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염천에도 학교에 나가고 한결이는 따라가겠단다.
차를 끌고 대구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남원에서 빠져 나온다.
이른 점심을 먹고 산행을 시작해도 여유가 많다.
뙤약볕 아래 만복사지를 들렀다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까지 들러도
불만을 말하지 않아 다행이다.
인월 남원추어탕집을 갈까 하는데 지난번 경주 갈 때 먹은 맛이 별로였다고 해
인월전통시장으로 들어간다.
마침 인월장날이어서 차가 많다.
장 구경은 안하고 우체국 옆의 짬뽕 집으로 들어가 순두부와 짬뽕을 주문한다.
오토바이 사진을 가득 붙여놓은 벽면사이의 TV에서는 정치인 노회찬의 사망소식을 전한다.
얼른 믿어지지 않는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한 정치에 앞장서고
나름 유머와 통찰력이 있다고 보았는데 자살이라니,
나같이 무심하고 뻔뻔한 이들에게는 조의할 자격도 없다.
한결이도 나름 맛있게 먹어 다행이다.
농협 하나로 마트에 들러 삼겹살과 초코바를 더 산다.
백무동 주차장에 만원을 내고 배낭 매고 나오니 1시가 지난디.
무더위 탓인지 백무동엔 사람이 별로다.
가금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샌달을 신고 내려온다.
대피소 예약을 확인하고 본격 산행을 시작한다.
한결이는 앞서 가 버린다.
거제 직원 여행에서 술을 마신 나의 걸음은 느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적후적 가 버리는 아들을 포기하고 내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이제 아들에게 배낭의 무게를 더 줘도 되지 않을까?
한결이는 언제부터 스스로 산에 가고 배낭을 챙기고 나한테 제안을 할까?
기대하지 말아야지.
한 시간쯤 걸었을까, 길 가에 앉아 물을 마시며 기다린다.
나도 물을 마시며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ㄴ다.
오층폭포를 앞두고 왼쪽 오르막으로 사람이 오른 흔적이 보인다.
어디로 갔을까 걱정하며 새로운 길을 따라 오른다.
길이 아니다. 비탈을 미끌어지며 산죽을 잡고 오르는데 한결이가 기다리고 있다.
되돌아가자는 걸 발자국 흔적을 따라 끝까지 가 본다.
절벽이 나타나 결국 되돌아 온다.
10여분 헤맸을까 온몸이 땀이다. 신발도 흙이 들어왔다.
오층폭포 시작되는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벗는다.
시원한 물에 씻다가 속옷 하나만 입고 물에 들어간다.
들어가지 말라는데 들어간다고 아들은 날 못마땅해 한다.
물은 시원을 넘어 차갑다. 머리까지 넣고 헤엄을 치다가 나온다.
다행이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다시 배낭을 매고 오른다. 오르막은 점점 급해진다.
돌계단을 먼저 올라 뒷모습만 보여주다 사라지곤 한다.
하늘나리인지 중나리인지 꽃도 차분히 보지 못하고 숨가뿌게 따라간다.
세시간쯤 올랐을까? 나이 지긋한 여성들을 데리고 한 남성이 오르고 있다.
머리가 하얀 쪽진 할머니도 있다.
그들을 추월해 오르는데 또 둘씩 짝을 지은 여성들이 오르고 있다.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니 좋겠다고 말을 건다.
경기도 쪽 어느 성당에서 함께 온 신도들이라고 한다.
힘내라고 말하고 우린 오른다.
암벽 사이 가난한 폭포를 지나 길 가운데 바위를 감싸고 선 나무에서 쉰다.
막바지 계단을 오르니 성당 팀의 남자들이 마중을 나오고 있다.
5시가 다 되어 세석산장에 닿는다.
4시간이 안걸려 올라왔으니 잘 왔다.
나는 배낭을 풀고 한결이가 샘에 가서 물병 여러개를 채워온다.
삼겹살을 꿔 먹고 있는 사이 대피소 방배정을 받으라는 방송이 나온다.
대청에 들어가니 한 스님이 책을 보고 있다.
어디서 본 듯하다고 나와 다시 식사를 하는데 스님이 비닐봉지와
컵라면을 들고 다가온다.
자리를 내주며 같이 하시자 하니 앉으신다.
가만 보니 몇년전 무등에서 만난 궁 스님이시다.
물병에 담은 소주를 권하고 삼겹살도 같이 먹는다.
학교 텃밭에서 가져 온 둥그스름한 고추를 보시더니 맛있겠다고
드신다. 내가 매울 수도 잇다고 특히 시앗은 맵다고 주의를 드린다.
맛있게 드시던 궁 스님은 매워서 더 이상 다른 음식을 못 드신다.
매워서 고통받으시는 스님에게 연양갱 하날 드린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6시 반이 지나자 촛대봉에 가 일몰을 보겠다고 일어난다.
난 슬리퍼에 맨발로 나서는데 스님도 막대기 지팡이를 들고 따라오신다.
슬리퍼를 신고 촛대봉 오르기도 재밌다.
한 떼의 중학생들이 교사의 인솔로 힘들게 내려오고 있다.
전주에서 온 중학생들은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거쳐 세석대피소까지 가는 길이란다.
다 왔다고 힘내라고 말하며 촛대봉에 닿으니 온통 구름바다다.
반야봉도 안보이고 천왕봉도 안 보인다.
나 혼자 바위 사이를 건너다니는데 안개구름 속 바위 끝에 검은 염소 한마리가 날 쳐다보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느릿하게 바위 뒤로 사라진다.
스님에게 숫양이 있다고 하자 다가 와 보시며 놀란다.
산에서 곰도 보았는데 숫양은 처음이라고 한다.
흙바닥엔 양이 후빈 흔적도 보인다.
구름이 지나가며 천왕봉 능선봉우리를 잠깐 보여주고 다시ㅣ 덮는다.
반야봉도 안보이고 건너 영신봉도 들락날락이다.
내려 와 스님과 다시 남은 고기를 굽는다.
방에 들어간 한결이는 나오지 않는다.
주변은 학생들과 성당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9시가 되었을까? 조용하라 해 안으로 들어가 한결이 옆에 눕는다.
스님은 대청에서 자겠다고 한다.
한참을 잔 듯한데 12시도 안됐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들락거린다.
나와 화장실을 가면 본 하늘은 크고 작은 별이 가득하다.
여러 차례 잠을 깬다. 작은 등불이 눈에 드러와 몸을 계속 뒤집는다.
나는 왜 이런 잠자리를 택한 걸까?
아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