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띠해에, 쥐(鼠)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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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東坡(소동파)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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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庚子(경자), 쥐띠 해이다. 쥐는 사람에게 혐오스럽다. 생김새가 얄밉고 성질이 급하며
행동이 경망한데다 좀스럽다.더욱이 인간의 양식을 탐내고 나쁜균을 옮기는 못된 존재로 각인돼
있다.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일뿐, 자연계로서의 쥐는 존재감이 자못 크다.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되며,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에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는 약삭빠
른 동물이다. ‘쥐새끼 같다’라고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살 궁리를 위해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이
는 사람을 말한다. 요즘 많이 등장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랄까? 그래서 12간지의 첫번째에
이름을 올렸는지 모른다.
21세기 앞을 분간 못하는 미세먼지같은 세상에 쥐의 살아남기 전략은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東坡 蘇軾(동파 소식: 1037~1101)은 쥐와 특별한 사
연이 있어 글을 남겼다.
바로 ‘黠鼠賦힐서부’다. 黠은 ‘약다. 약삭빠르다’의 뜻이며, 鼠는 쥐를 말한다. 즉 ‘약은 쥐’란 글
이다. 소동파처럼 훌륭한 사람이 한갓 이런 미물에 눈길을 돌려 글을 남길 정도라면 쥐란 동물
에도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원문을 풀어썼다. 소동파가 하루는 밤에 앉아있는데, 쥐가 물건을 갉아대는 소리가
났다.침상을 치자 그쳤다가 다시 갉아댔다. 동자를 시켜 촛불을 밝혀보니 빈 풀무통에서 난 소
리였다. 풀무통을 열어 촛불을 비추니 죽은 쥐가 있었다.
좀 전까지 살아서 갉아댄 쥐가 갑자기 죽은 것이 이상했다. 통을 엎으니 쥐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도망쳤다. 이때 소동파는 탄식한다. “대단하구나 쥐의 영리함이여” 쥐가 딱딱한 풀무통에 갇혀서
탈출할 수 없으니 통을 갉아서 사람을 부른 것이다.
사람이 통을 열자 죽은 채 하다가 그것을 엎자 이때다 싶어 도망친 것이다.
소동파는 모든 생물을 부려 군림하는 사람이 이런 하찮은 미물에 당했다고 생각하니 사람의 지
혜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한갓 미물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인간의 양면성이다.
즉 소동파는 인간은 사낭운 맹수를 때려잡을 수 있어도 벌이나 전갈에 안색이 변하는 것은 정신
을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다음은 원문이다.
蘇子夜坐 有鼠方齧 拊床而止之 旣止復作 使童子燭之 有橐中空 嘐嘐聱聱 聲在橐中 曰 噫 此鼠之
見閉 而不得去者也 發而視之 寂無所有 擧燭而索 中有死鼠 童子警曰 是方齧也 而遽死也 向爲何
聲 豈其鬼耶 覆而出之 墮地乃走 雖有敏者 莫措其手 蘇子歎曰 異哉 是鼠之黠也 閉於橐中 橐堅而
不可穴也 故不齧而以聲致人 不死而死 以形求脫也 吾聞有生 莫智於人 擾龍伐蛟 登龜狩麟 役萬物
而君之 卒見使於一鼠 墮此蟲之計中 驚脫免於處女 烏在其爲智也 坐而假寐 私念其故 若有告余者
曰 汝惟多學而識之 望道而未見也 不一于汝而二于物 故一鼠之齧 而爲之變也 人能碎千金之璧 不
能無失聲于破釜 能搏猛虎 不能無變色于峰蠆 此不一之患也 言出於汝 而忘之耶 余俛而笑 仰而覺
使童子執筆 記余之作 /蘇東坡 ‘黠鼠賦‘
소동파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부끄러웠지만 사실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일도 허투루 보지 않았고 거기서 배울 점을 찾아 의미를 부여했다.그때의 ‘약
은 쥐’가 대문호의 붓을 빌어 천 년만에 부활했다.
