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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12박13일 유럽여행[Day3 in/Heidelberg] 황태자의 첫사랑, 고성古城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40 07.11.25 16: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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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집 황소입니다. 다른 분의 사진을 퍼왔습니다.  

 

 

맥주집의 실내, 비스마르트. 마크 트웨인 등 난다 긴다하는 호걸들이 맥주 한 잔 거하게 했던 곳이랍니다.

 

성의 가을은 단풍이 말합니다. 

 

야경이 이렇다는데 못 본 대신 남의 사진으로 대리 만족. 

 

우리는 승용차로 성에 올랐지만, 일반 교통으로는 이런 케이블카 

 

 넥카강에 걸쳐진 다리.

 

 

 

사실 내 얼굴을 내놓기는 별로지만 예까지 우리와 함께 하는 누이가 고마워. 

 

 

성의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면 이렇습니다. 마치 동화책에서 나온 마을입니다.

 

 

 

 

성안에 들어가면 한 눈에 보이는 건물.

 

성의 테라스에 불륜의 사랑을 하다가 기사의 발자국에 찍혔다는데 기사의 생사를 아는 사람은 없지요.

 

 

세상에서 제일 큰 와인통에 지킴이겸 술꾼.

 

 

 

 

 

 

12박13일 유럽여행[Day3 in/Heidelberg] 황태자의 첫사랑, 고성古城

2007/09/11 Tues

 

프랑크푸르트의 누이야.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온 지 세달 째 된다.

내 여행기는 아직 거기서 머물러서 더 나갈 줄을 모른다.

날마다 써서 네게 메일로 보내마 하는 나는 약속을 지켰단다.

그러나 너의 메일이 닫혀 있으니 이 오라비가 글 쓸 맛이 없이 손을 놓고 있단다.

참을 수 없어서 전화를 거니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구나.

그럼 그렇지.

 

컴퓨터에 오류가 생겨 집에 혼자 있는 너는 어찌 할 줄을 모른다니 어쩌겠니.

오라비는 다시 오랜만에 여행기를 쓰는 키보드를 두드린다.

누이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너를 만나고 오라비 가족을 태워 아우토반을 달려 멈추니 하이델베르크 성이었다.

 

네 덕에 어린 날 그리던 곳에 왔다. 마치 꿈에 그리던 곳에 오니 꿈이 아니고 꿈의 밖에 있건만 꿈인양하다.

 

흘러간 세월이 50여년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만한 세월은 천지가 개벽하며 바다가 변해서 논밭이 되는 상전벽해건만 여가는 영화 속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구나.

 

내 나라에서는 지난 세월의 추억을 찾으면 성한 곳이 제대로 없어서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단다. 여기서는 무너진 성도 무너진 채 건사를 하고 있으니 먼 나라에서 온 내가 어린 날의 추억을 확인하니 고맙지 아니한가.

 

누이야.

네가 기억하듯이 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예관동에 살았지. 그때 중학생 오라비는 허리우드 키드였단다.

 

손바닥만 한 방 하나에 우리 다섯 식구가 오밀조밀 살 때지. 그때는 네가 알던 개구쟁이 노릇이 끝났던 사춘기였지.

 

나는 그때 우리 또래들이 하던 거리의 아이가 되기보다 책을 보거나 영화광이었단다. 우리는 가난해도 나는 영화를 늘 볼 수 있었으니 가게 딸린 우리 집에는 극장의 포스터가 수시로 바꿔 달렸다.

 

나는 시시때때로 공짜표를 얻었다. 집 가까이에 학생전용극장으로 아테네 극장, 아테네를 지나 스칼라와 명보극장에다가 명보 극장 옆 골목에 초동극장. 을지로 4가를 지나 청계 4가에 천지극장 종로 4가에 한일극장. 거기서도 못 본 영화를 한다면 을지로 6가의 청계극장. 다시 을지로 5가의 중부시장 안의 중부극장을 돌아서 회현동의 신세계 6층에 있는 신세계 극장까지.

 

내가 못 본 영화를 한다면 종로 입구의 화신 백화점 안의 화신극장이나 YWCA 옆 골목에는 우미관이 있다. 여기서 충무로 4가의 대한극장은 벤허나 의사 지바고 같은 대형 영화를 국도 극장에서는 의사 안중근 같은 국산영화를 피카다리나 단성사에서 나는 황태자 첫사랑을 보았는가보다.

