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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樂民(장달수)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반야공관을 중심으로-
정 천 구*
[국문요약]
금강삼매경론(이하 경론으로 약칭)은 원효의 후기 작품으로서 원효
사상을 원숙하고 깊이 있게 종합한 작품이다. 필자는 금강경(금강반야
바라밀경)과 경론의 대상이 된 금강삼매경(이하 경으로 약칭)과의 유사
성 때문에 경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금강경이 반야공관을 기본사상
으로 하여 비우고 또 비우는 마음공부를 가르치는데 경과 경론도 같은
기조를 가지고 있다. 비록 경이 신라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
이라는 설(說)들이 있으나 그 근거나 논리는 얼마든지 반박될 수 있는
것으로 정설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경론을 통해서 원효는 9식설을 도
입하여 일심사상을 업그레이드하고 화쟁사상의 근거를 확고히 했으며
중국의 선종과는 구별되는 진선(眞禪)을 개발했다. 경론에서 원효는 공
(空)을 세 번에 걸쳐 비우는 3공의 반야공관을 세웟다, 즉 공공(空空),
공공역공(空空亦空), 소공(所空)이 그것이다. 반야공관은 유(有)를 속
제(俗諦, 세속적인 진리)로 공을 진제(眞諦, 절대적인 진리)로 나눈다.
공공이란 진제를 한번 비워 다시 속제로 된 것이고, 공공역공은 그런
진제가 다시 속제가 된 것이며 소공의 단계에 이르면 그렇게 전환된 속
제와 진제가 하나로 합쳐져 융통자제한 일심의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반야공관을 철저히 추구한 결과라고 본다. 일심 속에서 화쟁도 가능한
것이다. 중국 불교에서 보듯이 반야공관의 최종정착지는 비우고 또 비
워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세계라고 할 수 있
다. 육조대사의 본래 무일물의 깨달음에서 남종 선종(禪宗)이 시작되었
* 서울디지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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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것이다. 파사현성(破邪顯正), 즉 삿된 것을 파하고 바른 것을 들어
낸다는 불교의 목표 중에서 원효는 3공을 통해서 현정이라는 적극적
측면을 들어내었다. 그래서 원효는 쟁론을 없게 한다는 불교의 무쟁의
개념을 쟁론을 회통해서 화합으로 바꾼다는 화쟁의 개념으로 전환시켰
던 것이다. 경론에서 원효는 합리적 틀에만 얽매여 실재를 파악하기 어
려웠던 서양논리학이 아니라 현대의 퍼지(fuzzy)논리와 유사한 판비량
론의 신인명 논리학을 사용하여 존재의 실상을 들어내고 있다.
주제어 : 금강삼매경론, 금강반야바라밀경, 반야, 삼매, 반야공관, 대
승기신론소, 십문화쟁론, 일심, 화쟁, 판비량론, 퍼지논리
Ⅰ. 서 론
이 글은 원효(元曉)의 대표적 저작 중의 하나인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을 반야공관(般若空觀)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필자가 금강삼매경론(이하 때로는 경론으로 약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금강반야경(금강반야바라밀경)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둘 다 금강경인데 하나는 금강반야경이고 원효가 경론을 쓴 경은
금강삼매경(이하 때로는 경으로 약칭)이다. 필자가 공부해온 금강
반야경의 가르침은 상(相)을 비우고 비우며 또 비우는 것을 가르
치고 있는데 금강삼매경도 비우는 공부가 중심이라는 점을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을 보고 느꼈다.
금강삼매경론은 원효의 후기 작품으로서 원효 사상을 원숙하고
깊이 있게 종합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원효는 그 천재성과 요석
공주와의 관계 등 파격적인 행동으로 당시의 불교계에서 시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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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척을 받았다. 그는 스님 100명을 초청하는 국가적 행사인 인왕
경백고좌(仁王經百高座)법회에도 초청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경론의 저술을 계기로 원효는 황룡사에서 개최된 국가적인 대
작 불사(佛事)에 강사로 초빙되어 국내 무대에 공식적으로 화려하
게 등장하였고 점차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원효는 당시의 선진사상인 불교에서 자기가 찾고자 하는 인생과
우주의 도를 발견했으며 자신이 살던 세상에 적합한 도는 어떠한
것인가를 탐구했다고 본다. 당시 불교 내에는 두 가지 사상적 기
조가 있었다. 반야공관(般若空觀)을 중심으로 한 구역(舊譯) 사상
계통은 삼라만상이 상호의존적인 연기의 세계라는 점에서 공(空)
하다는 이치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신역(新譯) 유식(唯識)사상도
공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음의 소산이라
는 생각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들 사이에는 사상적 갈등이 존
재했다고 한다. 또한 원효가 살던 시대(617 진평왕~686 신문왕)
는 삼국 사이의 끝없는 갈등과 전쟁 속에서 신라가 삼한일통(三韓
一統)을 모색하고 달성한 시기였다. 원효의 사상 속에는 이러한
사상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용해되어 있다고 본다.
원효는 의상과의 당나라 유학길의 경험에서 모든 것이 마음의
소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깨달음의 시를 남기고 당나라
유학을 단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1)
1) 전해지고 있는 원효의 깨달음의 시는 다음과 같다.
마음이 일어남으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스러지니 움막과 무덤이 둘이 아니라네.
삼계(三界)는 모두 마음이요 만법은 유식(唯識)이라.
마음 밖에 다른 것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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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기신론에서 공관과 유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일심이라
는 개념을 발견하고 자기의 깨달음을 발전시켰다. 그는 기신론의
“체(體)는 이문일심(二門一心)의 법으로 요체를 삼으며 이문 안에
만 가지 뜻이 일심과 같아서 열고 합하는 것(開合개합)과 세우고
깨뜨리는 것(立破입파)이 자재롭다”고 보았다.2) 그는 일심에는 심
진여문과 심생멸문의 두 가기 문이 있는데 심진여문(心眞如門)은
공관(空觀)을 나타내고 심생멸문(心生滅門)은 유식(唯識)을 나타내
는 표현이며 이 두문이 일심 속에 있어 소통할 수 있는 것으로 보
았다. 그는 일심에서 진정한 도, 그리고 회통과 융합의 길을 발견
했던 것이다. 거기서 원효는 다시 일심을 기본으로 불교 안의 여
러 쟁론들을 회통시킬 사상적 기초로 십문화쟁론을 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부가 깊어지고 불교 이론내의 쟁점의 발
전으로 일심의 개념을 더욱 세련시키고 보다 진전된 마음공부의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금강삼매경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는 경론에서 “저 일심의 근원은 유(有)와 무(無)를 떠나서 홀로
맑으며, 삼공(三空)의 바다는 진(眞)과 속(俗)을 융합하여 깊고
고요하다. 깊고 고요하게 둘을 융합하였으나 하나가 아니며, 홀로
속설에서는 원효가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깨친 것으로 전하고 있으
나 송고승전(宋高僧傳)에는 움막으로 알고 잤는데 무덤임을 알고 심법
을 깨쳤다고 한다. 心生故 種種法生(심생고 종종법생) 心滅故 龕憤不二
(심멸고 감분불이). 三界唯心 萬法唯識(삼계유심 만법유식) 心外別法
胡用別求(심외별법 호용별구). 김영태, “원효는 감분불이(龕憤不二)를
깨쳤다.” 불교전기문화연구소 편, 『원효, 그의 위대한 생애-元曉사상
전집①』(서울: 불교춘추사, 1999), pp.428-440.
