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살고 싶은 욕망을 가장 느낄 때는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주위의 환경이 급속도로 바뀔 쯤입니다.
환경변화에 살아남기위해 人間인 나도 심한 번민과 함께 생존투쟁에 熱情하였고 수단 방법에 차별을 두지 않았읍니다.
대학을 졸업할 쯔음 주위 환경변화는 나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지요.
지난 시절 내가 겪었던 부마사태와 광주사태는 아직까지도 우리 대한민국의 옳바른 이데올로기로써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진행중입니다. 아마 우리의 세대가 지나도 옳바르게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읍니다.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주도하고 도망친 아이히만을 한나 이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설명하면서 사유하지않고 판단하는 인간의 행위에 큰 충격을 받았읍니다.
우리들은 언제까지 얼만큼 야만(barbarism)을 옹호해야 할까요?
서로 2인 이상의 대화는 사실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대화와 설득은 궁극적으로 지배와 종속의 관계입니다.
농생활 이전의 우리들의 생활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자아의 의식보다는 외부에 종속된 삶이 더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자립이 이루어진 사회만이 사람이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읍니다. 먹고 사는 일에만 열중하는 현실의 대중이 어떻게 정치적 인간이 될 수 있겠읍니까? 우리 과거의 삶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우리의 삶도 변화가 없다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나의 이야기는 나의 우려대로 대중 농부들의 마음을 열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일상들이 상품化된 농생활도 아마 부정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