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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
출처 : 여성시대 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
ㅎㅇ 여시들
오늘은 유럽 왕실의 혈우병 & 러시아 혁명과 로마노프 황실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음. 생물학과 역사 둘 다 다뤄야 해서 복잡할 수 있지만 어차피 나도 얕은 지식으로 떠드는 거니까 겉핥기만 할 거임. 그럼 ㄱㄱ
태초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음.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였음. 생물학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음.
혈우병은 간단히 말해서 피가 안 멈추는 (느리게 멈추는) 병임. 사람이 살다 보면 다쳐서 피가 날 수 있음. 이때 혈소판과 혈액 응고 인자가 같이 피딱지를 만들어 출혈을 멈춤. 근데 혈우병 환자는 이 응고인자가 부족함. 따라서 상처가 나도 지혈이 잘 안 되고, 다른 사람보다 피를 오래 흘림. 이게 심각하면 과다출혈로 죽는 거임.
제일 무서운 건 내출혈임. 혈우병 환자는 내출혈 경우에도 피를 많이 흘리는데, 이 다량의 피가 혈종이 되면 주변 조직을 압박함. 이게 심하면 해당 조직이나 근육이 영구적으로 손상돼서 신체에 장애를 가지게 됨.
인간에게는 23개의 염색체가 있고, 그중 마지막이 성염색체임. 남성은 XY / 여성은 XX인데 부모에게서 각각 한 개씩 물려 받음. 여성은 X밖에 없으니까 어머니는 자식에게 당연히 X 염색체를 물려주겠지? 아버지의 경우 X를 물려줄 수도 있고, Y를 물려줄 수도 있음. 아버지가 X를 물려주면 XX가 돼서 딸이 태어나는 거고 Y를 물려주면 XY가 돼서 아들이 태어나는 거임.
혈우병은 이 X염색체에 결함이 있을 때 발생하는 유전 질환임. 또한 열성인자임. 따라서 여성 혈우병 환자는 없고, 여성 보인자만 존재함. 아직 무슨 소리인지 이해 안 되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보여주겠음.
결함 없는 X 염색체를 X / 결함이 있는 염색체는 X' 라고 표기하기로 약속해보자.
혈우병 환자인 남성의 성 염색체는 X'Y 임. 하나뿐인 X 염색체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자동으로 혈우병 항질이 발현됨.
여성의 경우 X'X임. X 염색체 하나에만 결함이 있는 거임. 혈우병은 하나의 염색체에 결함이 있더라도 다른 쪽이 보완해줄 수 있음. 따라서 이 여성은 혈우병이 발병하지 않음. 다만 이 여성의 염색체에는 분명히 결함이 존재하지?
이 여성이 자식을 낳을 때, 결함 없는 염색체를 물려주면 자식은 혈우병이 발병하지 않음. 하지만 결함이 있는 X' 염색체를 자식에게 물려줄 경우 자식도 혈우병 인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임. 이런 케이스를 보인자라고 부름. 병이 발병되진 않았지만 발병의 원인인 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뜻임.
자, 심화 예시로 혈우병 환자인 남성 + 혈우병 보인자가 아닌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가정해보겠음. 이걸 유전자로 보면 <X'Y + XX = ?> 라는 식이 나오겠지.
이 아이가 아들일 경우 아버지에게선 Y, 어머니에게서 X를 물려받을 거임. 즉 아들은 XY, 혈우병 환자가 아님.
반대로 딸이면 아버지에게서 X', 어머니에게서 X를 물려받아 X'X가 됨. 따라서 혈우병 환자인 남성의 딸은 무조건 혈우병 보인자로 태어남.
어머니 아버지 둘 다 혈우병 인자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X'Y + X'X = ?> 임.
아들은 XY / X'Y 둘 다 가능함. 어머니의 염색체 중 어떤 것을 물려받느냐에 따라 혈우병 환자일지 아닐지가 결정됨.
딸의 경우 아버지한테서 X'를 물려받음. 어머니가 결함 없는 X를 물려주면 X'X가 돼서 혈우병 보인자로 태어나겠지? 근데 어머니도 결함 있는 염색체를 물려줘서 X'X'가 되면 어떻게 될까?
