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날의 일기
2025.7.19.
-누가 일영표(日影表)를 멈추게 했듯이-
단 한번 스쳐 가는 미풍에도 놓치지 않은 채 돌아가던 저 바람개비들이 오늘 저녁은 왠지 꼼짝없이 침묵하고 있으니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저 정적은 마치 시간을 알리는 일영표가 멈추어 버린 듯, 이 땅이 회전을 잊은 듯, 아니면 무언의 시위를 벌리듯 낯선 풍경이다.
바람개비가 돌아가야 하듯 우리의 남은 시간도 영원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
2025.7.22.
-낯선 손님이 찾아온 날-
장맛비가 멈춘 저녁 하늘은 너무 높아서 가을날이다. 저 푸른 도화지에 펼쳐진 고즈넉한 들녘은 뭔가 곧 일어날 듯 급박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미처 비가 되지 못해 산 등성이를 가득 덮은 낯선 구름 기둥이 무슨 조화를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나온 연수(年數)에 더러는 저 불청객의 어찌할 수 없는 힘에 휩싸여 헤매다 얼마나 슬픈 노래를 불렀을까. 그러자 의복같이 낡아 헤어진 육신은 어느새 하나 둘 작동을 멈춘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흰 구름은 잠시 붉은 빛으로 노을임을 알린다. 언젠가 가야 할 서쪽 본향이 어느새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2025.7.28.
-에바다-
이제 곧 떠나시려는지요. 이 연수에 이르기까지 따뜻한 말로 그리 살갑게 대하지 못해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그저 곁에 있으므로 늘 함께 하는 줄 알았지요. 그대가 전해주던 이른 봄 스쳐 가는 미풍, 산새들의 아침 노래, 저녁놀에 흐르는 여울 물소리, 그리고 가을 밤에 영혼을 울려주는 음악이 황홀했어요.
아직, 꽃잎이 열리며 터져 나오는 미세한 소리와 그분이 전하는 미세한 음성은 듣지 못해도 더는 바랄 게 없었지요. 어느날, 불현듯 찾아 온 불청객이 담장을 치듯 소통을 막아 버리자, 그대가 있을 자리가 없어졌나 봐요.
그동안 참 고맙고 감사했어요. 혹, 그분께서 불쌍히 여겨 '에바다' 하시며 열어주시면 다시 내게로 와 주세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2025.8.4.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오늘은 왠지 어머님 목소리가 그립다. 여름 저녁, 땅거미가 으스름할 때까지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저녁 먹으라고 부르시던 나지막한 정겨운 목소리를 듣고 싶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이 뇌리에 묻어 두었던 소리의 기억을 몰래 가져갔다. 그러자 감각이 사라졌다.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그 신호만을 공허하게 기다렸다. 어머님의 목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출처와 방향을 알 수 없는 낯선 바람 소리와 단조로운 기계음들이 꽉 메운 혼돈이 온전하게 지배했다.
그래서 찾아 나섰다. 저 지나가는 바람결에 묻혀 갔는지 빠르게 흐르는 개울물에 흘러갔는지 숲을 지나 들녘을 헤매며 그 흔적을 기억해 보았다. 들꽃에도 산새들에도 물어 보았다. 혹, 시골 고향에 두고 왔는지 몰라 회룡포와 삼강주막까지 가 보았다. 내친김에 밖에서 살던 우스터 파크와 크론베르크도 들러 보았다.
그러나, 빈 손으로 돌아왔다. 허사였다. 깨닫게 된 평온은 낮은 자세이거나 누워있을 때이다. 한없이 낮은 곳으로 머물거나, 언젠가 그 어느 날, 선산 부모님 곁으로 겸허히 돌아 가면, 그때엔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5.8.16.
-낯선 소리에 눌려-
어느 때는 지구가 돌아가는 굉음이 들리는 듯 하다가 더러는 광야에서 세차게 몰아 오는 바람에 휩싸여 어찌할 수도 없고, 때로는 들녘에 쏟아지는 장대 비 소리로 작은 공간을 꽉 메우고 있으니 언제쯤이면 자유를 누릴까. 이 늦은 연수에 세상 모든 낯선 소리를 들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2025.9.29.
-소리의 의미-
가을밤 풀벌레들이 자아내는 처연한 언어는 노래일까 울음일까. 그냥 소리라고 하면 그들의 품위를 한풀 꺾는 일이 된다. 물은 흘러가며 소리를 낸다. 마치 어머니 자궁 속에서 잔잔히 흐르는 태초의 신비함을 느끼는 평온함을 닮았다. 바람도 불어오며 그러한 것처럼 소리란 생명이 없는 물체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울리는 파동이다. 언어가 아니기에 소통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들리지는 않지만, 지구나 온 우주가 운행할 때 드러내는 굉음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오늘밤 저 높이 떠 있는 상현달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을까. 우리의 청력으로 들을 수 있는 음역일까. 감사하게도 그러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평온히 살아 갈 수가 있다. 그러나 내 귀는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끝내 들을 수 없으니 얼마나 곤고(困苦)한 서글픔인가.
2025.12.16.
-슬픈 커피의 노래-
모든 하늘의 마음을 가진 자에 무조건 알코올을 삼가도록 진정 권했고 커피는 마음을 어둡게 하므로 멀리하기를 바랐던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두 콩 60개를 헤아려 커피 한잔을 만들어 마신 광인도 있었다. 둘 다 독일인이다.
한 사람은 모두가 '차라투스트라' 곧 초인이 되어야 함을 노래한 현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영혼의 노래를 지은 '음악의 성인' 곧 '악성'이었다. 그런데 그는 난청에 커피가 위험한 자극제임을 몰랐을까. 카페인 과다 섭취가 혈류를 감소시켜 증상 악화의 근원임을 알았어도 끊지 못하였을까.
지난여름 불현듯 찾아온 불청객이 왼쪽 소리를 앗아갔다. 커피 마시기를 금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따르고 있다. 비엔나 그의 기념관에 커피 원두 60알 그림을 보았을 때 너무 안타까웠다. 한때 죽음까지 생각한 그의 심경을 동병상련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