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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출을 견인한다는 광둥성 주강 삼각주 지역 기업들은 매년 봄이면 고용대책을 만드느라 큰 홍역을 치른다. 춘절 연휴에 고향으로 간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인력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기 때문이다.
농민공들이 다 떠난다고 해서 ‘민궁황(民工荒)’이라거나 인력난을 뜻하는 ‘융궁난(用工难)’이란 용어도 생겨났다. 기업들은 고향에 간 노동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지역별로 전세버스를 동원하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반전됐다. 이른바 고향에 갔다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비율인 ‘반공( 返工)’률이 90%를 넘어선 것이다. 심지어는 100%를 기록한 기업도 많다. 노동자 스스로 공장을 찾아와서 구직을 하는 자가 구직자 비율도 작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기업입장에서는 고 용 대책을 만들 필요가 없어진 셈이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그 만큼 경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경기 탓에 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고 공장 문을 연 기업도 증산을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취업시장에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실제 통계를 봐도 지난 2월 중국 수출은 20.6%나 뚝 떨어졌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마이너스 20%는 놀랄만한 일이다. 게다가 6.9%에 달한다는 연간 GDP 성장률은 일부 조작도 가능하지만 수출입통계는 상대국가가 있어서 조작도 어렵다. 그만큼 요즘 중국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영한다. 주강 삼각주 수출 기업들의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올해 중국 경제 GDP 숫자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불경기의 해법을 개혁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과거에도 불경기를 여러 차례 겪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영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다시말해 GDP 성장률을 독려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경제 파이를 키우는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면 개혁 밖에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경제 개혁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나오는 감초 같은 처방이지만 이번에는 강도가 달라 보인다. 지난 2013년 3중 전회에서 나온 이른바 시장을 중시하는 정책에 대한 반성도 강하게 하는 분위기다. 경제 기능을 시장에 실제로 이양하는 개혁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해 봐야한다는 분위기다. 만약 시장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개혁이 이뤄졌다면 요즘 이런 거시경제 악화는 뭔가 왜곡된 결과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아예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정신을 되새기자는 움직임도 있다. 당시 경제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빴다. 경제가 거의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개혁 개방 조치로 인해 형세를 뒤집었다. 개혁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경제는 사상 유래 없는 성과를 냈다는 교훈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리커창 중국총리는 지난달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장인정신’이라는 새 메시지를 던졌다. “기업들이 독창적인 상품을 유연하게 생산하려면 장인정신을 길러야한다”는 문장 하나를 정부 공작보고에 집어넣었는데 파장은 컸다.
중국을 지금의 제조 대국으로 만든 것은 세계가 준 최고의 선물인데 쉽게 버릴 수 없으며 앞으로 정밀 제조 분야로 까지 발전하려면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장인정신이 필수라고 강조한 것이다. 중국도 장인정신이 없는 게 아니고 12살부터 훈련해야 가능한 수공예 명인 같은 장인정신을 발전시키면 된다고도 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중국 전역에서는 요즘 장인 정신이란 용어를 넣지 않으면 말을 못 붙일 정도다. 물론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제조업 업그레이드는 물론 공급 측 개혁도 기본은 장인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사치품이나 명품에 수요에 맞춰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하자고 하니까 샤오미(小米)가 나섰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가 열리는 이른바 ‘양회’ 기간에 맞춰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 가면 반드시 사고 온다는 전기압력밥솥을 출시한 것이다. 메이자(米家)란 이름만 보고도 바로 샤오미 제품이란 게 추측 가능하다.
레이쥔(雷军)은 “신 국산품”이라는 말로 “앞으로 일본에 가서 전기밥솥 사오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는 “가격이 비싸지만 확실히 밥맛이 좋다.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느낌이나 뒷 맛이 좋다”며 “일본 기술이 확실히 우수하다”라고 광고했다.