그 쥐가 이름도 거창한 2020년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李斯(이사)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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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젊었서 고을의 아전으로 있을 때 관사의 측간에 사는 쥐들이 더러
운 것을 먹으면서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올 때마다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는)이사가 곳간에 들어갔더니 쌓인 곡식을 먹는 쥐들을 보고 큰 창고에 사는 쥐들이 사람이
나 개를 걱정하지 않았다. 이에 이사가 탄식하기를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비유하면 쥐와
같으니, 스스로 처하는 곳에 따라 달라질 뿐이구나” 했다.
李斯者楚上蔡人也 年少時爲郡小吏 見吏舍厠中鼠食不潔 近人犬數驚恐之 斯入倉 觀倉中鼠食積粟
居大廡之下 不見人犬之憂 於是李斯乃嘆曰 人之賢不尙譬如鼠矣 在所自處耳 /史記「李斯列傳」
李斯(이사: ?~BC208)는 ‘측간의 쥐’로 흥기했고 ‘곳간의 쥐’로 비극을 맞았다. 그는 같은 쥐라도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처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실권자 呂不韋을 찾아가 家臣이 된다. 그후 여불위의 추천으로 진시황을 만나고 일
급 참모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천하 통일에 앞장섰고 나라의 기틀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최고관직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화폐 개혁과 도량형 통일, 문자통일 등 굵직한 정책이 모두 그의 머리와 손에서 나왔다. 그는
荀子의 제자로서 문하생 韓非子(한비자)와 함께 법가사상을 전파해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그런데 진시황 사후부터 영화가 빛을 잃어갔다. 환관 출신 趙高(조고: ?~BC207)와 모의해 2세
胡亥(호해)를 옹립하였고 잠시 방심하는사이 趙高에게 일격을 당해 요참형(腰斬刑)에 처해졌다.
오직 권력의 부나방만 쫓다가 당한 뜬구름같은 인생의 종말이었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 말
았어야 했는데 권력에 취해 측간의 쥐를 망각한 것이다.
孟子(맹자) 역시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生於憂患 死於安樂)”라고 했다.
위기는 안일에서 온다는 것을 그도 알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조선의 恕菴 申靖夏(서암 신정하
:1680~1715)는 “李斯의 지혜는 창고 속의 쥐만도 못하다(李斯智不如倉中鼠)”라고 비판했다.
이사는 荀卿(순경.荀子순자)에게 배운 진나라 승상이다.
그의 지혜는 창고 속에 사는 쥐에게서 취한 것이다. 그러나 열전에 이르기를 “쥐가 큰 창고 속에
살면 사람과 개를 근심할 줄 모른다” 고 했다.
그런데 이사는 조고를 근심할 줄 몰랐으니 대개 쥐는 몸을 숨길 줄 알았고, 이사는 몸을 숨길 줄
몰랐기 때문이다. 평생동안 어렵게 쥐를 배웠지만 또한 제대로 잘 배우지 못했으니 슬프도다!
李斯之從學荀卿與相秦也 其智取自倉中鼠耳 然傳言鼠居大廡之下 不見人犬之憂 而斯不能不見趙
高之憂 盖鼠知藏身而斯不能藏身也 一生辛苦學鼠 而亦不能盡學 哀哉 /『恕菴集』 권16
신정하는 이사가 젊은 시절 두 환경의 쥐를 보고 교훈을 얻었지만, 여유있는 곳간의 쥐만 생각했
지 항상 긴장하는 측간의 쥐를 망각했다고 아쉬워했다.
평생 동안 배운 쥐였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쳤을 때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듯이 인간은 자신을 다스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
이 인간이 품은 고질적 한계인가보다.
출처:김동건/인문학자•수필가
첫댓글 부산 손님이 묵고 있는 신라호텔과 가까운 장충동의 족발집에서 저녁을 함께 하였는데 역시 연말 모임등 손님으로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채운 북적임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경기부양이란 소비자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부터 인데 또한 적정 가격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어른4명에 초등생1명, 특대 5만원 짜리 하나에 족 하였고 빈대떡 그리고 비빔냉면등 까지 7만원의 저렴한 값 이었습니다. 주말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