2) 合則二門 一心之法爲要,二門之內,容萬義而不亂,無邊之義,同一心
而混融,是以開合自在,立破無礙,開而不繁,合而不狹,立而無得,
破而無失,是爲馬鳴之妙術, 은정희 역주,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ㆍ
별기』(서울: 일지사, 2002), p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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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아서 양변을 떠나 있으나 중간도 아니다.”라고 말한다.3)
본 연구는 경론이 이전의 원효사상을 업그레이드 한 결과라는
가설을 기본으로 선행 연구들을 참고하면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 연구에서 분석할 대상은 우선 경론의 제작배경과 유통에 관한
것이다. 그 동안 경론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금강삼매경은 인도에
서 제작되어 중국에서 번역된 진짜 경전(眞經진경)이 아니라 중국
이나 신라에서 제작된 가짜 경전(僞經위경)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경론을 연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분석
을 비켜갈 수 없을 것이다. 본 연구는 위경설의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다음으로 경론의 종합적인 분석과 해부이다. 원효 사상에서 경
론의 사상적 배경과 중심사상을 분석대상으로 할 것이다. 이미 암
시한대로 본 연구의 기본입장은 경론이 일심사상과 화쟁사상, 화
엄사상, 선사상 등을 종합한 원효사상의 결정판이며 자기의 모든
사상을 반야공 사상을 중심으로 회통(會通)하고 회향(回向)한 작
품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는 연구를 통해서 밝혀나갈 것이다.
3) 夫一心之源 離有無而獨淨 三空之海 融眞俗而湛然 湛然 融二而不一
獨淨 離邊而非 中 非中而離邊,『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은
정희ㆍ송진현 역주,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서울: 일지사, 2000),
p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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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경과 경론의 성립
경과 경론의 성립에 관하여 일연의 삼국유사 원효불기조(元曉不
羈條)와 찬녕의 송고승전(宋高僧傳) 등의 원효 전기(傳記)들은 다
음과 같은 요지로 경론의 제작과 유통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국왕이 인왕경백고좌 대회를 베풀 때 원효도 부르려고 했으
나 그를 참소하고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초청하지 못하였다.
그 후 왕비의 머리에 종기가 났는데 백약이 무효라 당나라에
서 의술을 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신이 바다를 건너다가
용왕을 만나 왕비의 종기 치료에 유용하다는 30장 가량의 흐
트러진 경을 전해 받고 신라로 돌아왔다.
용왕이 말하기를 “대안성자(大安聖子)가 순서를 꿰매고 원
효 법사를 청하여 소(疏)를 지어 강석한다면 왕비의 병은 나
을 것이 틀림없으니 설산(雪山)의 아가타약(藥)이라 할지라도
약효가 이것보다 못하리라”하였다.
용왕에게 받아 온 흐트러진 경을 대안이 8품으로 정리하여
원효에게 주게 하니 원효가 소를 지어 황룡사 법회에서 절찬
리에 강연을 했다는 것이다. 후일 중국의 번승(蕃僧), 즉 서역
에서 온 승려들이 원효의 소가 훌륭하다 하여 이를 논(論)으
로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기(傳記)에서 금강삼매경은 신라에서 집성된 것을 원
효가 주석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경의 진경 여부를
의심하는 일은 없었다. 경은 대장경에도 수록되었다. 그러다가 지
난 1955년에 이르러 일본의 미즈노 고겐(水野弘元)이 경의 내용
을 세밀히 검토하여 원효가 해설한 이 경은 진경이 아니라 위경이
라는 주장을 내놓아 세인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는 왜
갑자기 경이 진경이 아닌 위경 즉 진짜가 아닌 가짜 경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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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했을까?
『보리달마의 이입사행설과 금강삼매경』에서 고겐은 경이 위경
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금강삼매경에 현
장이 번역한 경론에서 처음 나오는 용어들, 예를 들어 반야경의 4
가지 신주, 진제의 9식설, 유식 삼십송에 나오는 말나(末那) 등의
용어가 나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도에서 만들어지고 중국에서
한역된 경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후대의 표현들이 있다
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등장한 리벤탈(Walter Liebenthal) 등의 중국
찬술설(撰述說)은 송고승전이나 삼국유사의 기록과 상치된다는 점
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또한 버스웰(Robert Buswell)은 경의 찬
술자로 신라승 법랑(法朗)을 지목했으나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4) 김영태는 이러한 설들을 검토하여 신라 찬술
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그는 경의 집성자는 대안(大安)과
사복(蛇福), 혜공 등 대안과 원효로 대표되는 대중불교 운동의 전
문구릅에 속한 사람이라고 추정하고 있다.5) 당시 중국에서 이미
들어와 있을 선을 잘 아는 승려의 저작일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
다. 또한 경에 능가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점과 달마가 선지(禪
旨)를 세운 이입론(二入論: 理入과 行入에 관한 이론) 등 선학(禪
學)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는 점 등도 선과의 관련성을 추정하는
근거다.
4) 금강경의 성립사에 관한 쟁점에 대해서는 최유진, “『金剛三昧經』에
나타난 원효의 一心,” 『人文論叢』, 第11輯 (1998), pp.136-141
참조.
5) 朴太遠, “『金剛三昧經論』ㆍ『金剛三昧經論』과 원효사상 (2)-大乘
禪思想과 眞俗不二를 중심으로-,”『元曉學硏究』, 제6집(2001),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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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길암은 금강삼매경의 성립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
으로 검토하면서 경과 경론을 동일시하는 시각과 원효전을 배제하
고서 경의 성립사정을 추론해 본 결과 “신라 찬술설보다는 중국
찬술의 가능성이 훨씬 더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은 “7세기
후반 직후 종남산과 장안을 무대로 활동하였던 삼계교 집단이 자
신들의 사상과 신앙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리고 신
행(信行) 이후 삼계교가 숭앙하던 인물을 경전의 권위에 의지하여
지지하려는 의도에 의해 편찬된 경전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6)
그러면 이러한 위경설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필자는 그
어느 위경설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중시한
다. 아직 모두 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은 20세기 위경설이 제기
되기까지 천수백년이 다 되도록 진경임을 의심받는 일이 없었다.
그 동안 원효의 경론은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훌륭한 논저(論著)
로 인정을 받았고 경은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티베트에서 존중
을 받아 왔으며 대장경에 진경으로 편입되었다. 진경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김영태 등은 불교에서 진경이냐 위경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유
일신교에서 판단하는 기준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계시종
교인 유일신교에서는 신(神)의 말씀(혹은 그렇다고 인정된 것)을
직접 옮긴 것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신의 말씀이라
고 공인된 것 이외에는 경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깨달음의 종교
인 불교에서는 누가 말했고 누가 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경전
이 부처님의 말씀과 깨달음의 경지에 부합한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6) 석길암, “『金剛三昧經』의 성립과 유통에 관한 재고,” 『보조사상』,
31집, 2009. 2, pp.83-1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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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찬술되고 중국에서 번
역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위경이라는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고 주장한다.7) 그러면서 경의 신라 찬술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
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위경설(僞經說)들은 그대로 정설로 받아들여도
좋은가? 필자는 이런 위경설들을 반증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본
다. 위경설은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첫째는 경이
신라에서 출현하기 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고 둘째는 경에
서 9식 암말라와 제7식 말라(末那)라는 용어 등 중국에서 번역된
경에서 나올 수 없는 용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두 가지 근거는 다
반박 가능한 허약한 근거라고 본다.
우선 경이 신라에서 출현하기 이전에 경을 발견할 수 없다는 주
장은 만일 앞으로 새로운 발견이 하나만 나타나도 깨질 주장이다.
이전의 경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현존하는 경이 위경
임을 자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발견이 나올 수 있으며 새로운 이론이 나올 수 있다.
위경설이 내세우는 두 번째 근거인 경에 나오는 용어와 관련하
여 경론에 기록된 원효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경에 나
오는 암마라식을 설명하면서 “일체의 정식(情識)이란 8식이고 암
마라는 제9식이다. 진제(眞諦)삼장의 9식은 이 글귀에서 일어난
것이니 저 장에서 말한 것과 같다.”고 논하고 있다.8) 원효는 9식
설은 오히려 진제가 경에서 취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7) 金煐泰, “新羅에서 이룩된 金剛三昧經-그 成立史적 검토-,”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佛敎學報』25집(1988), pp.11-37.
