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관객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데 고수다. 공포영화 장르에서 작가주의를 추구하는 보기드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그는 ‘섞어놓기’의 귀재다. <플라이 The Fly>에서는 인간이 파리가 되고 <비디오드롬 Videodrome>(1983)에서는 인간이 텔레비전과 몸을 합치며 <크래쉬 Crash>(1996)에는 자동차와 몸을 부비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인간 군상이 나온다. 크로넨버그가 이런 기괴한 설정으로 공격하는 것은 서구사회를 지탱하는 가치인 개인주의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식 인간관이다. 기계와 섞이고 풀어헤쳐진 인간의 존재는 사회의 편안한 질서를 위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불변성에 갇혀 있다. 성욕도, 인간관계도 그렇다. 그러나 크로넨버그는 삶의 불변성과 사회를 변함없이 지탱시켜 주는 인간다움의 가치에 침을 뱉는다.
4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크로넨버그는 토론토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대학재학 시절 그는 16mm 단편 <전이>와 <방수로에서>와 35mm 단편인 <스테레오>와 <미래의 범죄들>을 만들어 기괴하지만 독특한 발상을 보여줬다. 본격적으로 극영화 연출에 뛰어든 후에도 인간들을 다른 생물체나 기계와 섞어놓는 크로넨버그의 반휴머니즘적인 취향은 수미일관한다. <파편들 Shivers>(1975)로 데뷔한 이래 크로넨버그는 늘 공포와 구토와 매력이 공존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포르노배우인 마릴린 체임버스를 출연시킨 <열외인간 Rabid>(1976)은 겨드랑이에 흡혈구멍이 달린 여자가 도시를 도탄에 빠뜨린다는 내용인데 인간 신체에 대한 크로넨버그의 냉소적인 취향이 잘 드러나 있다. 텔레파시를 나누는 지하공동체를 다룬 <스캐너스 Scanners>(1980), 스티븐 킹 원작의 <초인지대 Dead Zone> (1980) <플라이>(1986) 등을 거치면서 크로넨버그는 공포영화 장르에서 입신의 경지에 오른 보기드문 예술가 대접을 받았다. 한 여자와 같이 잔 뒤 정체성의 혼란으로 서서히 미쳐가는 쌍둥이 의사의 이야기인 <데드 링거 Dead Ringers>(1988)와 카프카적 광기의 세계를 체험하는 작가의 분투기인 윌리엄 버로즈 원작의 <네이키드 런치 Naked Lunch>(1991)는 잘 세공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여자인 줄 알았던 동양남자와 사랑에 빠진 서양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을 떨치려 한 <M. 버터 플라이 M. Butterfly> (1994)는 오리엔털리즘의 함정에 갇힌 실패작으로 끝났다.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대한 상식적인 반응은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외견상으로 그의 영화는 신체 해부에 남다른 탐닉을 보이는 도착의 산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종의 밀교의식을 치르는 듯한 엄숙한 분위기로 크로넨버그는 인간 신체의 섞어놓기와 헤집기를 가능케 하는 공포영화의 틀을 통해 르네상스 이후 인간다움의 가치를 규정한 서구 통념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크로넨버그의 초창기 영화가 테크놀로지나 초자연적인 힘에 사로잡힌 인간들 때문에 무너지는 사회를 보여준다면 후기작은 개인의 내부세계를 다룬다. 언제나 크로넨버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테크놀로지를 비롯한 외부의 힘에 육체와 성욕을 정복당해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과 욕망이 서로 구속당하는 힘으로 크로넨버그는 은근하게 사회의 가치체계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크래쉬>를 두고 ‘종교적인 걸작’이라고 평했다. 크로넨버그에 따르면 <크래쉬>의 등장인물은 모두 예수 같다. “거기에는 초월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것은 종교의 역할이다. 우린 우리 자신의 기원을 항상 넘어서려고 한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고 전환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거의 종교적인 과정이다.” 크로넨버그는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자아가 뒤바뀌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인간다움의 가치를 관찰하고 있다. 크론네버그는 금세기가 배출한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감독 목록에 꼭 들어야 할 감독이다.
2000년도 이후로 <폭력의 역사>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스터 프라미스>등 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