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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137편 ※
넘치는 혈기가 부른 손책의 최후 (下)
손책이 우길 노인을 보고 꾸짖는다.
"너 같은 미친놈이 감히 어디라고 사도(邪道:속임수)로써 민심을 현혹하느냐 !"
그러자 우길 노인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한다.
"빈도(貧道)가 세인의 행복을 도와 주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이 나쁘오 ?
내가 백성들을 도와주기는 했을지언
정, 그들을 해치려한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민심을 현혹하였다고 하시오 ?"
"아가리 닥쳐라 ! 네가 남의 것을 취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먹고 살았으며 어떻게 입고 살았단 말이냐 ? ... 누구, 저놈의 목을 벨 자가 없느냐 ?"
손책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우길 노인의 목을 베려고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장소가 한걸음 나서며 간한다.
"저 어른은 강동에서 살아오기를 수십 년에 아무런 죄도 범한 일이 없으신데, 이제 저 어른을 참하오면
민심이 크게 요동칠 것이옵니다."
"무어라 ? 저런 요인(妖人)을 죽이기로 개새끼 하나 죽이는 것만도 못한데 뭐가 두렵단 말인가 ?
그렇다면 내 손으로 죽일 테니, 오늘은 옥에 가두어라 !"
연석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모두들 흥이 깨져버려, 원소의 사자도 역관(驛館)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손책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아들을 후당으로 불러 말한다.
"내 듣건데. 네가 우길 선인을 옥에 가두었다고 하는구나. 그 사람은 백성들의 병을 많이 고쳐주어 누구에게나 경앙(敬仰)을 받고 있는 터이니, 그 어른을 해쳐서는 안 된다."
손책이 대답한다.
"그놈이 요술로 민심을 현혹하는데, 어찌 그런 놈을 없애지 않겠습니까 ?
어머니는 어리석은 자들의 우매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제가 좋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손책은 부중으로 나오자, 곧 우길 노인을 끌어내오라고 명하였다.
그런데, 우길 노인이 끌려나오는 것을 보니, 그는 칼을 쓰고 있지 않았다.
옥리들이 그를 존경하는 까닭에 칼을 씌우지 않았던 것이다.
손책은 크게 화를 내며 전옥(典獄)의 목을 베어버리고, 옥리(獄吏)들은 모두 곤장을 쳐서 크게 벌하고
우길 노인은 칼을 씌워 다시 옥에 가두게 하였다.
그러자, 장소이하 수십 명의 중요 수하들이 우길 노인을 구출하고자 손책에게 진정서를 올렸다.
손책은 진정서를 보고 그들을 불러 크게 꾸짖는다.
"그대들은 사서(史書)를 읽었을 터인데 역사의 교훈도 모르는가 ?
그 옛날 장진(張津)이란 사람은 교주 태수(交州 太守)로 있으면서 한조
(漢朝)의 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항상 사교(邪敎)만을 믿어,
매양 붉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거문고나 타면서 분향(焚香)이나 올리는 것을 주된 일로 삼았다.
그러면서 군사를 일으키면 무슨 묘술이나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댔기에 일시는 도사(道士) 라는 추앙까지 받아왔다.
나중에는 남방 이족(夷族)들이 쳐들어 오는 바람에 어이없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또 비근한 예로서, 백성들을 현혹시킨 장각의 황건적 난동이 진압된 것도 불과 수 년전의 일이 아니던가 ?
요컨데 전국이 요동칠 때에는 우길이나 장각과 같은 족속이 백성들을 현혹시키가 십상이므로, 만백성의 평안과 국가의 해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는 마땅히 죽여 없애야 한다 !"
손책의 결심은 확고부동하였다. 그리하여 아무도 감히 손책의 뜻을 거스리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여범(呂範)이 분연히 나서며 말한다.
"그러면 우길 노인의 도력(道力)을 한번 시험해 보고 난 뒤 죽이면 어떻겠습니까 ?
그 어른은 기풍도우 (祈風禱雨:비와 바람을 부름)하는 법을 안다 하옵는데, 지금 날이 몹시 가무오니 그에게 비를 빌라하시어 정말 비가 오거든 용서하도록 해 주시옵소서."
"음 !....그렇다면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자."
손책은 즉시 우길 노인을 불러내어, 비를 오게 하라고 명하였다.
거리의 광장에서는 기우제(祈雨祭)
를 지낼 제단을 쌓고, 소를 잡고 말을 잡아 제물을 마련하고 우길 노인이 제단 앞에 경건히 나섰다.
이 광경을 구경하려고 모여든 사람이 여러 천 명이 넘었다.
우길 노인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내가 감우(甘雨)를 빌어 만백성을 구하더라도, 필경 나의 죽음만은 면하지 못할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며 말한다.
"만약 비만 오게 하시면 주공께서 반드시 잘못을 뉘우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길 노인은 고개를 흔든다.
"이미 죽음에 직면한 나의 명수(命數)
는 피할 도리가 없음을 어떡하오."
이때 손책이 제단 앞에 나타나며 명을 내린다.
"만일 오시(午時:11시 ~ 13시)까지 비를 못 내리게 하면 이 자를 제단 앞에서 불태워 죽이라."
우길 노인은 아무 말도 못 들은 사람처럼 눈을 무겁게 감고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두 손을 뻣고 입으론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치렁치렁한 백설같은 머리 위에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쪼이고 있었다.
제단 위에 향로에서는 연기가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서 오시가 되어 늙은 관속이 종루(鐘樓)에 올라가 오시를 알리는 종을 때린다.
수천 군중들은 그 소리를 듣자 모두들 가슴을 졸였다.
"비를 내리게 한다구 ? 보라 ! 어디 비가 오느냐 ? 그러니, 도사니 신선이니 하는 소리가 모두 멀쩡한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이냐 ! 다시는 아무 말 말고 저 늙은이를 불살라 죽이라 !"
손책이 성루(城樓)에서 제단을 굽어보며 명을 내렸다. 형리들이 제단 앞으로 몰려와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린다.
그리고 우길 노인을 그 위에 올라서게 하고 불을 지른다.
불길이 일어나자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였다. 불은 붉은 혀를 널름거리며 점점 거세게 타올랐고, 검은 연기는 사방으로 퍼져 하늘을 덮었다.
우길 노인은 그래도 장작더미 위에 표연히 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
조금 전까지도 햇볕이 쨍쨍하던 하늘에 별안간 검은 구름이 뒤덮기 시작하더니, 우길 노인의 몸에 불길이 닿을 무렵이 되자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때리며 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그리하여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타오르던 불길이 억수로 퍼붓는 비에 젖어 순식간에 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도 비는 계속되어 삽시간에 개천이 메어질 정도로 물이 넘쳐 흘렀다.