8) 一切情識 卽是八識 唵摩羅者 是第九識 眞諦三藏 九識之義 依是文
起 如彼章說. 은정희ㆍ송진현 역주, 앞의 글,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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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송고승전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앞에
서 요약한 원효 전기는 용궁에서 흐트러진 경을 가져와서 대안이
맞추고 8장으로 편집한 것으로 되어 있다. 흐트러진 경을 신라에
서 정리 편집했다면 원래의 경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되며 경에
서 신역 용어의 사용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편집 정리과정에서
신역 용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이유만으로도 위경설을 성급히 확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더구나 경과 경론이 출현하기 전 오래된 경서목록에 경명이
나온다고 한다. 경이 진경임을 의심케 하는 표현이 나오는 문제도
흐트러진 경을 수습 정리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원효가 경론에서 밝힌 대로 경이 진제삼장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진제 삼장 등이 오히려 경의 표현을 차용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국내 학자들이 외국에서 제기된 위경설이나 신라 찬술설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경이 신라에서 나타나기 오래
전 경서목록에 경의 이름이 나오고 송고승전 등에 경이 수습 정리
된 것이라는 것을 밝혀 놓고 있는데도 말이다. 경을 수습정리하고
경을 최초로 해설한 신리불교의 위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위경설
에 대응하고 당시 신라불교의 높은 수준을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
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금강삼매경이라는 중요한 경전이 신라에서 편집되고
원효에 의해서 최초로 주석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신라불교의 높은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원효는 자기의 말년의 작품으
로 금강삼매경을 선택하여 경론을 지였을까? 그리고 경의 중심사
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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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경론의 반야공관(般若空觀)
1. 원효의 실상반야
원효가 금강삼매경을 택한 이유는 경에서 자신이 일생 동안 추
구해온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효의 일생을
보면 그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일심의 자각을 통해 인생
의 고통을 소멸하고 깨달음을 이루어 널리 중생을 교화한다는 목
적으로 살아온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 중
생을 이롭게 한다는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의 목
적이다. 그는 당나라 유학길에 심법을 깨치고 대승기신론을 비롯
하여 해심밀경, 법화경, 화엄경 등 많은 경론들을 섭렵했으나 깨
달음의 경지와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설한 경전을 금강삼매경에서
발견했을 것이라고 본다. 사토 시케키(佐藤繁樹)가 지적한 것처
럼, 원효의 중심사상인 귀일심원과 요익중생을 가장 선명하게 밝
하는 경과 경론이야 말로 원효사상의 중핵적 위치에 놓을 수 있는
것이다.9) 경은 당시 원효가 발견했던 반야공관의 발전된 형태였
을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반야공관이란 초기부터 대승불교를 주도한 사
상으로 인간문제의 실상을 통찰하는 방법이다. 반야의 뜻은 지혜
이지만 지혜라는 말로 해석할 수 없는 뜻이 있어 산스크리트어 프
라즈나(Prajñā)를 음역한 것이다. 분별지(分別智)가 아니라 무문
별지이이며 사물을 나누지 않고 전체로서 보는 통찰력이다. 반야
9) 사토 시게키, 『원효의 화쟁논리』(민족사), pp.20-21, 이효걸, “화
쟁사상 재검토,” 『불교학연구』, 제4호(2002), p.1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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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인식하는 대상과 인식의 주관이 모두 공함을 깨닫는 데서 나온
다. 그래서 반야심경은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의 다섯 가지 뭉침)이 모두 공함을 비추
어 보아 모든 고통을 건녔다”고 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공(空)은 대승불교에서 제2부처님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용수(龍樹)에 의해 확립된 불교의 개념이다. 처음 중
국에서는 공을 노장(老莊)의 무(無)의 개념으로 오해하여 부정적
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용수가 말한 공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
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는 상호의존성의 연기(緣
起)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구마라습이 경을 번역하면서 용수의 공
은 무가 아닌 연기ㆍ중도(中道)ㆍ가명(假名)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중국에서는 체용(體用)의 원리에 입각하여 공ㆍ가ㆍ중(空ㆍ
假ㆍ中)의 3제(三諦)로 공을 해석하여 중국식 중관사상인 삼론학
파(三論學派)가 성림되었던 것이다.10)
중국에서 공을 노장(老壯)의 무(無)로 오해한 격의불교를 뛰어
넘어 반야공사상의 본래의 뜻을 처음으로 선양한 사람은 구마라습
의 제자인 승조(僧肇)였다.11) 그는 용수와 같이 공을 무자성의
공이라고 본다. 모두가 인연의 소산이니 자성이 없다는 의미의 공
이며 진유(眞有)가 아니라 가유(非有)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
현상은 엄연히 일어남으로 진무(眞無)가 아니라 비무(非無)라고
한다. 연기의 실상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비유비무(非有非
無)의 중도라는 것이다. 승조는 이를 허깨비 사람(幻人)에 비유한
10) 윤종갑, “용수 공사상의 한국적 변용과 전개-원효의 『금강삼매경
론』을 중심으로,”『한국철학논집』, 제21집(2007), p.272.
11) 金夏雨, “羅什門下 僧肇의 般若空觀,” 韓國佛敎學會,『韓國佛敎學p』.
제24집(1998), p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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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허깨비가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非有) 헛것을 보는 사람에
게는 없지 않으니(非無) 허깨비를 진짜 사람이라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허깨비라고 보는 것이 중도(中道)라는 것이다. 공(空)ㆍ가
(假)ㆍ중(中) 3제의 원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물론 경론이 반야공관을 반영한 것인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
다. 남동선은 금강삼매경이 중관학파의 반야공관(般若空觀)을 중
심으로 구역불교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았다. 그
는 또한 원효가 경론을 통하여 구역불교와 신역불교의 대립 갈등
을 일심사상으로 회통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12)
박태원도 원효가 경론을 통해서 공유 대립을 회통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러나 그는 금강삼매경이 공관사상을
주장하는 구역불교의 종합이라는 견해와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구역불교 진영의 공(空)과 이에 대립하는 신역 법상유식의 유(有)
간의 대립구도를 설정하는 데는 이의를 제기한다.13) 경에 말라식
과 암마라식 등 신역에서 사용한 유식용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
에 경을 구역불교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공유(空宥)간의 사상적 차이의 해소가 과제로 등장했겠지만 실제
로 공유간의 집단적인 대립구도가 있었는지는 회의적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쟁론(諍論)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경과 경론이 비록
신역불교의 용어들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중심은 반야공관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원효가 공유간의 회통을 추구한 것이 집단적인 대
립구조에 대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야공관을 통한
자신의 깨달음을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다. 경은 중관의 공(空)을
12) 남동신, 『원효』(서울: 도서출판 새누리, 1999), p.211.
13) 朴太遠, “금강삼매경ㆍ금강삼매경론과 원효사상(1),”『元曉학硏究』
제5집(2000), pp.358-361.
∥ 22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중심으로 구역 불교를 강조하고 있는데 경론을 통해 원효는 반야
공관으로 얻은 깨달음을 선양하고 이를 중심으로 현장의 신유식
중심의 신역불교를 회통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반야공관의 최종 종착점은 본래무일물(本來
無一物)을14) 깨닫는 것을 목표로 발전한 선종(禪宗)이라고 할 수
있다. 선종은 불교 중국화의 최종 정착지였던 것이다. 불교의 공
과 노장의 무(無)의 사상에 따라 비우고 비워서 끝까지 비우면 최
종적으로는 본래 무일물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금강삼매경과 경론
은 바로 이러한 선의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아공(我空), 인공(人
空), 법공(法空)과 구공(求空)을 주장하고 있으며 궁극의 근원인
진성(眞性)과 9식(九識)도 공이라고 한다. 공을 끝까지 밀고나가
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인도에서 전해지는 수많은 불교경전들의 계통을 분
류하고 질서 지워주기 위해 교판론(敎判論)이 등장하고 종파와 소
의경전이 등장했다. 그러나 달마에 이르러 특별한 경전이 아니라
부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싹텄으며 달마의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이 등장한다. 교(敎)에 따라 이치를 깨치
고 실천으로 들어가 깨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는 특별한 경전이
나 번쇄한 교학이 아니라 부처님의 여실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지
혜로 설명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분별을 떠난 무분별지(無分別智)
인 반야(般若)다.
