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22]농업 전문용어와 어느 사자성어
어느 분야에 대해 그 전문가와 대화를 하다, 흔히 처음 듣게 되는 ‘전문용어’를 알게 되면 나는 반갑고 고맙다. 우리는 늘 죽을 때까지 학생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어려운 전문용어를 아주 쉽게 풀이해주는 ‘재주’가 있다. 어제의 예를 들어본다. 소생이 ‘임실의 딸기왕’이라고 늘 반기는 고향 성님이 무슨 말을 하다 불쑥 묻는다. “우천, 불시출뢰가 무언지 아는가?”불시출뢰 금시초문, 그게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불시는 ‘때가 아니다’는 不時일 터이나 ‘출뢰’는 무엇일까? 본인도 ‘뢰’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지만, ‘꽃눈’을 뜻하며, 딸기 재배농부들에게는 ‘상식’으로 ‘때가 아닌 시기에 꽃눈이 나오는 현상’이란다. 딸기는 보통 11월말이나 12월초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11월 초중순에 열매가 맺힌 것이 ‘불시출뢰 딸기’인데, 흔하지 않고 귀한 것이라 굉장히 비싸다한다. 현재 시중에서 2kg에 17만원이라니 ‘금쪽 딸기’인 셈. 허나 농가에선 이런 딸기가 많으면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지므로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동식물로 치면 돌연변이인 셈. 사람으로 치면 엄마 자궁을 맨먼저 열고 태어나는 ‘문열’이라 할까. 문열이는 처음 문(門)을 열고 나온다는 뜻이라던가. 어릴 적에 조금 모자란 사람을 ‘무녀리’라고도 했던 기억도 났다. 모처럼 어려운 한자를 맞딱뜨리니, 일전에 로마 원형극장(콜로세움) 안내판에서 봤던 중국 간체자(簡體字)가 생각났다. 중국에서는 원형경기장을 '투수장(鬪獸場)'이라 하는데, 그 단어를 간자체로 표기해 놓았으니 내가 알 턱이 있었겠는가.
아무튼 당장 불시출뢰 딸기를 맛보러 당신의 농장에 가자한다. 불감청고소원. 지열보일러로 재배하는 유리온실 3천평 딸기농장엔 하얀 꽃이 예쁘게 범벅으로 피었다. 라인 라인을 유심히 대체 빨간 딸기 몇 개가 대롱대롱 달려 있다. 농약도 않는 완전 무공해. 따 입에 넣는다. 와우-, 황홀하기까지 하다. 기분이 그래서인지 유난히 더 맛있는 것같다. ‘AI 제미나이’에 ‘불시출뢰에 대해 알고 싶다’고 쳤더니 1분도 안돼 주루룩 지식이 쏟아졌다. 딸기는 보통 정해진 시기에 꽃눈이 분화하고 출뢰(꽃봉오리가 나오는 것)돼 열매를 맺게 되는데, 재배환경이나 육묘상태 등에 문제가 생기면 예상치 못한 시기에 꽃눈이 나온다는 것. 꽃눈 분화기에 묘(모종)의 체내 질소질 함량이 높거나 고온다습, 야간온도가 너무 높으면 발생한다는 것. ‘뢰’를 한자로 어떻게 쓰느냐? 산삼의‘뇌두’와 같은 한자인지를 물었다. 산삼의 뇌두는 ‘두뇌 뇌(腦)’이고, 불시출뢰의 뢰는 ‘꽃봉오리 뢰’인데 자판에도 나오지 않는다. ‘풀 초(艸) 변 아래에 천둥 뢰(雷)’보기에 처음이다. 이런 한자도 있나, 옥편을 찾았으니 ‘꽃봉오리 뢰, 꽃잎 방긋할 뢰’자란다. 꽃잎 방긋할 뢰라니? 훈음(訓音)조차 딸기꽃 모양처럼 예쁘다.
또 하나. 나라를 뒤흔든 ‘연습’이었다나? 해프닝으로 끝난 장난같은 내란이 어느새 1년이 다 돼가고 있는데, 작금(昨今)의 <3특검> 속도는 여전히 지지부진하여 국민들에게 또다른 스트레스를 안기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우스개말로 ‘자궁이 답답하다’고 한다. 그런데,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들어보셨는가? 뜻 그대로 하면 ’호랑이같은 아버지에 개같은 아들‘일 터. 당시 내란에 동조했거나 미지근하게 침묵했던 국무위원 20여명중 유난히 눈에 띄이는 이름 석 자가 있다. 그분을 조롱하듯 빗대어 만든 조어이다. 누구라고 적시하지는 않겠으나, 그분의 아버지야말로 민족주의자이자 훌륭한 문학가였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저런 ‘비겁한’아들이 있냐는 것이다. 대부분 50대 이상일 것이고 많이 배운 인텔리로서 내로라하는 학식과 인망도 갖췄을 터인데, 그날의 침묵과 방관 내지 용인한 처신에 대해 누구 한 사람 국민 앞에 국회에서 제대로 사과한 분이 없지 않은가. 이건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잘못한 것을 알면 곧바로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중에 앞서 언급한 분은 당신의 아버지 명예까지 먹칠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어릴 적,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어른들을 만나면 내려서 인사를 하고 다시 가라고 배웠다. 이런 인사를 잘 하지 못하면 ‘저 놈 애비가 누구여?’‘호로자식 같으니라고’라며 제 부모를 욕보이는 걸 가장 큰 수치(羞恥)로 알지 않았던가. 이 새벽, 불시출뢰와 호부견자, 사자성어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