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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혔기에 거룩하게 된 이들>
오늘 복음에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신 장면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루카 6,12-13)
이는 마치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곳,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산으로 불러올리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먼저’ 부르시고 뽑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르신 이, 뽑으신 이가 누구신가?'입니다.
‘누가’ 부르시고 뽑았는지가 그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곧 ‘부른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응답한 이의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곧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이는 대통령이 부여한 일을 하며
대통령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는
하느님의 일을 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에게 부르심 받았고
누구에게 뽑힌 이인지를 항상 기억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시기에 앞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밤 새워 기도하여 뽑은 이들은 능력 있고
자질이 뛰어난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뽑힌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그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뽑힐만한 충분한 자격이나 조건들을 갖춘
거룩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니라,
‘뽑혔기에 거룩해지게 된 이들’인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뽑힌 사도들은 이름 없는 무명인들이었고,
뽑힌 후에도 그다지 특별한 내력을 전해주지도 않습니다.
마치 '사도'란 모름지기 그렇게 ‘이름 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나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러하리라 여기면 될 일일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둥이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다면,
그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이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초는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그러기에 대단히 겸손하지 않으면 튼튼한 기초가 될 수가 없고,
또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교회의 기초인 사도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로 뽑혔나 봅니다.
마치 기초가 건물을 떠받들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듯이,
그들은 타인을 떠받들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신 다음,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들과 함께 세상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 나가십니다.
오늘 우리도 겸손한 자로,
예수님과 함께 세상 안에서 그분의 뜻을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루카 6,13)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 뜻의 실행이 제 양식이 되게 하시고,
제 몸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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