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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다. 윤호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이과를 선택했지만, 결국은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학교 교문 플랜카드에 가장 크게 이름이 걸렸다. 시현 역시 교대에 입학했고 윤호보다 작은 글씨로 플랜카드에 이름을 새겼다. 은재는 재수를 결정했다. 그 어느 때보다 밝고 찬란한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다가온 스무 살의 봄은 아직 시렸다. 그해 봄은 꽃샘추위도 유독 심했다.
시현은 대학 입학식은 물론 개강 후에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 박혀 있었고, 은재는 그런 시현의 곁에서 그저 지켜봐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첫사랑과 이별을 하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훌훌 털어내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아팠고, 너무도 좋아했다. 윤호는 시현과 같은 오피스텔에 집을 얻어서 밥을 얻어먹겠다는 핑계로 수업 후에는 바로 시현의 집으로 향했다. 요리를 시켜 술과 함께 먹고, TV를 보며 술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시고.
그러다 대충 머리를 대고 아무 곳에서나 널브러져 자곤 했다. 시현은 내내 침대에 누워 있으니, 시현이 잠든 곳은 침대였고, 은재는 소파에 늘어져 잠들었고, 윤호는 그런 은재가 잠들어 있는 소파 바로 아래 깔린 카펫위에 널브러져 자곤 했다. 도중에 깬 시현은 은재와 윤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빈 캔을 정리하고 다시 잠자리에 눕곤 했다. 그렇게 남자 셋이서 별다른 대화도 없지만 내내 같이 보냈다.
그리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시현이 라면을 끓여 은재와 윤호를 깨웠다. 그렇게 셋이서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나니, 씻고 나온 시현이 말했다.
“나 학교 갔다 온다.”
그런 시현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은재가 말했다.
“어. 야, 윤호깡. 넌 안가냐?”
“아씨……. 가야지…….”
전국의 수재들이 모두 모인 대학인만큼 특별한 일 없이 수업을 뺀다는 것은 뒷일이 감당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윤호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성실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은재는 그런 윤호가 의외였지만, 굳이 콕 집어 얘기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그런 것을 콕 집에 물으면 청개구리 본능이 발동해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은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있는 윤호의 어깨를 다정히 다독여주며 말했다.
“갔다 와. 나도 집 청소하고 옷 갈아입고 와야겠다.”
“이따가 밖에서 한잔 할래?”
어느 새 현관 앞에 선 시현이 윤호와 은재를 보며 말했다. 그 모습은 평소와, 원래 알고 있던 그 모습과 다름없었다.
“콜!”
은재가 대답하자 윤호도 끄덕인다. 그리고 그 날 후 시현은 평소처럼 지내게 되었다. 학교도 다니고 동기들과 어울려 술도 마셨다. 은재도 윤호도 시현이 연정과 이별한 얘기에 대해서는 들었다. 물론 시현이 직접 ‘이별’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분명한 이별 선고였다. 시현에게 연정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때문에 윤호는 연정에게 시현을 울리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시현은 늘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그의 가장 약한 부분임을 곁에서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부모의 방관과 무관심으로 철저히 외로웠던 집에서와 달리, 학교에는 늘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인기인이었다. 모두가 잘 알지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고 만들어낸 허상으로 그를 추종하고 따랐었다. 차마 진실할 수 없었던 어린 마음. 결국은 또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부담마저 따랐을 것이다. 언제나 다정하고 친절하고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고2가 될 무렵 터진 아버지의 스캔들. 세상에 모두 까발려진 불완전한 가족의 실체. 본의 아니게 감추었던 것이 되어버린 어두운 이면. 열여덟 살의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었다. 시현은 그때 그 모든 것을 지고 가기 보다는 그냥 내려놓았다. 위태로웠다. 마치 벼랑 끝에서 평균대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그때 시현을 그 평균대 위에서 내려와 안전한 땅 위를 걷게 한 것이 바로 연정이었다.
시현에게 있어 연정은, 좋아하는 사람. 만지고 닿고 싶은 사람. 곁에 두고 싶은 사람. 그런 것을 넘어서 그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연정이 미국으로 떠난 후에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았다.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고, 그러니 나는 너를 위해 계속 살아간다.’그 당시 시현은 필사적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성적도 좋고,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이어서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시현에게 있어 그런 행위는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35.
