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팔로 대대
원제 : Sergeant Rutledge
1960년 미국영화
감독 : 존 포드
주제가 작곡 : 제리 리빙스턴
출연 : 제프리 헌터, 우디 스트로드, 콘스탄스 타워스
빌리 버크, 후아노 헤르난데즈, 윌리스 보취
칼리튼 영
19세기 미국 남서부지역 군부대, 요새의 지휘관 데브니 소령과 아직 10대 소녀인 딸 루시가 처소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루시는 성폭행을 당하고 담요로 덮어진 채 죽어 있었고, 데브니 소령은 총상을 입고 죽은 상황이었습니다. 재판장의 부인인 코델리아(빌리 버크)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 루시는 승마를 하고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흑인 럿리지 상사(우디 스트로드)와 함께 돌아갔고, 이른 시간에 총성이 울린 후, 럿리지가 부상을 입은 채 비틀거리며 말을 타고 그 요새를 떠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코델리아의 목격에 의하면 누가 봐도 영락없이 럿리지 상사가 범인인 셈입니다. 과연 이 사건의 내막은 무엇일까요?
미국 영화계의 거장 중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의 1960년 작품으로 그의 후기작에 속합니다. 존 포드의 서부극은 꽤 많지만 이 영화는 다른 서부극과 달리 많이 독특합니다. 우선 존 포드 영화중에서 보기 드물게 회상 형식으로 영화가 전개됩니다. 그리고 서부극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흥미진진한 법정영화입니다. 살인혐의를 받고 군사재판에 기소된 럿리지 상사와 그 재판의 변호인으로 참석해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캔트렐 중위(제프리 헌터)가 법정에서 벌이는 치열한 다툼이 주요 내용입니다. 모든 정황은 럿리지 상사에게 불리하고, 더구나 유색인종이라는 차별 속에서 사람들은 그를 교수대에 매달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설정 자체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콘스탄스 타워스, 존 포드 감독이 발굴해
'기병대' 버팔로 대대'에 연속 출연시켰다.
영화의 전개방식은 정말 아주 감질날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베일을 벗기는 형식입니다. 처음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될까지도 도대체 무슨 사건이 벌어진 것인지 짐작할 수 없고 두 부녀의 살해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부극이라는 소재를 살려서 아파치 수십명의 탈출과 습격도 함께 다루고 있고, 얼핏 서로 무관하 듯한 두 사건을 교모하게 엮어서 진실규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말 보기 드문 서부를 무대로 한 법정드라마 소재입니다. 서부극은 많고 법정드라마는 많았지만 두 장르를 이렇게 결합한 경우도 거의 없었고, 더구나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를 방불케 하는 미스테리한 전개는 시종일관 진실의 실체는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으로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듭니다.
존 포드 감독은 나름 흑백간의 문제를 소재로 하여 흑인자별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궁지에 몰린 럿리지 상사를 구해줄만한 희망이랄 수 있는 인물은 그를 오래도록 신뢰해 온 캔트렐 중위와 럿리지 상사에 의해서 아파치들로부터 목숨을 건진 메리(콘스탄스 타워스) 라는 젊은 여성입니다. 이 두 젊은 백인 남녀에 의해서 럿리지 상사는 실날같은 희망으로 힘겹게 재판을 이어갑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관, 변호사 등의 인물들이 럿리지 상사와 엮여있는 관계라는 점입니다. 재판관의 아내가 사건의 중요한 목격자이기도 하고, 변호인 캔트렐 중위는 럿리지 상사와 오래도록 친분이 있는 상급 군인이고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사건현장을 조사하고, 럿리지를 체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인인 메리와 그날 함께 만나기도 했고.
메리와 캔트렐 중위
역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메리는 역무원의
시체를 발견하고 놀라고 다시 난데없이 튀어나온
장신의 흑인을 보고 놀란다.
럿리지 상사에게 유일하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유리한 증인인 메리
메리는 동부에서 오래 살다가 12년만에 아버지가 사는 서부의 농장으로 왔고 오는 도중에 열차에서 캔틀렐 중위를 만났고, 캔트렐 중위는 아름다운 메리를 좋아하게 됩니다. 메리를 아버지가 마중나오기로 한 역에 내려주고 캔틀렐 중위는 떠났고,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메리는 역무원의 시체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그 때 심한 부상을 입은 럿리지가 나타나서 아파치족의 습격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알려주고 두 사람은 탈출한 아파치족 일부와 사투를 벌이고 겨우 살아남습니다. 언제 아파치가 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남녀는 역무실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메리를 구해주고 함께 밤을 보내면서도 예의를 지킨 럿리지 상사의 신사적 행동이 참고가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범행에 대한 반전이 될 수는 없는 상황, 더구나 검사측 대위는 강경한 인물로 럿리지 상사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럿리지가 무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대체 누가 부녀를 죽인 것인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흥미롭게 영화를 지켜보게 되지요.