광장에 나와 있던 수천 관중들은 하늘의 조화에 깜짝 놀라며,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하느라고 아우성이 일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아니하고 억수로 퍼붓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두 손을 모아 하늘과 우길 노인을 향해 계속하여 연실 허리를 굽혔다.
그로부터 잠시후의 일이었다.
비에 젖으며 장작더미 위에 서 있던 우길 노인이 하늘을 향해 뭐라고 큰 소리를 외치자, 방금 전까지 사납게 퍼붓던 비가 신기하게도 금방 그쳐버리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또 다시 햇빛이 비친다.
이에 군중들은 크게 감탄하는 소리를 지르며, 제각기 우길 노인이 올라서 있는 장작더미 앞으로 달려와 경건한 배례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합장 배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모르고 젖은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사람은 남녀,노소, 관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었다.
손책은 그 모양을 보고 더욱 불같이 화를 냈다.
"비가 오고 날이 개는 것은 대자연의 필연적인 현상일 뿐, 요술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 요사스런 늙은이가 공교롭게도 때를 만나 비가 내렸다 하기로 뭐가 대단하단 말이냐 !
요사스런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놈은 반역자와 다름이 없을진대 저런 늙은이는 마땅히 죽여야 한다 ! "
손책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보검을 뽑아들고 우길 노인을 죽여 없애라는 추상같은 명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 명을 거행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손책은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쓸개빠진 것들아 ! 저 늙은이를 네놈들이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죽여버리마 !"
손책은 이렇게 외침과 동시에 장작더미 위로 번개같이 뛰어 올라가 우길 노인의 목을 후려갈겼다.
마침내 우길 노인은 손책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야 말았다.
만조 백관과 수천 군중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가운데 가슴이 서늘해 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날 밤의 일이었다.
한밤중에 난데없는 비바람이 눈을 뜰 수 없도록 시작되더니 밤새껏 계속되었다.
날이 밝아올 무렵에 비바람이 그치자, 시체를 지키던 군사가 제단 앞 장작더미 위에 그대로 내버려 둔 우길 노인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그 사실을 손책에게 급히 보고하였다.
"이 얼빠진 자식아 ! 시체가 도망을 가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
손책이 화를 내며 그 군사를 죽여 버리려는데 홀연 어디선가 난데없는 사람 하나가 가까이 다가온다.
손책이 불현듯 눈을 들어 쳐다보니, 그는 다른 사람 아닌 우길 노인이 아닌가 ?
손책은 크게 놀라며, 시체를 지키던 군사를 베려고 꺼낸 칼로 우길 노인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검을 휘두를 새도 없이 손책은 검을 쥔 채로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숙직을 하던 군사들이 급히 달려와 그를 안으로 들여다 눕히고 의원을 불러 응급치료를 하게 하였다.
손책은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야 간신히 깨어났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광채가 없었다.
"이 요술쟁이 같은 늙은이가 어디로 갔다는 말이냐 !"
그는 깨어난 뒤에 시도 때도 없이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일쑤였다.
늙은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고 한숨으로 탄식한다.
"네가 거룩하신 신선을 죽이더니 기어코 이런 화를 당하는구나 ! 이제부터라도 목욕재계하고 제단으로 나아가 참회의 기도를 올려라 !"
그러자 손책은 냉소를 하며 고개를 흔든다.
"어머니 ! 제가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다니며 싸움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나 화를 입은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제 백성들을 현혹하는 그 요사스러운 늙은이를 죽여 나라의 화근을 없앴는데, 화를 입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
노모는 아들 손책의 무모함을 나무라며 말했다.
"우길 노인은 보통 요술쟁이가 아니고 틀림없는 신선이시다.
네가 무사하려면 아무래도 기도를 드려야 한다."
"나는 이곳 오나라의 절대 군주입니다.
나를 해칠 자가 누구라고 기도를 드린단 말입니까 ?"
손책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아니하므로, 노모는 할 수없이 자신이 아들을 대신하여 그날부터 칠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도의 효과는 아무것도 없어서, 손책의 방에는 밤만 깊으면 음풍(陰風)이 일면서, 나중에는 우길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 그럴 때 마다 손책은 머리맡에 검을 뽑아들고 발광하는 소리를 지르고 죽이려 하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이같이 괴상한 일이 밤마다 계속되는 바람에, 손책은 나날이 수척해 가고 있었다.
노모가 아들의 병석에 다가와 앉으며 다시금 애원한다.
"책아 ! 내가 너를 위해 제(齊)를 올리도록 준비했으니, 네가 옥청관(玉淸館)에 나가 부처님께 한번만이라도 참배를 해다오.
네가 한번만이라도 진심으로 참배한다면 다시는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니..."
"아버님의 제삿날도 아닌데, 내가 무슨 일로 부처께 참배를 합니까 ?"
"이 늙은 에미의 부탁을 그렇게나 매정하게 거절한단 말이냐 ? 나를 에미로 안다면 제발 한번만 다녀와 다오."
이렇게 늙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애걸하는 바람에 손책은 마지 못해 며칠 후에 가마를 타고 옥청관에 나갔다.
옥청관 관장(館長)이 손책을 친히 맞아, 부처님께 분향 재배하기를 청한다.
손책이 분향만 하고 재배를 아니하니, 향로에서 타오르던 연기가 공중으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한 덩어리로 뭉치더니 그 연기 위에 우길 노인이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 우련히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
손책이 기겁하고 놀라며 검을 뽑아 던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행원 하나가 검에 찔려 고꾸라졌을 뿐,
우길 노인은 여전히 연기 위에 초연히 앉아 있었다.
이에 손책이 비명을 울리며 전각을 뛰쳐나오려니까, 이번에는 우길 노인이 전문(殿門)앞에 우뚝 버티고 서서 눈을 부릅떠 보인다.
손책은 기가질려서 좌우를 돌아보며 외쳤다.
"저 요귀(妖鬼)가 너희들은 보이지도 않느냐 ! 어서 저 요귀를 죽여라 !"
그러나 요귀를 보았다는 부하도 없고, 모두가 자신의 주공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고개만을 갸웃할 뿐이었다.
"이놈들아 ! 저 요귀가 보이지 않는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
손책은 혼자 그렇게 외치며 다시 검을 뽑아 던지니, 애매한 부하 하나가 그 검에 찔려 고꾸라질 뿐이었다.
부하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손책의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은 며칠 전에 우길 노인을 불태워 죽이려고 장작더미에 불을 질렀던 사람이었다.
"이 옥청관이라는 전각은 도깨비집
이다 ! 이런 전각은 당장 헐어버려야 한다 !"
손책은 오백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옥청관을 당장 헐어버리게 하였다.
인부들이 지붕위에 올라가 옥청관의 기와를 들어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손책의 눈에는 지붕위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손책을 노려보는 우길 노인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 보였다.
"저놈이 또 저기에 있구나 ! 여봐라 ! 숫제 옥청관 전각을 불로 태워 버려라 !"
