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의 역사 1】
최초의 낙하산은 1470년 르네상스 시대,한 이탈리아인이 쓴 원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축물이 지금같이 높지는 않았겠고 최초로 기록된 기구 비행이 1709년 8월 8일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전에 낙하산을 탄 사람이 뛰어내릴 만한 곳은 절벽이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14년에 낙하산의 설계도를 스케치했고,한 세기 뒤에 크로아티아의 카톨릭 사제였던 파우스토 베란치오는 다빈치의 설계도에서 세부사항을 빌려와 낙하산의 단단한 틀을 만들어 1617년에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종탑에서 뛰어내렸다.
베란치오는 처음으로 금속 아치가 설치된 다리를 발명했으며,풍차를 개량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파울로 기도티도 1592년에 다빈치의 설계도를 현실로 옮기려 했지만 자기 집 지붕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침내 베란치오가 성공을 거두자 이 업적은 1648년에 런던 왕립학회의 총무였던 존 윌킨스가 쓴 "수학적인 마법,또는 역학적 기하학에 의해 수행된 경이로움"에 실렸다.
그 이후로 높은 곳에서 지면까지 안전하게 몸을 띄우는 시도를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베란치오의 시대에서 166년이나 지난 1783년 12월 26일,프랑스인 루리 세바스티앙 르노르망은 최초로 증인을 갖춘 낙하 실험을 했다.
그는 4.5m짜리 단단한 틀을 갖춘 '우산식 설계' 낙하산을 타고 몽펠리에 천문대의 탑에서 뛰어내렸다.
르노르망은 사실 사람들에게 화재시 높은 건물에서 탈출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신의 기구를 소개하려던 것이었다.
그리스어로 '~에 맞서'란 뜻을 지닌 'para'와 프랑스어로 '떨어진다'라는 뜻을 지닌 'chute'를 연결해 오늘날 낙하산을 가리키는 단어인
'Parachute'를 만든 것도 르노르망이었다.
이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나중에 뜨거운 공기를 넣은 열기구를 발명한 몽골피에도 그 장면을 목격했지만 애석하게도 르노르망이 했던 대로 시도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의 예외가 또 다른 프랑스 사람인 장 피에르 블랑사르였다.
블랑사르는 1785년 기구에서 낙하산 바구니에 자신의 개를 태워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 시도는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1793년에 블랑사르는 자기가 기구에서 낙하산을 타고 탈출했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없었고 그의 말을 믿지도 않았다.
블랑사르는 1790년대에 최초로 단단한 틀이 없고 비단으로 만들어 접을 수 있는 낙하산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는 자기가 직접 뛰어내리는 대신 개를 실험에 사용했고,또 기록에서 배제되었다.
그 결과 사람이 직접 뛰어내렸다는 조금 수상쩍은 기록은 역시 프랑스 사람인 앙드레 자크 가르느랭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1797년 10월 22일에 914m 상공에 띄운 기구에서 단단한 틀없는 낙하산으로 뛰어내린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비록 가르느엥은 비단 낙하산에 연결된 바구니에 안전하게 앉았지만 그의 낙하산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흔들렸고 결국 들판에 험하게 착지했다.
그래도 다행히 가르느랭은 아무 탈 없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의 아내 잔도 몇 년 뒤에 직접 낙하를 해서 성공했다.
가르느랭의 성공 소식은 전 유럽에 퍼졌고 부부는 이곳저곳에서 시연을 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1837년에는 영국의 예술가이자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로버트 코킹이 1802년에 런던에서 가르느랭이 낙하산 시연하는 장면을 보고 자기도 따라해 보기로 결정했다.
코킹은 당시 61세의 고령에 경험도 없었지만 낙하산을 직접 설계해 런던 복스홀 가든 대축제의 주최자에게 자기가 낙하산으로 처음 뛰어내리는 모습을 관객을 끄는 주 행사로 삼아 달라고 설득했다.
1837년 7월 24일 오후 7시 35분경,코킹은 뜨거운 공기가 찬 기구에 매달린 바구니에 매달려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는 고도 2,440m에서 자신의 발명품을 펼칠 예정이었지만 계산을 실수한 탓에 몇 km떨어진 그리니치가 내려다보이는 높이인 고도 1500m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해가 저물어 도전에 실패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든 코킹은 일단 낙하산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사망이었다.
19세기에도 비슷한 시도를 했던 사람이 있었지만 결과는 코킹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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