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자로(子路)가 완성된 사람[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장무중(臧武仲)의 지혜와 맹공작(孟公綽)의 탐욕하지 않음과 변장자(卞莊子)의 용기와 염구(冉求)의 재예(才藝)에 예악(禮樂)으로 문채를 낸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 成人 猶言全人 武仲 魯大夫 名紇 莊子 魯卞邑大夫 言兼此四子之長 則知足以窮理 廉足以養心 勇足以力行 藝足以泛應 而又節之以禮 和之以樂 使德成於內 而文見乎外 則材全德備 渾然不見一善成名之迹 中正和樂 粹然無復偏倚駁雜之蔽 而其爲人也亦成矣 然亦之爲言 非其至者 蓋就子路之所可及而語之也 若論其至 則非聖人之盡人道 不足以語此 완성된 사람이란, 온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장무중은 노나라 대부이고, 이름은 흘(紇: ge1,he1)이다. 변장자는 노나라 변읍의 대부다. 이 네 분의 장점을 겸비한다면 곧 지혜는 이치를 궁구하기에 충분하고, 청렴은 마음을 기르기에 충분하며, 용기는 힘써 행하기에 족하고, 재주는 널리 대응하기에 족하다. 또한 다시 예로써 절제하고 악으로써 조화시켜 덕이 안에서 완성되게 하고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게 한다면, 곧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갖추어지게 되어, 혼연하여 한 가지 장점으로 이름을 이룬 자취가 보이지 않게 된다. 중도에 맞고 올바르며 조화롭고 즐거우니, 순수하게 더이상 치우치고 기대고 잡다한 폐단이 없게 되는데, 이로써 그 사람됨 또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亦’이라고 말한 것은, 그 지극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자로가 충분히 이를 수 있는 것들에 나아가 말한 것 같다. 만약 그 지극한 것을 논한다면, 성인이 사람의 도리를 다한 것이 아니고서는 이렇게(완성된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新安陳氏曰 節以禮則中正而無偏倚 和以樂則和樂而無駁雜 신안진씨가 말하길, “예로써 절제하면 중도에 맞고 올바르며 치우침과 기댐이 없고, 음악으로 조화시키면 화락하며 잡박함이 없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就亦字上推夫子言外之意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것은 亦자 위에 나아가 공자님의 말씀 밖의 뜻을 미루어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四子之事 朱子曰 武仲左氏詳矣 公綽前章外他無所見 卞莊子事見新序曰 莊子養母 戰而三北 及母死 齊伐魯 莊子赴鬪 三獲甲首以獻 曰 此塞三北 遂赴齊師殺十人而死 冉求之藝 則夫子固嘗稱之矣 누군가 네 분의 일을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장무중은 좌씨전에 상세하게 되어 있다. 맹공작은 앞장 외에 달리 보이는 곳이 없다. 변장자의 일은 新序에 보이는데, ‘변장자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어서 전투에서 세 번 도망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제나라가 노나라를 쳤는데, 변장자는 싸움터에 나아가 세 번이나 적의 수급을 획득하여 바쳤다. 그러면서 말하길, 이것으로 세 번 도망친 것을 보답하였다고 하고서는 마침내 제나라 군사에 뛰어들어 10명을 죽이고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염구의 기예는 곧 공자께서 본래 일찍이 칭찬하신 적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知而不能不欲 則無以守其知 不欲而不能勇 則無以決其爲 知不欲且勇矣 而於藝不足 則於天下之事 有不能者矣 然而有是四者 而又文之以禮樂 始能取四子之所長 去四子之所短 然此聖人方以爲亦可以爲成人 則猶未至於踐形之域也 問若聖人之盡人道 則何以加此 曰 聖人天理渾全不待如此逐項說矣 지혜롭지만 욕심내지 않음을 할 수 없다면 그 지혜조차 지킬 수 없는 것이고, 욕심내지 않지만 용감하지 못하다면 그 행위를 결단할 수 없는 것이다. 지혜롭고 욕심내지 않으며 또한 용감함에도 기예에 부족하다면, 천하의 일에 대하여 할 수 없는 것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네 가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시 예악으로써 그것을 문식한다면, 비로소 네 분의 장점을 취할 수 있고, 네 분의 단점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인께서 바야흐로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니, 여전히 타고난 모습대로 실천함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 묻기를, “만약 성인께서 人道를 다하시는 것이라면, 여기에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성인께서는 天理가 순수하고 완전하기에, 이와 같이 항목을 따라서 말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洪氏以爲特以四子爲言者 四子皆魯人 而莊子與子路皆卞人 冉求又朋友也 其近而易知者爾 胡氏以爲言卞莊子 蓋以況子路爾 言有是一能 而不能兼衆子之長 與成於禮樂焉 則亦不足以爲成人矣 홍씨는 특히 네 분을 가지고 말한 것은, 네 분이 모두 노나라 사람이었고, 또한 변장자는 자로와 더불어 같은 변읍 사람이었으며, 염구 역시 친구였으니, 그들이 가까워서 알기 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호씨는 변장자를 말한 것은 아마도 자로에 비유한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 이 중에서 능한 것이 하나 있을 뿐 여러 사람의 장점을 겸하여 더불어 예악에서 완성될 수 없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고 여기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胡氏曰 四子之長 各有所偏 故必兼四子之長 四子相資猶未足以合乎道 又必須文之以禮樂 禮以節之 則其偏倚邪辟者 去矣 樂以和之 則其乖戾矯激者 消矣 此所以中正和樂 渾然粹然而至於成人矣 호씨가 말하길, “네 분의 장점은 각자 치우친 바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네 분의 장점을 합해야만 하는 것이다. 