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래
은소 / 김양순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는 어느 날 고래사냥을 나갔다가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게 한 쪽 다리를 잃게 된다. 그 이후 에이허브 선장은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바다를 떠돌다가 그 흰고래(모비딕)를 만나 격렬한 싸움 끝에 목숨을 잃게 된다. 이 이야기는 허먼 멜벨의 소설 ‘모비딕’의 핵심 줄거리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들이 자연을 적대시하고 정복하려 드는 탐욕 때문에 끝내는 자멸하고 만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한 달 전 여수엑스포 아쿠아리움 관람하던 때가 생각난다. 뙤약볕 아래 겹겹이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전시관에 들어가면, 280여 종에 3만 마리가 넘는 해양 생물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먼 바다에서 온 진기한 어종들이어서 관람객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러시아에서 왔다는 흰 고래 벨루가 세 마리였다. 하얗고 매끈한 몸매에 동그랗고 귀여운 이마, 게다가 웃고 있는 듯 친근한 느낌을 주는 벨루가들은 헤엄치는 모습 또한 우아해서 바다의 귀족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 했다.
북극해 근처 바다에서 나고 자랐을 그 흰 고래들이 어쩌다 사람들 손에 이끌려 대한민국 여수까지 오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찰칵 찰칵 카메라를 눌러대게 만드는 인기의 주인공이 된 그 벨루가들. 만약 그 흰 고래들이 사람들의 인기만을 얻고 돌아간다면 그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온 것이 그 벨루가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좁은 수족관에 갇힌 채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해도, 드넓은 바다를 가르며 자유를 누리는 것만 하겠는가? 생각하며 흰 고래들의 멋진 수영 솜씨를 구경하던 나는, 문득 어쩌면 수족관을 바삐 돌아다니는 저 몸짓은 사람들을 향한 간절한 호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여, 이렇게 건물 안에 또 다른 작은 바다를 만들어 우리 해양생물들이 여러분과 대면 할 수 있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사람들의 대단한 기술력에 ‘과연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임에 틀림없구나’ 여기며 무한히 감탄 할 뿐입니다. 우리는 본디 사람들에 비할 바가 못 되는 미물입니다. 너른 바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배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이사냥을 하면서 자라다가 짝을 만나 새끼를 낳고 기릅니다. 별다른 욕심 없이 그저 우리 종족이 잘 보존되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또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어 사라지는 존재들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순박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다가 지금 심각한 위험에 빠져있습니다. 북극해의 빙산은 나날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밀려들어와 쌓이는 바다 속은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욕심 많은 사람들이 모든 어류의 어린 새끼들까지 마구잡이로 싹쓸이 해가니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바다 속은 아무 것도 살지 않는 황폐한 물사막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이여, 우리는 사람들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의 왕국을 짓밟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위대하신 인간들이시여 부디 우리의 터전 바다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 주세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벨루가의 몸짓이 해양생물을 대표하는 ‘호소문 낭독’쯤 되겠다고 해석을 한 나는, 좁은 수족관에 갇혀 사람들을 구경하는 저 해양생물들은 지금 행복할까, 아니면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2012 여수 엑스포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방법으로 ‘바다를 사랑하자‘ 라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사람들이 바다오염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다 살리기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더 없이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지구 기후와 모든 생태계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바다를 인간들의 탐욕을 위한 투쟁의 장소로 삼는다거나 온갖 오염물질을 수장하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여기는 그릇 된 인식을 하루 빨리 바꾸어야 옳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감탄하실 만큼 아름다운 생명의 별 지구! 그 중에 70%의 면적을 덮고 있는 바다는 수많은 생명체를 품어 기르는 어머니의 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풍족한 먹을거리를 주고, 길이 되어 주며 무한한 꿈을 꾸게 해주는 바다가 지금 많이 아프다고 한다. 여수 엑스포에 다녀온 사람들 모두, 쨍쨍한 뙤약볕 아래 인내심을 가지고 줄서 기다린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해서였나? 되짚어 보면서 바다 사랑을 다짐 한다면, 망가져 가고 있던 바다가 다시 건강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인간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낯선 수족관에서 간절한 몸짓으로 호소하던 흰 고래 벨루가, 그들의 종족이 청정한 바다에서 마음 놓고 길이길이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여수엑스포에 갔던 날을 회상해 본다. / 끝
2012년 8월 27일
첫댓글 교감이란 무엇인지 잠간 되새겨 봅니다^*^
글쓴이의 생각이 바다보다 넓고 한없이 달려가고 있음도 생각해 봅니다
염려하는 생각들이 모여 좋은 환경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감사히 읽었습니다
말이님, 태풍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산 지방은 아직 괜찮은데, 서해안의 피해가 안타깝습니다
좋은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방영되는 수퍼 피쉬 감상하며 물고기들의 희생으로 우리 인간들이
지금껏 생명을 유지 하여 왔음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일어난 태풍앞에서 맥을 못추는
인간들의 연약한 모습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너무 사람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수족관의 어류들은 고마워하지 않고 한없이 괴로워할 것입니다. 반성을 하며 되돌아보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태풍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오늘은 아주 찬란한 햇빛이 내려쬐이네요.
돌고 도는 좋은 날 궂은 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