“아우, 이 새끼!”
“내가 도와줄까?”
윤호의 집 앞에 도착해 은재가 윤호를 부축해 내리자 상민이 따라 내려서는 은재의 옆으로 다가서며 묻는다.
“아냐, 괜찮아! 이 새끼 은근히 낯가려서, 허헝…….”
은재가 어색하게 웃자, 상민도 웃어주며 물러선다. 그리고는 말한다.
“데려다주고 내려와. 기다릴게.”
“아, 정말......? 나 얘 옷도 좀 갈아입히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나 내일 오프야.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나와.”
상민의 말에 은재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하고는 윤호를 부축해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상민은 그런 은재와 윤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은재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 돼서 윤호의 팔을 제 어깨에 둘러 부축한 채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윤호를 던지듯이 바닥에 내려놓고는 자신도 쓰러지듯 주저앉아 윤호를 노려보며 말한다.
“아우, 이 새끼! 대체 몇 키로야!”
“72.”
“......?!”
윤호의 말에 화들짝 놀라 몸을 낮추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윤호의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어, 엇!”
윤호가 은재의 팔을 잡아서는 그대로 끌어당긴다. 덕분에 은재는 윤호의 가슴팍에 제대로 이마를 부딪쳤다. 뼈도 단단하고, 근육도 단단해서 어디에 부딪혀도 아프다.
“아! 아프다고!!!”
은재가 윤호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며 소리치자, 윤호는 여전히 드러누운 채로 웃을 뿐이다. 윤호가 웃자, 흉골이 울려서 은재에게도 느껴졌다. 은재는 그대로 윤호의 가슴팍에 한 쪽 뺨을 데고 늘어졌다.
“가볍네.”
윤호가 말했다.
“난 60이니까.”
“말랐네.”
윤호의 손이 그대로 은재의 등을 쓰다듬는다. 재킷 위로 척추 뼈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너 정신 있으면 씻고 들어가 쳐 자라. 난 간다.”
은재는 여전히 윤호의 가슴에 얼굴을 데고 늘어진 채로 말했다. 윤호는 한동안 말없이 은재의 척추 뼈만 쓸어보았다.
“자고 가.”
윤호가 말했다.
“싫어.”
은재가 말했다.
“내일 내가 직접 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도 시켜줄게.”
“너 차 두고 왔잖아.”
“너보다 일찍 일어나서 가져오면 되잖아.”
“됐어. 너 아침까지 술 안 깰 것 같어.”
“아, 씹.”
“욕 하지 마. 나 지금 간다.”
“모범 타고 데려다 줄게.”
“…….”
은재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윤호의 가슴이 닿은 귀를 통해 차분한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왜.”
은재가 물었다.
“니가 운전하지 말라며.”
윤호가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뭐.”
“왜 나 자고 가라고 하냐고.”
“…….”
이번에는 윤호가 침묵했다.
“그냥.”
“…….”
윤호의 대답에 은재는 천천히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곧 상체를 세워 앉았다. 그리고 윤호가 아닌 정면으로 시선을 향한 채 말했다.
“간다. 아래서 상민이 기다려. 아, 너 데려다 준 거 한상민인 거 아냐?”
“…….”
윤호는 대꾸 없이 그런 은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센서 등이 꺼지면서 온통 어두워졌다. 현관에 난 세로로 긴 창에서 세어 나오는 빛이 유일했다. 푸르스름한 빛을 받으며 앉아 있는 은재를 윤호는 팔 하나를 뒤로해 베고 누워 감상하듯 바라봤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가 봐도 호감 형으로 잘생긴 얼굴이다. 이마가 동그스름하게 살짝 튀어나왔고, 적당히 높은 콧대와 동그랗고 매끈하게 잘 빠진 콧망울. 그리고 위아래 비율이 같은 입술과 매끈하게 마무리 되는 턱 선까지. 옆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빚어 놓은 듯이 완벽하게 예쁜 얼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절정은 큰 눈에 숱이 많고 적당히 긴 속눈썹이 천천히 닫혔다가 열리는 순간이다.
“걔 우리 동창인데, 넌 아마 모를 거야. 예전에는 축구 했었는데, 그만두고 지금은 대기업 비서실에서 일한데. 서연정 아버지 회사 말이야. 거기서 일한다고 하더라고.”