인부들이 옥청관에 불을 질러 화염이 하늘로 치솟는데, 그 화광 속에도 우길 노인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손책은 견디다 못해 도망이라도 치듯이 부중으로 허겁지겁 돌아왔다.
그는 부중으로 돌아와서도 우길 노인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떠올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이제는 손책의 거동이 자기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밤만 되면 우길 노인의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보여서 손책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밤마다 사방에 불을 밝히고 군사 오백 명을 풀어 부중을 엄중히 지키게 하라 !"
손책은 하도 불안해서 그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제아무리 불빛을 대낮같이 밝게 하고 군사로써 부중을 지키게 하여도 우길 노인의 모습은 밤마다 허공에 떠올라 보였다.
손책은 그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손책은 어느날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초최해진 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이렇게도 야위었단 말인가 ?"
손책은 이렇게 한탄하며 다시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별안간,
"으악 !"
하고 비단폭을 찟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손책을 노려보는 우길 노인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도 나타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신들이 크게 놀라 화타의 제자를 급히 불러왔다. 그러나 이제는 손책의 상처가 모두 덧나, 명의의 힘으로도 그의 몸을 더이상 고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나도 죽음을 면할 수가 없겠다 !"
손책도 자신의 명수(命數)가 다 됐음을 깨닫고 한탄해 마지 않으며, 장소를 비롯한 측근들과 아우 손권
(孫權)을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이때, 나는 삼강(三江)의 험요(險要)를 차지하여 능히 대사(大事)를 도모할 만 하더니, 이것도 천운인지 대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소.
그대들은 나의 사후에 부디 권(權)이를 잘 도와, 나의 유업을 완성시켜 주시오."
손책은 인수(印綬)를 가져오라 하여, 아우 손권에게 내주며,
"권아 ! 내가 너에게 이르니, 군사를 일으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사를 이끄는 데는 네가 나만 못하다.
그러나 어진 일을 하여 나라를 잘 보존하는 점에 있어서는 내가 감히 너를 따르지는 못하리라.
그러므로 너는 부디 돌아가신 부친이 창업하시던 때의 간난을 항상 염두에 두고 스스로 도모하는 바가 있게 하라 !"
이렇듯 간곡히 뒷일을 부탁하니, 손권은 눈물을 흘리면서 인수를 받는다.
손권이 다시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말한다.
"어머님 ! 이 불효한 자식은 더는 살지 못하겠기에, 인수를 아우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하시듯이 아우에게도 조석으로 훈계 해주셔서, 부친과 제가 쓰던 사람들
에게 소홀함이 없도록 편달해 주소서."
어머니가 울면서 말한다.
"네 아우가 어려서 어찌 큰 일을 감당하겠냐, 그러니 어서 네가 일어
나야지...."
"그것은 어머니께서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권(權)이는 저보다도 열 배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린 탓으로 경험이 적어, 앞으로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거든, 내사(內事)는 장소에게 묻게 하시고, 외사(外事)는 주유(周瑜)에게 물어
보게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 아우들을 불러 놓고,
"너희들은 이제부터 권이를 우리집의 어른으로 알고, 어머님의 지시를 순종하며 화목하게 살아가거라.
가명(家名)을 더럽히거나 형제간의 의리를 배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지하에서도 용서치 아니하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내 교(喬)부인
에게 당부한다.
"여보 ! 당신과 백년해로를 못하고 죽게 되어 정말 미안하오. 당신은 부디 어머니께 내가 다 못한 효도까지 하면서 일가친척을 잘 거느려 주기 바라오.
그리고 일간 처제가 오거든 동서(同壻)인 주유 (周瑜)에게 내 아우를 잘 받들어서 큰일을 도모하라고 내가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주오."
손책은 골고루 돌아가며 유언을 남기더니, 마침내 눈을 감고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이때 손책의 나이는 한참 혈기에 넘치는 스물여섯이었고, 인수를 물려 받아 오(吳)나라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 손권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 살
이었다.
※ 삼국지(三國志)제138편 ※
손책 사후(死後) 강동에 이는 불안
손책의 빈소는 손책의 집정전 내실에 차려졌다.
그리하여 손책의 부인이자 미망인 대교가 대소 신료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친정쪽 문관 한 무리가 들어와 손책의 위패에 절을 하고 대교를 향해 일제히 입을 연다.
"부인께서 대업의 뒤를 이어주십시
오."
그러나 미망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제일 앞줄에 있던 대표 문관이,
"부인, 주공께서는 병부를 소 주공께 넘기셨지만, 예로부터 대권은 부자간에 이양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마땅히 주공의 친자인 손소 공자가 대권을 계승하여 강동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어리시니, 부인께서 대신 맡아 주십시오. 이는 옛 부터 그렇게 해 온 것이니 이를 따라야만 예법이 바로 설 것입니다." 하고, 고하자,
뒤이어 다른 문관이,
"손소 공자가 강동을 이어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강동을 위한 길이니, 모두가 따를 것입니다."
하고, 말을 하자, 그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하고, 일제히 복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책의 미망인 대교는 <그러마>하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스물 여섯에 절명한 손책이 남긴 아들 손소는 아직 강보에 싸인 젖먹이 어린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돌아간 얼마 뒤, 이번에는 손책의 책사 장소(策士 張昭)가 문상을 왔다.
그는 제단을 향해 침통한 얼굴로 분향 재배 한 뒤, 미망인 대교를 향해 돌아 서며,
"부인, 강동의 앞날을 생각해 주십시오." 하고, 걱정이 가득 담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미망인
이 비로서 입을 연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말씀 하세요."
그러자 장소가 다시한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부인, 한나라가 이렇게 쇠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선황제(先皇帝)들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모후(母后)가 섭정을
하면서 외척이 권력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공께서는 동생인 소 주공께 강동의 대권을 넘기셨습니다. 어린 공자님과 부인이 이렇게 계신데도 그런 결단을 내리신 것이지요.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인께서 한나라의 황후들 처럼 나서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작정을 하고 부인을 미혹(美惑)시킨다면 이 강동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겁니다." 하고,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며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라는 의미의 충언을 하였다.
그러자 미망인은,
"나는 다만 빈소를 지키고 만 싶을 뿐인데 달리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소는,
"심려 깊은 고려를 하시라는 의미로 말씀드렸습니다. 예로부터 대권의 이양은 부자간에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동생인 소주공이 이어받게 되었으니, 부인과 공자님이 계신 것으로 인해 말들이 많을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상황을 악용해서 공자님이 정통임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돌아가신 주공께서 이뤄 놓은 모든 것이 뿌리째 흔들려 무너지겠지요.
그러니 부인께서 부디 심사숙고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며 손을 마주하고 고개를 숙여 보인다.