존 포드 감독이 흑인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아마 이 영화를 요즘 만들었다면 철저하게 럿리지 상사 관점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실상 럿리지 상사가 주인공이어야 할 영화를 캔트렐 중위와 메리를 주인공처럼 이야기를 끌고가고 있고, 그러면서 '이것봐, 우리 백인은 너희 흑인에게 이렇게 관대하고 공정하기도 하지'라는 생색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재판이 마무리된 후의 이야기를 장식하는 것도 사실상 캔트렐과 중위와 메리가 하는 셈이고. 흑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모습이지만 왠지 그런 전개속에서 은근 백인 우월주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파치족의 흉폭함과 무자비함을 다루는 점도 씁쓸하고. 그래도 이 정도면 당시로서 상당히 진보적인 영화로 보여집니다.
한 때 쇼 비지니스의 절대적 거장인 플로렌즈 지그펠드의
아내였던 빌리 버크(오른쪽 할머니). 파산한 지그펠드의 곁을
끝까지 지켰고, 그의 사후에는 조연, 단역배우로 꾸준히
80세가 넘을때까지 활동했다.
이판사판의 궁지에 몰린 럿리지 상사
원제는 럿리지 상사인데 이 재판을 받는 흑인 상사의 이름이지요. 나름 흑인 캐릭터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관대함(?)을 보여준 셈입니다. 한국 개봉제는 '버팔로 대대'인데 아주 황당한 것은 아닙니다. 버팔로 대대 라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부대이고, 럿리지 상사가 속한 흑인위주로 구성된 9기병대가 추위를 파하기 위해서 버팔로 가죽을 입고 다녔고 그걸 본 인디언들이 그들을 버팔로 병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곡도 제리 리빙스턴이 작곡한 '캡틴 버팔로' 입니다. 뭐 9 기병대의 용맹함을 상징하는 노래이기도 하지요. 캡틴 버팔로, 즉 버팔로 대위는 그런 용맹한 기병대의 상징적 인물이고 그게 럿리지 상사를 비유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버팔로 대대' 보다 '캡틴 버팔로' 혹은 '버팔로 대위' 라는 제목이 더 어울렸을 수도 있지만 흑인들로 구성된 9기병대 전체를 상징으로 삼는 '버팔로 대대'라는 제목도 잘 지은 부분입니다. 영화중에서 오래도록 노예로 탄압받던 흑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9기병대에서 복무하는 부분을 강조하는 내용도 있고.
"9 기병대는 우리 흑인들을 기록할 것이고 우린 명예롭게 기록되어야 한다" 라는 럿리지 상사의 말이 굉장히 비장하게 들리는데, 오랜 차별과 노예생활을 딛고 명목상 자유를 얻은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 대신 더욱 명예롭고 당당한 군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자긍심을 지키며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약속의 땅"을 위해서 꿋꿋이 살아가자는 애잔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럿리지 상사 역의 우디 스트로드는 우리나라 관객분들에게는 '스팔타카스'에서 커크 더글려스와 1 : 1 결투끝에 승리하지만 상대의 목을 베는 것 대신에 로마 사령관에게 대항하는 용맹한 검투사로 인상깊에 기억되는 배우이고, '마상의 2인'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프로페셔널' 등 다수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조연으로 많이 나온 배우입니다. 샤론 스톤 주연의 '퀵 앤 데드'에서 장의사 역할을 한 것이 유작이었습니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순한 인상의 흑인 배우지요. 특히 존 포드 감독에게 선호되었는지 이 '버팔로 대대' 이후에 '마상의 2인'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등에 계속 출연했고 '리버티...'에서는 존 웨인의 충직한 하인 역으로 인상적 연기를 보였습니다. '버팔로 대대'는 그의 연기생활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역할이었던 '인생작'인 셈입니다.
"흑인도 인간이다" 라는 절규가 느껴지는 영화
'기병대'에 이어서 연달아 존 포드 영화에 출연한 콘스탄스 타워스
60년대 대표작 '충격의 복도'와 '네이키드 키스'와는 달리
매우 청순한 모습이다.
