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하면 이창호, 한 대학생이 이창호 9단의 사인을 받고 있다. | 당신은 '바둑리거'입니까?
언제부터인가 한국 바둑계의 프로들은 '바둑리그를 뛰는 사람'과 '바둑리그를 뛰지 못하는 사람'으로 크게 구분지어졌다. 프로 기사들이 '프로'로서의 존재를 입증하는 한가지 상징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새내기 프로에게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갓 입단한 프로들의 큰 목표야 '대회 우승'이지만 첫 번째의 현실적인 목표는 대개 ' 한국바둑리그'에 선수로 출전하는 것이 된다. 새내기 프로들의 첫 번째 목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둑TV의 생중계 화면을 보고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이 "고생 끝에 입단했다더니 저렇게 TV에 출연해서 큰 대회에 자주 나오는구나'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물론 또 이와는 약간 다르게 '직접 선수로 뛰지는 않지만 바둑리그와 관련을 짓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선수로 뛰던 그렇지 않던 간에, 한 해 동안의 한국바둑계를 쥐락펴락하게 될 'KB국민은행 2011한국바둑리그' 그 한국바둑리그의 개막식 및 선수 지명식이 2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렸다.
선수지명식은 한 해동안 활약하게 될 팀을 정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행사다. 개막식장에서 기자단 테이블을 중심으로 오간 이야기들을 이것 저것 정리해 봤다.
○●.. 이세돌의 모범답안
지명식이 끝난 후, 신안천일염팀의 주장 이세돌의 소감을 듣는 차례가 되자 이세돌의 '모범답안'이 화제에 올랐다.
개막식이건 우승을 한 다음이건 언제부터인가 이세돌 9단의 소감이 판에 박은 듯이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대략 몇 가지 정도를 섞어서 이야기하는 데 다음의 5가지 정도다. 바둑 기자들이 안보고도 미리 쓸 수 있다하는 이세돌의 '소감'이다.
1.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좋은 내용이 중요하고 2. 최선을 다해서 3. 좋은 기보를 남기고 싶고, 4, 상대는 매우 휼륭한 선수로 대국도 어려웠지만 상대의 실수가 있었고 5. 그래서 이 판을 이긴 것은 운이다.
위와 같은 소감은 적어도 80% 이상은 진실이겠지만 자꾸 반복이 되다보니 '박력'이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이세돌 9단이 큰 승부의 후반전에서, 승리 소감으로 인터뷰에서 무엇을 말할까 미리 고민하다가, 큰 실수를 해서 판을 망쳤다는 소문'들은 이미 머나먼 옛 이야기다. - 그래서 다른 모든 프로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인터뷰의 모범답안, 모범정석은 버리셔도 좋다.
▲ '미안해, 상훈아 나도 너를 미리 뽑고는 싶었어'. 저도 이해합니다. - 최고령 이상훈 (73년생)을 차민수 한게임 감독이 격려하고 둘 다 크게 웃었다. ○●.. 5지명 선수들의 잔인한 기다림
"거참.. 잔인하네.."
아무도 관심(?)없는 '5지명'급 선수지명에 들어서면 '잔인하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마지막까지 호명을 기다려야 하는 5지명 순서의 프로기사들도 괴롭기 짝이 없다. 어느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르지 않는 상황이다. 현장의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5지명 선발은 가장 뽑기 싫은 선수를 제외하고, 남는 선수를 먼저 호명하는 식이다. 따라서 마지막에 남을수록, 남은 프로선수는 가슴이 아프다. 고생 끝에 '바둑리거'가 됐건만 아무도 안 반겨주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보는 사람들도 '다소 안됐다'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의 선수 지명식에서 조훈현 9단이 '나를 맨 마지막에 뽑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뽑아줘서 고맙다'라는 소감을 밝혔는데 이는 상당한 진심이 담긴 멘트였을 것이다.
선수와 기자단 모두 가장 마지막에 뽑힐 것이라 예측했던 선수는 이상훈 9단(73년생)이었다. 2011년 바둑리거중 가장 최고령으로 감독들이 높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훈 맨 끝이 아니라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이름이 불렸다. 넷마블 양건 감독이 일종의 '의리'를 지킨 것이다.
이상훈 9단은 "끝까지 호명되지 모하고 마지막까지 남았을 때 기분은 좀 그렇다. 상황이 좀 잔인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 양건 감독이 (예선을 뚫게 되면) 뽑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지킨 것 같다. 양건 감독에게 고맙다. 올 한해 열심히 해보겠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상훈 9단은 양건 감독의 호명을 받게 됐고, 맨 마지막에 지명된 선수는 '이용찬'이었다.
▲ '미안해, 상훈아 나도 너를 미리 뽑고는 싶었어'. 저도 이해합니다. - 최고령 이상훈 (73년생)을 차민수 한게임 감독이 격려하고 둘 다 크게 웃었다. ○●.. 8개팀 전력 분석
8개팀 모두 우승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럴만한 실력을 갖췄고, 그렇게 분배가 되어있다. 그러나 우승을 하기 위해선 먼저 리그성적이 4위안에 들어야 한다. 현장의 기자들은 즉석에서 A,B,C 등으로 각 팀에 점수를 배분했으나 전력상의 큰 차이는 없다. 우승 가능성보다는 장기간의 리그를 통해 4위안에 들 가능성이 높은 순서대로 전망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선수가 지명될 때마다 서로 펜으로 쓱쓱 표기했고, 표기 상에 C점수는 없었다. 대략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정확도 보다는 그냥 현장의 재미다.