답은 태어나기 전에 죽는다임. X 염색체 둘 다 결함이 있는 여아는 거의 100프로 확률로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사망함. 비단 혈우병 뿐 아니라 X 염색체 결함으로 발병하는 다른 유전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혈우병은 종류가 다양하고, 그중 C형은 4번 염색체와 관련 있기 때문에 여성 혈우병 환자도 존재함ㅇㅇ. 다만 혈우병 환자의 80프로인 혈우병 A형은 위에서 설명한 X 염색체 결함으로 발병함. 고로 혈우병 A형의 경우 여성 보인자만 존재할 뿐 여성 환자는 없음.
이제 역사 이야기로 돌아가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있음.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였음.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여왕의 아버지가 50살 넘어 낮은 늦둥이라 돌연변이라는 설이 유력함.
막간으로 생물학 상식 하나 더 알려주자면, 여성과 남성의 생식세포는 구조 자체가 다름. 여성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난자가 있음. 난자 갯수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세포 주기 진행 없이 계속 머물러있음. 물론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난자도 같이 노화되지만 돌연변이 발생 확률은 남성에 비해 낮음.
반대로 남성의 경우 정원세포가 평생 분열함. 분열을 많이 한다는 건 DNA 복제를 그만큼 많이 한다는 뜻임. 복제를 많이 하면 에러가 생길 확률도 높겠지? 이런 변이를 드노보 뮤테이션이라고 함. 대충 계산하면 남성이 여성보다 4배보다 높음. 즉 아버지가 자녀에게 변이된 유전자를 물려줄 확률이 어머니에 비해 4배 정도 높단 거임.
즉, 아버지가 나이가 많으면 자녀가 돌연변이 인자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아짐. 빅토리아 여왕의 경우가 이쪽임.
(어머니의 경우에는 나이가 많을수록 염색체 배분 오류가 늘어나서 염색체 숫자가 증가할 확률이 높아짐. 염색체가 2벌이어야 하는데 3벌이 되는 거임. 이런 경우 대부분 자연유산 되지만 21번 염색체는 생존함. 이게 다운증후군임. 그래서 산모가 노산인 경우 선전검사를 권유하는 거 ㅇㅇ)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은 금슬이 몹시 좋았음. 빅토리아 여왕은 보인자라 혈우병 증상이 없었고, 남편 앨버트 공은 혈우병 환자가 아니었음. 둘은 4남 5녀를 낳았고, 그 중 둘째딸 앨리스, 막내딸 베아트리체, 막내아들 레오폴드가 혈우병 인자를 물려받음. 레오폴드는 혈우병으로 사망함.
여왕이 재위하던 19세기에는 귀천상혼이 있었음. 간단히 말하자면 왕족은 왕족이랑, 귀족은 귀족이랑, 평민은 평민이랑 결혼해야 함.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은 유럽의 다른 왕족과 결혼했고, 여왕은 손자 42명에 증손자 85명을 둬서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음. 물론 그 덕에 혈우병 인자도 같이 퍼짐 ㅇㅇ
대충 표로 정리하자면 이럼. 노란색 동그라미 친 게 현 영국 왕실인데 저쪽은 혈우병이 없음. 우리는 오늘 파란색 동그라미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거임.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인 앨리스 공주는 혈우병 보인자로 태어났고, 헤센 대공국의 대공비가 됨. 대충 독일이라고 생각하면 됨.
앨리스는 2남 5녀의 자식들 중 둘째 아들 프리드리히를 가장 사랑했는데, 프리드리히는 어머니의 혈우병 인자를 물려받아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고 1873년 4살의 나이에 창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사망함. 피가 멈췄다면 살았을 가벼운 부상이었지만 혈우병으로 인해 피가 멈추지 않아서 과다출혈로 사망함.
겨우 4살이던 아들을 잃은 앨리스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림. 그러던 중 1878년 헤센 대공국에 디프테리아라는 전염병이 돌고 일곱 아이 중 막내인 마리 공녀가 사망함. 아들을 잃은지 몇 년만에 다섯살짜리 딸까지 잃어버린 앨리스는 절망했고, 디프테리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함.
여담으로 앨리스 공주의 장남이자 헤센 대공국의 유일한 직계 남성인 에른스트가 대공이 되는데, 에른스트한테는 게오르크와 루트비히라는 두 아들이 있었음. 루트비히가 결혼할 때 게오르크가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아내&자식들이랑 다 같이 비행기를 탔다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1937년에 다 죽음. 이후 루트비히가 후손 없이 죽었기 때문에 헤센 대공국의 직계는 끊겼음.
