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여름 로스앨러모스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허버트 요크(Herbert York), 에밀 코노핀스키(Emil Konopinski)등 네 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고려했을 때, 인류 문명과 같은 고등 외계 문명의 존재는 당연하다는 의견으로 모였다. 그 때, 페르미가 난데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것들은 어디에 있나(Where are they)?"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우주의 규모를 보자면, 인류 문명과 같이 외계 지성체가 세운 외계 문명의 존재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정말 외계인들이 존재한다면 그 중 먼저 발생해 오랜 시간 존재해온 선구자 문명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이미 지구에 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외계 문명들은 대체 모두 어디에 있는 건가?" 이것이 바로 페르미 역설이다.
이후 이 역설은 외계 문명을 둘러싼 논쟁에서 항상 언급되었으며, 과학자와 SF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역설을 풀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시나리오와 이론들이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나온 수많은 의견들을 나누어 보자면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외계인은 벌써 우리 곁에 와 있다.
이 쪽은 '외계문명기원설'과 이어지기도 한다. 일견 흥미롭지만, 내포하고 있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이러한 문명을 일궈냈을 리 없다"라는 생각이 일각에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들어있다고 의심하는 초고대문명설과 유사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오리엔탈리즘적 태도 말고 동물원 가설이라는 그럴듯한 가설이 있다. 이미 고도의 외계 문명이 오래 전에 전 우주를 정복했고 그들이 우주의 한 구역에 자연보호구역 혹은 동물원을 설치했는데 그 안에 지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구역 내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못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서 개발되지 않은 우주를 보존하려 한다는 것. 이 가설에 따르면 외계인 관리자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문명 발달 수준이나 개체수 등을 체크하고 있을 수도 있다.
맨 인 블랙처럼 이미 외계인들이 인류와 접촉하였으며 지구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정부에선 일반인들에게는 철저히 기밀로 부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항성간 이동이 가능한 초고도 외계종이 인류와 접촉한다는 것은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 전 인류를 규합하는 것이 종 전체에 있어 훨씬 이로운 일이다.
2. 외계인은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우리와 의사소통할 수 없다.
전파의 전달 속도가 광속을 넘을 수 없다는 한계에서 비롯된 설이다. 태양계 밖 어딘가에 있기는 하나, 아직은 수단이 없어서 서로 모르거나 알더라도 연락할만한 기술이 없다는 것. 신구대륙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고립되어 발전하여 만나게 되어 현재에 이른 것의 우주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주덕후들이라면 알 법한 천문대에서는 오늘도 우주의 외계인을 향해 메시지가 담긴 전파를 쏘아올리고 있다. 또한 우주의 전파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SETI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특히 광속이라는 것이 지구 기준에서는 아득하게 빠른 것은 맞지만, 우주적인 기준에서는 결코 빠르다고 볼 수 없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약 1억 5천만km) 가는 데 8분 20초, 1광년(약 9조 4천 6백억km)을 가는 데 1년이 걸린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쏘아 보낸 전파에 담긴 메시지가 우주를 날아가는 빠르기이다. 실제로 이 영상의 4분부터 유니버스 샌드박스를 활용해 시각적으로 광속을 구현했는데, 태양에서 뿜어져 나온 빛 입자가 지구는 둘째 치고 수성에 도달하는 것조차 유튜버의 인내심을 상당히 시험할 정도였으며, 명왕성까지 도달하는 것을 보기 위해 시뮬레이터를 천 배만큼 가속해야 했다. 다른 은하는 둘째 치고 우리 은하의 외계인을 찾는다 해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의문. 거꾸로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은하 언저리의 어떤 외계인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주 사방팔방에 애타게 "우리를 도와주세요" 따위의 메시지를 쏘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의 외계인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속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인류와 다른 외계인의 문명 정도가 아주 같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인류처럼 외계인도 다른 '인류'를 찾기 위해 전파를 여기저기 쏜다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그 전파를 우리가 수신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례로 중력 렌즈 효과가 있는데, 강력한 중력에 의해 빛을 포함한 전파는 방향이 왜곡될 수 있다. 블랙홀처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 천체도 존재한다. 단순히 위치상 우연히 지나가던 천체 따위가 가려버릴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서로는 서로의 위치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전파를 사실상 난사하게 된다. 서로의 위치를 확신해도 연락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가 된다. 이런 특성을 더하면 '외계인이 우리의 신호를 받았어도' 문제는 여전히 발생한다. 우리가 그들을 인식하기 위해선 그들이 보낸 '응답을 받았다는 표현'이 우주를 넘어 보내져야 한다. 물론 굼벵이 같은(?) 광속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서 위의 과정까지 다 뚫고 전달되었다는 가정 하의 일이다.