네 분이 서로 도와주어도 여전히 도에 부합되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으니, 또 반드시 예악으로써 그것을 문식해야만 하는데, 禮로써 그것을 절제하면 그 치우치고 기울어지고 편벽된 것이 제거되는 것이다. 樂으로써 그것을 조화시키면, 그 이지러지고 사나우며 과격하게 바로 잡는 것이 소멸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도에 맞고 바르며 화락하고 순수하면서도 완성된 사람에 이르는 방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文以禮樂 則不好亦成好底 四件都是質 須文之以禮樂 蓋節之以禮 則凡事都有節制 和之以樂 則中心和平而所發者中節 쌍봉요씨가 말하길, “예악으로 문식하면 좋지 않은 것도 역시 좋은 것이 된다. 4건은 모두 바탕이니, 반드시 예악으로써 그것을 문식해야만 한다. 대개 禮로써 그것을 절제하면, 모든 일에 전부 절제함이 있고, 樂으로 조화롭게 하면 중심이 화평하고 피워낸 것이 모두 절도에 들어맞는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公綽之不欲 只是德而其才未備 武仲之知卞莊子之勇冉求之藝 只是才而其德未全 皆有一善成名之迹 至於武仲之要君 公綽之不可爲滕薛大夫 莊子輕死敵而不終於孝 冉有爲季氏聚斂 皆有偏倚駁雜之蔽 非文之以禮樂 固未見其渾然粹然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맹공작의 무욕은 그저 덕일 뿐 그 재주는 아직 갖추지 못하였고, 장무중의 지혜, 변장자의 용기, 염구의 기예는 그저 재주일 따름이지 그 덕은 아직 온전하지 않았으니, 모두 한 가지 善으로 이름을 이룬 자취를 갖고 있다. 장무중이 임금에게 자기 후계자를 세워달라고 요구한 일, 맹공작이 등나라나 설나라의 대부가 될 수 없는 일, 변장자가 죽음과 적을 경시하고서 효도에서 끝마치지 못한 일, 염구가 계씨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둔 일은 모두 치우치고 기대며 마구 뒤섞인 폐단이 있으니, 예악으로 그것을 문식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초부터 그 혼연하고 순수함을 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曰 今之成人者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또 말씀하시기를, “요즘의 성인이란 사람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며,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을 평생 잊지 않으면 또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復加曰字者 旣答而復言也 授命 言不愛其生 持以與人也 久要 舊約也 平生 平日也 有是忠信之實 則雖其才知禮樂有所未備 亦可以爲成人之次也 다시 왈자를 붙인 것은 이미 대답하였으면서 다시 말하였기 때문이다.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그 삶을 아까워하지 않고 가져다 남에게 주는 것이다. 久要는 옛 약속이다. 平生은 평일, 평소란 말이다. 이러한 충과 신의 실체가 있다면, 비록 그 재주와 지혜, 그리고 예와 악이 비록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있더라도, 이 역시 완성된 사람의 그 다음이라고 할 수 있다.
雙峯饒氏曰 忠指授命 信指久要 似遺了思義一句 蓋取與不苟 亦非忠信者不能 쌍봉요씨가 말하길, “忠은 목숨을 바친다는 것을 가리키고, 信은 오래 된 약속(久要)를 가리키니, 의로움을 생각한다(思義)는 한 구절을 빠뜨린 것 같다. 대체로 취하고 주는 것을 구차하지 않게 하는 일 또한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잘 해낼 수가 없다.”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見利思義 無苟得也 見危授命 無苟避也 久要不忘平生之言 不食其言也 是雖未有過人之才而亦毅篤忠信之人 故在今日論之 亦可以爲成人 此亦思狂狷之意耳 남헌장씨가 말하길, “이끗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것은 구차하게 얻음이 없다는 것이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구차하게 피함이 없다는 말이며, 오래된 약속이라도 평소 한 말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말을 먹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없더라도 또한 굳세고 돈독하며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오늘 그런 사람을 논하면서 그 역시 완성된 사람으로 쳐줄 수 있다. 이 또한 中行之士보다 떨어지는 狂士와 狷士를 생각하는 뜻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知之明 信之篤 行之果 天下之達德也 若孔子所謂成人 亦不出此三者 武仲 知也 公綽 仁也 卞莊子 勇也 冉求 藝也 須是合此四人之能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然而論其大成 則不止於此 若今之成人 有忠信而不及於禮樂 則又其次者也 정자왈, “밝은 지혜, 돈독한 신뢰, 과단성 있는 행동은 천하에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덕이다. 