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도는 데는 지리적 장벽이 있었다. 5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맥과 파밀 고원이 가로막았고, 북쪽은 고비사막이 바다처럼 가로막았다.
그렇더라도 불교는 천산남북로를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왔다. 불교를 수용하는 중국의 조건들도 있었다. 이런저런 요소들이 어울러져서, 인도 불교의 중국 전래를 가로막기도, 돕기도 하면서 전래되었다.
천산남북로를 따라 오려면 자연히 서쪽의 도시를 거쳐서, 동족으로, 동쪽으로 전파되었다. 대표적인 도시들이 호탄, 미란, 쿠차 등등, 그리고 주변의 여러 크고 작은 도시들이다. 그리고 돈황까지 와서 많은 불교 석굴 유적과 미술품을 남겼다.
미술품에는 그들의 문화가 묻어 있어서, 우리는 미술품을 통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엿볼 수 있다.(사진 참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전해오는 말로는 진시황이니, 한의 명제니 하지만, 문헌지료나 유적으로는 위진 남북조 시대에 큰 물줄기가 되어서 밀어닥쳣다.
위진남북조 시대는 끊이지 않는 전쟁과 살육으로 민심이 극도로 불안하였다. 중국의 중심 사상인 유학은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민간에 퍼져 있느 도교 사상의 신선사상은 불교와 친밀한 부분이 있었다. 불로장수를 노리는 신선사상과, 불교의 아미타 사상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중국인은 아미타불을 신선처럼 여기고 죽지 않는다 으미로 무량수(無量壽)라고 하였다.
더 상세한 내용은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서역의 지도이다. 이 도시들을 경유하여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옵니다
첫댓글 도교와 불교가 비슷한 점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