그리고 우주가 무한하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만 놓고 볼 경우 앞으로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들 인류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우리 은하계로 한정된다. 상기했듯이 태양과 비슷한 항성은 이중 1%에 불과하고, 여기서 항성계가 고등생물이 진화할 수 있도록 충분히 오랜 시간동안 안정된 상태에 있기 위해서는 은하계 내부의 항성들은 제외하면... 여전히 많긴 하지만 명백히 유한한 수가 나온다. 여기에 지적생명체가 발현할 확률을 끼얹으면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은하계 내에서 지구와 통신이 가능할 수준으로 거리가 가깝고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이 존재할 확률은 더더욱 떨어진다.
여기에 더해 인류의 아주 짧은 역사도 작용된다. 인류가 지구에 출연한 건 직계 조상으로 올라가도 6~700만 년 전, 문명이 시작된 것은 길어야 1만년 정도, 전파와 같은 무선 통신을 행한 것은 겨우 200년도 되지 않았다. 우주의 시간과 비교하면 이는 문자 그대로 '찰나'의 짧은 시간이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 짧은 시간 내에 인류와 접촉한다는 것도 그 확률이 너무나도 작다.
혹은 이미 외계인들이 고도로 발달해서 인류가 지금 쓰고 있는 전파 통신과 같은 미개한 방식은 쓰지 않는다는 가설도 있다. 예를 들어 전파 통신을 쓰는 요즘 사람들은 더이상 전서구를 사용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그들과 통신하기 위해 전서구를 날린다 하더라도 비둘기가 날아다닌다는 것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 외계인들이 어떤 쪽으로 고도로 발달했다고 해서 꼭 전파 통신 기술을 발명했으리라는 법도 없다. 다만 전파통신을 미개한 것으로 치부할만한 오버 테크놀로지를 지닌 우주인이라 할지라도, 그 오버 테크놀로지가 '무제한'의 속도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가령 광속의 수백, 수천 배에 해당하는 속도로 정보전달이 가능한 매체가 있다고 가정할지라도, 그 매체조차도 지구에 전혀 닿지 않을 거리에 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러한 전파가 아닌 매체의 경우엔 설사 우리에게 닿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해석 못한 나머지 그냥 흘려보냈을 가능성 역시 있다.
역으로 과학, 기술은 구석기 수준이지만 프로이트 철학을 하며 초현실주의 미술을 하는 종족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지성체가 기술문명을 만들리라는 것도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 존재를 감지해 냈지만 다른 종족과의 소통에 아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행성 급으로 집을 짓고 외계 성계를 개척하는 기술력은 있지만 지성이나 자아는 전혀 없는 우주 개미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매체의 영향으로 우리는 너무 '인간적인' 외계인만을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외계에 생명체와 기술 문명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인격' 비슷한 것을 가졌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외계인이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다른 생명체라면 그들도 자신들 외의 생명체의 존재에 호기심을 갖고 통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3. 외계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은 필연적으로 멸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외계인이 없다는 설명도 있다. 모든 문명은 환경오염이나 핵전쟁 등 여러 이유로 외계 생명체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인류 문명이 우주적 기준에서는 찰나조차 되지 않는 수천 년간 얼마나 급격히 변했는지 생각해본다면 우리 이전 어느 시점에, 가령 10억 년 전에 외계 문명이 탄생했었다면 이미 그들이 은하 전역에 퍼져나가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외계 문명이 존재한 적이 없다거나, 존재했지만 발전하기 전에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우주에는 인류 이전에도 수많은 문명이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문명이 존재할 것이지만 그들은 결코 가까운 거리 내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에 모든 문명은 페르미 역설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고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 설명은 우리 인류가 은하단위로 진출하는데 성공한다면 폐기된다.
최근 들어서는 감마선 폭발이 페르미 역설에 대한 유력한 설명으로 떠오르고 있다. 폭발 자체는 하루에 한 번꼴로 관측될 정도로 지극히 드문 현상이지만, 지향성 폭발이라는 특성상 에너지가 밀집되어서 폭발이 내뱉는 감마선의 경로에 있는 수천광년 내의 항성계들을 한방에 멸균 소독해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이러한 우주구급 대량학살이 주기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고도의 문명이 없다는 가설.
2018년 6월 옥스퍼드대 앤더스 샌드버그 박사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인 페르미 역설 용해(영문)에서는 오직 인류만이,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진보된 문명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우주의 방대함에 비해 아직까지 인류의 지식은 미약하다고 표현하기에도 한없이 모자랄 정도로 부족하다. “이 넓은 우주의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면, 얼마나 큰 공간 낭비일까”.-영화<콘택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