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영의정 감투를 쓴 수양대군이 전권을 휘두르던
단종 3년(1455) 2월 27일의 일이었다.
수양을 비롯하여 3정승 6대신과 그보다 더 많은 고관들이
일제히 어전에 엎드려 화의군(세종의 첫째 서자)을 탄핵했다.
화의군이 평원대군(세종의 일곱째 왕자)의 첩 초요갱과 간통했으니 문책하라는 상소였다.
그만 일에 온 고관대작이 우르르 몰려온 것은 화의군이 수양의 역심逆心에 반대하기 때문이었다.
단하에는 화의군과 초요갱이 잡혀와 꿇어엎드려 있었다.
“화의군은 외방으로 유배하고 초요갱은 곤장 80대를 쳐라.”
어린 단종은 수양의 의중을 꿰고 적당한 벌을 내렸다.
초요갱은 양대,옥부향,자동선과 함께 ‘한양 4기四妓’로 불리는 당대 최고의 상기上妓였다.
가무와 시,서,화에 두루 능하여 궁중잔치 단골멤버로 수양과 단종에게도 낯이 익었다.
그녀는 일찍이 장악원에 이름을 올려 궁중음악과 궁중무용에도 절정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위에 세종 때 박연이 창안한 궁중 무악舞樂을 모조리 익혀 요즘으로 치면
인간문화재 대접을 받는,기녀라기보다 궁중예술가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박연은 초요갱의 자질을 아껴 친딸처럼 그녀를 돌보며 무악을 지도했으니,
초요갱은 박연의 유일한 내제자였다.
절세의 팜므파탈인 초요갱은 대부분의 왕족들과 염문을 뿌리다가 평원대군에게 찜을 당했으면서도
다른 남정네의 추파에 그리 인색한 편은 아니어서 은근히 찾아들면 샅을 열어주곤 했었다.
화의군과 벌인 사통邪通도 일상사에 불과했다.
사실 초요갱에게는 아무 죄가 없었다.
말이 첩이지 집안에 들여앉혀 첩실대접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저 내킬 때 찾아와 요구하면 샅을 열어주는 사이일 뿐 생활도 홀로서기로 꾸려가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화의군이 누군가.
막강 권력자 수양의 이복동생으로 수양만큼 잔인한 인물이었다.
초요갱으로서는 화의군이 찾아와 노래를 부르라면 부르고 춤을 추라면 추고
속곳을 내리라면 내릴 수밖에 없었다.
거절했더라면 이미 화의군의 손에 아작이 났을 수도 있을 터였다.
아무리 기예가 출중해도 가녀린 아녀자의 몸으로 곤장 80대는커녕
열대만 맞아도 물고物故가 난다.
“나으리, 곤장을 치시려거든 차라리 소녀를 죽여주십시오.”
맞아 죽으나 장살杖殺을 당하나 마찬가지였다.
초요갱은 이 사단이 수양의 뜻임을 알고
용상의 어린 단종 대신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당돌하게 외쳤다.
“아니 이년이, 어느 안전이라고!”
수양의 심복 홍윤성이 살기등등하게 호통을 쳤으나 기왕지사 죽은 목숨,
초요갱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항변했다.
“곤장 80대를 맞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니와,
그 몰골로는 춤을 출 수 없으니 춤 못 추는 기생 살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사옵니까?
차라리 소녀를 죽여주옵시오.”
말없이 초요갱의 넋두리를 듣고 있던 수양은 일단 화의군을 유배한 뒤
초요갱 문제는 따로 논의하기로 하고 자리를 파했다.
대신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대사헌 최항이 형제간의 상피相避는 강상綱常의 문제이므로
화의군과 초요갱을 나란히 처형하라 주청했다.
조효문은 초요갱이 비록 중죄를 졌으나 세종조의 악무樂舞를 홀로 전습했으므로
목숨만은 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분한 논의 끝에 수양은 초요갱에게 속전贖錢을 내게 하고 방면했다.
속전은 두말할 것도 없이 평원대군의 쌈지에서 나올 터였다.
수양 또한 초요갱의 현란한 방중술을 떠올리며 그런 판결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3년 뒤 초요갱은 다시 한 번 정가를 뒤흔든다.
이번에는 계양군(세종의 10남)이 그녀의 집을 드나들며 상피를 붙은 것이다.
이때는 수양이 왕위를 찬탈한 뒤였다.
수양은 계양군을 불러 엄히 나무랐으나 계양군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어
수양의 용서를 받고 어전을 물러났다.
그러나 이미 성적 노예가 된 계양군은 그길로 초요갱의 집으로 찾아들었다.
초요갱은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불안했지만 감히 내칠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었다.
더구나 계양군 또한 성정이 난폭하여 언제 그녀의 목을 칠지 모르는 망나니였으니…
언젠가는 똘마니들을 보내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초요갱과 통정한 판사 변대해를 때려죽인 일도 있었다.
초요갱은 마지못해 속곳을 내렸으나 일단 불이 붙자 팜므파탈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에 주야장청 초요갱과 붙어살던 계양군은 오래지 않아 복상사했다.
초요갱은 뭇 남정네들의 끈질긴 구애를 거쳐 예장도감 판관 신자형의 첩실로 들어앉았다.
이번에는 신자형의 처조카 안계담이 첫눈에 초요갱에게 뿅 가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초요갱이 상피를 거절하자 신자형의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안계담은 사헌부의 탄핵으로 곤장 80대를 맞았다.
이 일을 두고 초요갱을 대하는 하인들의 박대가 자심해졌다.
이에 초요갱은 신자형에게 베갯머리송사를 했고,
신자형은 여종 둘을 때려죽인 걸로도 모자라 부인도 심하게 구박하기 시작했다.
사헌부의 탄핵을 접수한 수양은 신자형과 초요갱을 따로따로 유배에 처했다.
이후 함경도 변방으로 유배된 초요갱의 기록은 더 이상 사서史書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외로이 수직守直을 서는 장병들의 좋은 밤친구가 되지 않았을는지.
#. 팜므파탈 -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들도록
운명 지워진 여인.
주로 영화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이용해
남자 주인공을 유혹한 뒤 파멸시키는 악녀를 가리킨다'
이수광의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기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