14) 육조단경을 보면 남종선은 혜능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깨
침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돈황에서 발견된 필사본 육조
단경에는 본래무일물이 아니라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으로 되어 있
다. 필립 B. 얌폴스키 지음, 연암 종서 옮김, 『六祖壇經硏究』(서
울: 경서원, 1992), p.177, p.299.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23
선종에서는 이러한 종지를 잘 나타내는 경전으로 처음에는 능가
경을 중심으로 삼았으며 오조 홍인을 거쳐 남종선(南宗禪)의 육조
혜능(慧能) 이후 금강반야경(금강반야바라밀경)을 소의경전으로
택하였다. 금강반야경은 공(空)이라는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반야공관을 소박하고 간략하게 요약한 경전으로 사랑
을 받아왔다.15)
경전의 학습과 해설을 거쳐 부처님의 뜻을 전체적이고 집약적으
로 체득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중국에서 일어난 변화와 비슷한 변
화가 원효에게도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경전들이 부
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는 다 진리이며 옳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후세에 논자들이 한쪽 면만을 보고서 시비를 하는
것은 코끼리의 한 면만 보고 코끼리의 전부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고 하였다. 그는 경전을 부분적인 면을 보고 곡해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아야 할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원효는 여러 경전의 번쇄한 가르침을 떠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상으로 이해하는 길을 반야공관을 통해 접한 것으로 볼 수 있
다. 바로 실상반야라는 개념이다. 그는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
要)에서 반야를 문자반야, 관조반야, 실상반야의 세 가지로 분류
하고 문자반야는 단지 가르침을 나타내는 표현이고 관조반야와 실
상반야가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실상반야를 해설하여 “반야는 지극한 도이니 도인 것도 도
아닌 것도 아니고 지극하고도 지극하지 않음도 아니다. 한적하여
고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태연하여 트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
15) 정천구, 『금강경 독송의 이론과 실제-개정판』(작가서재, 2009),
pp.161-191.
∥ 24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므로 참된 모습(實相)은 따로 상이 없는(無相) 까닭에 상을 나타
내지 않는 곳이 없고 진실한 비춤(眞照)은 따로 밝음이 없는(無
明)인 까닭에 밝지 않은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반야는 현묘하고도 현묘한 것이며(玄之又玄之) 욕심의 더러움과
어리석음의 어두움이 모두 지혜의 밝음이지만 오안(五眼)과 같은
신통력으로도 그 반야의 비춤을 보지 못하니 관조반야는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것이다(損之又損之).“ 라고 하였다.16) 다른 말로 하
면 비우고 또 비우며 바치고 또 바치는 것이 반야라는 것이다.17)
2. 원효의 진선(眞禪)
비우고 비워서 본래무일물의 경지로 귀착한 중국선종을 떠올리
는 구절이다. 그러면 여기서 금강삼매경의 반야공관적인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의와 종지 및 제목을 논하는 대목에서 원효는 이 경이 모든
경을 대표하고 포괄하는 경임을 표현하고 있다. 경의 제목을 해설
하면서 원효는 제목이 금강삼매경이라고 했지만 그 속에는 섭대승
경과 금강삼매와 무량의종의 세 가지 뜻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금
강삼매경이라 했다고 하였다. 그 의미는 “세우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섭대승경이라 이름하며, 모든 뜻의 종지가 이 둘을 벗어나
지 않기 때문에 무량의종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이 경이 부처
16) 柳承周, “元曉의 三種般若觀 硏究,” 『韓國佛敎學』, 제23집(1997.
12), p.235.
17) 20세기 최고의 선지식 중 한 분인 백성욱 박사는 버려라, 끊어라, 비
우라는 말 대신 ‘바쳐라’고 가르쳤다. 거기에는 공경심이 따르기 때문
이다. 정천구, 『금강경 독송의 이론과 실제』, 앞의 글, pp.125-127.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25
님의 가르침을 포괄하는 대표적 경임을 표시한 것이다.
금강이란 견실하고 굳센 것으로 체를 삼고 뚫고 깨뜨리는 것으
로 공능을 삼는다고 하였다. 금강석이 모든 물체 중에서 가장 단
단하고 강한 것과 같이 이 경은 가장 강하고 단단한 것을 말하며
어떤 번뇌라도 부수고 깨뜨리며 어떤 삼매의 구술도 꿰어서 쓸모
있게 한다는 것이다. 삼매는 정사(正思)라고도 하는데 마음을 집
중할 때(定에 있을 때) 경계를 자세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다. 유가(瑜伽)에서는 자세하고 바르게 관찰하여 마음을 하나
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으로 삼마지라고 한다. 이를 합하여 금강삼
매라고 하였으니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깨뜨리고 뚫어 통
달하고 쓸모 있게 한다는 것이다.18) 금강경에 나오는 금강의 해
설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금강삼매경에서도 중국선종에서 채택한 반야공관의 논점들이 비
슷하게 발견된다. 우선 남종선의 6조 혜능에 의하면 금강경은 상
이 없음(무상無相)을 종(宗)으로 하고 머물지 않음(무주 無住)을
체(體)로 하며 묘행(妙行)을 용(用)으로 한다.19) 그런데 금강삼
매경도 정설분(正說分)에서 모든 분별상을 없애야 하며 모든 상을
없애도 관찰하는 상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마음에 장애가 되니 관
찰하는 마음도 없어야 된다고 한다. 총지품에서 경론은 집착이 없
고 분별이 없는 평등한 경지인 무소득의 일미(一味)야 말고 금강
삼매경의 종(宗)이고 요(要)가 된다고 한다.20)
18) 은정희ㆍ송진현 역주, 앞의 글, pp.43-44, pp.54-56.
19) 夫金剛經者無相爲宗無住爲體妙有爲用自從達磨西來爲傳此經之意令人
悟理見性. 涵虛 得通 編, 『金剛經五家解 上』(雲興寺 刊, 康熙 二十
年), 序說 p.6.
20) 摠持品言 七五不生 八六寂滅 九相空無 如是無所得之一味
正爲此經之宗之要, 은정희ㆍ송진현 역주, 앞의 글, p.86.
∥ 26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그러나 경론에서 원효는 금강경을 인용하고 있지 않다. 현존하
지는 않지만 자신의 금강경 소(疏)가 있는데도 말이다. 대신 경론
은 능가경, 대승기신론, 여래장경 법화경, 화엄경 등의 선과 연관
된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왜일까?
이에 대한 답은 중국 선종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에서부터 4조 도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선종
은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사용하고 있어 교를 함께 하는 선종이
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선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이 되고
소의경전이 금강경으로 바뀐 것은 5조 홍인에서 시작해서 육조혜
능 때부터였다. 그런데 원효는 혜능보다 한 세대(약 20년) 먼저
태어났고 혜능의 남종선이 신라에까지 전해질 시기는 아니었다.
경론에 금강경의 논지와 비슷한 것이 있지만 교외별전의 남종선과
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다.
경론의 사상적 경향은 초기의 달마선과 유사하다. 금강삼매경과
경론은 입실제품에서 달마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과 유사한 이
입(理入)과 행입(行入)을 언급하고 있다. 원효는 경론에서 입실제
품의 실제라는 말은 허환을 떠난, 실제로 있음을 지칭한 것이고
“가르침(교敎)에 의거하여 이(理)를 닦아 이치로 들어가고(이입理
入) 행위로 들어감으로 입(行入)이라 한다고 하였다.21) 이와 같
이 이입에 의한 수행을 언급했다는 점은 달마의 이입사행론과의
관련성을 연상하게 한다. 달마의 이입사행론이 금강삼매경과 경론
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과 반대로 경과 경론이 중국선종의 이입
사행론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경론이 중국선종
21) 言實際者離虛之稱究竟之義離幻究竟故名實際依敎修理理入行入故名爲
入然實際以無際爲際二入是無入之入故名入實際品, 은정희ㆍ송진현
역주, 앞의 글, p.318.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27
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기는 어렵다고 본다. 중국에서 금강삼
매경과 원효의 경론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730년 이후로 추정되
기 때문이다.22)
또한 경론에는 달마가 썼다는 이입에 관한 언급은 있으나 사행
(四行: 報怨行, 隨緣行, 無所求行, 稱法行)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
다. 그리고 경론에서 원효는 이입을 완전한 깨달음으로 보지 않고
있다. 그는 입실제품에서 논하기를 “이입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따라서 믿고 이해하였으니 아직 증득하여 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입이라고 한 것이니 계위가 초지 이전에 있다. 행입이라고 한
것은 이치를 증득하고 수행하여 무생행에 들어갔기 때문에 행입이
라고 한 것이니, 계위가 초지 이상에 있다”고 하였다. 경에서 입실
제품은 구경의 경지가 아니고 여래선이며 진정한 선의 경지는 제5
진성공품(眞性空品)에서 나온다.23)
이상에서 보면 원효의 선은 교를 통한 깨달음을 중시한다는 점
에서 교외별전을 주장하는 남종선과도 다르고 보리달마에서 시작
되어 북종선으로 이어지는 여래선 계통과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종철에 의하면 경론에 보이는 원효의 선은 참된 선(眞禪)의 모
색과 대비(大悲)의 강조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24)
원효가 말하는 참된 선이란 세간(世間)의 선을 부정하고 대승
공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원효는 무상법픔의 선바라밀에
관한 해석에서 무상(無相)과 무동념(無動念)을 징표로 하는 선을
22) 석길암, “중국 선종사에 보이는 원효에 대한 인식의 변화-금강삼매경
및 금강삼매경론과 관련하여-,” 『韓國禪學』, 第15號(2006), p.387.