그리고 다시 제단을 향하여 돌아서며,
"주공 ! 이럴 수 밖에 없는 신을 용서하십시오." 하고, 제단을 향해 재배를 하는 것이었다.
손책의 미망인 대교는 책사 장소의 이런 모습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아니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장소가 돌아가고 미망인은 남편의 제단앞에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꿇어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혼잣말을 한다.
"서방님, 서방님의 큰 뜻을 제가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보았으니, 누구보다
잘 압니다.
강동을 일으키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신 것도 잘 압니다.
저 하늘에서도 강동이 안정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실 겁니다.
강동이 흔들리면 서방님께서 어찌 편히 눈을 감으시겠습니까. 강동을 위해서라면 신첩은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신첩은 서방님을 따르겠습니다..."
손책의 절명 소식은 외지(外地)에 나가 있는 상장군 주유에게도 전해진다.
주유가 병사들을 이끌고 순찰을 하는 중에 병사가 달려와 아뢴다.
"장군, 강동으로 돌아오시라는 명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다더냐 ?"
"주공께서 돌아가셨답니다."
"뭐라고 ?"
주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임종 전에 손권 공자님께 병부를 넘기시고 대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태부인께서 속히 돌아와 소주공을 보필하라 하셨습니다."
"알았다."
대답을 하는 주유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손권은 상장군 주유가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지 않고 홀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자 내심 안심하였다.
그것은 지금처럼 자신의 세력이 없을 때에 막강한 군권(軍權)을 가진 상장군 주유가 휘하의 군사를 몰고 왔다면 자신의 대권 승계에 위협이
될 것이 틀림 없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황급히 빈소로 달려와 넋을 잃고 조문을 하는 주유를 담담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주공 ! 왜 이리 빨리 가셨습니까 ! 너무 늦게 왔습니다. 얼굴도 못뵈옵고 ...으흐흑 !.. 주공 !.."
주유는 손책의 위패앞에 꿇어앉아 오열하였다.
손권이 병부를 들고 엎드려 오열하고 있는 주유 앞으로 다가가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연다.
"공근(公瑾: 주유의 字) 장군, 병부를 드리니 강동을 맡아, 대업을 계승해 주십시오 !"
하고, 강동의 병부를 내밀었다.
그러자 두 눈이 동그래진 주유가 자리에서 일어 나며, 병부와 손권을 법갈아 보며 말한다.
"소주공 ! 어찌 이러십니까 ? 강동은 손씨 가문이 일으킨 강산입니다. 제가 어찌 불충을 저지르겠습니까 ? "
"진정하십시오. 장고 끝에 내린 최선의 방법이니, 받아들여 주십시오. 난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장군은 문무를 겸비하였고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셨지요. 문무 대신들 중 가장 덕망을 갖춘 분이십니다.
저보다는 장군께서 강동을 이끌어 주신다면 모두가 불만 없이 복종할 겁니다. 맡아 주십시오 ! "
손권의 말은 너무도 충격적이었기에 주유는 그 말을 듣고,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비틀거렸다.
"그러면 소주공께서는 무얼 하시게요 ?"
"장군께서 작은 자리를 내어 주시면 곁에서 장군을 보좌하고 연로하신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조용히 살 생각입니다. 부탁이니 날 이해해 주십시오."
"이것이 돌아가신 주공의 뜻입니까 ? "
"장형은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강동을 맡기고 잘 키우라고 하셨죠. 이를 잘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은 장군 뿐입니다."
손권을 이렇게 말하면서 병부를 한번 더 내밀어 보였다.
주유는 손권과 제단을 한번씩 번갈아 보고 나서,
"소주공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허나, 따를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한 뒤에 그대로 돌아서 나가는 것이었다.
주유는 그 길로 모태후(母太后)를 찾아 갔다.
모태후는 내실에 손책의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앞에 기도하 듯이
두 손을 맞잡고 앉아 있었다.
주유는 모태후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인사 올립니다. 명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그러자 손권의 어머니이자 모후인 오국태가 침통한 어조로 입을 연다.
"주유야, 난 어려서 부모를 여의였고, 중년엔 남편을 잃었고, 말년엔 자식을 앞세워 보냈다. 내 팔자가 어찌 이렇게 기구한 것이냐 !..."
그러자 엎드려 부복한 주유가,
"물론 괴로우실 겁니다. 허나 손견 장군을 보필하시어 강동을 일으켜 세우셨고, 돌아가신 주공과 소주공을
길러 내시어 강동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존경할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며 절을 해 보였다.
그러자 모태후가,
"고된 삶을 살았지만 실제로 나 보다도 더 힘든 아이가 있다.
그 애는 바로 권이다. 열 여덟 어린 나이에 강동을 다스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으니, 맡은 임무와 책임이 너무 막중하고, 내우 외환에 봉착한 상황이니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겠느냐.
그래서 병부를 너에게 넘기려 하지 않았느냐 ? " 하고, 걱정과 슬픔이 가득히 담긴 말을 하였다.
"네 ...허나, 거절했습니다. 태 부인, 주공의 유언을 말씀해 주십시오."
"주유야, 내가 널 낳지는 않았지만 나는 널 친자식처럼 여기고 있다. 하여, 모든 걸 솔직히 말해 주마.
책이는 임종 전에 권이에게 강동을 넘기며 대업을 이루라 했다."
"헌데, 어찌하여 소주공이 신에게 병부를 받으라 한 겁니까 ?"
"아직도 모르겠느냐 ? 손책이가 죽었으니 권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가장 두려워 하는 사람도 바로 너 아니겠느냐 ?
그래서 밤낮으로 불안에 떨며 허수아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느니 차라리 속 편하게 일찌감치 넘겨 주려는 거지.
그렇게 해야만 자신도 안전할 수 있고, 강동의 대업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또 그렇게 해야, 각지의 문무 백관들도 한마음으로 복종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주유야 ! 권이는 어리지만 어리석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총명해서 탈이지, 강동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주인 자리를 내 놀 만큼 대범함을 가진 아이야...."
"태 부인, 잘 알겠습니다."
주유는 그 말 만을 하고 묵묵히 절을 하고 물러 간다.
얼마 후, 주유는 삼군 장수들을 이끌고 손권이 지키고 있는 빈소를 찾아왔다.
그들 모두는 일제히 빈소 앞에 무릎을 꿇고 주유가 대표로 고한다.
"하늘에 계신 주공께 아룁니다 ! 신을 비롯한, 황개, 정보, 한당, 조무 등 삼군의 통솔자들은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우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소주공을 보필하여 목숨걸고 강동을 지키겠습니다 !"
그러자 장수들 모두는 한 목소리로 복창한다.
"목숨걸고 강동을 지키겠습니다 !"
그렇게 일심 동체로 외친 장수들은 결연한 자세로 제단 앞에 엎드렸다.
