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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무궁화보존회 '나라꽃 무궁화' 간담회 가져
(사)안동권발전연구소(소장. 남치호) 부설 안동무궁화보존회는 8월 21일 오후 6시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에 위치하고 있는 보화다원 강의실에서 회원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꽃 무궁화'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남치호 소장의 인사말에 이어 회원 및 신입회원, 무궁화를 분양받으려온 회원들과 처음 만나 자기소개 겸 상견례(相見禮)를 하였다.
보화다원 정원근 사장은 '나라꽃 무궁화의 시대별 문헌 고찰 소개' 라는 논문이 실린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무궁화의 선양 및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대한제국 시대인 1900년에 외교관복이 칙령 제15호로 제정되어 가슴 부분에 금수(錦繡)한 무궁화의 수로 직급을 나누었다. 1902년 우리나라 최초로 제정 공포한 '대한제국 애국가' 표지에 태극을 중앙에 그리고 주위에 네 송이의 무궁화를 그려 넣었다.
외솔회에서 1973년 발간한 나라사랑 21집 남궁억 특집호에서 무궁화를 우리나라 국화로 삼은 것은 남궁억 선생이 한 말 칠곡부사(漆谷府使)로 있을 때 윤치호와 상의한 끝에 정했다. 이로부터 무궁화는 우리의 나라꽃으로 민족의 얼로 상징하게 되었고 애국가에서 '무궁화 삼천리' 라는 구절이 있게 된 것도 그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다.
1925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조선국화 무궁화> 내력은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로 인식하게 된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기사이며 조선의 국화를 무궁화로 명기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한말 한국에서 20년을 살다 간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는 자신이 쓴 <풍류한국>에서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들은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으로 만들어 졌으나 조선은 유일하게 왕실의 꽃인 이화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이는 왕실의 꽃이 있음에도 무궁화가 국민에 의해 나라꽃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정 사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무궁화를 국화로서 지정을 받지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지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진구 학장은 안동에서도 무궁화를 사용한 근거가 있는데 안동협동국민학교 1∼3회 졸업장에 무궁화 문양이 있으며 안동시 풍산읍 오미동 김재봉씨의 호가 무궁화밭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 민홍기 상임이사는 "안동무궁화를 사용하면 다른지역 사람들의 거부감이 있어서 전국적으로 안동무궁화를 많이 보급하기 위해서는 개명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진구 학장은 "안동무궁화, 애기무궁화 등 7종을 유전자 검사를 의뢰해 놓았는데 결과가 나오면 개명을 연구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참석자들에게 보화다원이 생산한 10g들이 수제국화차인 <가을미인 황국(黃菊)> 1통씩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이날 열띤 토론을 벌인후 인근에 있는 '예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한편 안동무궁화보존회는 회원들에게 무궁화 분양은 오늘로서 마감하고 다음 분양은 내년 봄에 하기로 했다.
포트에서 안동무궁화가 자라고있다.
마음에 드는 무궁화묘목을 분양받고있다.
인사말을 하고있는 남치호 안동무궁화보존회 소장.
보화다원 정원근 사장이 '나라꽃 무궁화'에 관한 발표를 하고있다.
선물로 나누어 준 국화차.
예담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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