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엄지의 주식살롱] 동원산업 합병, 왜 불법 논란?손엄지 기자 입력 2022. 04. 25. 07:10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에 소액주주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동원산업이 '의도적'으로 저평가됐을 때,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고평가일 때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동원산업의 합병이 불법이 되지 않으러면 '시가'대로 합병비율울 정한 것이 '의도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물론 동원산업이 합병비율을 조정한다면 소송까지 가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동원산업 이사회, 합병가액 산정 내용·절차 공정성 입증해야
"합병가액=시가 공식 무의미..공정 가액 협의, 결정"
© News1 DB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에 소액주주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합병비율을 만들었다는 건데요. 동원산업 측은 '시가'대로 했을 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자본시장법상 합병 시 상장사의 합병가액은 시가 또는 순자산가치로 정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기관투자자들은 합병비율을 수정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압박하고 있습니다. 동원산업의 '불법 논란'을 들여다봤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합병가액을 시가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건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며 불공정함을 지적하는데, 아이러니하게 시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건 소액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회사 자산 가치로만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의도적으로 회사의 가치를 주무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시가라는 건 시장에서 결정한 가치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시가'대로 했다, 즉 법대로 했다는 것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동원산업이 '의도적'으로 저평가됐을 때,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고평가일 때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합병가액을 기준으로 보면 동원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6.7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6배입니다. 또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종속기업인 동원시스템즈의 PER은 34.2배, PBR은 2.6배 입니다.(▶참고 [손엄지의 주식살롱] PER·PBR로 어떻게 주식 가치를 측정할까요?)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최대주주는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지분 68.27%)입니다.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고평가가 대주주에게 수혜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동원산업의 합병이 불법이 되지 않으러면 '시가'대로 합병비율울 정한 것이 '의도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지난 2011년 개정된 상법 398조에 따르면 '회사와 주요주주 간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원산업은 회계법인이 더 높은 가치로 산정한 순자산가치(주당 38만2140원) 대신 시가(24만8961원)로 합병가액을 결정했는데요. 이 결정에 대해 이사회는 충분한 상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충분히 더 비싼 가격에 지분을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요.
기관투자자들은 5월 중 새로운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해당 상법을 적용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사회가 공정성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동원산업이 합병비율을 조정한다면 소송까지 가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미 소송에 필요한 지분확보와 법적 검토는 끝마쳤다고 압박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의 소송에 힘을 더해줄 의미있는 판결 하나가 지난 4월에 나왔습니다. 이번 동원산업의 합병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당시에도 대주주에게 유리한 합병을 위해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눌렀다는 저평가 논란이 있었고,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삼성물산은 '시가'에 따라 주식매수가격을 1주당 5만7234원으로 정했습니다. 이에 일성신약은 주식매수가격에 동의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대법원은 주식매수가격은 6만6602원이 적당하다고 6년 만에 결론을 냈습니다.
대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가능성 등에 관해 이전부터 다수의 금융투자업자가 공통되게 예상한 점을 고려하면 주식매수가격의 기준 시점은 자본시장법에서 정하는 '이사회 결의일의 전일'이 아닌 '제일모직의 신규상장 전날'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시가를 무조건 따라가는 게 아니라 '공정한 가액'으로 '협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낸 겁니다.
그동안 자본시장에서는 "법대로 했다"는 말은 강자의 용어로 쓰여왔습니다. 강자는 법의 빈틈을 이용해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적용시켰고, 약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법이라는 높은 벽 아래 번번이 무너졌습니다. 다행이 최근의 법은 약자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개정된 상법 392조는 누구의 편이 되어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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