앨리스 공주의 사망일과 아버지 앨버트 공의 사망일은 둘 다 12월 14일이고, 대공국 막내인 마리 공녀의 사망일과 헤센 대공가 비행기 사고 날짜는 둘 다 11월 16임. 먼가 무섭...
대공비인 앨리스가 사망했기 때문에 자녀들 중 맏이인 빅토리아 공녀가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를 보필해 궁정 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게 됨.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맏딸도 빅토리아인데, 후일 독일 제국의 황후가 돼서 딸을 낳음. 여왕은 첫 외손녀의 이름을 빅토리아라고 지어주길 은근히 원했지만 주변의 의견에 따라 샤를로테라고 지음. 이후 둘째인 앨리스 공주가 자기 맏딸의 이름을 빅토리아라고 짓자 여왕이 엄청 좋아하고 애를 예뻐했다고 함. 즉 빅토리아 여왕의 딸은 빅토리아 황후고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는 빅토리아 공녀인 거임. 책 읽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름 복붙 좀 적당히하지ㅅㅂ 소리가 안 나올 수 없음.
빅토리아 여왕은 어머니를 잃은 외손녀들을 안쓰러워했고, 편지를 자주 주고 받으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줌. 이후 빅토리아 공녀는 바른베르크 공자 루트비히랑 결혼하고 맏딸의 이름을 앨리스라고 지음. (환장)
이 앨리스 공녀는 그리스의 왕자랑 결혼해서 여러 자식을 낳는데 그중 셋째 딸인 체칠리아가 위에서 언급한 게오르크의 아내임. 즉 빅토리아 공녀에게 있어 체칠리아는 외손녀인 동시에 조카의 아내임. 개족보...
앨리스 공녀가 그리스 왕실 붕괴와 망명 등 사건을 겪으면서 조현병에 시달리자 빅토리아 공녀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외손자 외손녀들을 돌보게 됨. 그 외손자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사망한 필립 공임ㅇㅇ 엘리자베스 2세 남편 ㅇㅇ
유럽 왕실 이야기를 하면 자꾸 딴길로 새게 되는데 이러다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음.
이 사람은 앨리스 공주의 둘째 딸인 엘리자베트 공녀임.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고, 빅토리아 공녀의 동생임. 엘리자베트는 성격도 매력적이고 당대 유럽 왕실 최고의 미녀로 손꼽힐 정도로 예뻐서 인기가 엄청 많았음.
여러 왕자들의 청혼을 받은 엘리자베트는 그중 러시아의 대공인 세르게이와 결혼함. 러시아 황제인 알렉산드르 2세의 다섯째 아들임. 한국식으로 말하면 왕자 ㅇㅇ
엘리자베트와 세르게이의 결혼식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서 성대하게 열림.
엘리자베트의 여동생인 알릭스, 세르게이의 조카인 니콜라이도 이 결혼식에 참석함. 열두 살의 공녀와 열여섯 살의 황태자는 서로에게 반함.
10년 후, 알릭스와 니콜라이는 드물게 연애결혼을 함. 당시 러시아 황실의 일원이 되려면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해야 했음. 언니 엘리자베트는 대공비여서 비교적 주목을 덜 받을 수 있었지만 알릭스는 무려 러시아의 황후가 될 몸이었음.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의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극구반대했지만 사랑에 빠지면 어른 말이 안 들리는 게 국룰 아니겠음?
알릭스는 니콜라이와 결혼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고, 이름도 러시아 식으로 개명함. 이렇게 해서 헤센의 공녀 알릭스는 알렉산드라 황후가 됨.
드물게 연애결혼까지 했으니 행복했으면 좋았겠지만...알렉산드라 황후 앞에는 고난이 많았음.
최초의 고난은 고부 갈등이었음. 이 이야기도 좀 재밌으니까 딴길로 살짝 새보겠음.
다우마는 원래 덴마크의 왕족이었음. 어머니 루이제는 자식들 결혼에 엄청 신경 쓰는 열성 엄마였고, 어마어마한 농사를 지음. 큰딸은 영국의 왕인 에드워드 7세랑 결혼 시켜서 영국 왕비를 만들고, 장남은 덴마크 왕, 차남은 그리스 왕을 시킴 ㄷㄷ...