23) 석길암, 앞의 글, p.385.
24) 이종철, “선종 전래 이전의 신라의 선,” 『한국선학』제2권(2002),
pp.9-13.
∥ 28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불법(佛法)을 성취하는 선이라 묘사하고 또한 “중생을 교화하는
선”을 말하고 있다. 앞의 것은 공성(空性)의 체(體의 측면에서 본
선이고 뒤에는 공성의 용(用)의 측면에서 본 선이라 할 수 있다.
원효는 또한 참된 선 곧 선(禪)바라밀의 완성은 대비(大悲)의 바
탕 위에서 정혜를 같이 닦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느 한 쪽
을 배제한 채 다른 한 쪽만을 추구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
다. 선의 본질에 관해 논할 때 정과 혜의 관계만을 논하는 경향이
있으나 원효는 차원을 달리하여 보살의 대비심이 본질로 자리 잡
을 때만이 정혜쌍수(定慧雙修)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
다.25)
원효는 이 경의 반야 공관으로 정혜를 함께 닦으면 세상의 어떤
명약보다도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다고 보았을 것이
다. 설화에서 용왕은 왕비의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명약을 구하러
가던 사신에게 신묘한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이 경을 전해 주었던
것이다. 충지품의 해설에서 원효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상과 상 아닌 것을 똑 같이 공으로 취하였다’고 한 것은 상
을 가지고 있는 속제와 상이 없는 진제를 다 관찰하니 똑 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융합하여 하나로 삼은 것이다. 이와 같
이 공을 닦아서 불심을 바로 따르기 때문에 항상 불신(佛身)
을 보아서 잃을 때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를 보는 것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항상 부처를 보아서 공관을 더욱 증장시키
고 공관이 증진하여 모든 유를 거스르기 때문에 ‘세 가지 흐름
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세 가지 흐름은 삼계의 도는 번뇌
를 포섭하니, 욕류와 유류와 무명류를 세 가지 흐름이라고 한
다.26)
25) 같은 글, p.12.
26) 相與不相等以空取者 觀有相 俗與無相眞 等不存故 融爲一故 如是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29
공관을 닦아서 반야의 지혜로 늘 부처님의 몸을 보고 삼계의 모
든 번뇌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Ⅳ. 일심과 화쟁
1. 일심
경론에서 공은 원효사상의 중심인 일심 및 화쟁과 연결되고 있
다. 일심은 반야공관에 따라 공을 세 번 비운 자리이다. 경론의
입실제품에서 원효는 공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공상(空相)을 공하다’고 한 것은 공상은 곧 속제(俗諦)를
버려 진제(眞諦)를 나타낸 것으로써 평등한 상이고, ‘또한 공
하다’는 것은 곧 진제를 융합하여 속제를 삼은 것으로서 마치
진금을 녹여 장엄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공공도 공하다’고
한 것은, ‘공공’은 속제의 차별이고 ‘또한 공하다’고 한 것은 다
시 속제를 융합하여 진제를 삼은 것이니, 마치 장엄구를 녹여
다시 금덩어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세 번째 가운데 ‘소공(所
空)도 공하다’고 한 것은, 처음 공 가운데의 공이 나타낸 속제
와 두 번 째 공 가운데의 공이 나타낸 진제의 이 두 가지가 다
름이 없기 때문에 ‘또한 공하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이제를
융합하여 일법계(一法界)를 나타낸 것이니, 일법계라는 것은
이른 바 일심(일심)이다.27)
修空 正順佛心故 常見佛身 未曾失時故 言不失見佛 以常見佛 彌增
空觀 空觀增進 違逆諸有 故言不順三流 三流 具攝三界煩惱 謂欲流
有流 及無明流 是謂三流, 은정희ㆍ송진현, 앞의 글, p.570.
27) 空相亦空者 空相卽是遣俗顯眞 平等之相亦空 卽是融眞爲俗 空空之
∥ 30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여기서 원효는 이제설을 토대로 3단계 과정을 통해 공의 부정
성을 지양하고 있다. 바로 3공(三空)이라는 것이다
1단계는 ‘공상도 공하다’는 것이다(空相亦空). 유(有)라는 상
(相:속제)을 깨트린 공상은 속제를 버려 진제를 나타낸 평등한 상
이니 이는 광석을 제련하여 진금을 만든 것과 같다. 그런데 공상
도 공하다 한 공공은 진제를 융합하여 속제를 삼은 것이니 이는
마치 진금을 녹여 장엄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2단계는 공공도 공하다’(空空亦空)는 것이다. ‘공공’은 속제의 차
별이고 ‘또한 공하다’고 한 것은 다시 속제를 융합하여 진제를 삼
은 것이니, 이는 마치 장엄구를 녹여 다시 금덩어리를 만드는 것
과 같다.
3단계는 ‘소공도 또한 공하다’(所空亦空)는 것이다. 소공(所空)
도 공하다는 것은 1단계에서 공공으로 들어난 속제와 2단계에서
공공의 공이 나타낸 진제의 이 두 가지가 다름이 없기 때문에 ‘또
한 공하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공을 거친 속제와 진제를 융합하
여 일법계(一法界)를 나타낸 것이니, 일법계는 곧 일심이라는 것
이다. 일심은 이러한 3단계에 걸쳐서 진제와 속제가 융합된 진리
의 세계인 것이다.
원효는 이러한 3단계를 유식의 3성설(三性說)에 의거하여 설명
하기도 한다. “처음 공 안에서 버린 속제는 변계소집상이고 두 번
째 공 가운데서 버린 진제는 의타상이니, 속제에 두 가지 상이 있
義 如銷眞金作莊嚴具…空空亦空者 空空卽是俗諦差別 亦空還是融
俗爲眞也 如銷嚴具 還爲金缾 第三中 言所空亦空者 謂初空中 空
所顯俗第二空中 空所顯眞 此二無二 故言亦空 是融一諦 顯一法界
一法界者 所謂一心, 은정희ㆍ송진현 역주, 앞의 글, p.333.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31
기 때문에 버리는 것과 융합화는 것이 하나가 아니다. 또 처음 문
안에서 속제를 버려서 나타난 진제와 두 번째 공 가운데에서 속제
를 융합하여 나타난 진제는, 이 두 문의 진제는 오직 하나이고 둘
이 없으니, 진제는 오직 하나다. 세 번 째 공은 진제도 아니고 속
제도 아니며,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것”이라고 한다.28)
앞에서 인용했지만 경의 대의를 말하면서 경론은 일심의 근원에
관하여 “대저 일심의 근원은 유와 무를 떠나서 홀로 청정하며 삼
공(三空)의 바다는 진(眞)과 속(俗)을 융합하여 깊고 고요하다.