캡틴 버팔로를 상징하는 듯한 장면
주인공 캔트렐 중위역의 제프리 헌터는 '왕중왕' '수색자' '자랑스러운 사나이' 등 50-60년대 주연급 배우로 활약한 준수한 외모의 배우인데 뭔가 동시대 같이 활약한 로버트 와그너보다 2% 부족한 듯한 한계를 보인 배우이기도 합니다. 상대역인 메리역의 콘스탄스 타워스, 존 포드 감독의 '기병대'에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었고 이어서 바로 '버팔로 대대'에도 캐스팅되어 존 포드 감독이 모린 오하라에 이어서 발굴한 여배우가 될 것 같은 기대감도 가졌음직 한데 이후 대스타로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60년대 중반 독립영화의 거장 사무엘 풀러 감독의 '충격의 복도'와 '네이키스 키스'에서 30대 초반 여인의 관능미를 마음껏 과시하며 나름의 대표작으로 남겼는데 그 외에는 두드러진 작품 없이 TV에서 주로 많이 활동했습니다.
그 외에 주목할만한 배우로 빌리 버크를 꼽을 수 있는데 이 할머니는 쇼비지니스 무대극의 황제인 거성 플로렌즈 지그펠드의 아내이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까지 미국 최고의 쇼비지니스 거장이자 '지그펠드 걸'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한 전설적 인물인 지그펠드였지만 과도한 투자와 경제 대공황으로 파산상태가 되어 쓸쓸한 말년을 보냈 인물이지요 그런 지그펠드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생계를 위해서 다시 무대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살아갔는데 1932년 지그펠드 사망후 재혼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며 조연, 단역 배우로 평생 연기를 했습니다. '버팔로 대대'에서 수다스러운 할머니이자 재판관이 부인이며 사건의 결정적 증인으로 제법 비중있게 출연합니다. 당시 나이 76세, 플로렌즈 지그펠드와의 삶과 사랑을 가슴속에 묻고, 쇼비지니스 황제의 아내라를 화려한 삶을 잊은채 오래도록 조연, 단역배우로 아이 하나를 홀로 키우며 살아온 빌리 버크의 연기를 보면서 뭔가 애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마법사로 등장한 것이 익숙한 기억입니다.
존 포드 감독의 독특한 서부극이라는 재미 외에, 흑인 조연역할로 주로 익숙했던 우디 스트로드의 주연급 비중, 빌리 버크라는 상징적 인물의 출연, 서부극, 법정물, 미스테리 심리극 이라는 복합적 재미를 주는 내용 등 볼거리가 많은 영화입니다. 늘상 존 웨인, 헨리 폰다, 모린 오하라 등으로 익숙한 존 포드 영화들 외에도 이렇게 다른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은 것이 이 거장 감독의 장점이며 그래서 '버팔로 대대'는 꼭꼭 숨어있는 덜 알려진 존 포드 영화중에서 발굴해서 볼만한 재미를 충분히 갖춘 수작입니다.
ps1 : 당시 흑인들로만 구성된 9기병대 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것도 특이한 사실이네요.
ps2 : 캡틴 버팔로 라는 주제곡은 오프닝 타이틀과 엔딩에서 등장하는데 경쾌한 노래입니다. 대위는 보통 중대장이니 버팔로 중대가 맞는 제목일 수도 있지만 보통 집단 부대는 대대라고 많이 상징되니 그렇게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제목을 붙였다는 것은 이 영화의 내용을 상당히 깊이있게 이해한 부분이 있네요.
ps2 : 볼때마다 느끼는데 제프리 헌터는 분명 잘생겼는데 뭔가 매력이 2% 부족한 느낌입니다. 주인공으로는 포스가 좀... 아마 조연배우였다면 저렇게 잘 생긴 인물이 왜 조연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죠.
ps3 : 흑인에 대한 옹호를 나름 한 영화인데 그 대신 아파치의 흉폭함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은 다소 씁쓰레한 부분이지요. 흑인, 인디언 모두 백인들에 의한 오랜 피해자인데
ps4 : 럿리지 상사 라는 원제보다는 '럿리지 상사의 군사재판' 뭐 그런 제목이 더 어울렸을 것 같네요.
ps5 : 네이버 영화에 '러틀리지 상사'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데 러틀리지가 아니라 럿리지 입니다. 생뚱맞게 독일판 포스터가 메인으로 붙어있지요.
[출처] 버팔로 대대(Sergeant Rutledge 60년) 존 포드 감독의 이색 서부극|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