이 차남이 요르요스 1세인데 요르요스 1세의 아들인 안드레아스가 위에서 필립 공의 아버지임. 즉 필립 공은 원래 그리스 왕족. 엘리자베스 여왕이 먼저 반해서 엄청 쫓아다녔고 결혼할 때 덴마크&그리스 왕자 신분과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귀화함.
할배 젊을 때 보면 반할 만 했음ㅋㅋㅋㅋ둘이 처음 만났을 때 필립은 18살이고 엘리자베스는 12살이라 필립 눈에는 걍 애기 같아서 관심 전혀 없고, 엘리자베스가 꾸준히 편지랑 소포 보내는거 마지못해 가끔 답장해주는 수준이었는데 엘리자베스가 몇 년을 안 포기하고 계속 들이대서 결국 필립도 감긴 거임ㅋㅋㅋㅋㅋ
루이제가 존나 대단한 엄마였기 때문에 둘째 딸인 다우마도 러시아의 닉사 황태자와 약혼함. 둘은 정략결혼이긴 해도 서로 나름 애정이 있었는데, 약혼 다음 해에 닉사가 수막염으로 사망함.
당시 차르인 알렉산드르 2세는 개혁을 꿈꾸는 군주였고, 자기 개혁의 파트너인 총명한 닉사 황태자만 집요하게 편애했음. 닉사는 죽으면서 아버지에게 동생 샤샤는 참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니 그 애를 잘 돌봐달리고 유언을 남겼고, 샤샤에게는 약혼녀 다우마를 부탁함.
닉사가 죽자 샤샤가 황태자가 됨. 알렉산드르 2세는 샤샤에게 다우마랑 약혼하라고 명령함.
....?....
이게 뭔 형사취수제여.
샤샤는 어머니의 시녀를 사랑했지만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형의 유언을 지킬 겸 다우마와 결혼함. 그래도 결혼한 다음에는 평생 다우마를 아껴줬고 아내한테만 충실해서 당대 상류층 남자들은 흔하게 두던 정부를 한 명도 안 뒀다고 함. 오오 쉐끼...
샤샤는 이후 러시아의 차르가 돼서 알렉산드르 3세가 되고, 다우마는 러시아의 황후가 됨. 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알렉산드라 황후의 남편인 니콜라이 2세임 ㅇㅇ
시어머니인 다우마는 타고나길 엄청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고, 평생 친정 식구들과 친하게 지냄. 반대로 며느리 알렉산드라는 7살이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을 경험한 영향으로 우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성장함. 다우마는 원래 점찍어둔 며느리가 따로 있었는데다 알렉산드라랑 성격이 상극이었음. 결정적으로 다우마의 친정인 덴마크는 쉴레스비그-홀스타인 전쟁으로 인해서 독일이랑 사이가 존나 안 좋았는데 알렉산드라의 친정인 헤센 대공국이 독일임ㅎ...그래서 이 둘은 평생 고부 갈등을 겪음.
또한 러시아는 여성의 황위 계승이 불가능해서 황후가 무조건 아들을 낳아야 했음. (원래는 가능했는데 예카테리나 여제의 아들인 파벨 1세가 법을 바꿔버림.)
알렉산드라는 이걸 몰랐다가 결혼하고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고, 주변의 독촉 때문에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함. (황태자랑 결혼하면서 그 나라 상속법도 안 찾아봤나 싶긴 한데 뭐 몰랐다니까....)
알렉산드라 황후는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샤 네 공주를 낳은 끝에 막내로 아들 알렉세이 황태자를 얻음. 뭐 아들 낳았으면 된 거 아니냐고?
응 혈우병.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인자는 앨리스 공주 -> 알렉산드라 황후를 거쳐 증손자 알렉세이 황태자까지 유전됨.
알렉산드라 황후는 연애 결혼을 한 만큼 금슬이 좋았고, 당시 황족으로선 드물게 모유수유를 할 만큼 자식들에 대한 애정고 각별했음. 더군다나 알렉세이 황태자는 겨우 얻은 귀한 후계자라 더더욱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큰 의미였음.
혈우병은 현대에도 완치할 수 없는 병임. 지금보다 100년도 더 전인 20세기 초반에는 어땠겠음? 더군다나 위에 말했듯 알렉산드라 황후의 바로 위 오빠인 프리드리히 공자는 1873년 혈우병으로 사망했음. 알렉산드라 황후는 1872년에 태어난 후 어머니가 사망한 1878년까지 짧은 시간 동안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지켜봤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우울하고 예민한 성향을 지닌 채 성장함.