깊고 고요함으로 둘을 융합하였으나 하나가 아니며 홀로 맑아서
양변을 떠나 있으나 중간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일심의 근본은 유무를 떠나고 청정한데 공을 세 번 비운 마음
바다는 진과 속을 융합하여 깊고 고요하다는 것이다. 경론에서 전
개하고자 하는 근본이 일심에 있음을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승기신론에서 시작된 일심 여래장 사상이 경론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원효에게 있어서 일심이란 모든 중생들의 근원이며 또 돌아갈
곳이기도 하다. 인간이 분별하고 다투게 되는 것은 일심의 근원에
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지만 일심으로 인해 화해하고 회통할 수 있
다는 것이 원효의 생각이다. 원효는 일심과 비슷한 말로써 일승
(一乘), 일미(一味), 법성(法性), 여래장(如來藏)과 같은 말을 쓰
고 있으나 일심이라는 용어를 보다 포괄적인 용어로 일반적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대승기신론의 일심의 내용은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일심에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을 두어 일심
28) 윤종갑, 앞의 글, p.294.
∥ 32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속에서 두 문 사이의 소통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화쟁사상의 분
쟁해결 가능성”이라는 논문에서 이러한 소통에 대하여 다음과 같
이 요약한 바 있다.
진여문과 생멸문이 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원효는 진여문
에도 진리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여실공(如實空)과 함께 그
렇지 않은 여실불공(如實不空)을 포함시키고 생멸문에도 생멸
과 더불어 불생불멸심을 포함시켰다. 다시 말하면 청정한 본
심 속에도 생멸문으로 나아가 이를 포용하여 제도할 소지가
있고 생멸의 마음속에도 청정한 본심을 깨달아 그곳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씨앗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 한 마음이기 때문이
다. 심생멸이 망념에 집착하지 않고 일심으로 돌아가 불생불
멸을 포섭하게 되면 모든 차별을 떠나 진리에 이르게 되며(融
俗爲眞), 심진여가 진리에 안주하지 않고 집착을 버리면 동체
대비(同體大悲)를 일으켜 생멸의 세계로 나오게 된다(融眞爲
俗)는 것이다.29)
경론에도 이런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경과 경론
은 기신론소에 없었던 제9식 암마라식을 일심의 내용에 첨가하고
있다. 무슨 이유일까? 일심을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을 나누고 그것
이 모두 일심 속에, 여래장 속에 있다는 논리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여래장이라는 개념은 불교에서 부정
해 온 어떤 실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사실 근자에
여래장 사상과 불성사상은 기체설(基體說 dha-tu-va-da)의 일종
이며 불교판 아트만(atman)론으로서 불교가 아니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30)
29) 정천구, “화쟁사상과 분쟁해결 연구,” 『21세기정치학회보』, 제13
집 2호 (2003), p.6.
30) 마쓰모토 시로, 이태승 옮김, “여래장 사상과 본각사상,” 『불교평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33
경과 경론은 적극적으로 심식의 체를 망식이 포함된 8식에 두기
보다 마음의 근원으로 9식설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9식의 공성
과 함께 각성(覺性)과 적멸을 강조한다.
경론에 의하면 일심의 원천은 본래 청정무구한 본각이고 본각은
곧 9식 암마라식이다. 본각을 얻는다는 것은 이러한 청정심에 들
어간다는 것이며 본각에 들어갈 때 8식이 본래 적멸함을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궁극적인 경지인 묘각(妙覺)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일심을 진여심과 생멸심이 합한 것으로 보는 기
신론의 입장에서 일심의 근원을 때 묻지 않은 청정심으로 보았으
며 그것은 9식 암마라식이고 바로 본각이라고 한 것이다.
이 청정한 9식은 실체가 아니고 공한 것을 깨닫는 본각이다. 이
는 새로 얻은 바가 아니고 본래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는
마치 미혹한 아들이 금전을 쥐고 있으면서도 이를 모르고 가난하
고 궁핍하다는 생각 때문에 오십년을 이곳저곳에 고생하고 일하며
돈을 벌려고 다니다가 아버지가 자식에게 본래 풍족한 금전이 있
다는 것을 일러주어 고생을 면하게 했다는 법화경의 비유와 같
다.31) 청정하고 적멸한 일심은 본래의 성품을 깨달을 뿐이니 얻
고 잃을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2. 화쟁(和諍)
반야공관과 발전된 일심사상을 바탕으로 원효는 당시 불교계에
서 쟁점이 되었던 쟁론을 화쟁시키고 회통하였다. 그것은 반야공
관에 의해 도달된 일심으로 가능했다고 본다. 일심은 바다와 같은
론』38호(2009년 봄), pp.,351-386.
31) 은정희ㆍ송진현 역주, 앞의 글, pp.297-300.
∥ 34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것으로 원효의 일심은 모든 것의 근거이고 상대적 차별을 떠난다
는 것이다. 그리고 집착 없는 상태가 바로 일심이다. 우리의 본래
의 근원은 모든 다툼이 없는 상태이므로 현재 아무리 다투고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화해된 상태에 갈 수 있다. 현재 다투고 있
는 것은 일심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깨닫게 되
면 다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일심의 근거에서 화쟁이 가능하고
또 한편으로는 화쟁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는 일심으로 되돌아감
이라고도 할 수 있다.32)
그러면 원효의 화쟁이 불교내의 이론적 다툼에만 한정된 것인가
아니면 쟁론애 다 적용될 수 있는가? 박성배는 “원효의 화쟁의 노
리는 바는 불교집안의 시비뿐만 아니라 유가와 도가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시비를 화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33) 그러나 최유진
은 현존 자료에 한정시켜 본다면 원효의 화쟁은 불교내의 쟁론에
국한된다고 본다. 필자는 화쟁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일심 속에 만
법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원리상 화쟁은 모든 쟁론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효걸도 원효가 반드시 불교학자들의 견취견(자기
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태도)만을 문제 삼고 있다기보다는 인간사
의 일반적 갈등에 내재하는 우리의 근본적 태도롤 거론하고 있다
고 보고 있다.34) 필자는 2003년 화쟁사상을 국제적인 분쟁해결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 원효는 회통대상으로 삼았던 불교내의 쟁론을 어떤 방법
32) 최유진, 『원효사상연구-화쟁을 중심으로』(서울: 경남대학교 출판
부, 1998), p.58.
33) 박성배, “원효 사상 전개의 문제점-박종홍 박사의 경우-,” 고영섭 편
저,『원효』(예문동양사상연구원, 2002), p.321.
34) 이효걸, 앞의 글, p.9.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35
으로 회통하고 있는가? 부처님은 원음으로 말씀하셨는데 듣는 자
에 따라서 다르게 들렸기 때문에 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심
은 유와 무를 포괄하고 진과 속을 융합하기 때문이다. 화쟁은 결
국 일심이라는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서로
차이가 나는 수많은 경전에 적용시킨다면, 그들 사이의 차이를 넘
어서 여래의 원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여래의 원음이라는 공통
분모가 같기 때문이다.35)
따라서 원효는 어떤 주제를 놓고 다른 경전들이나 논사들의 주
장과 해석이 서로 상충된다는 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상충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주장과 견해도 뜻을 살펴보고
정을 살펴서 회통되고 화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여러 가지
정도의 욕심과 지혜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일체지의 바다로 흘러
들도록 이끈다”는 경의 문구에 대하여, 논쟁하는 두 소견이 서로
“다르지 않으므로 그 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같지 않으므로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정에서 그리고 이(理)에서 서로 마주 대해도 어
긋나지 않는다”고 주석했다.36)
다툼을 화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다툼을 화해시킬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과 다투는 사안(事案)에 대한 폭넓은 정보의 수집과
이해이다. 이론을 화쟁시키기 위해서도 그렇고 분쟁을 화해시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론 간의 다툼을 화쟁 하려고 할 때 다투는 이
론과 그 배경에 대한 정확하고 폭 넒은 이해가 없이는 이를 화쟁
하기 어렵다. 분쟁을 화해시키려고 할 때도 역시 분쟁의 배경과
35) 김석근, “화쟁(화諍)과 일심(一心),” 정치사상연구 제16집 1호
(2010 봄), p.182.
36) 김영호, “元曉 和諍 思想의 獨特性,” 한국철학회, 『哲學』, 제64집
(2000년 8월), p.7.
