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소리로 요란을 떨었습니다.
“엄니요? 어찌 저녁은 드신 게라? 아~ 고것이 뭘 많다고 그라요”
통화소리를 들으니 멀리 해남인 처가에서 온 장모님의 전화였습니다.
부모님이나 고향 사람들 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사투리를 쓰게 된다는
아내의 통화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돈이 얼맨디요. 통장은 잘 확인해 보셨어라? 잉? 아닌디......”
내 옆에서 통화를 하던 아내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베란다로 향했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닫고 두런두런 계속 통화를 하던 아내. 잠시 후 거실로 들어오더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당신. 아침에 내가 준 돈 말고 혹시 더 보태서 해남으로 돈 부쳤어?”
“무슨 소리야. 당신한테 용돈 타 쓰는 내가 뭔 돈이 있다고 보태. 뻔히 알면서”
고개를 갸웃 의아해 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내.
며칠 전 우리 집으로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해마다 한 두 번씩 해남 처가에서 보내오는 우리 가족에겐 일용할 양식이 담긴
물건이었지요. 늙으신 처부모님이 손수 농사를 지어 보내오신 쌀 한 가마니와
삼년이 되었다는 묵은지 한 박스. 그리고 바리바리 싸 보내온 고춧가루 한 봉지.
그날 저녁, 퇴근한 아내가 처가에 전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택배 잘 받았다며, 감사히 잘 먹겠노라며 장모님에게 인사를 하던 도중에
갑자기 시무룩해지는 아내. 또 베란다로 나가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잠시 후 들어온
아내의 눈가가 붉그스레 보였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택배래. 더 이상 힘에 부쳐 농사 못 짓겠대. 소작 하던 논도
주인에게 넘겨줬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내에게 해줄 말이 없었습니다. 속상하기는 아내나 저나
매한 가지 이었으니까요.
평생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셔서 육남매 대학 졸업시키고 출가 시킨 당신들은
애벌레가 나온 빈껍데기뿐인 늙은 육신만 이제 남았을 테니…….
“용돈 좀 보내 드리지. 뭐 당신이 알아서 잘 했겠지만…….”
“보내드려야 하는데 우리도 빠듯해서 돈이 남아야 보내던지 하지”
아내의 대답을 듣고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피식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내가 숙연해 하며 내게 대답한 그 말은 아내의 어설픈 거짓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해남 처가에 갔을 때였습니다.
시골이라 어찌나 모기가 많던지 모기향을 찾으려고 안방 서랍을 뒤적이다가
허술하게 놓아둔 통장을 보게 되었지요. 그 통장에는 2,500만 원 가량의 돈이
예금되어 있었습니다. 처가 부모님이 평생 한 푼 두 푼 모아둔 피 같은 돈.
한평생 자식들 뒷바라지 하다가 늘그막에 소작농으로 모아 놓은 예금통장.
그 돈은 당신들이 살아있는 동안의 유일한 기댈 언덕 이었습니다.
대충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문득, 페이지 곳곳에 찍혀 있는 아내의 이름 석 자.
두 달 간격으로 우리부부 보너스 달에 10~20만 원의 용돈을 입금 시킨 아내.
내게 한 마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모른 척 해 왔는데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아내를 보고 웃음이 나온 것
이었지요.
용돈 좀 보내 드려라 하는 내 말을 들은 아내가 반색을 하더니 지난달에 보너스를
받은 내 월급에서 30만 원 정도 여유가 있다며
“정말 보내줘도 돼? 당신 나중에 딴 소리 하는 거 아니지?”
“딴 소리는. 쌀값은 보내 줘야지. 그리고 처음 보내는 거잖아”
“그래야 하겠지? 에고, 가끔씩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나 참, 이정도면 아내의
어설픈 거짓말도 수준급 아닐까요?
아침 일찍 출근을 하며 내게 공과금과 30만 원이 든 봉투에 처가 계좌번호를 적어주더니
은행에 입금 시켜 달라는 아내. 30만 원을 입금 시키려다가 처가 부모님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에 지갑에 있던 한 달 용돈을 보태 입금 시켰습니다. 빈농으로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신 그 삶이 정말 서글프도록 고마워서……. 처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나 모르는 아내의 어설픔은 계속 되겠지만 평생 모른 척 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30만원 보다 더 입금 됐대? 아마 처남도 보냈는데 착각 하시는 거겠지”
“아~ 그럴 수 있겠네 맞아”
“근데 마지막 택배라니 서운하네. 한 5년만 더 보내주시지”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다. 노인네들한테 5년을 더 보내라니”
참 눈치도 꽝인 마누라. 정말 5년을 더 보내달라고 한 말이겠니? 어느새 늙어 힘없는
마지막 삶을 살게 만든 세월이 미웠고 건강하시길 바라는 부족한 사위의 마지막
바람인 것을…….
봄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해남 처가 부모님들은 지금 이 시간
내리는 봄비를 반가워하며 집 옆 조그만 텃밭으로 호미 들고 가실 것을, 봄동 이라도
보내주시려고 밭길을 걸어가실 것을.......
인터넷에 올라 온 글 입니다...
첫댓글 한강의아침님.. 안녕하셨어요..? ^^
넵, 잘지내고있습니다. 사모님과 애기들도 잘지내시지요...
예..ㅎㅎ
최근 사진으로 근황 올려 드릴께요..ㅎㅎ
엊그제 3.1절 기념 마라톤 10km 완주후 찍은 사진 입니다.
건강한 모습과 행복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