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가는 길
누구에게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절대적이다. 여성적인, 영원히 여성적인 존재가 어머니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나르시스와 골드문트》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앞둔 골드문트를 통해 나르시스에게 감성의 세계를 일깨우는 말을 전했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가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골드문트에게 어머니의 가치는 이브이며, 행복의 근원이요, 죽음의 근원이기도 한 그의 생애 전부였다.
어머니뿐 아니라 어머니가 자라고 살던 외갓집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또 하나의 고향이다. 그곳은 우리를 어느 때나 따뜻하게 맞아 주고 안아주는 어머니의 유전자가 살아있는 발원지이다.
외갓집이란 모국어 감성에 맞는 정겨운 말이다. 피난처와 같은 안전함, 조건 없는 사랑과 보살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성소(聖所)이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향수가 ‘할머니 댁’(Grandma’s house)이나 ‘조부모님 댁’(Grandparent’s house)으로 표현되어 우리의 ‘외갓집’보다 정감이 덜한 편이다. 그 감각의 차이는 우리의 부계사회 문화와 달리 서양에서는‘외가’와‘친가’의 구분이 그리 강하지 않은 문화에 기인하는 듯하다.
조선시대, 뿌리 깊은 성리학의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한 때에도 훌륭한 분들이 외가에서 태어나기도, 자라기도 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이율곡과 허균 모두 외가에서 태어났고, 류성룡은 외가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이순신은 가난 때문에 외가에서 자랐다. 공자도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어 외갓집 동네에서 자랐다고 한다. 외갓집에서 형성된 그분들의 인성교육이 어떠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불행히도 어릴 때 내게는 외갓집이 없었다.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이모, 외삼촌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막내인 어머니만 홀로 남으셨기 때문이다. 돌아갈 또 하나의 고향이 처음부터 없었기에, 외갓집 가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 부러운 감정이 아주 오랜만에 되살아나는 일이 있었다. 새해 첫 주에 고향 친구랑 산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친구는 여느 때와 같이 우리 가곡을 멋지게 불렀다. 그날은 ‘외가길’이란 정겨운 노래였다. 가사는 이러했다.
“흰 눈이 자욱하게 내리던 그날, /아버지와 뒷산 길 외가 가던 날, ~/앞치마에 손을 닦던 우리 어머니 달려가 반가이 꼭 안았어요”
아마 외갓집은 그 소년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혹 외가에 할아버지의 생신 잔치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준비하시러 먼저 가시고 소년은 아버지와 잔칫날 당일에 길을 떠났을 것이다. 이윽고 외갓집에 다 달았을 때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하시다가 문득 달려 나와서 반갑게 소년을 꼭 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첫 부분에는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함께 외할아버지의 추억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외갓집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성녀와 같은 딸과 사랑스러운 손자들을 보려고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에 찾아오곤 했다. 그는 항상 용의주도하게 계산하여 난폭한 사위가 분명히 집에 없을 때를 택해 와서 손자를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껴안았다고 한다.
역시 우리 정서가 서양의 그것보다 아름답고 정겹다. 카잔차키스의 외할아버지는 사위가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딸과 손자들을 만나러 가지만, 우리의 노래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뒷산 넘어 외할아버지 집엘 손잡고 다정히 가는 인정의 기미를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 노랫말의 하이라이트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달려와 아들을 반가이 꼭 껴안는 어머니의 모습일 것이다.
이 연수(年數)의 나이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노래를 들려준 친구의 순전한 마음이 고마웠다.
문득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항상 인자한 미소로 따뜻하게 감싸주시던 모습이 보고 싶었다. 좌절로 힘들었던 때에도 등을 두드려주시며 권면을 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 오른다. 그러던 어머니가 오래전 고향 선산 양지바른 곳에 아버님과 함께 누워계신다.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계실까, 아니면 아직도 내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실까. 이 못난 자식이 벌써 망구(望九)의 문턱에 들어 부모님이 걸어가셨던 스산한 가을의 시간으로 돌아왔으니, 무상한 시간은 참으로 화살같이 빨리 지나갔다. 길고도 추운 겨울밤 어머니의 외로운 시간에도 함께 하지 못한 회한이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 밤은 어머니를 찾아 그동안 드리지 못한 얘기를 하고 싶다.
이 땅에서 어머니는 누나들의 아들딸들에게 인자한 외할머니셨다. 조카들은 방학이면 시골 외가에 내려온다. 여름이면 텃밭에서 나오는 산출물로 먹거리가 풍성했다. 낮에는 강가에 나가 헤엄도 치고 물고기도 잡았다. 저녁이면 마당 구석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들마루에 둘러앉는다. 밤하늘에 별똥별이 스쳐 지나갈 때까지, 갓 찐 강냉이와 감자를 먹으면서, 어머니는 조카들에게 옛날이야기와 누나들의 어릴 때 얘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그러던 조카들도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었다.
어느새 세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이 귀엽다. 자식들에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그런데 세상 살기가 팍팍해져서인지 우리 사회에는 독신이 늘어나고 점점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어른들이 어린아이에게 할 일이란 쾌적하고 풍요로운 환경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물려주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이 땅에서 외갓집이나 외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 이모라는 어휘가 사라지지 않을는지 염려가 든다. 내게는 그런 정감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 없었을지라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상대가 되어주고 싶다.
어머니란 본원적 그리움의 존재이며 돌아갈 주소이자 고향이다. 절대적 존재이다. 그래서 “그리움의 기도”란 시를 써 보았다.
“어머니가 너무 그리운 소녀가/ 엄마 그림을 땅 위에 그려놓고/ 그 품속에 잠드는 모습이/ 가슴 저미도록 아름다운 정경이다./ 단순한 행위 예술이 아니다./ 온 마음과 몸 전체를 드리는 그리움의 기도이다.”
어머니는 곧 그리움 기도의 원천이다. 외갓집은 어머니 마음의 본향이다. 그 가는 길을 몰랐으나 아이들에겐 그 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