뭐 황태자니 후계자니 이런걸 제쳐두고 생각해도 어머니로선 참 절망적이고 미안한 일임. 알렉산드라 황후는 용하다는 의사를 전부 불러 알렉세이 황태자를 고쳐달라고 애원했지만 지금도 완치 못하는 병을 그 시절 의학으로 어케 고치겠음? 알렉산드라는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며 신경쇠약까지 앓다가 한 남자를 만나는데...
라스푸틴 ㄷㄷㄷㅈ
라스푸틴은 알렉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을 약간 호전시킴. 글도 못 읽는 양반이 대단한 천재 의사였을 리는 없고 그냥 아다리였음.
알렉세이는 유일한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혈우병으로 병약했고, 어린 시절부터 죽음 가까이에 살았음.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할 거란걸 은연중에 알아서 누나들한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식의 비관적인 이야기를 함. 친구들이 노는걸 지켜만 봐야하지만 황태자기 때문에 공식석상에 참여해야 했고, 알렉세이는 신경질적인 소년으로 자람.
라스푸틴은 사람을 홀리는 말빨을 타고난 인간이었음. 늘 사무적인 의사들을 마주하고 살던 알렉세이에게 자상한 아저씨의 재밌고 편안한 위로는 최고의 처방이었음.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이 괜히 있는건 아니잖음.
글구 당시 의사들은 알렉세이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했는데, 라스푸틴이 신비한 척 하려고 처방에 간섭하면서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함. 근데 아스피린은 해열 진통에 효과가 있는 대신 혈액 응고를 막는 부작용이 있었음. 즉 혈우병 환자한테는 독과 같은 것ㅇㅇ 의사들도 몰랐던 부작용을 라스푸틴이 알 리는 없고 역시 아다리. 이래서 운빨이 중요하단 거임.
알렉세이는 꽤 호전해서 자랐고, 세계 1차 대전에 비록 후방이지만 참전할 수 있게 됨. 혈우병 완치법은 여전히 없었지만 훌륭한 황제가 되고 싶다는 꿈도 키우게 됨.
니콜라이 2세 부부, 특히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라스푸틴은 구원자 그 자체였음. 언니 엘리자베트 대공비를 비롯한 주변 친척들은 라스푸틴이 사기꾼이란 걸 눈치 채고 라스푸틴을 멀리 하라고 경고했지만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을 절대적으로 신임했음. 시어머니 도우마도 라스푸틴을 싫어했기 때문에 미신에 집착하고 요승에 휘둘리는 며느리를 더더욱 한심해했고, 고부 갈등이 극에 달하며 스트레스를 받은 알렉산드라가 라스푸틴에게 더 의존하는 식의 악순환이 이어짐.
이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니콜라이 2세는 전쟁에 참전하고, 국정을 돌보는 건 황후인 알렉산드라의 책임이 됨. 라스푸틴을 신봉했던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이 국정에 참여하게 함. 라스푸틴은 러시아 최순실이 되어 가혹한 세금을 매기고 국정농단을 일 삼았고, 러시아 국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져서 알렉산드라 황후와 황실까지 증오하게 됨.
당시 유스포프 공작이란 귀족이 있었음.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인 크세니아 공주의 딸 이리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니콜라이 2세의 조카사위인 고위귀족임.
권력에 취한 라스푸틴이 아내 이리나에게 집적거리자 분노한 유스포프 공작이 주축이 되어 엘리자베트 대공비의 양자인 드미트리 대공 등이 합심해 1916년 12월, 라스푸틴을 암살함. 알렉산드라는 평소 라스푸틴을 경계한 언니 엘리자베트가 이 암살에 관여했다고 믿어서 언니랑 사이가 나빠졌고, 니콜라이 2세도 사촌동생인 드미트리 대공을 국외추방 시킬 만큼 분노함.
어떻게 라스푸틴은 처단했지만 이미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황실 가족은 모조리 총살 당하고 소련 연방이 세워지며 로마노프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짐.
자기가 생존한 러시아 황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고, 특히 막내 아나스타샤 공주를 사칭하는 사람이 많아서 애니메이션까지 나왔는데 최근 황족들의 시신이 발견됐고 유전자 감식 결과 생존자는 없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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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좀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임. 라스푸틴의 비선실세 노릇이 러시아 혁명의 기폭제가 된 건 맞지만 저게 전부는 아님. 저렇게 간단할 리가 없잖음....?