∥ 36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분쟁 당사자의 입장에 관한 정확하고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이에
대한 화해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원효가 그 당시 인도에서 발원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통용되
던 세계적 선진 사상의 하나였던 불교 내의 이론들 사이의 다툼을
화쟁시킬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불교 사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물론 쟁론 사이의 쟁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 본다. “경전 내용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화쟁에서 중요한 것은
일부의 경론만 알고 그것에 집착하고, 낮은 소견을 갖고 그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37)
따라서 화쟁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극단적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각자 자기 입장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
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원래 붓다의 경지에서는 다툼이
없다. 금강경에서 소승불교의 최고의 수행단계를 성취한 아라한
(阿羅漢)은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툼이 없는 삼매” 즉 무쟁삼매
(無諍三昧)를 얻었으나 “아라한 도(道)를 얻었다는 집착도 갖지
않기 때문에 아라한이라 한다”고 하였다. 금강삼매경도 무쟁삼매를
말하고 있으나 원효는 화쟁으로 발전시킨다.
김영호는 원효의 화쟁을 용수의 회쟁(廻諍)과 헤원의 무쟁과 비
교하여 그 독특성을 밝히고 있다. 세 가지 모두 공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용수의 회쟁론은 쟁론을 바르게 뒤
바꿔준다(廻轉, 除去, reversal)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바른 것을
들어내는 것보다는 삿된 것을 파하는 측면, 즉 파사현정(破邪顯正
에서 파사(破邪)의 측면이 강하다. 혜원의 무쟁은 원효와 같이 만
법의 일체성과 일미성 그리고 평등일미를 강조하고 제9식(心眞如
37) 최유진, 앞의 글, p.104.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37
과 제8식(心生滅)을 아우르는 일심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원효의
논법과 별로 다른 바 없다. 그러나 “회통의 양태가 적극적인 화쟁
의 변증에까지 미치지 않는다. 화쟁보다는 무쟁 또는 비쟁(非諍)
에 가까운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효가 주석한 금강삼매경
도 외적으로는 무쟁의 차원에 머물고 있으나 원효는 이것을 화쟁
의 차원으로 분명하게 올려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38)
같은 쟁론에 대한 태도에서 원효의 화쟁이 인도와 중국의 회쟁
및 무쟁에 비해 공의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두드러
지게 나타게 된 것은 원효가 반야공관을 더욱 철저히 밀고 갔기
때문이라고 본다. 공을 비우는 것(損 또는 덜어내는 것), 비우기
로 해석한다면 원효는 공을 세 번에 걸쳐 비운다.39) 앞부분에서
살펴본 대로 경론에서 그는 공을 비우는 공공, 그렇게 비운 공공
을 다시 비우는 공공역공 그리고 그것을 또 다시 비우는 소공(所
空)에 이르러 비운 것을 다시 비운 속제와 그런 속제를 다시 비운
진제가 융합하여 하나의 진여의 세계, 일심의 세계를 연 것이다.
비우고 비우며 또 비워서(덜고 덜며 또 덜어서) 둘이 아니면서 하
나도 아닌 세계는 소통이 자유로워 화쟁되지 않을 것이 없는 것이
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유(有)를 비우고 악취공(惡取空)을 비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악취공이란 연기로서의 공(空)을 무(無)로
오인하여 허무주의와 비관주의로 바뀐 공을 말한다.
원효는 경론에서 경의 말씀에 “색이 없다고 한 것은 유에 집착
38) 김영호, 앞의 글, pp.12-23.
39) 실제로 원효는 경론에서 금강삼매의 제목을 해설하면서 “인지에는 공
용이 있으나 과지에는 공용이 없어 덜고 덜어서 무위에 까지 이르기
때문이라”고 썼다. 爲顯因果二定異故 因有功用 果無功用 損之又損
之 以至無爲故. 은정희, 송진혁 역주, 앞의 글, p.46.
∥ 38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하는 병을 내지 않기 때문이고 ‘머무름이 없다고 한 것은 악취공의
병을 벗어났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40)그는 체성을 잊는다는 뜻
을 공해탈로, 체에 즉한 용을 얻었다는 뜻을 무상해탈로, 그리고
체에 즉한 용을 잊었다는 뜻의 무작해탈, 또는 무원해탈의 삼(三)
해탈로 주석하였다. 그는 “이렇게 일체의 체ㆍ상ㆍ용을 잊기 때문
에 관(觀)에서 나와 세속과 교섭하려는 마음을 맑게 하여 모든 물
든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보신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토
(淨土)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41)
그는 반야공관의 심오한 법에 대해서 삼화(三化)를 부지런히 닦
으면 그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니 “공상도 공한 것이 첫째 화
(化)를 닦는 것이고, 공공(空空)도 또한 공한 것이 둘째 화를 닦
는 것이며, 소공(所空)도 또한 공한 것이 셋째 화를 닦는 것”이라
고 하였다. “세 가지 화를 부지런히 닦으면 곧 일심을 깨닫게 되고
일심을 깨닫기 때문에 혜(慧)와 정(定)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원만하게 이루어진 경지는 곧 삼계를 초월한 것이니 이것
이 바로 세 가지 화를 부지런히 닦은 뛰어난 이익이다.”라고 하였
다.42) 반야공관을 철저히 밀고 간 결과라고 본다.
40) 言無色者 不生着有之病故 無住者 亦離惡取空患故. 같은 글, p.559.
41) 以忘一切軆相用故 能淨出觀涉俗之心 離諸染着 離染著心 能見報佛
見報佛故 得生淨土 是爲三解脫道勝利也, 같은 글, p.573.
42) 空相亦空 是一化修 空空亦空 是二化修 所空亦空 是三化修 義如
前說 故不別論 三化勤修 卽達一心 達一心故 慧定圓成 圓成之地
卽超三界 是爲三化勤修勝利也, 같은 글, p.573.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39
Ⅳ. 결론
이 글은 먼저 금강삼매경과 경론의 성립사에 관한 논의를 검토
하면서 학계에서 정설처럼 굳어진 위경설과 신라 찬술설에 관하여
강한 의문을 표시하였다. 필자는 전문적인 불교사가는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위경설은 허점이 많으며 성급하게 단정할 일이 아니라
고 본다. 무죄추정의 원리에 의해서 확실하게 위경이라는 증거가
나오기까지는 진경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경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었고 신라에서 경이 출현하기 이전에
동일한 경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경이 가짜임을 증명하
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서적이 유실되어 찾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앞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인위적으로 없어
졌다는 것이 증명될 수도 있다. 또한 경에 신유식 성립 이후의 용
어들이 나타난다는 점도 위경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 고승전의 기
록대로 흐트러졌던 것을 신라에서 수습한 경일 수 있으며 수습하
는 과정에서 새로운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론은 반야공사상을 기반으로 해서 원효가 자신의 사상을 업그
레이드하여 총 정리한 것이며 초기의 사상보다 진전되고 유용한
수행방법을 정립했다는 것이 이 글의 가설이었고 이를 어느 정도
입증했다고 본다. 원효는 반야공관 사상을 철저히 밀고 나갔다고
본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되거나 부정의 부정을 통해 소
극적인 긍정에 머물고 있던 반야공관 사상을 적극적 긍정의 세계
관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쟁론을 되돌리는 회정(廻諍)이
나 쟁론을 없애는 무쟁(無諍)에서 한 걸을 나아가 단순히 다툼을
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고차적 차원에서 쟁론을 회통
∥ 40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하고 화해시키는 화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
처럼 공(空)을 ‘비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원효는 공한
상(相)을 비우고(空空), 비운 것을 또 비우며(空空亦空), 그것을
다시 비워서(所空) 진제와 속제가 원융하고 모든 분별을 떠난 진
여심인 일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심은 인류 공
통의 바탕이며 화쟁이 가능한 근거요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경론은 금강과 같은 공사상을 기반으로 한 진선(眞禪)으로 모든
번뇌를 깨뜨리고 청정하고 원만한 인간 본연의 마음의 본질을 회
복하는 수행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금강삼매경의 공부는 비우고
또 비우는 공부라는 점에서 금강반야경과 비슷하다. 원효는 경론
에서 “금강반야는 혜(慧)이고 금강삼매는 정(定)이며 금강반야는
인지(因地)와 과지(果地)에 두루 통하지만 금강삼매는 그 지위가
과지에 있다”고 구분하고 있다. “또한 반야의 금강은 세 가지 견고
함을 갖추고 있으니 체성의 견고함과 작용의 예리함과 상의 넓고
좁음이다. 그러나 삼매의 금강은 다만 견고함과 예리함만을 취하
였다는 것이다.43)
원효의 금강반야경소(金剛般若經疏)가 유실되어 비교할 수 없
지만 그는 금강반야경은 혜(慧)가 중심이고 금강삼매경은 정(定)
이 중심이라고 파악하여 경론에서 선의 원리를 강조했던 것 같다.
