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는 “그동안 저희들이 모셔왔던 산중 유나 스님이 조실 스님으로 추대되셨다”며 “종단과 전국수좌회 구참 스님들 그리고 산중에서 조실 스님으르 추대하신 것”이라면서 “신흥사 주지 지혜스님과 삼조스님 등이 여러 스님들을 초대하여 규모를 갖추어 추대식을 모시려 했지만 조실 스님께서 한사코 만류하셔서 교구와 선원 대중과 결제 대중들만 모시고 최소 규모로 추대식을 봉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날 조실로 추대된 영진스님에 사부대중은 합장 삼배를 올렸고, 이어 영진스님은 법석에 올라 법문을 설했다. 스님은 “여러 대중이 모여 함께 수행하지만 이 자리에서 조계종 종정도 나오고 위대한 수행자가 나올 것이다. 시작은 같이 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면서 “늘 하는 결제이지만 그저 그렇게 보내자 하는 타성에 젖는 마음을 경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진스님은 “선원은 무위법을 터득하는 도량이다. 무위법이란 생멸의 변화를 떠나 상주불변하는 참된 법을 말한다. 수행자로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중도정견을 지녀야 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니르바나란 탐진치의 불꽃이 연소된 상태라고 했다”면서 “니르바나는 선(禪)의 관점에서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님을 말한다. 둘로 보기 때문에 비교하게 되고 한없이 괴로운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과연 생사가 둘이 아닌 이치를 나는 깨닫고 있는가 생각해보라. 우리 모두 다 미진하다. 미진하기에 그동안 조실 자리를 마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이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수행자와 정진하면서 대중화합 이끌며 지내겠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법문을 이어갔다. “우리 마음이 본래 공성이다. 마음을 몰아 쓰는 순간 집착이 된다. 마음은 어디에도 물들거나 엮이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불장에서 무명의 겁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어 본마음이 드러나도록 참선공부를 해야 한다. 무문관을 여는 열쇠는 화두타파다. 화두란 가장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화두는 모르는 상태에서 의정 하나 들고서 하는 것이다. 내 생각 집어넣어서 헤아려 답을 찾으려 하면 아무 의미 없다. 있는 그 자리에서 오직 간화선 화두 하나 들고 씨름을 하다보면 화두가 홀로 드러나 타파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공부지만 쉽지 않기에 꼭 해야 할 공부이다. 화두 들고 부처님 은혜 보답하는 시간을 만나길 바란다.”
영진스님은 추대법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5년 전 이 곳에서 기본선원장을 지내면서 ‘수좌사관학교’로 육성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바 있다”면서 “진제, 무산 큰스님 등 역대 조실 스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수좌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영진스님은 1972년 김제 금산사에서 도영스님을 은사로 득도, 용봉스님과 석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비구계를 수지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조계종 기초선원장 동화사 선원장 등의 소임을 맡으면서 간화선 교육에 일익을 담당해왔다.
신도들도 동안거 결제와 조실 스님 추대법회에 자리를 함께 했다. 신도들도 동안거 결제와 조실 스님 추대법회에 자리를 함께 했다.
영진스님이 대중들 속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 영진스님이 대중들 속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 동안거 결제와 선원 조실 추대를 기념하여 모든 대중 스님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안거 결제와 선원 조실 추대를 기념하여 모든 대중 스님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신도들도 영진스님의 추대를 함께 축하했다. 신도들도 영진스님의 추대를 함께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