 

어느 극장이어도 좋다.

장황하게 내건 극장 이름은 거의 다 추억의 이름으로만 기억된다.

아마도 아테네 극장에서 본 듯한 황태자의 첫사랑은 사춘기의 추억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랬단다.

한 영주 칼스버그의 왕은 손자며 태자인 칼이 바깥세상으로 나아가 호기롭게 젊은 시절을 보내기를 바라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보낸다.

이 때 칼은 이미 이웃나라 공주와 정혼한 상태였다.

칼은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유학 중 하숙집 주인의 딸 캐티와 순수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사랑의 시기도 잠깐.

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왕자 칼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왕궁으로 돌아가야만 하니 신분의 차이 때문에 평범한 여인을 왕비로 맞이할 수는 없는 운명 앞에 이별의 시간이 온다.

칼이 왕이 된 후 재회하지만 캐티는 첫사랑의 여인일 뿐.

 

“학생 때는 같은 세계에 있던 우리들이었지만, 그러나 우리들만 지금 달라졌을 뿐 이곳은 변한 게 없다”

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캐티에게

“안녕 캐티…….”

라고

작별인사를 하는 칼은 예전의

"안녕 칼……."

이 아닌

“안녕히 가시옵소서. 전하. "

라는 달라진 작별인사를 들으면서, 청춘의 거리에 추억과 사랑을 두고 하이델베르크를 떠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영화의end마크를 보면서 가슴 저린다. 마리오란자의 노래로 듣던 Drink 송이 사춘기를 지나 대학시절에 막걸리 잔을 쳐들고 건배를 할때도 들렸다.

그러나 드링 드링하던 황태자의 첫사랑 같은 열정은 나오지 않았다. 황태자는 하이델베르크에 있었지 내가 다니던 대학 시장의 목로주점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영화 속 황태자 칼은 신입생으로 큰 맥주잔의 맥주를 단숨에 마셔야했다.

우리 식으로는 막걸리나 소주대포를 원샷하는 풍습의 독일식 드링 드링이다.

우리의 젊은 날에는 맥주는 비싼 음료였다.

양껏 마실 때는 맥주 회사에서 1년에 한번 회사로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맥주를 실컷 먹도록 했다.

 

젊은 우리들의 배고프고 기름기 없는 창자는 그 술 3000시시면 곤드레만드레 되었다.

 

취기 가득 하여 백주에 서면 갈 곳 없는 젊음은 무교동의 뮤직홀 세시봉의 어둠 속에 술 취한 얼굴을 감췄다.

 

그러면서 드링 노래 소리에 맥주잔 치켜 올리던 곳이 마음의 고향처럼 떠올랐다.

영화 속 그곳이 하이델베르크 인지 어딘지 모르면서.

세월이 벽을 넘어 내 귀에는 마리온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Drinking Song - Tenor Mario Lanza

 

Ein zwei drei vier

Nip your stein and drink your beer

Ein zwei drei vier

Nip your stein and drink your beer

Drink! Drink! Drink!

To eyes that are bright as stars when they're shining on me!

Drink! Drink! Drink!

To lips that are red and sweet as the fruit on the tree!

Here's a hope that those bright eyes will shine

 

누이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네가 안내하는 대로 성안으로 들어간다.

서양 풍경에서 나오는 그런 잔디를 지나 하이델베르크 고성의 성벽에 기대니 넥카강이 보인다.

성 아래 마을의 시간은 18세기에서 머물러있다.

 

누이야.

여기 하이델베르크 성까지 네 차를 끌고서 성안까지 네 수고가 대견하고도 미안해서 나는 분명히 나긋한 햇살이 지나가며 구름 속에 잠길 때 환영처럼 지나가는 대학생 무리와 칼과 케티가 드링 드링 하는 맥줏집 황소까지 가자는 말을 가슴에 삼킨다 한 세월 보낸 성이 참으로 유정하다만 내게는 황태자의 첫사랑이 유정하다.

 

넥카강이 보이는 성은 구름에 잠긴 햇살을 받아 미묘하게 빛난다.

잎가지로 얽힌 벽돌은, 시간이 지나간 색깔로 바뀐다.

