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은 재미있다.
실과 바늘을 잡고 뜨기 시작하면 예쁜 무늬가 엮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엮인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재주가 뜨개질이다.
그래서 만든 작품은 거의 선물용으로 주어진다.
나만의 충분한 재능기부라는 자부심과 함께. 뜨개질을 시작하면 몇 시간이라도 계속할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완성품을 받고 기뻐할 상대를 생각하며 저절로 몰입의 경지에 빠지는 것이다.
나의 뜨개질 역사는 오래되었다.
엄마의 뜨개질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자연스레 뜨개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입학 전 6세쯤일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도 뜨개질 하고 싶다."라고 졸라 실과 바늘을 잡게 되었다.
엄마는 겨울철이면 늘 손에서 실과 바늘을 놓지 않으셨다. 다섯 남매의 내복이며 양말 스웨터까지 떠서 입히셨다.
제일모직에서 생산하는 순모사로 중간 굵기의 장미실과 굵은 모사 공작실은 그 당시 우리 집의 필수품이었다.
타래로 된 실 몇 파운드를 사 오면 할머니께서 부드러운 공처럼 둥글게 감아주셨다.
그걸로 엄마는 긴긴 겨울밤 뜨개질을 하셨다.
모사는 가볍고 따뜻하지만 잘 헤진다는 단점이 있다.
무릎이나 팔꿈치에 구멍이 나면 다시 풀어서 꼬불꼬불해진 실에 더운 수증기를 쏘여 정성스레 다시 뜨곤 하셨다.
엄마의 재주를 물려받은 나는 60년이 넘도록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한동안은 구정 뜨개실로 레이스 뜨기에 심취해서 꽃병받침은 물론 식탁보나 피아노 덮개처럼 큰 작품도 만들어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장롱 정리를 하다 그 레이스 식탁보가 가지런히 귀 맞춰 갠 상태로 보자기에 싸여있는 것을 보고 울컥했다. 맏딸이 오랜 시간 정성들여 뜬 식탁보를 아까워 쓰지 못하고 간직해 오신 것이다.
지난해엔 어깨를 살짝 덮게 뜬 조끼를 입고 세 자매가 사진을 찍었다.
엄마 간병을 위해 애쓴 두 동생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언니의 작품이라고 환호했던 옷이다.
뜨개 방법은 도구에 따라 여러 가지다. 대바늘, 줄바늘, 코바늘, 아후강, 태팅, 헤어핀 등은 손뜨기 도구들이다.
내가 가장 즐겨 하는 도구는 코바늘이다.
코바늘은 대바늘보다 속도감이 있고, 대바늘처럼 코를 빠뜨리는 일도 없어 좋다.
오랜 세월 만들어낸 작품들을 다 모으면 엄청날 텐데 선물로 다 보냈고, 옛날에는 디카가 없어 사진으로 남겨놓지도 못해 아쉬움이 크다.
내가 좋아하는 이 뜨개질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을까?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오래된 자료에 의하면 2천~ 3천 년 전 중근동 지역에서 형성되어 세계 각지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값비싼 장식품이 아니라 실용품을 만드는 기술로 전승되었고, 문자로 남기는 일도 적어 각 지역의 환경과 민족성에 맞게 변화해 왔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뜨개질은 14세기경 유럽북부에서 여러 항구 지역의 여성들이 어망의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추위를 막으려 니트를 만든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북해의 차갑고 습한 날씨를 잘 막아주고 신축성이 좋기 때문에 배에서 일할 때 입는 작업복으로는 아주 좋았다고 한다.
실과 도구는 물론 뜨개방법과 디자인이 날로 발전하여 요즈음의 니트는 고급옷에 속하게 되었다.
이쯤에 이르자 나의 수세미 뜨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언젠가 반짝이는 실로 뜬 앙증맞은 수세미가 눈에 뜨여 노란색 실 한 뭉치를 사 왔다.
모눈종이에 하트 모양을 그려 도안을 만들고 코바늘로 완성하고 나니 정말 예뻤다.
대여섯 개 정도 만들어 싱크대에서 쓰고 남은 걸 초대한 친구 집에 가지고 갔다.
모인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쁘다고 칭찬하는 바람에 바로 다음 날 실 가게에서 한 보따리 사오고 말았다.
일이 커져버린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친구들의 칭찬에 수세미 뜨기에 올인 하다시피 했고 가까운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점점 범위가 넓어져 인연 있는 모든 사람으로 목표가 바뀌어서 실가게에 드나드는 횟수도 늘었고 지갑에서 나가는 금액도 커졌다. 한 개가 10개가 되고 100개가 되고, 정확하진 않지만 3,000 개쯤으로 추산하고 있다.
선물 받은 어떤 이는 뜨개수세미가 선물용을로 좋다며 따로 더 주문하기도 했다.
주고받기에 부담이 없고 정성이 든 물건으로 그만이라는 것이다.
수세미도 아이디어 상품이라 디자인이 한 몫 한다.
하트는 내 창작품이고 딸기, 파인애플, 원피스 모양은 기본 도안에 내 아이디어를 넣어 차별화했다.
이렇게 수세미 나누기를 하다가 만각(晩覺)이지만 깨달은 것이 있다.
역시 행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것을.
작업시간이 늘면서 손목과 어깨가 아파도 마음은 행복가득임을 자랑하고 싶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이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갖가지 수세미로 받아 내 가까운 분에게 도 하고
부엌에도 두개를 잘 쓰고 있는데 옥덕이 어깨 아파하는 것 보고
마음이 져려서 그만 뜨라는 부탁이 또 나온다
요즘은 전처럼 뜨개질에 올인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모양의 예쁜 수세미를 보면 뜨고 싶어요.
수세미를 사용할 때마다 선배님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정말 귀한 선물입니다.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고맙게 넙죽 넙죽 받아 잘 쓰지만 건강 생각 하셔서...이제 그만*^^*
강한 중독성이 있어서 갑짜기 귾으면 금단현상이 올 것 같아 조금씩 줄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