- 4위권안에 들만큼 안정적으로 보이는 AA그룹 - 분위기를 타면 잘 나가겠으나 분위기 안좋아지면 급속히 무너질것 같은 AB그룹 - 우승까지도 가능하겠으나 팀내 안정 및 핵심선수를 잘 보살펴야 할 BB그룹
AA그룹 : 하이트진로, 포스코LED, KIXX, 한게임 AB그룹 : 신안천일염, 영남일보 BB그룹 : 넷마블, 티브로드
AA그룹 - 흠 잡기 어려움 AA그룹의 선수 선발은 별로 흠잡을 데가 없다. 총4팀이 이 유형에 들었다. 하이트 진로의 2지명 안국현, 한게임의 주장 이영구 지명이 다소 놀라운 데가 있었으나 그동안 바둑리그에서 보인 성적을 통해 검증되었으니 감독의 재량과 안목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A그룹의 4팀은 장기간의 리그에서 안정된 전력을 보일 만한 팀 구성을 갖췄다.
AA그룹에서 꼭 우승팀이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시즌 진출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100% 가깝게 4강안에 들 수 있을 것이라는 칭찬을 받은 팀은 한게임이었다. AA팀들은 장기레이스를 준비하면서도 우승가능성을 높일 카드나 전략이 필요하다.
AB그룹 - 도깨비 팀 AB그룹은 도깨비팀의 분위기가 난다. 이길 때 화끈하게 몰아치지만 무너질때도 걷잡을 수 없는 그런 분위기.
팬들의 입장에서 신안천일염은 이세돌만 보이는 팀이다. 주장 이세돌이 100% 가까운 승률을 올리며, 2010년의 우승을 거둔 바 있다. 자율지명 김동호 초단과 4지명 강승민 초단의 활약이 받쳐주지 않으면 '기분파 이세돌'의 활약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주장 김지석을 택한 영남일보는 팀구성에 있어 신임 김영삼 감독의 영향력과 색깔이 많이 작용했다. 그만큼 초반 분위기를 탈 것으로 보인다.
BB그룹 - 주장급 선수 둘 보유 BB그룹에 배정됐다고 실력이 약한 건 아니다. 이 팀들은 주장급 선수를 둘 씩 보유했다는 특징이 있다. 오히려 포스트시즌만 가면 강력한 우승후보가 될 것 이다. 기자들은 이 두 팀에 뭔가 불안요소가 있다고 보고 점수를 약간 낮췄다.
우승을 위해선 먼저 장기간의 리그전에서 4위안에 들어야 하고 팀내 불안 요소를 먼저 잡아야한다팀내 불안 요소는 역시 주장급 선수의 사기다.
허영호, 박영훈의 '주포'를 둘 이나 가지게 되어 티브로드 서봉수 감독은 흡족했다. 그러나 2지명을 받은 주장급 선수 박영훈의 사기를 생각해야만 한다. 2지명을 받은 박 9단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경우 감독 및 선수들의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넷마블이 보호지명으로 이창호를 택하지 않았다가 주장지명으로 이창호를 택한 것은 놀라웠다. - 예상했던 바, '매우 당연하다'고 말한 기자분도 계셨다 - 역시 '양건'감독이다. 게다가 5지명에서 이창호와 절친한 최고령 이상훈 9단을 택한 것도 더 없이 놀라웠다.
넷마블은 티브로드와 마찬가지로 주장급 선수인 이창호와 원성진을 보유했지만 박영훈과 마찬가지로 자존심 문제를 잘 배려해야 한다.
넷마블은 전년도에 이어 말 그대로 '친목도모'팀 이라는 오명에선 벗어나야 한다. 이창호(75년생)와 이상훈(73년생)의 어깨가 무겁다. 한국리그에서 장급 선수에게 감독과 팀 선수들이 바라는 승률은 80%정도다. 이창호 9단의 한국리그 승률은 대략 반타작 수준이었다.
리그가 시작되어 '허영호,박영훈' 라인, '이창호,원성진'라이인 강하게 작용하면 '2판'은 무조건 이기고 나머지 3판중의 한판만 이겨도 되는 전략을 쓸수 있으니까 BB팀은 '특A팀'이 될 수도 있다.
▲ '같은 팀이 되었으면'... 이창호 9단과 이상훈 9단, 선수 선발식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강동윤(가운데)이 사상 최강의 팀을 조합하고 있다. 원성진(좌)과 박영훈(우)이 강동윤이 누구를 쓰느냐에 집중.
▲ "아~ 상상만 해도 즐거워" 최강의 팀이란 '초단 위주로 구성된 팀'이었다. 다른 팀에 모조리 몰아 넣은 후, '은근한데?!'라며 즐거워한다. 한국리그에선 자율지명 및 4~5지명에 분포해 있는 신인 초단들의 활약이 팀 성적에 '은근히' 중요하다.
▲ 파마머리의 김지석, '김영삼 감독님이 맨 먼저 뽑는다 하긴 했는데...' 김영삼 영남일보 감독은 지명식 이 전부터 공언한대로 김지석을 주장으로 지명했다.
▲ 하이트 진로팀, '안국현 뽑자?' - 전기 신안천일염 자율지명 선수였던 안국현을 2장으로 지명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 거 봐! 이창호를 주장으로 뽑을 거라 그랬지, - 양건 감독은 '이창호를 주장으로 뽑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여러차례 드러냈으나 지명식에서는 이창호를 서슴없이 지명했다.
▲ 어느팀이 진정한 '강팀'인가? 어떤 감독의 눈이 좋으냐? 기자단 테이블서 논의가 한창이다.
▲ 총장의 고견은 어떠하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부근을 지나다 살짝 의견을 말하고 갔다.
▲ 사인하는 이창호. 2011년엔 한국바둑리그 부속행사로 대학바둑리그가 열린다. 개막식에 초청받은 한 대학생이 이창호 9단에게 사인을 받고 있다. - '대학리그도 기다려지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