성 아래 이 골목 저 골목을 가면 여기의 명소인 학생 술집. 황소에는 학생들 대신에 일본인들 한국인들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닌가.

철학자의 길에 철학자가 사라졌듯이 학생 술집에는 학생들이 사라졌으리.

대부분이 중노년 관광객뿐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황태자의 첫사랑의 추억으로 맥주만으로 몹시 취해 피아노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낭만 재생산하는 무리 속에서 나도 소리치고 싶구나.

 

괴테를 시작해 많은 시인이나 철학자가 사랑한 거리·하이 델 산은, 독일 고성 가도의 시점·맨 하임에 가까워 예부터 학생의 거리로서 알려져 있다.

거리의 중심을 라인의 지류·넥카강이 흘러 배후의 작은 언덕에 하이 델 산성이 있다.

 

오빠 저기 아래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대단하답니다.

하이 델 산 대학은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대학이구나.

우리처럼 대학건물은 남들에게 자랑하듯이 세워놓은 건물이 아니니 우리의 정상은 이상하고 이상한 여기가 정상이구나.

 

오빠, 여기 건물은 세월 따라 차곡차곡 물건이 쌓이듯 어깨동무하며 지어진 집들이랍니다.

 

이 성은 13세기에 최초 건축된 이래 거듭 증축되어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의 다양한 양식이 섞여있고요.

 

르프레히트 1세가 독일 국왕으로 선출된 1400년에 르프레히트관이 서고 잇달아서 이 건물에 이어서 지면서 르드비히 5세 시대에 도서관과 부인관이 지어졌고요. 지금은 부인관에는 돈만 내면 빌릴 수도 있어요.

 

1556년에 르네상스 양식의 오토·하인릿히관이 짓고 50년 뒤 그 옆에 흘리드릿히관을 지을 때의 성주는 흘리드릿히 5세로였지요.

하이델베르크 성을 왕비를 위해서 연호를 만들지만 사랑을 위한 대가치고는 전투시의 방어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져 버리고 말았답니다.

 

17 세기의 프파르트 계승 전쟁으로 하이델베르크성은 두 차례 공격을 받고요. 특히 2번째의 프랑스 군의 침공은 대단해서 우리가 보는 망가진 화약탑은 이 시대에 당하여 부서졌지요.

 

종교전쟁에서 진 컬·필립은 하이델베르크를 떠나 버리고 그 다음은 컬·테오가 폐허의 성을 복구하려했으나 공사 중인 1764년에 낙뢰로 하이델베르크성은 다시 일부가 부서졌답니다.

컬·테오는 하느님의 명이라 생각해서 하이델베르크성의 재건 공사는 하다 말고 끝내고말고요.

 

19 세기가 되어, 성의 전면적인 재건보다는 현존 건물을 보존하는 형태로의 재건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어요.

보시다시피 예전에 망가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여기서는 보수이며 재건이니까 우리나라 하고는 다른 모습이랍니다.

 

성안에 저기 토트름Torturm의 기사의 릴리프는 중앙이 토트름Torturm이며 오른쪽이 1400년대의 르프레히트관이며 왼쪽 사무관리용관은 1508~44년에 지은 건물이랍니다.

 

병사의 관에서 성내의 투어의 티켓을 사서 르프레히트관에서 성내의 투어를 시작하여 왼쪽은 도서관(1520~35년)이고 르프레히트관의 입구에는 두 명의 아이 속에 컴퍼스는 건축기사의 트레이드마크가 들어가 있지요.

 

1556년에 지은 오토·하인릿히관안은 지금은 의약 박물관이랍니다.

 

누이 말을 따라 제약 박물관을 돌아본다. 예전의 제약 방법은 우리나 여기나 닮은꼴이다. 약초를 말이거나 탕제를 만들어 조려서 쓰거나 하는 식이다. 우리 또래가 다니던 한의원에는 천정에도 약봉지가 늘여 있고 다녀와서는 약탕관에 탕제를 끓여서 병을 치료하고 어렵사리 보약을 먹었다.

 

저기 화약탑은 1460년경 만들어졌고 벽의 두께는 약 6 미터로 1693년에 프랑스 군에 의해 폭파되어 부분적으로 부서졌고요. 아직 부서진 모습 그대로예요.