이것을 근엄한 얼굴로 바라 보던 손권이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려 부복한 장군들 앞으로 다가가서 말한다.
"여러 장군들은 모두 일어나십시오."
주유를 비롯한 삼군 예하 장수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러자 손권이 이어,
"나 손권이 여러 장군들 앞에서 맹세 합니다. 선배님들과 기쁨과 슬픔, 생사를 같이 하고 함께 대업을 이루겠습니다."
손권은 이렇게 결연히 말한 뒤에 이들을 향하여 예를 표해 보였다.
그러자 삼군 예하 장수들은 마주 예를 표하며 소주공 손권에게 충성을 다 할 것을 외쳤다.
"알겠습니다 !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며칠 뒤, 손책의 미망인 대교는 책사 장소의 염려를 불식시키고, 부군
(夫君) 손책으로부터 대권을 이어 받은 소주공 손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강동을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대교는 손책과 자신의 사이에 낳은 손소 공자를 강보에 싸들고 강동을 떠나,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전횡도(田橫島)로 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녀는 배 위에서 강동의 면모를 두루 살폈다. 그러면서 장소가 한 말을 되새겼다.
<부인과 공자님이 계시면 말들이 많을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상황을 악용해서 공자님이 정통임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돌아가신 주공께서 이룬 모든 것이 뿌리째 흔들려서 무너지겠지요.....>
이윽고, 손책의 미망인 대교와 그녀의 아들 손소가 탄 배는 돛을 올리고 미끄러지듯이 머나먼 절해의 고도
(孤島)를 향해 떠나기 시작하였다.
※ 삼국지(三國志)제139편 ※
원소 삼공자(三公子)의 충성 경쟁
한편, 관우와 장비를 기주로 불러오기 위해 고성으로 유비를 보낸 원소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낮부터 궁중녀의 시중을 받으며 홀로 술상을 벌였다.
그리하여 거문고 가락에 춤을 추는 무희를 바라보면서 시를 한 수 읊조리는데,
曲水流篇 탄如何
(곡수류편 탄여하)
곡수에 술잔 띄워
시 한수 읊고보니
人生如夢 易蹉타
(인생여몽 역차타)
인생은 한바탕 꿈처럼
흘러 가노니
今戈百万 진在璜
(금과백만 진재황)
백만의 막강 군대
내 손에 있다 하나
음파回首 회知我
(음파회수 회지아)
문득 돌아보면
그 누가 나를 알런가 ?
...
원소가 이같이 도도한 흥취를 돋구고 있을 때, 모사 곽도(謀士 郭圖)가 황급히 달려오며 아뢴다.
"주공 ! 큰일입니다."
원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오랜만에 흥취를 돋구고 있는데, 큰일은 무슨 !"
"고성 현령의 전갈이온데, 유비가 관우,장비, 조운을 만난 뒤에 병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고 하옵니다."
곽도는 원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이어 아뢰었다. 그러자 원소가,
"서쪽이라니 ? 기주
로 온다지 않았느냐 ?"
하고,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러자 곽도는,
"주공 ! 유비가 기주로 되돌아 올 거라 기대하신 겁니까 ? 그는 분명히 우리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조조에게로 투항할 겝니다."
하고, 걱정이 가득 담긴 어조로 말을 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번쩍 뜨더니,
"너희들은 물러가라 !"
하고, 술시중을 들던 궁중녀와 무희에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모사 허유가 나타났다.
"곡수류편 탄여하....
인생여몽 역차타...
곡수(曲水)에 술잔
띄워 시 한수 읊고 보니
인생은 한바탕 꿈처럼 흘러 가노니 ...
허유는 원소가 읊조리던 시의 첫 구절을 따라 읊조리며,
"주공 ! 절묘한 운율에, 좋은 시로군요..."
하고, 원소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원소가 다소간 실망한 어조로 허유를 부른다.
"허유 !"
"네 !"
"유비가 날 배반하고 조조에게 갔네."
원소는 말 끝에 다소간 흥분한 어조로 팔을 들어서까지 보이면서 소리치 듯 말했다.
그러자 허유가,
"아니, 아닙니다. 주공 ! 신이 판단컨데, 유비는 절대로 조조에게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번 서주성 전투에서도 조조에게 대패한 탓으로 조조와는 철천지 원수의 관계인 데다가, 황제로부터 황숙의 지위까지 받았으니, 어느모로 보나 조조와 의기투합할 관계는 아니옵니다.
그러니 서쪽으로 간 것이 맞다면 그는 틀림없이 형주로 갔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해 후일을 도모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원소가 뒷짐을 지고, 정자의 뜰이 바라보이는 난간으로 걸어가며 실망스런 어조로 말했다.
"그럼, 내가 형주의 유표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
내 얼마나 저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이제와서 나를 배신해 ? 더구나 그놈의 아우 관우가 안량과 문추, 두 장군을 죽였다.
내가 그 점을 생각하면 죽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 "
이렇게 말한 원소는 뒤로 돌아서며 곽도를 부른다.
"곽도 ! 유비가 멀리가지 못 했을 것이니, 속히 오천 기병으로 뒤를 쫒아, 놈들을 모두 잡아 내 앞에 끌고와라 !"
하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허유가 간한다.
"안 됩니다. 주공 ! 절대 안 됩니다. 지푸라기 같은 신세가 된 유비가 어찌 우리의 적이 되겠습니까 ?
오히려 소신이 보기엔 조조란 자가...."
허유는 말을 중간에 끊고, 원소를 올려다 보며 추켜세운다.
"아하, 주공께서는 현명한 분이시니까 이 일은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원소는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으흠, 그래, 그렇치 ! 우리의 당면한 적은 조조지..유비와 유표가 동맹을 맺는다 ? 그래봤자, 큰 대수가 안 될 것이야."
원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곽도가 읍하며 대꾸한다.
"현명하십니다, 주공 !"
이어서 허유도 허리를 굽히며,
"현명하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수하 장수가 뛰어들며,
"주공 ! 장공자 원담이 십만 군사를 이끌고 청주에서 왔고, 이공자 원희은 십오만 군사를 이끌고 유주에서 왔으며, 삼공자 원상도 십오만 군사와 함께 병주에서 왔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 그러자 원소는 허유와 곽도를 자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한다.
"오오 ! 그 애들이 왔단 말이냐 ? 여보게 허유, 모든 문무대신에게 전해, 내일 진시에 모두 내전으로 모이라고 해 !"
하고, 명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물론 곽도가 명을 접수하며 허리를 굽혔다. "알겠습니다."
...
다음날 진시(辰時: 오전 7시 ~9시) 원소의 집정전에는 문무대신 모두가 모였다.
시종이 밖을 향하여 큰소리로 고한다.