물론 샤오미 전기업력밥솥을 개발한 사람이 일본 산요(三洋)전기 밥솥사업개발부장을 역임한 나이토라는 사실을 알아서 인지 네티즌들의 반응이 그리 뜨겁지는 않아 보인다.
“앞으로 샤오미비데 샤오미의자 샤오미온수기 샤오미젓가락 샤오미칼 샤오미과자도 나오겠네” 라며 시큰 둥하지만 중국 소비자들도 장인정신이 깃든 물건을 좋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산 전기밥솥을 비롯해 비데나 고급 내구재에서 감기약 위생휴지 마스크 전동 칫솔 만년필 등을 마구 사들이는 것 보면 중국산 보다 월등한 품질에는 열광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대충 대충 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데는 타이밍도 한 몫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해외에 나가서 마스크나 감기약을 사오는 것에 대해 수치라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는 시점인데다 내수도 살려야하는 시점과도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장인정신을 강조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계속 해외에 나가서 물건을 구입해 들어올 것이고 중국 내수시장은 그만큼 발전을 못할 게 분명하다.
과거 중국은 수출 상품에만 장인 정신을 강조해왔다. 국외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른 것이다.
물론 낮은 단계의 상품인 저비용 저부가가치상품을 수출했기 때문에 중국 상품에는 항상 염가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런데 토지가격이나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효과도 없어졌다. 토지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비싸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과 내수 경쟁력을 올리려면 품질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다. 창조와 혁신으로 기술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마이너스 20%대로 떨어진 수출을 영영 늘리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물론 내수용 상품에서도 장인 정신을 강조한다. 실제 중국 소비자들은 장인정신이 깃든 비싼 명품보다는 염가상품을 원하는 편이다. 그러나 서서히 명품 양말 한 켤레를 사면 짝퉁 양말 세 켤레보다 오래 신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장인정신을 강조하다보니 공자가 말한 “스부옌징 후이부엔시(食不厌精,脍不厌细, 곡식은 세세하게 가공할수록 좋고, 육류는 잘게 썰수록 좋다)‘라는 말도 유행이다.
사실 공자는 그동안 중국 장인정신을 가로막는 존재로 통했다. 그의 신조인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원래 의미는 군자가 직접 물건을 만들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모든 게 하품이고 유독 독서만 높다(万般皆下品,唯有读书高)”거나 “배우고 익히면 관료로 나가야한다(学而优则仕)”는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글을 배우고 관료가 되면 모든 재물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
나중에는 아예 “특수한 기예나 사악한 기교를 군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奇技淫巧,君子不为)”라고도 했다. 이런 가르침은 왕권을 강화했고 심지어는 임금이 죽으면 신하가 따라 죽는 전통까지 만들었다.
거두절미한다면 중국을 권력지향형 사회로 만드는 데 공자도 기여했다는 얘기다. 사유재산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부자도 벌벌 떨다보니 장인 정신이 뿌리를 내리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항인 것이다. 문화대혁명 때 공자나 맹자의 이런 ‘군자불기’ 식 가르침을 뒤집는 운동을 펼친 것도 이런 반감 때문이다.
중국이 부러워하는 장인정신의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에 있는 100년 기업이 가진 장인정신과 절차탁마하고 개선하는 과정을 배우려한다. 세계 최고인 독일의 기계 화공 전기 광학 주방 체육 용품을 매우 부러워한다. 품질이 좋은 대신 비싸게 판다. 싸고 좋은 상품이라고 홍보하는 중국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장인정신으로 만든 독일의 수출품 중 30%는 국제 시장에서 경쟁 상대가 없는 1등 제품들이다.
중국으로서는 빈부격차도 심하고 소비수준도 낮아 이런 제품을 당장 만들기는 힘들지만 앞으로 10년 20년 동안이라고 노력하지 않으면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장인정신과 사유재산을 보호해주면 경제는 알아서 돌아간다는 진리를 요즘에 와서야 절감하고 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