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22]스토리텔러 은사님 명복을 빕니다
전주에서 소아과병원장 친구가 엊그제 전화로 비보(悲報)를 전해 왔다. 자기집 근처에 사시던 고교 은사님 별세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어? 그래. 어찌 그런 일이” 크게 놀라며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사연인즉슨, 얼마 전, 그 선생님의 실종소식이 지방뉴스에 나와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며칠 후 사실이고 결국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친구도 자세한 내용이나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문상도 할 수 없이, 그냥 그렇게 한 세상 사시다 떠나버렸구나, 생각하니 속이 많이 상했다.
5년 전 스승의 날 전날에 남원의 서예가 친구(근봉 이종대)과 둘이 어느 한정식집에서 선생님을 모신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고교 졸업 후 근 50년만에 처음 뵙는데, 담임도 아니었기에 우리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당신을 알아줘 일부러 찾아준 제자 둘을 보고 입이 함박만해지며 좋아하셨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약주도 한잔 따라드리니, 모처럼 석 잔을 마시겠다고도 했다. 해마다 모시겠다고 한 것은 빈 약속이 됐으나, 그후 서너 차례 통화는 했다. 중국소설 <홍루몽> 3권도 빌려준다며 우편으로 보내주시고, 결권(缺卷)으로 없다는 <원본 삼국지> 2권을 제본해 보내드리기도 했다.
1939년생, 우리 나이로 87세이고 실종사라니 호상일 수 없는 일. 혹시 치매를 앓고 계셨을까? 고향인 진안의 어느 산에 정자를 지어놓고 1주일에 한두 번 내려가 좋아하는 시조도 읊으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노년을 보내신다는 선생님, 그날도 정자를 찾아 시간을 보내다 길을 잃으신 것일까? 아무튼, 한문전공 선생님은 수업때마다 <삼국지>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해주시던지 가장 기다려지던 시간이었다. 제갈량의 <출사표>, 도연명의 <귀거래사>, 소동파의 <적벽부>도 눈을 감고 외워주신 덕분에, 당시 총기聰氣 있던 나로서는 금상첨화錦上添花, 예쁨도 많이 받았다. 왜 아니겠는가? 나로 말하면 한번 가르쳐주기만 하면 대번에 줄줄 외워대는 ‘총명한 제자’였으니. 흐흐. 지금도 대충 떠듬떠듬 외울 정도이니, 이 모든 게 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이다. 서예가 친구 역시 나만큼 선생님을 좋아했고,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문의 세계와 서예에 일찌감치 취미를 가졌다고 했다. 일생의 취미가 특기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생각난다. 판소리에서도 들었듯, 유비와 손권의 적벽대전 화공작전火攻作戰으로 쫄딱 망하고 도망가던 조조, 장판교에서 아두(유비 아들)를 한손에 안고 청룡일월도를 헌칼 쓰듯 휘두르며 대군을 제압하던 조자룡 등 이야기를 고사성어故事成語(삼고초려, 계륵 등) 하나씩 판서한 후 펼쳐나가면 우리는 어느새 삼국지의 최대 구경꾼이 되었던 것을. 선생님은 당시 진정한 스토리텔러였다. 낚시를 좋아하신다던 선생님은 우리 졸업 직전에 발간된 <전라고보全羅高報> 창간호(1975년 12월 24일) 2면에 <강호일몽江湖一夢> 한시를 실으셨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젊어 잘 생긴 모습을 보며 어제밤 선생님을 회억하고 명복을 빌어드렸다. 끝구절 “한번 홍진을 떠나고 보면 세속 또한 맑아지나니/그대들이여! 너무 시비에 얽매이지 마시오”(一斥紅塵閑世俗 諸君莫道是非由). 당시 37세였을 듯하다. 이제 홍진을 떠나셔 온갖 시비에 얽매이지 않고 사시게 됐을까.
제법 여러 번 만난 어떤 후배가 나를 보고 “성님도 나와 같은 ‘설명충 인간'이요”라고 한다. 설명충說明蟲이라니? 뭔가 설명을 못하면 안절부절못하는 벌레라는 말인가? 스토리텔러storyteller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충’은 좀 그렇지 않은가. 어느 졸저의 글머리에 “글목걸이를 걸고 말팔찌를 차고 다니는 음유시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는데, 내가 역사와 기록유산을 좋아하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알려주고 싶어 안달하는 스토리텔러가 된 것도 어쩌면 안성호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낡은 <전라고보>를 뒤지다 4면에 실린 나의 졸문을 발견한 것은 가외의 수확. <어린왕자> 독후감은 아마도 신문을 만든 친구(편집장 7회 손세협)가 무조건 쓰기를 강요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것도 글이라고? 새삼 읽어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무튼, 이 글을 빌러 고인이 된 선생님께 매년 스승의 날 식사대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귀한 중국소설 <홍루몽> 3권을 빌려주셨는데 돌려드릴 길이 없어 감사하게 읽고 선물로 소중하게 간직하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근심걱정없이 낚시를 즐기며 천복을 누리소서.
선생님, 선생님이 팔짱을 낀 채 교탁에 '남쪽 창문을 바라보며 뻐기듯 기대어'(倚南窓以寄傲) 읊으시던 <귀거래사>가 이렇게 끝나는 것 지금도 기억하시죠. "인호상이자작引壺觴以自酌하고 면정가이이안眄庭柯以怡顔이라 의남창이기오倚南窓以寄傲하니 심용슬지이안審容膝之易安이라. 원일섭이성취園日涉以成趣하고 문수설이상관門雖設而相關이라. 책부로이류게策扶老以流憩라가 시교수이하관時矯首而遐觀하니 운무심이출수雲無心以出峀하고 조권비이지환鳥倦飛而知還이라. 경예예이장입景翳翳以將入하고 무고송이반환撫孤松而盤桓이로다."
술병을 끌어당겨 나 홀로 한잔술을 따라마시며 정원의 가나무를 바라보니 흐뭇하여 얼굴이 저절로 펴지네. 남쪽 창에 기대어 뻐기듯 거드름을 피우며, 간신히 무릎이나 허락한 작은방도 이렇게 편한 줄을 이제야 알겠네. 날마다 뜰을 거니는 것을 취미로 삼고, 대문은 있으나 늘 닫아놓네.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놀멍쉬명 하다가 때로는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먼 산부리에 구름이 무심히 들랑날랑하고, 새는 날다가 지쳤다가도 제 둥지에 돌아올 줄을 아는구나.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려하는데,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쓰다듬기도 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