“…….”
“자냐.”
은재는 여전히 윤호를 보지 않은 채 물었다. 윤호는 그런 은재를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취기에 머리가 지근 거렸지만, 곧 괜찮아졌다.
눈앞에 니가 있으니까.
“자고 가.”
윤호는 그렇게 말하며 팔을 뻗어 은재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았다. 그러자 은재가 냉큼 손을 들어 윤호의 손가락을 쳐내려하는데,
“......?!”
윤호가 그대로 은재의 손을 잡아 제 품으로 끌어당겨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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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밝고 찬란한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다가온 스무 살의 봄은 아직 시렸다.
여름에도 시렸다.
“인사해. 여기는 내 친구들이고.”
“…….”
“얘는 내 여자 친구 박은지!”
은재의 말에 윤호는 살짝 미소를 띤 얼굴로 은재의 옆자리에 앉은 은지를 보고 있었고, 시현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써 노력하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절로 윤호에게 시선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윤호에게 들은 것은 없었다. 시현이 직접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묻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물어 답을 듣는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여전히 시현에게 윤호는 윤호이고, 은재는 은재일 것이다.
“난 강윤호야. 저 자식이랑은 중딩 때부터 친구고.”
윤호는 자연스러운 말투와 미소로 은지에게 자신을 소개했고, 그런 윤호를 보고 있던 시현도 곧 자신의 소개를 했다. 은지는 은재와 동갑으로 재수학원에서 만났다고 했다. 고로 은지도 재수생이었다. 155cm가 조금 넘는 작고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이미지가 있어서 은재랑 있으면 남매처럼 잘 어울렸다. 둘 다 취향도 비슷해서 보고 있으면 귀엽고 그냥 웃음이 날 것 같은 커플이었다.
“야. 니네 곧 방학이지? 그럼 우리 같이 놀러 가자! 바다 같은데!”
시현의 집에 모여 같이 술을 마시던 밤 은재의 말에 소파에 배를 깔고 누워 전공 책을 보던 윤호가 옅게 웃었다. 은재는 자신의 뒤에 있는 윤호를 보지 못했겠지만, 시현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어 그런 윤호의 표정을 분명히 보았다.
“야. 니네 커플 가는데, 우리가 왜 가냐…….”
대충 얼버무리며 맥주만 들이키는데,
“같이 가자. 재밌겠네.”
“…….”
윤호의 말에 시현이 멈칫한다. 은재는 바로 돌아서 윤호를 보며 말한다.
“그치?! 히힛! 아, 이런 거 로망이었는데!”
“후우…….”
시현은 절로 한 숨이 나와 작게 숨을 쉬어보았다.
“나 담배 사러 갔다 온다.”
윤호가 그 말을 하며 일어서자, 시현도 곧 윤호를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나 같이 가. 나도 맥주 사올게.”
“나도 같이 가!”
벌떡 일어나는 은재에 시현이 냉큼 날카로운 눈빛으로 냉정하게 말한다.
“넌 여기 청소해.”
“으씨…….”
은재는 바로 풀썩 주저앉아 주섬주섬 맥주 캔을 치운다. 시현과 윤호는 말없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각자 물건을 사서 편의점에서 나온 후 마침내 시현이 말했다.
“담배 펴라.”
“…….”
윤호가 시현을 봤다. 시현은 윤호를 보며 평소 같은 얼굴로 말했다.
“내 집에서는 절대 안 되니까. 여기서 피고 가.”
윤호는 피식 웃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시현은 그런 윤호 곁에 앉아 방금 산 캔 맥주 하나를 땄다.
“알았냐.”
윤호가 연기를 뱉으며 물었다.
“대충.”
시현은 짧게 대답하고 맥주를 마셨다. 윤호가 물었다.
“어떠냐.”
“뭘 어때.”
“게이.”
“풋.”
“근데 나 진짜 게이냐.”
피식 웃으며 말하는 윤호에 시현도 피식 웃으며 말한다.
“모르겠다. 그게 대체 뭐냐.”
“남자가 남자 좋아하면 그런 거라는데.”
“그게 뭐 다르냐.”
시현은 그 말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윤호는 살짝 고개를 돌려 시현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자 시현도 윤호를 본다.
“안 되는데.”
