하면서 꼼꼼한 훈련계획서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지도했다. 교직 생활부터 습관이 되었기에 쉬웠다. 또한 공부하는 축구 클럽으로서의 면모를 위해 영어와 한자 교육도 병행하고 있는 중. “저는 지식도 갖춘, 명석한 축구인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결국 그래야만 창의적인 축구도 할 수 있는 거죠. 또한 제 자신이 교육계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인성교육에도 신경을 쓰고 있어요. 교육도 단순히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질문을 던지고, 과제를 주면서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신나게 설명하는 김 감독의 즐거운 얼굴, 그리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축구에 대한 열정은 72세 노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주위에서는 이제 편하게 살라고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아이들의 곁에서 현장을 지키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축구를 지도하고, 같이 그라운드를 누비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어요. 주위에서는 이제 은퇴하고, 경기도 본부석 가서 보라고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건강한 동안에는 직접 뛰어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축구도 하고 싶을 뿐이죠.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아직 너무 많아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축구를 위해 계속 현장에 머물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제가 지도했던 아이들이 잘 성장해서 프로에 가고, 국가대표에도 뽑히는 모습을 볼 때까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모습을 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한참 더 살아야겠죠.(웃음)” 인터뷰=이상헌 * 대한축구협회 기술보고서인 'KFA 리포트' 4월호 '화제의 인물' 코너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
출처:대한축구협회/스포탈코리아
첫댓글 대단하신 분이시다 닮고싶당 ㅋㅋㅋ
존경합니다.
정말 존경 대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