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이야기
목필균
“현숙아, 병란이하고 오랜만에 한 번 뭉쳐보자.”
“좋은 생각이다. 병란이에게 연락해 보자.”
72학번 시절은 어느새 오십 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돌아보면 아득하지만. 꽃 청춘 그 마음은 여전하다.
되돌아가서 다시 살아가라면 싫지만, 춘천교육대학 석우 문학회로 활동하던 그 시절은 분명 꽃시절이다. 학보사에 투고도 하고, 봄에는 문학의 밤, 가을에는 교정 시화전에 출품하며 진지하게 시에 대해 논의했다. 그 시절 이외수 소설가와 함께 대학을 다녔다. 우리보다 아홉 살이나 위였던 이외수 소설가와의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우리 동기들과 이야깃거리로 남아있다.
석우 문학회 친구 중에서 체격도 다르고. 출신 고등학교도. 고향도. 반도 다르지만 시를 쓴다는 감성만으로 친해진 세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들 때문에 교육대학 2년은 짧지만. 소중한 인생 삽화를 그려놓았다.
세 친구 중 체격이 비교적 크고, 호탕한 병란이와, 체격은 작지만 무게감 있는 행동으로 무언가 가슴에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았던 현숙이. 예나 지금이나 야무지지 못한 나는 잘 어울려 다녔다.
병란이는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비상한 머리로 공부도 잘했고, 사람들과 친화력도 좋았다. 현숙이는 안성 출신으로 차분한 성격으로 조용조용 문학소녀의 면모를 갖추며 내면이 꽉 찬 친구이다. 모두들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기가 쉽지 않았던 그 친구들이다. 대체로 다둥이 집안이 대부분이었는데……. 여자들에게 더욱 대학 진학이 어려웠다. 그러나 교육대학은 학비가 저렴했고, 2년 졸업 후 초등 교사 임용이라는 특혜가 있어서, 각자 가정 사정에 따라 들어온 친구들이다. 우리들은 각자 가정사를 접어두고, 자유로운 대학시절을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게 보냈다.
졸업 후 각자 발령지가 서울, 강원으로 흩어지고, 중간에 서울, 경기로 바뀌면서 일 년에 한두 번 동창회서 만나거나, 애경사를 챙기며 만나는 일 이외에는 세 친구만 모여서 담소를 나누거나, 여행을 하는 시간은 갖지 못했다.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이 코로나 상황이 풀려가는 지난주 금요일에 안성서 뭉치게 된 것이다. 문학소녀에서 문학 할미가 되어서 만난 것이 너무 반갑고 설레었다. 안성 금광저수지 박두진 둘레길을 천천히 산책했다. 늦봄의 연초록이 물든 풍경이 찰랑찰랑 넘실대는 저수지 물결 속에 잠긴 나무들까지 절경이었다. 5월 모내기를 준비해서 저수지 물을 가두었기 때문이라는 현숙이의 설명이었다.
오랜만에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급함이 사라진 느슨한 시간과 일상이 대화 속에 배어 나왔다.
우리는 스무 살 언저리에서 각처로 초등 교사로 발령은 받고, 각자 결혼을 하며, 바빠진 일상으로 문학적 감성을 보이기엔 너무나 삭막한 일상이었는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고단한 일상에서 받은 상처를 위무하는 자원에서 시 쓰는 일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안성 친구도. 잠실 친구도 문학적 소양을 내보이지 않고 지내왔다. 사실 내가 장담 하건대 병란이도, 현숙이도 지속했다면 나보다 월등한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다들 자녀들 시집 장가보내고, 손주들도 본 나이에 퇴직까지 해서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병란이가 시조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열정적으로 배우며 시조를 쓰는 병란이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현숙이의 등단도 기대했지만, 현숙이는 내심 큰 그림 그리고 있는지……. 무언가 하게 되면 결과물을 보여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나절 동안 만남을 마무리하며, 다음 만남을 내가 살고 있는 안양으로 약속했다.
나이 들수록 묵은 정이 그리운가 보다. 문학소녀가 문학 할미가 되어도 건강이 허락하는한, 만남의 여유를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첫댓글
그저 잔잔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우정의
스토리가 아침을 기분좋게 만들어 주네요
코로나가 만든 장시간의 만남을 막은 덕분에
저 역시 모임을 못했습니다
한 친구는 군산에
또 천안에 그리고 일산 서울
저는 문경과 용인을 오가고 있구요
야외전축들고 트위스트 추며 놀던 친구들이
이 아침에 보고 싶네요
엊저녁 한 친구는 통화했으니
나머지 친구들 안부를 오늘은 알아 봐야 되겠네요
마음이 고향처럼 세 친구들은 익숙한 목소리와 몸짓이었습니다.
안성 박두진 둘레길도 아름답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걸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용인서 안성은 가까운 거리이니 추천 드립니다.
세 명의 예비 교사들이 초등 교사 임용 자격을 얻기위해 열심이 학문을 닦으면서도 교내 문학회 회원으로 시를 쓴다는 감성으로 만나 활동하던 그 짧은 시절은 분명 꽃 청춘이었지요..
어쩌면 사진속 둘레길의 주인공인 박두진 시인님과 함께 활약했던 목월 지훈님의 청록파와 같이 3인의 여류 시인이 태동할수 있는 무대였을텐데 아깝습니다..
하지만 노년에 다가선 이제 부터가 문학 할미로 편안하게 교류하는 시작점이라 보고 단단한 우정을 이어가시면서 소소한 행복을 즐겨보세요..ㅎㅎ
이제는 서로 건강을 걱정해 주고, 서로 하는 일을 격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오랜 우정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록의 아름다움으로 물든 요즘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입니다.
금광저수지 박두진 둘레길은 선배님께서도 가까운 곳이니 핑크 공주님과 나들이로도 좋은 듯 합니다.
@목필균 (18회) 강추하시는 금광저수지를 티맵에서 검색하니 58km가 찍히는군요.
교통이 원활하다면 1시간 거리이니 시도해 볼만 합니다.
워낙 물구경 좋아하는 핑크공주 이니 넓찍한 저수지 풍광을 만나면 환호할것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