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사용된 법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토라는 단순히 “율법 코드”가 아니라 “가르침”, “인도”, “삶의 방향”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래서 시편 119편에서 “법”은 도덕적 규범, 하나님의 뜻, 그리고 인간이 따라야 할 삶의 길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즉, “조문으로서의 율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살아 계심”에 관한 외경심을 나타낸다. 묵상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는 뜻이며 그것은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것을 포함하므로 그의 모든 활동들에 법의 원리들이 스며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당시에 말씀들의 주석이나 파수대 같은 해설이 있어 그 지시를 따른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의 방식 가운데서 나타나는 보편적 원칙과 모세 율법을 그의 이성의 사고와 판단에 따랐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종일 묵상하는 가운데서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법이 규칙이라면 법 가운데 흐르는 공통적인 것을 원리 또는 원칙이라고 한다. 규칙은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뀔 수 있지만 원칙 또는 원리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오랜 세월에 걸쳐 바뀌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보다 상위의 것인 하느님의 속성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모든 원리는 하느님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원리에 따라서 사회의 제도를 마련한 것이 규칙, 곧 법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토라를 종일 묵상하였다는 것은 그 법을 적용시키는 구체적 상황과 더불어 그 안에 흐르는 원칙들을 찾으려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구약 성서의 율법을 모든 상황에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지만, 그 법 가운데 흐르는 의미, 즉 원리를 적용하려고 해야 할 것이며, 보다 층 위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속성들을 파악함으로써, 성서 가운데 흐르는 구체적 법들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경직된 태도임을 말하는 것이다. 원리를 이해하며 바뀌어진 환경에 어떻게 그것를 적용해야 할 것인지를 원리적으로 생각하며, 보다 층 위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속성으로 그것을 비추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그 사회의 질서에서 위배되게 범법했을 때, 공의로운 판단은 가장 포괄적으로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며, 다음에 그 하위의 속성인 정의와 공의의 차원에서 판단해보고, 그 다음에 사회 질서라는 원칙에서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문자화된 규칙, 곧 법에 따라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과정에서 그가 하느님의 속성에서 비롯된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며 백성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당시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역활을 했던 토라, 곧 하느님의 법을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기를 좋아했으며, 그 의미를 높은 층 위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속성과 연관하여 법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