시작은 크림 전쟁임. 나이팅게일 위인전에 자주 나오는 그것ㅇㅇ
1853년 당시 러시아는 상당한 강국이었음. 현재 우크라이나 땅인 크림 반도를 점령한 러시아는 흑해를 통해 남하하려고 했는데, 흑해는 대대로 오스만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음. 러시아가 너무 강해지는 걸 경계한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면서 러시아VS연합군 형태의 전쟁이 3년 동안 이어지는데 이게 크림 전쟁임.
러시아는 참패했고, 파리 조약을 체결하고 흑해 근처 요새를 전부 철거하게 됨. 자신만만했던 러시아인들에게 크림 전쟁의 패배는 큰 충격이었음. 황태자였던 알렉산드르 2세는 패전 원인을 분석하며 대대적인 개혁과 근대화를 결심하게 됨.
차르가 된 알렉산드르 2세가 1861년, 개혁의 일환으로 농노를 해방시킴. 엥 존나 좋은 거 아니냐고?
농민들은 농지에서 해방되는 대신, 엄청난 금액을 토지상환금 명목으로 국가에 내야했음. 즉 과거에는 봉건적인 제도에 의해 종속됐다면 이제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거임.
당시 러시아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많을수록 농지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음. 따라서 출산율은 증가하고, 인구는 점점 많아짐. 근데 농사 지을 땅은 한정돼있으니 대다수의 농민들은 토지를 포기하고 도시로 이주해 산업에 참여하게 됨.
고용주들이 정당한 임금을 줬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음. 넘쳐나는 게 인력인데 뭐하러 복지를 챙겨줌. 반항하면 걍 해고하고 다른 사람 고용하면 됨.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은 고통 받게 됨. 일은 일대로 많이 하는데 돈은 적게 받는 거임. 이건 비단 러시아의 문제만이 아니라 당시 산업화가 진행되던 국가들 대부분 이랬음. 영국의 유명한 연쇄살인마인 잭 더 리퍼의 배경에도 이런 산업화의 어두운 이면이 깔려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가난과 굶주림에 고통 받던 노동자들은 하나둘 공산주의에 눈을 뜨게 됨.
공산주의의 이념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 임. 파업과 노동조직 결성을 해서 복지 법안을 만들어봤자 당시 부르주아들은 이런저런 편법을 써서 계속 노동력을 싼값에 착취했고, 불평등한 계급과 부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공산주의 사상이 점점 퍼지며 혁명의 발판이 마련됨.
니콜라이 2세는 인격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지도자로서는 최악이었음. 능력이 없으면 남 말이라도 잘 들어야 하는데 꼴에 고집 있어서 남 말도 안 들음.
다만 러시아 백성들 사이에서 차르는 신과 같은 존재였음. 세계사 공부하다 보면 왕권신수설 한 번씩 들어봤을 거임. 말 그대로 왕권은 신께서 내려주셨다는 절대적인 사상임. 러시아 백성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충성심이 강했음.
1904년 러일전쟁에서 대참패하는 굴욕을 겪은 후에도 황실을 끌어내리는 대신 입헌군주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만 할 뿐이었음. 불곰국 이미지에 비해 존나 온건함;;
하지만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지면서 혁명에 불이 붙음
1905년 1월 22일 일요일, 배고픔에 지친 노동자들은 성당에 가는 대신 러시아 제국의 국가를 부르면서 니콜라이 2세가 사는 겨울 궁전으로 향함.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시위였음.
이때만 해도 노동자들은 차르에 대해 반감이 없었음. 오히려 이 암울한 상황을 도와줄 사람은 차르 뿐이라고 믿었고, 황제의 초상화를 앞에 걸고 행진함. 위대한 차르라면 우리 말을 들어주리라 믿고 애국심과 충성심을 드러내며 호소하러 간 거임.
니콜라이 2세는 휴가를 가서 궁전에 없었음. 황제 군대는 시위대를 막아서고 일방적으로 발포했고,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함. 니콜라이 2세는 존나 무능해서 주변 귀족들이 걍 발포하면 해결됨ㅇㅇ 하니까 ㅇㅋ ㄱㄱ 이지랄함. 황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평화적으로 행진하던 백성들이 대화 한 마디 못해보고 황제의 군대에게 학살 당한 거임.