"주공의 명이니, 청주 자사 원담, 유주태수 원희, 병주 상장 원상은 들라 ! ~ "
그 소리와 함께 갑옷에 요도를 찬, 원소의 삼공자(三公子)가 나란히 원소의 내전으로 보무도 당당히 입장하였다.
그들은 아버지 원소에 앞에 이르자 일제히 두 손을 모아 읍하며 아뢰었다.
"소장들이 주공을 뵈옵니다 !"
그러자 흐뭇한 눈빛으로 이들의 거동을 내내 바라보던 원소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한다.
"오느라고 수고들이 많았구나 !"
"아버님, 소자가 연구한 장갑전진을 펼치면 그 어떤 적 앞에서도 천하의 무적입니다. 소자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
장자 원담이 앞으로 나서며 두 손을 잡고 흔들어 보이면서 호언하였다.
"그렇다면 조조의 군대는
문제없겠군 !"
원소가 기특하고도 대견한 얼굴로 원담을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이공자 원희가 아뢴다.
"주공 ! 소자가 가져온 벽력차(霹靂車)로써 진을 펼치면 엄청난 기세와 거대한 위력으로 그 어떤 군대와 맞서더라도 순식간에 박살을 낼 수가 있습니다.
하명만 하시면 소자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그러자 원소가
"원희의 벽력 전차진이면 조조의 삼군에게 우뢰와 같은 기세로 격퇴시킬 수 있겠다 ?
그래, 원희도 영웅이다 !"
그러자 이번에는
삼공자 원상이 아뢴다.
"주공 ! 소자가 연마한 현무진은 최근에 새로 제조한 오만발의 화살을 장착해 그 예리한 화살은 백보 내의 적군 갑옷을 뚫으니, 소자 생각엔 이번 조조 토벌전에는 필히 관도 일대에서 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소자가 가져온 각종 신형 무기들과 각종 군수품과 군량을 관도 부근에 있는 오소진에 이미 옮겨놓고 대군의 주둔지도 구축하고 있습니다."
원소가 그 말을 듣고,
"군마가 가기 전에 군량을 옮겨놓았다 ? 아직 어린녀석이 문무를 겸비했으니, 가히 대장군의 풍모로구나."
원소는 원상을 향하여 엄지 손가락을 세워보이며 좋아하였다.
그러자 원상이,
"주공 ! 소자 생각엔 적을 제압하려면 지용을 겸비해야 하니,
소자 부족하지만 선봉 대장이 될 것을 청하옵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군법에 따라 참해 주십시오 !"
하고, 아뢰며 한쪽 무릎을 꿇어 보인다.
원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영웅이로다 !"
그러자 시립해 있던 휘하의 장수들과 백관들은 일제히,
"공자의 기세가 과히 영웅답습니다."
하고, 복창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공자 원담도 원소의 앞에 무릎을 꿇어 보이며,
"소자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
소장의 철벽 전진은...."
원담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이번에는 이공자 원희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나섰다.
"주공 ! 선봉 대장은 제가 해야 합니다.
패한다면 목을 바치겠습니다 !"
이렇게 서로가 선봉에 나서겠다고 하자,
삼공자 원상이 ,
"주공 ! 두 분 모두 형님이시니, 목숨을 둔 전투에는 제가..." "주공 ! 제가..."
"아닙니다. 제가..."
원소의 아들 셋이 모두 선봉에 나서겠다고 자원하자 원소는 기쁘면서도 난감하였다.
그러자 시립해 있던 허유가 곽도를 돌아보며 속삭인다.
"세 공자가 모두 선봉에 서겠다고 주장하니, 주공께서 난처하시겠네...아직 후계자를 정하지 않았으니, 세 공자 모두 선봉을 다투는 것은 사실,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겠나 ?"
그러자 곽도가 되묻는다.
"그럼 주공께서는 누구를 선봉 대장에 삼게 되실까요 ?"
"...."
곧이어 원소의 결심어린 말이 떨어진다.
"이번 조조와의 결전은 중대한 만큼, 선봉 대장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나 원소가 친히 맡는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잠시 전에 곽도에게 대답을 미뤘던 허유가 곽도를 돌아보며 대답한다.
"주공께서 현명해지시면 천하의 어느 누구라도 따를 사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시는군 !"
허유와 곽도는 이런 대화를 소근거리며 낮은 소리로 함께 웃었다.
"허허허허..."
"하하하하..."
원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한다.
"명이다 ! 모래 정오에 삼군이 모두 모여, 조조토벌 결사대회를 열고 선조와 하늘에 제를 올리고 피의 맹세로 출정한다 !"
그러자 시립해 있던 모든 문무 백관들은 두 손을 읍하며 일동이 복명하였다.
"알겠습니다 !"
※ 삼국지(三國志)제140편 ※
원소의 출정과 조조의 대응
이틀 뒤 정오, 기주성의 넓은 평지에는 조조와의 결전을 앞둔 출정식과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해 높이 쌓은 제단 아래, 문무대신과 전투에 나서는 많은 병졸들이 운집하였다.
원소는 먼저 제단에 올라 향을 피우고 서슬이 퍼런 단도를 하늘 높이 쳐들어 자신의 손가락에 문질렀다.
그리고 흐르는 피를
세개의 잔에 나누어 떨어뜨렸다.
세 개의 잔은 각각, 천신(天神), 지신(地神), 조상신(祖相神)께 올리는 잔이었다.
원소가 첫번 째 잔을 들어 하늘에 고한다.
"신, 기주 대장군 원소가 하늘에 고합니다. 역적 조조가 황실을 찬탈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려, 신이 하늘의 도를 행하기 위해 70만 대군을 일으켜 역적을 섬멸하고 천하를 평정하려 하니, 천신께서 보호하시어 이 원소를 지켜 주십시오. 신이 피로서 제를 올립니다 !"
원소는 이같이 외치고 잔을 들이켰다.
이와 동시에 군집한 병사들은 제각기 창을 두두리고 칼을 뽑아 하늘을 찌르면서 천지가 떠나갈 듯이 함성을 내지른다.
"필승 ! 필승 ! 필승 ! 필승 ! ....."
두번 째 잔을 들고 원소가 고한다.
"기주 대장군 원소, 대지에 고합니다. 역적 조조는 황실을 넘보고 백성들을 박해하여 천하 만백성을 도탄에 빠뜨려 신이 대지의 기운을 얻어 만물과 백성을 대표하여 역적 조조를 멸하고 대지를 창성케 하려, 피로써 제를 올립니다."
원소는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이같은 맹세를 하고 잔을 들이켰다.
이와 동시에 병사들은 무기와 장고를 두드리며 하늘이 가라앉고 땅이 꺼질 듯한 함성을 토해낸다.
"필승 ! 필승 ! 필승 ! 필승 !...."
세번 째 잔을 들고 원소가 고한다.