중국의 선종이 한국에 유행되기 전에 이미 원효는 금강삼매경을
통해 선의 요체를 터득하고 개발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한국선
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보다는 중국의 선사들로부터 인
가를 받아 자기의 정체성을 마련하려 했던 한국의 선종발달사를
43) 問 金剛般若 金剛三昧 皆名金剛 有何差別 解云 彼慧此定 是爲差別 又金
剛般若 通於因果 金剛三昧 位在果地 又般若金剛 具有三義 體堅 用利 形
狀寬狹 三昧金剛 但取堅利, 같은 글, p.46.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41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금강삼매경론을 읽다보면 일심과 무애, 소통과 화해의 원리를
이끌어낸 그의 사상이 훌륭하다는 점에 공감과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반된 이론들을 그대로 긍정하고 “둘을 융합하였으나 하
나가 아니며 홀로 맑아서 양변을 떠나 있으나 중간도 아니다”라는
표현들은 논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둘 수 있다.
서양논리학에 길들여진 현대인으로서는 원효의 말이 “A는 A다”
라는 동일율(同一律)과 “A는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 없다”
는 모순율(矛盾律) 그리고 “A는 A이면서 동시에 비(非)A일 수 없
다”는 배중율(排中律)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
다. 서양적 논리학에 따르면 상반된 이론들이 있다면 그 중에서
하나를 인정한다면 다른 하나는 부정되어야지 어떻게 양쪽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둘을 융합하였으면 하나이지 왜 하나가 아닌
가? 또한 상반되는 이론들을 그대로 긍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무
소신의 절충주의가 아닌가?
그래서 원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논리학과 동양논리학 사
이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 논
리학은 정확하고 분명한 지식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논리학의 목
적이고, 반대로 동양 논리학은 애매성 그 자체를 깨닫고 해탈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44) 원효는 판비량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불교논리학인 인명론(因明論), 특히 진나의 신인명론에 따라
자신의 인식과 논리의 체계를 세웠다.45) 그의 논리체계가 최고의
44) 김상일, “퍼지논리와 불교의 因明論理,” 한신대학교출판부,『한신논
문집』, 제11권 (1994. 11). p.119.
45) 申賢淑 著, 『元曉의 認識과 論理-판비량론의 연구』(서울: 民族史,
∥ 42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원효를 진나보살의 후신으로까지 불렸던
것이다. 경론에서 원효는 이런 논리학의 원칙을 충실히 지켜나가
고 있다. 예를 들어 경의 총지품에 ”일체의 모든 법이 어찌하여 연
(緣)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까?라는 지장보살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 게송이 나온다. 이에 대하여 경론은 비량(比
量)으로 해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緣)은 법을 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없는 법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바라는 것과 같다. 이
비량으로 말미암아 저 의심이 결단된다“는 것이다.46) 불교 논리학
에는 현량과 비량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현량은 인식하고자 하는
대상이고 비량은 아는 사실을 가지고 추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기가 보이는 현상을 보고 연기는 불이 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임
을 추론하여 산에 불이 났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론하는 것은 대전제를 바탕으로 소전제를 판단하는 서
양논리학의 삼단논법과 유사하나 명제속의 단어는 내포와 외연히
명확한 개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위가 막연한 단어도 포함된다
는 것이다. 나타나는 현상을 기준을 세워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불명확한 것도 있는 그대로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학이 서구인들에게 비정상적으로 취급되어
왔으나 오늘날 퍼지논리학은 그 동안 서양에서 변칙적 논리학이라
고 외면하던 인명논리학의 약점들을 오히려 장점으로 평가하고 있
다. 퍼지이론(fuzzy theory)은 자테(Loft A. Zate)가 현대 제어
1988), pp.9=39.
46) 如來一頌 正決是疑 於中上半 定彼本執 下半 乘彼 破其緣生 此
意正立緣不生法 望無法故 如望兎角 由是比量 彼疑決矣, 은정희ㆍ
송진현, 앞의 글, pp.540-542.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43
이론을 연구하다가 그 한계를 깨닫고 불확실한 양상을 수학적으로
다루는 이론이다. 오늘날 퍼지이론은 세탁기, 온수기, 에어컨 등
전자산업분야, 의료기가 분야, 순응제어기 등 로봇사업 분야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서양논리학은 합리적 부분만 다루기 때문에 현상에서 배제되는
부분이 많아서 복잡계를 다룰 때 엄청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현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자 하는 불교의 인명논리학은
퍼지이론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인식은 전합리적 단계(현량, 퍼지
1)⤏합리적 단계(비량, 추론)⤏초합리적 단계(현량2, 퍼지2)의 3
단계를 거쳐야 완성되는데 서양의 논리학은 합리적 단계에 머무르
고 있다.47) 불교의 논리학은 초합리적 단계까지 취급한다.
금강삼매경론은 반야공관의 철저한 추구로 도달한 일심, 무애 ,
화쟁이라는 내용에서 뿐만아니라 논리체계에 있어서도 시대를 뛰
어 넘는 것이었다.
논문투고일 : 2012.02.29
심사완료일 : 2012.03.21
게재확정일 : 2012.03.25
47) 김상일, 앞의 글, pp.121-122.
∥ 44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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涵虛 得通 編, 『金剛經五家解 上』, 雲興寺 刊, 康熙 二十 年.
∥ 46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
<Abstract>
A Study on the Wonhyo’s Study
on the Diamond Samādhi Sūtra Focused on the
Prajñā-Paramitā Thought of Emptiness
Jeong, Chun-Koo(Seoul Digital University)
A Study on the Diamond Samādhi Sūtra written by Wonhyo
in his later years plays a pivotal role in understanding the
accomplished version of his thought. Some similarity
between the Diamond Sutra and the Diamond Samādhi
Sūtra has drawn my attention. Both sutras and the study
preach empty one’s mind based on the Prajñā-Paramitā
Thought of Emptiness. Although some scholars argue that
the Sutra is an uncanonical sutra, their logic and
evidences are so weak that their argument cannot be an
established theory. In the Study, Wonhyo upgraded his
One-mind theory by newly introducing the 9th level of
consciousness(Amala-vijnana), reinforced his hwajaeng
(reconciliation of dispute) theory and developed his theory
of True Son(眞禪). In the Study, Wonhyo developed triple
empty theory based on the Prajñā-Paramitā Thought of
Emptiness, that is empty emptiness, empty again the
emptiness and finally empty all emptiness. In the
madhyamika Buddhism, Emptiness is called absolute truth
whereas existence secular truth. The empty the emptiness
means transformation of the absolute into the secular, the
제1장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연구 ∥ 47
empty the emptiness again transforms the secular into the
absolute again. The final stage of emptiness blends the
secular and the absolute into the One mind. It is the
result of the full perfection of the Prajñā-Paramitā Thought
of Emptiness. In the One mind, anyone can be free from
all obstacles and disputes. As we see in the history of the
Chinese Buddhism, the final stage of the Prajñā-Paramitā
Thought of Emptiness is reaching the original nothingness
from which the Chinese Southern Sect of Son Buddhism
started. In the Study, Wonhyo also discovered the Son
principle but his True Son(眞禪) emphasizing great merciful
act as well as mind concentration differed from the
Chinese. From triple empty theory, he drew the
reconciliation of dispute theory from the theory of nodispute
theory in Buddhism. In the Study, he revealed the
reality of existence through his own Buddhist logic. The
Buddhist logic turned out to be more useful as the fuzzy
logic in this age of complex system than the western logic
originated by Aristotle.
Keywords : A Study on the Diamond Samadhi Sutra,
Prajñā, Samadhi, Prajñā-Paramitā Thought of Emptiness,
the One Mind, reconciliation dispute theory. Buddhist logic,
fuzzy logic.
∥ 48 민족사상 제6권 제1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