차르에 대한 절대적 숭배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무너짐. 이전까지는 전제군주제 폐지와 노동 환경 개선이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군주 자체를 부정하고 황제의 퇴위를 요구하게 된 거임.
여담으로 전제군주제와 입헌군주제의 가장 큰 차이는 헌법임. 전제군주제에서 군주란 헌법을 초월하는 존재고, 입헌군주제의 군주는 헌법 아래에 존재함. 처음에는 헌법이고 지랄이고 무시하던 전제군주들의 권한이 점점 약해지면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되는 거임.
이 과정에서 러시아나 구한말처럼 왕실이 무능하면 왕실이 소멸 되는 거고, 비교적 평화롭게 자기 권리를 내려놓으면 영국처럼 상징성을 가진 입헌군주국으로 남는 거임. 한국 사람들은 입헌군주제를 보고 왜 왕실을 폐지하지 않는지 의아해하거나 한심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입헌군주제 국가의 국민들이 왕실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 않은 케이스가 더 많음.
입헌군주제가 2021년에도 현존하는 이유는 나라마다 다름. 리히텐슈타인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왕실 돈으로 나라를 먹여살리는 수준이고, 왕실이 대체로 부유한 게 은근 큰 영향을 미침. 사상적 갈등이 심한 국가의 경우 국민의 통합을 위한 상징적인 토템으로서 왕정복고를 원하기도 함. 정치가 여러 정당으로 나뉘어 분열하는 이미지라면 군주의 존재는 통합의 상징인 거임.
물론 스페인처럼 왕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스캔들 터뜨리는 경우에는 군주제 폐지 여론이 더 클 수 있지만 엘리자베스 2세처럼 모범적인 군주라면 말이 다른. 입헌군주제의 군주는 생각보다 큰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음. 권력도 없는데 왜 왕실을 두냐? 라는 의견과 정반대인 거임. 왕실이 순순히 권력을 의회에게 넘기기까지 했는데 굳이 왕실을 폐지하면서까지 큰 변화를 추구할 이유가 없는 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피의 일요일 사건을 기점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점점 격렬해지고 포템킨이라는 전함에서 해병들이 반란을 일으킴. 조선의 임오군란처럼 부당한 처우에 반발한 군인들의 반란임. 물론 소규모에 실패했지만 전제정권의 근거는 강력한 군사력이었고, 군대 내에서까지 반발이 일어나자 니콜라이 2세도 위기감을 느낌.
니콜라이 2세는 전제정을 지키기 위해 10월 선언을 발표하고 두마, 즉 의회를 만듬. 보다시피 황제 사진이 맨 앞에 걸려있는데다 투표권도 지주의 1 표 = 노동자의 540표로 책정되는 식의 불평등 개혁이었음.
하지만 거의 중세시대나 다름없던 러시아에 의회가 등장한 것만 해도 꽤 센세이셔널했고, 유능한 총리가 등장해 경제도 조금씩 안정됨. 음...혁명은 없던 거로 가나? 싶던 찰나에
세계 1차 대전이 터짐
러시아는 민족주의 뽕에 취해 참전하고, 처음에는 국민들도 황실을 지지함. 하지만 러시아는 패배를 거듭하고 라스푸틴의 폭정도 점점 심해짐. 정부는 군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화폐를 찍어내고, 화폐가치는 자연스럽게 하락함. 물가가 폭등하자 빵 같은 생필품도 자연스럽게 구하기 힘들어짐.
노동운동에 다시 불이 붙고, 파업이 러시아 전역에서 일어남. 마침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됨. 초반에는 다소 온건적인 성향이었으나 (황제 일가도 구금만 할 뿐 죽이진 않았음)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음. 얘네는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을 추구했는데 (황제 일가 총살도 얘네가 함.) 볼셰비키의 독재에 반대하는 연합군이 등장하면서 러시아 내전이 발발함. 내전에서 볼셰비키가 승리하면서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이 결성됨.
사실 할 말 더 많았는데 초반에 계속 딴길로 새면서 떠들었더니 너무 졸려서...후반부는 대충 요약하고 마무리....
- 끗 -
첫댓글 존나 재밌다
나 심심하면 유럽 왕실 가계보 읽는 데 엄마아빠가 서로 육촌이자 사촌인 알 수없는 족보가 탄생하고 그러더라고.....
재밌다 요즘 긴글 잘 못읽는데 오랜만에 정독한거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