"신, 기주 대장군 원소가 조상님께 고하노니 역적 조조가 한실을 찬탈하고 조상을 욕보여 종묘의 도가 붕괴되고 영령이 불안하니 신 원소가 피눈물로 맹세코 역적을 멸하여 조조의 목을 가져와 제를 올리고자 합니다,
부디 이번 전쟁에서 대승리로 귀환토록 조상들께서 원소의 승전을 보우하소서. 이에 신이 피로써 맹세합니다."
원소는 이같이 외친 뒤에 마직막 잔을 들이켰다. 이와 동시에 군사들의 함성이 또다시 터져나왔다.
"필승 ! 필승 ! 필승 ! 필승 !...."
이윽고 원소가 제단에서 돌아서자 병사들의 함성이 일시에 멈추었다.
원소가 제장 제졸을 향하여 말한다.
"모두 듣거라 ! 이번 전투는 원씨 일가의 생사존망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흥망이 달려있다.
또 대한 왕조의 흥망도 함께 달려있다.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싸운다면 이번 전투는 반드시 승리한다 !"
이같이 외친 원소가 요도를 뽑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제장 제졸 모두는 손에 든 무기를 하늘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필승 ! 필승 ! 필승 ! 필승 !...."
한편 옥사에 갇힌 모사 전풍은 밖에서 군사들이 외쳐대는 아련한 <필승>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옥졸을 불러 묻는다.
"이보게 ! 밖에서 왼 북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이 들리는가 ?"
그러자 옥졸이 대답한다.
"주공께서 조조 토벌 결사대회를 열어 천제와 선조께 제를 올리십니다."
"뭐라 ? 출정을 하신다구 ?"
전풍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예, 듣기론 70만 대군을 끌고 가신다 합니다."
그러자 전풍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혼잣말을 한다.
"아 아, 승산이 없는 전쟁을 하려고 하는구나 ! 헛된 너울이야, 헛된 너울 !...."
그러면서 옥졸에게 사정조로 부탁 한다.
"이보게, 지필묵을 좀 가져다 주게. 주공께 진언을 올려야겠네 !"
하고 말하자, 옥졸이 손을 들어 만류한다.
"아,아... 대인, 그냥 놔두십시오. 지금도 간언을 하시다가 옥에 갇히시지 않았습니까 ?"
"간언을 하다가 죽을지 언정 모른체 할 수는 없네 ! 그러니 어서 지필묵을 가져다주게 !"
"아, 아이 참 !..."
옥졸은 전풍의 부탁을 만류하면서도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잠시후 지필묵을 가져왔다.
전풍은 간언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주공 ! 대군을 일시에 이끌고 조조를 멸하려 출정하려 하시니 신이 간언을 올리옵니다. 자고로 안을 비워 놓고 밖으로만 달려나갔다가는 반드시 화(禍)를 입기 마련이오니 오히려 관도의 군사들을 끌여들여 방비를 굳건히 하는 것이 상책이 될 것이오니 출전을 고려하시옵소서.>
삼군을 이끌고 출전하려고 출정식까지 마친 원소에게 간언서가 올려졌다.
원소는 허유가 건네는 간언서를 펼쳐보고 노기를 띠며 그자리에서 그것을 냅다 집어 던졌다.
"전풍이 또 날 욕보였어 ! "
그러면서 원소는 허유를 돌아보며 말한다.
"전풍이란 자가 전쟁을 멈추라는군, 제를 올리고 이제 막 대군이 출발하려는데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내 이제는 참을 수가 없다. 이보게 허유, 즉시 명을 내려 이자를 참하라 해라 !"
원소의 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난처한 얼굴을 하면서,
"주공 ! 전쟁이 시작도 되기 전에 신하를 참하신다면 길조는 분명 아닙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원소가,
"그러면 어쩌면 좋겠나 ?"
하고 허유의 의견을 묻는다. 허유가 대답한다.
"주공 !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대승을 거두고 귀환한 뒤에, 평소에 허풍이나 쳐대고 안목도 좁쌀대기 만한 소인배 전풍에게 주공의 찬란하고 위대한 업적을 보여주소서, 그때가 되어 주공께서 자결을 명하셔도 결코 늦지 않습지요."
"좋다 !"
원소는 허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었다.
"놈과 조조의 목을 한데 모아 불 태워주겠노라."
원소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자, 허유는 허리를 굽히며,
"어찌 이리 절묘하신지요..."
하고 원소의 비위를 맞춰주는 대답을 해주었다.
"허유 ?"
"예 !"
"명을 전해라.
북을 울리고 출정한다 !"
허유가 돌아서서 제단아래 장졸에게 명을 전한다.
"북을 울리고 출정하란 명이다 !"
"둥 ! 둥 ! 둥 ! 둥 ! 둥 ! 둥 ! 둥 ! ...."
"뿌우우 ~ 뿌우우 ~...."
출정을 알리는 북과 나팔 소리가 천지를 요란스럽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원소의 대군이 조조를 격멸하기 위해 관도 벌판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열은 장장 백 여리에 달하였고 선발대는 이미 새벽같이 출발한 터였다.
허유가 원소의 수레옆을 따르며 아뢴다.
"주공 ! 보십시오. 선발대는 이미 아침 일찍 떠났으며 우리 후발대만 하더라
도 장장 백 여리에 이르니 고금에 보기 힘든 대단한 장관입니다."
원소는 그 말을 듣고 수염을 내리 쓸며 여유와 만족이 넘치는 미소를 머금고,
"조조도 소식을 들었을 텐데 지금쯤 쫄았겠구먼 ! 바지에 오줌을 지리지나 않았는지 몰라 ?"
하고 말하는 통에 허유와 함께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핫 ! ..."
"하하하하 ! ..."
허유가 말한다.
"주공 ! 예서 조조의 허도까지는 백 삼십리 이고, 관도까지는 팔십리 입니다. 척후병의 보고로는 조조가 모든 병마를 허도로 들였다 하니, 놈도 각오는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자 원소가 대답한다.
"관도에서 진영을 꾸리되, 전 군을 세 진영을 나눠 연합 전투 태세를 갖추라 하라 !"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하달한 원소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이며 연신 수염을 쓸어내리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원소의 출군 소식을 접한 조조는 문무 대신이 모두 함께한 자리에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조인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원소가 기주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칠십만 대군을 이끌고 사흘 전 허도로 향했으며, 세 아들도 함께 출전하였다고 합니다.
원소는 기마진, 궁수진, 철갑진, 전차진과 군량과 무기도 충분하며 보병은 백 리, 수병은 오십리로 이어져 있으며, 선발대는 오늘 관도에 당도하였다고 합니다."
침통한 조조가 입을 열어 말한다.
"우리의 여러 장군들과 병사들도 이렇게 많은 군사들은 못 봤을 테고, 이 많은 진영은 처음일게요.
듣자니 원소가 멋진 말을 했다더군.< 이 전쟁은 향후 오백년의 역사와 황실의 귀속이 걸렸다>고 했다지 ?
