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태로 파시즘이 유산계급과 근로자를 밀어붙인 임시 동맹의 과정을 기억한다면, 전체 과정은 이해하기 쉽다. 인민전선이라 알려진 이 동맹은 본질적으로 적과의 동맹이며, 언제나 한 상대가 다른 상대를 반드시 삼켜버려야만 끝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페인 상황에서 기대할 수 없는 유일한 특징-스페인 밖에서 어마어마한 오해를 유발하였다-은 정부 측 정당 사이에서 공산당은 극좌에 선 것이 아니라 극우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실은 놀랍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나 특히 프랑스에서 공산당의 전술은 그 당시에 어쨌든 공산주의는 반혁명 세력으로 간주되어야만 함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변명하자면 국제정세를 고려하여)모든 코민테른 정책은 이제 USSR의 방어에 종속되었다. 특히 소련은 자본주의 이자 제국주의 국가인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 동맹은 프랑스 자본주의가 강하지 않으면 소련에게 거의 쓸모가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공산주의자의 정책은 반혁명이 되어야만 했다. 이는 이제 프랑스 공산주의자는 (프랑스 국기인)삼색기를 따라 행진하고 (프랑스 국가인)마르세이유를 불러야 하며, 더욱 중요한 점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모든 효과적인 선동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공산당 서기인 토레즈는 프랑스 노동자는 독일 동지들에 대한 투쟁에 결코 현혹되어서는(투쟁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이제 프랑스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애국자 중 하나였다. 특정 나라에서 잠재적이건 실제적이건 소련에 대한 그 나라의 군사적 관계가 특정 나라에서 공산당의 행위를 알 수 있는 단서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정세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따라서 영국공산당은 여전히 국가 정부에 대해 적대적이며, 외관상 재무장에 반대한다. 대영제국이 소련과 동맹이나 군사적 이해관계를 맺는다면, 프랑스 공산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영국 공산주의자들은 훌륭한 애국자와 제국주의자가 되는 길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이러한 전조 증상은 이미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자 ‘전선’은 프랑스와 러시아 동맹이 혁명적 이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았으며, 스페인령 모로코의 해방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저지하였다. 모스크바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붉은 혁명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데일리 메일은 평소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잘못을 저질렀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혁명을 저지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공산주의자였다. 나중에 우익 권력이 완전히 지배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지도자들을 사냥하는 자유주의자들보다 기꺼이 더 멀리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혁명의 첫 해 동안 스페인 혁명의 일반적인 경로를 묘사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는 어떤 특정한 시기의 상황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월에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의견을 거론했다는 사실을 제시하길 원하지는 않는다. 우선 첫째로, 나를 가장 계몽한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 있어 내 동정심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전쟁의 정치적 측면이 나를 지루하게 하였고, 나는 천성적으로 내가 대부분 들었던, 즉 POUM과 ILP관점에 반해서 반응하였기에 이는 부분적이었다. 내가 있던 곳의 영국인은 대부분 ILP 멤버였으며 그들 중 극히 소수는 CP 멤버였다. 그들 대부분은 나보다 정치적으로 더 좋은 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 우에스카 주변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지루한 시기의 마지막 몇 주 동안 나는 실제로 절대 끝나지 않는 정치 토론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우리가 합숙하고 있던 악취가 나고 외풍이 있는 농부의 외양간에서, 대피소의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흉벽 뒤에서, 투쟁하고 있는 정당의 ‘전선’은 끊임없이 토론하고 또 토론했다. 스페인 사람 중에서도 같았다. 우리가 본 신문 대부분은 당 사이의 불화를 주요 특집으로 다뤘다. 사람들은 다양한 정당이 견지하고 있는 특정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귀머거리나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정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개만 중요한 정당인데, PSUC, POUM, CNT-FAI이며 대략 무정부주의자로 묘사된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첫째로 PSUC를 꼽는다. 마지막으로 승리했으며, 지금 시점에서도 상승세가 뚜렷한 정당이다.
PSUC ‘노선’에 대해 언급할 때 사람들은 실제로 공산당 ‘노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PSUC9Partido Socialista Unificado de Cataluna)는 카탈루니아 사회당이다. 전쟁 초기에 카탈루니아 공산당을 포함하는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결합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적으로 공산당이 통제하고 있으며, 제3 인터내셔널에 종속되어 있다. 스페인 어디에도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사이의 공식적인 통일은 결코 방생하지 않았지만, 공산주의자의 관점과 우익 사회주의자의 관점은 모든 곳에서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PSUC는 UGT(union General de Trabajadores)의 정치적 기관이었다. 스페인 전역에 이 조합의 회원 수는 현재 150만에 달한다. 그들은 육체노동자의 많은 부분을 담고 있지만, 전쟁 발발 이후 중산층의 대규모 유입에 의해 역시 부풀려졌다. 초기 ‘혁명의’ 나날들 기간에 모든 종류의 사람들은 UGT나 CNT에 가입하는 일이 유용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두 진영은 겹쳐지지만 두 블록 중 CNT는 노동 계급 조직에 더 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PSUC는 부분적으로는 노동자의 정당이고, 부분적으로는 소상공인-점포소유주, 공무원, 부유한 농민의 정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