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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민간인 불법사찰 비판’ 상식적 댓글까지 블랙리스트로
입력2018.04.11. 오전 5:05 수정2018.04.11. 오전 8:15
불법 정치개입이 확인된 국군 사이버사령부(군 사이버사)가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12년 당시 ‘사이버 위협세력’(레드펜/블랙펜)으로 분류한 명단과 댓글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군 사이버사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민간인 사찰 사건’을 비판하거나, 과도한 국가보안법 적용을 비판하는 댓글까지 블랙리스트로 분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그간 ‘레드펜 작전’에 대해 “반정부·종북 세력을 특별 관리한 것”이라는 해명을 반복했지만, 실상은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전방위적 사찰이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10일 <한겨레>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확인한 군 사이버사의 ‘사이버 위협세력 식별 결과(보고)’(식별 보고서) 등 문건 2건은 ‘레드펜’(블랙펜과 혼용)으로 구분된 ‘댓글’과 ‘닉네임’ 가운데 일부를 사례로 담고 있었다. 이들 문건은 각각 2012년 8월28일과 9월26일 작성됐으며 ‘특별취급’ ‘결재권자 외 열람금지’ 등 문구로 보안을 강조하고 있었다.
문건들은 ‘북한 지지·찬양’(R1), ‘브이아이피(VIP)·국가정책 비난’(R2), ‘국방·군 수뇌부 비방’(R3)으로 항목을 나눠 블랙리스트에 해당하는 댓글들을 닉네임과 함께 제시하고 있었다. 댓글 식별과 수집은 주로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이뤄졌다.
군 사이버사는 합리적인 정부 비판 댓글을 상당수 ‘R2’ 항목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닉네임 ‘대포’는 ‘이 대통령 최대 성과는 북 인권 국제이슈화’라는 제목의 기사에 “민간인 사찰하는 사기꾼이 남의 나라 인권 타령인가”라는 댓글을 달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밖에 “구시대의 악법인 국보법을 동원해 개인을 탄압하는 치졸한 정부”라는 댓글을 남긴 닉네임 ‘본인’, “엠비(MB) 정권에 한해 악의 축은 북한이 아닌 현 정권 그 자체이다”라는 댓글을 단 ‘이경선’, “인권유린과 민생파탄·민주주의를 파괴한 이○○을 탄핵해라”라고 쓴 ‘테마파크’는 모두 ‘R2’ 관리 대상이 됐다. 북한과 상관없이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군 사이버사의 감시 대상이 됐던 셈이다.
‘R3’으로 분류돼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뉴스 댓글 역시 상식적인 비판이 많았다. ‘국방비는 천문학적으로 사용하면서 미사일 기술이 북한보다 못한가’ ‘SNS에서 대통령 욕하는 애들 잡아들이는 것도 사이버 전력인가’ 등의 상식적인 문제제기는 ‘국방·군 수뇌부 비방’이 됐다.
특히 2012년 6월 국회 비준·동의 없이 국무회의에서 비밀리에 의결해 비판이 거셌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과 관련해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을 비판한 댓글 역시 집중적인 사찰 대상이 됐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으려 한 것인가’ ‘한-일 군사협정 밀실 처리 시도한 국방장관은 매국노다’ 등 비판 목소리를 낸 누리꾼들이 모두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나아가 군은 이런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도 폈다. 2012년 8월28일치 ‘식별 보고서’에는 ‘레드펜 분석을 통한 적기·적소 대응으로 오염 확산을 최소화’하겠다고 적혀 있다. 군 사이버사는 이어 식별 보고서에 ‘선별된 (레드펜) 자료는 관계 기관에 협조, 위협적 사이버 선전활동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2년 9월26일 작성된 ‘식별 보고서’에도 ‘극렬 악성 댓글자 635명을 실시간으로 유관 기관에 기 통보’했다고 적혀 있다. 또 ‘북한 찬양·고무자는 국가보안법 7조 1항 위반(7년 이하 징역)’ ‘R2·R3은 브이아이피·장관 사이버 명예훼손 정보통신법 61조 위반(7년 이하 징역)’ 등 형사 처벌을 예정한 근거 조항도 적어두고 있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을 단 누리꾼들을 추적해 내사하는 등 탄압 계획이 실제 진행됐음을 시사하는 문구들이다.
군 사이버사의 레드펜 작전에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가 적극 협조한 정황은 앞서 <한겨레> 보도(2월5일치 13면)로 드러난 바 있다. 이에 경찰은 자체 수사팀을 꾸려 경찰 댓글 및 레드펜 작전 협조 정황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셀프 수사’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찰은 수사 착수 이전에도 자체 진상조사팀을 꾸려 조사에 나섰지만, 경찰이 ‘댓글 공작’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는 등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 등에서는 경찰이 꼬리 자르기식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철희 의원은 “확인된 아이디와 댓글 내용만으로도 군 사이버사가 반정부·종북을 앞세워 사실상 정치적 반대파를 말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입증됐다”며 “남은 기간 철저한 조사를 통해 피해의 내용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군이 정치적 중립을 잃은 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작전을 벌이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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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10일 정부 비판 누리꾼 아이디를 수집·관리한 국군 사이버사령부 ‘레드펜’ 작전에서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댓글과 닉네임을 입수했습니다. 누리꾼들과 직접 접촉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에서 해당 기사와 댓글 등을 찾아보고, ‘구글링’도 해봤지만 현재는 대부분 삭제된 상태였습니다.
군 사이버사는 이들 댓글과 닉네임 가운데 상당수를 수사 기관에 기초 수사 자료로 이첩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군 당국이 정부 비판 아이디를 수집·관리한 데 이어 수사 기관까지 동원해 사찰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정황입니다.
<한겨레>는 입수한 레드펜 댓글 전체 내용을 공개합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사이버 사찰 대상이 됐을지 모를 댓글 당사자께서는 이메일(godjimin@hani.co.kr) 또는 전화(02-710-0111)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참고 블로그 https://blog.naver.com/vhxjf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