자, 여러 문무 대신들은 의견을 좀 내보게 ! 전쟁이오 ? 화친이오 ?
전쟁이면 단기전인가 ? 장기전인가 ? 화친을 하면 담판인가 ? 요청인가 ? 기탄없이 말해보시오."
백관대신 하나가 나서며 아뢴다.
"승상 ! 원소는 세력도 무기도 막강하니, 전쟁보다는 화친으로 시간을 끌었다가 기회를 보아 대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여러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뒤따르며 아뢴다.
"소신도 동의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말이 튀어나왔다.
"전쟁을 해야합니다 !"
이렇게 주장하며 나서는 사람은 다름아닌 모사 순욱이었다. 순욱은 좌중의 가운데로 나서며 두 손을 읍하여 예를 표하며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승상 ! 단기전으로 총력전을 펼쳐야 합니다."
조조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순욱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째서인가 ?"
"소신 전쟁은 잘 모르오나 원소의 심리는 잘 압니다. 그는 이번에는 분명히 허도을 공격할 것이니, 우리가 화친을 원해도 듣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세력이 크다는 것에 도취되어 처음부터 우리의 세력을 얕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원소의 세력은 외형상 크게는 보이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헛된 너울입니다."
이렇게 말한 순욱은 잠시 하던 말을 끊고 무장들이 서있는 곳을 향해 돌아서며 말한다.
"이보시오 장군들 ! 그깟 관우도 사흘 만에 안량과 문추를 없앴소. 숱한 전투를 해온 장군들이 어째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거요 ? 장군들이 관우만도 못한 거요 ?"
순욱은 장군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깔아뭉개는 어조로 따지듯이 몰아세웠다.
그러자 장군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존심을 씻어내는 소리를 내질렀다.
"싸워요 ! 싸워요 ! 원소와 끝장을 봅시다 !"
이렇게 순욱의 말 한마디로 조금 전 까지 원소의 세력에 위축되어 화친의 길을 모색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전쟁불사>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소장이 선봉에 서겠습니다 !"
허저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하자, 또 다른 장수들이 다투어 나서며 말한다.
"승상 ! 정예군 2만이면 적군을 박살낼 수 있습니다 !"
어려운 가운데 희망적인 면을 발견한 조조가 침통한 표정을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무대신 사이를 천천히 걸어다니며 말하였다.
"내가 스무살 즈음에는 원소 형님을 몹시 존경했었네, 왜냐 ? 그 조상 4대가 고관이었고 부하들도 천하에 깔렸으니까, 허나 내 조부는 환관이라 나는 그게 창피했고, 원소의 조롱을 꽤나 받았지.
서른살 즈음에는 나도 그도 조정 대신으로 겉으론는 존경해 주었지만 속으로는 그를 깔보았네, 왜냐 ? 바로 그가 동탁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천하를 혼란시켰으니까.
내 진작 강조했네. 그건 적을 키우는 것이라 조만간 화를 불러들인다고, 마흔살 즈음에는 그도 나도 제후가 되었지만, 난 놈을 멸시하네 ! 왜냐 ? 군주라는 자가 속은 좁아터지고 식견도 얕지, 시샘도 많고 의심까지 ...
통솔자가 되어 현인을 등용하기는 커녕, 자신 측근의 일부만 편애하고 백성들의 생활고는 외면한 채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지,
결단력 부족에 목소리만 큰 겁쟁이에 거짓말쟁이, 병사와 백성은 많지만 못 휘어잡고, 휘하 장수들은 교만스럽다지 ?
애비라는 자가 아들 놈들 부추겨 대권 다툼하게 만들고 제 핏줄만 곁에 두네,
이것만 봐도 원소는 군주로든 아비로든 통솔자로든 겉만 그럴 듯 해보일 뿐이네.
따라서 이번 전투는 사실 8년 전에 예상을 했었네, 원술과 여포를 잇달아 없애고 천자를 모시고 서주와 중원을 얻었으니, 원소와의 마지막 결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야 !
그래서 지난 8년간 우리는 밤낮없이 이 전쟁을 준비했고, 오늘에서야 이렇게 밝히는 바이네.
8년 전 원소군은 삼십만, 나는 이십만은 있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3년 전 원소군은 이미 오십만이 되고 나는 십만 군사는 있어야 이길 듯 싶었지,
지금 원소군은 칠십만으로 제 놈 혼자 4개 주를 차지해 세력을 떨치지만, 내가 보기에는 원소를 이기는데 칠만 정예군이면 떡을 치네 !"
"원소군은 점점 늘어나는데 어찌 승상께선 줄어드나요 ?"
한 대신이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핏대를 올려가며 웅변하듯 외치며 말했다.
"군사는 숫자보다 날렵함이오, 용기보다는 책략이라 ! 군사 수로 따지면 내 평생 원소의 숫자를 앞지르진 못하지만 용맹함과 지략으로 보면, 원소같은 놈 셋이 덤벼와도 이 조조 하나만 못하니까 !"
조조의 대꾸에 어느 누구도 반론하는 문무 대신은 없었다. 그리하여 잠시 적막이 흘렀다.
적막을 깨고 조조가 조인을 불렀다.
"조인 ?"
"네 !"
"원소군에 대비한 병력을 모두에게 들려주게."
하고 명하였다. 그러자 조인이 문무 대신을 바라보며 말한다.
"주공께선 8년 전에 각부의 젊고 용맹한 장사를 연주로 불러모아 주야로 단련시켜서 이제 칠만 정예군이 되었으며, 다들 숱한 전쟁을 겪은 장수로 으뜸중에 으뜸인 용맹지사요,
그중 사만의 철기군과 장창군 일만, 장갑부대 팔천 외에 나머지는 전부 궁수와 벽력차 부대요 !"
조인이 보고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자 조조가 장도를 지팡이 처럼 짚고 서서 결전을 선언한다.
"칠만 정예군은 우리의 칼날과도 같다 ! 그 정도면 원소의 삼군은 단번에 꿰뚫을 터 ! 다들 궁금할 게야,
우리의 나머지 이십만 군대는 뭘 하냐고 ? 모두 잘 듣게 ! 나머지 이십만군의 임무는 단 하나 ! 원소군이 패배한 뒤에 끝까지 추격하여 놈들의 씨를 말려버린다 !"
"네 ! 주공 !"
장수들이 두 손을 모아 올리며 일제히 복명한다.
"이번 전투는 사실상 첫 전투, 단 한번 뿐이고 마지막 전투가 되어야 하네 ! 칠만 정예군 모두를 투입하여 단 한번에 결판을 내도록하자 !"
조조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장도를 뽑아 단상에 그대로 <쾅>하고 꽂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문무 백관들의 입에서는 결의에 찬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네 !"
🔊다음 제141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