윤호가 말했다. 시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윤호의 말을 알아듣고는 웃음이 터진다.
“풋, 미친 놈.”
“니가 걔보다 덜 이쁜가보다.”
“아우. 말하지 마라. 소름 돋는다.”
“난 이미 돋았다, 새끼야.”
윤호의 말에 시현이 또 웃는다. 어느 새 다 마셔버린 캔의 중간 부분을 꾹 눌렀다. 식은 캔 표면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냥 둘 거냐.”
시현이 물었다. 윤호는 대답 없이 연기만 뱉어내다가 말했다.
“그럼 어쩔까. 쟤는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닥치고 있으면. 괜찮은데.”
“잘 살고 있겠지…….”
시현의 말에 윤호가 고개를 돌려 시현을 본다.
“내가 없어도, 없는 게. 더 나은 거겠지.”
시현은 물기가 흥건한 캔의 표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누가 더 불행하냐.”
시현이 물었다.
“그래도 만날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지만, 가질 수 없는 거랑.”
“…….”
“만날 수도 볼 수도 없어, 가질 수 없는 거랑.”
윤호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필터를 빨아들이고는 담배를 끄며 말했다.
“몰라, 시발.”
그리고 얼마 후 윤호도 여자 친구가 생겼다. 클럽에서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헤어졌다. 그 후로도 연락하고 술을 마시고 잠자리를 하는 여자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시현이 아침에 학교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타면 시현과 같은 건물 위층에 사는 윤호와, 그와 하룻밤을 보낸 여자와 마주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은재는 그 첫 여자 친구와 꼭 반년을 사귀었다. 여자 친구는 재수에 성공했고 대학생이 되었고, 은재는 재수에 실패한 후 입대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윤호와 시현도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다 같이 입대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가서 비슷한 시기에 돌아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사회에 있어도 뭔가를 위해 나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셋이서 보는 일이 줄었다. 휴가 때면, 윤호와 시현이 둘이 만나 소주 한 잔 하거나, 은재와 시현이 만나 맛 집에 가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제대를 하고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은재에게는 차마 윤호에게 대해 묻지 못하고, 윤호를 만났을 때 은재에 대해 물었다.
“니네 안 본지 얼마나 됐냐?”
“몰라.”
윤호는 소주잔을 들이키며 툭 내뱉듯 말했다.
“으응.”
시현이 묘하게 대답을 하니 윤호가 멈칫하고 시현을 본다. 시현도 소주잔을 들이키며 툭 내뱉듯 말했다.
“거의 다 왔데.”
“뭐가.”
“은재.”
“뭐?!”
“왜 피하는데.”
시현이 정색하고 물으니 윤호가 바로 얼굴을 피한다. 그러더니 일어서며 말한다.
“나 간다.”
“왔네.”
“......?!”
윤호가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은재가 보인다. 군대 가기 전에 보고 안 봤으니 거의 2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군대를 갔다 오면 좀 우락부락해져서 예비역 같은 모습이 아닐까 했는데, 그새 기른 갈색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어 찰랑거리고 있었다. 물기가 묻은 하얀 얼굴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고, 비에 젖어 옷이 달라붙어 적나라하게 드러난 얇은 몸뚱이도 여전했다.
“갑자기 비와! 오늘 비 온다고 했어?”
톤이 높고 활기찬 말투까지도 여전했다.
“훗.”
윤호는 조금 허탈한 얼굴로 웃었다. 2년 동안 노력했다. 잊으려고 애초부터 너 같은 사람 몰랐던 것처럼 잊으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오랜만이다, 윤호깡.”
“어.”
“너네 손수건 같은 거 없지?”
물기를 뚝뚝 떨어트리며 여전한 그 미소를 지으며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웃는데,
“내가 사올게.”
“어?”
윤호는 바로 술집을 나섰다. 정말 엄청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속으로 들어가자 순식간에 머리가 젖고 얼굴에 물기가 흥건해졌다.
그날 처음으로,
남들이 보는 앞에서 울어보았다.
비록 그들은 내가 우는 지도 모르겠지만…….
첫댓글 윤호야.... 은재야.... 시현아... ㅜㅜ
다들 안타까운 첫사랑을 놓지 못해서..ㅠ
보아주셔서 감사해요~
잘봅니다~~~
보아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