엘리바베텐토는 Elisabertentor 1615년에 흘리드릿히 5세가 왕비를 위해서 하룻밤에 세워준 문이니 백성들이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

 

르프레히트관정면의 티켓 판매소에서, 가이드 투어의 참가 티켓을 살 수 있다. 영어 또는 독일어로 설명한다. 영어는 1시간에 1회 정도이다. 투어의 집합장소는 르프레히트관의 1층이다.

 

투어는 르프레히트관으로부터 부인관에 가서, 흘리드릿히관을 보고 예배당에 이른다. 흘리드릿히관은 2층과 3층이 있다.

이 투어의 가이드가 매우 능숙하며 알기 쉽고 정중하게 해주니 영어를 몰라도(?) 절대 감각으로 즐길 수 있단다.

 

예배당을 나와 곧 오른쪽 아래로 통로를 따라 가면, 하이델베르크성의 명물의 하나로 세계에서 제일 큰 와인 통이 있다.

통 옆에는 어릿광대의 「페르케오」이며 와인 통을 지키는 사람이었단다.

소문에 따르면 하루 7개의 와인을 마셔대다가 결국은 와인 대신에 물 한 컵을 먹고 죽었다는 대단한 술꾼이다.

여기에서 현지산 와인도 맛 볼 수 있다.

 

잊지 말 것은 넥카강의 경치가 한 눈에 보이는 테라스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불륜의 사랑을 하던 기사가 사랑을 들켜서 당황하여 도망치다가 찍힌 발자국이라니 목숨을 걸고 뛰지 않고서야 발자국이 찍힐 리가 없지.

몰래한 사랑은 지금까지 증거로 남아서 사람들 입에 미소를 띠게 하는 구나.

 

한국 사람들에게 요즘 시대에 생긴 방랑벽에 낙서벽으로 오래된 벽에 새긴 이름과 대한민국이 보인다. 우리만이 한글을 알고 부끄럽지 다른 나라 사람이 한글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아직 오후 2시쯤 된 시간인데 왠지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난 듯하다.

몰려다니던 한국인과 중국인들의 무리 져서 사라진 탓인 가보다.

나는 더 돌아보고 싶구나. 너도 또한 더 돌아보라고 하나 나를 기다리는 우리 가족이 지루할까봐서 나는 다시 네 차편으로 떠나야할까보다.

 

누이야

내 귀에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

 

The Student Prince (황태자의 첫사랑) 中 Gaudeamus igitur

Gaudeamus igitur, juvenes dum sumus.

Post jucundum juventutem,

Post molestam senectutem,

Nos habebit humus.

Let us rejoice therefore, while we are young.

After a pleasant youth,

After a troublesome old age,

The earth will have us.

 

그러니 우리 젊을 때 기뻐하자.

즐거운 청춘이 지나고

괴로운 노년이 지나면

우리는 땅에 묻히리니.

 

웨스트 벨리언스 합창 단원들이 (영화 초반부에) 다들 헤어지면서 부르던 이곡은 마지막 장면에서 캐티 곁을 떠나는 칼의 쓸쓸한 뒷모습과 함께 다시 한 번 더 흘러나오는 노래다.

 

누이가 내게 권한다.

" 오빠, 여기말고 작은 마을이 있어요. 관광객들이 지나쳐 가는 곳인데 참으로 아담한 곳이예요. 드라이아이헨Dreieichenhain으로 저하고 함께 가세요."

 

그래 가자.

차를 끌고 우리를 품고 가는 너를 따라 못 갈 곳이 어디있겠느냐.

가자.

 

노트

 

동영상은 내가 찍은 겁니다만 여기 실린 사진은 http://hvanilla.web.infoseek.co.jp/heidelberg/heidelberg6.html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내가 찍어 온 사진들이 있었는데 파일을 옮기고 복사하면서 사라졌습니다.

부득이 인터넷을 찾아다니다가 열심히 사진을 찍은 이 사이트까지 가서 사진을 퍼서 여기 나의 글과 맞춰 여기 싣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의 일부분도 그 사이트를 참고하였습니다.

안면부지이며 초면의 사이트의 쥔장에게 감사드립니다.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나오는 맥주집 황소의 사진은 http://kr.blog.yahoo.com/hurjc/1470501에서 퍼왔습니다.

 


더 많은 사진을 보려면 위 브로그를 찾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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