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金一) 대한민국의 프로레슬링 선수이다.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제자이다.
장영철, 천규덕과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로 활약하며 1960년대~70년대 중반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박치기 왕'으로 불렸다
국내 씨름판을 주름잡다 역도산의 레슬링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불법체류자로 잡혀 일본에서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역도산에게 계속 편지를 써, 1957년 도쿄의 역도산체육관 문하생 1기로 입문하였다.
역도산에게서 호랑이를 때려잡는 사나이라는 뜻의 '오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을 받고, 특기로 박치기를 연마했다.
일본 현지에서 '원폭 박치기'로 불릴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그의 박치기는 서양의 거구 레슬러도 한 번에 쓰러질 정도였다.
김일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박치기 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1963년 미국 원정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태그챔피언,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1965년 극동 헤비급 챔피언, 1966년 도쿄 올아시아 태그챔피언, 1967년 제23대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헤비급 챔피언, 1972년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 헤비급 태그챔피언 등 20여 차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고 30여 년간 3,000여 차례의 경기를 치렀다.
은퇴 후 사업을 하다가 1987년부터 레슬링 후유증과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후배 양성과 프로레슬링 재건에 힘썼다.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으며 사후인 2006년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
2009년 9월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에 김일기념체육관과 기념관, 야외공원 등이 조성되었으며, 매년 그를 추모하는 박치기 대회와 프로레슬링 대회 등이 열리고 있다.
첫댓글 어릴 때의 우상. 천규덕씨와 함께.
우리편이 실컷 당하다 김일의 박치기로 반칙을 일삼던 상대를
쓰러뜨릴때 스트레스를 날리는 통쾌함은 최고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