만약 공자께서 말한 이른바 성인(成人)이라면, 역시 이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장무중은 지혜롭고, 맹공작은 어질다. 변장자는 용감하고, 염구는 재주가 많다. 모름지기 이 네 사람의 장점을 합하여 예악으로써 문식해야만, 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고 쳐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성(大成)을 논한다면, 여기에 그치지는 않는다. 만약 오늘날 완성된 사람이라면, 충성과 신의는 갖추고 있되 예악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역시 그 다음 가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又曰 臧武仲之知 非正也 若文之以禮樂 則無不正矣 다시 말하길, “장무중의 지혜는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예악으로써 다듬는다면, 곧 바르지 않은 것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此亦擧武仲要君一事以例其餘耳 人之資稟雖善 然亦不能無偏 須學以成之然後 恊于中正而無疵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 역시 장무중이 임금에게 요구했던 일 하나를 들어서 그 나머지를 예증하고자 한 것일 따름이다. 사람의 자질과 품부 받은 바가 비록 선하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역시 치우침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반드시 배워서 완성시킨 연후에 中正에 들어맞고 하자가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曰 語成人之名 非聖人孰能之 孟子曰 惟聖人然後可以踐形 如此方可以稱成人之名 또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완성된 사람은 어찌 굳이 그러할 것이 있겠는가? 이(利)를 보고 의(義)를 생각하며,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 胡氏曰 今之成人以下 乃子路之言 蓋不復聞斯行之之勇 而有終身誦之之固矣 未詳是否 호씨가 말하길, “今之成人 이하는 바로 자로의 말이다. 아마도 들으면 바로 행하는 용기가 더 이상 없고, 또한 종신토록 그것을 외우고 다니는 고루함만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趙氏曰 何必然三字 似以前說爲疑 三者皆子路之所能 故胡氏疑其爲子路之言 조씨가 말하길, “何必然 3자는 이전의 말을 의심하는 것 같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자로가 능히 할 수 있는 바였기 때문에, 호씨가 그것이 자로의 말이라고 의심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此子路所已能 夫子方進子路於成人之域 豈又取其已能者而重獎之 호씨가 말하길, “이것은 자로가 이미 능한 바였는데, 공자께서 바야흐로 자로를 완성된 사람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함에 있어, 어찌 또한 그가 이미 능한 것을 취하여 거듭하여 그것을 권장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子路成人之問 夫子蓋以子路之所知者 使之捨短集長 增益其所未至爾 非謂成人之道 盡於是也 子路猶以爲此古之成人之道 居今之世 有不必盡然者 謂誠能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雖無禮樂亦云可矣 是三者蓋子路之所優爲 抑以自許也 唯其自許如此 故臺下之役卒以身徇從 不能明君臣之大義 以正衛國之難 則亦不足以爲成人矣 行行如也 若不得其死 然則以未能文之以禮樂 故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자로의 완성된 사람(成人)에 대한 질문에 관하여, 공자께서는 대체로 자로가 아는 바를 가지고 그로 하여금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모으도록 함으로써 그가 아직 지극하지 못한 바에 더해주고자 하였을 뿐이지, 成人의 도는 이것이 전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로는 도리어 이것을 옛날의 成人之道라고 여겨서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며, 진실로 見利思義하고 見危授命하며 久要不忘平生之言하면, 비록 예악이 없더라도, 또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대체로 자로가 여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아예 이로써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오직 그가 자부심을 갖고 있음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臺下의 戰役에서 끝내 제 몸으로서 따라 죽었을 뿐 군신의 대의를 밝혀서 위나라의 난리를 바로잡을 수 없었으니, 또한 완성된 사람으로 여기기에 부족한 것이다. 공자께서 자로가 너무 강직하여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는 미처 예악으로 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使子路能行夫子之言 始於智以知此理 終合於禮中樂和之理 豈至死於一決之勇 而不足以言義乎 胡氏以後三節爲子路之言 極是 신안진씨가 말하길, “만약 자로가 능히 공자님의 말씀을 행하여 지혜로써 이러한 이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하여 예에 들어맞고 악으로 조화하는 이치에 끝내 부합할 수 있었다면, 어찌 한번 결단하여 죽는 용기임에도 義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호씨는 뒤의 3절을 자로의 말로 여겼는데, 이는 지극히 옳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