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 강문석 -
![](https://t1.daumcdn.net/cfile/cafe/262816485718DE6E26)
<매혹과 잔혹의 커피史>를 쓴 미국인 마크 펜더그라스트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과테말라의 산 마르코스에 있는 커피농장을 직접 찾아 커피나무에서 커피가 생산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관찰한다. 그의 책 제목이 말해주듯 책 첫머리에는 커피에 대한 찬사와 탄원이 함께 등장한다. 저자의 관점이 아닌 객관적인 자료를 인용한 때문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아라비아인들이 즐겨 애송하는 커피를 찬미한 시는 ‘오, 커피여! 그대는 모든 근심을 쫓아주어 학자들은 그대를 탐하여 마지않는 도다. 과연 그대는 신과 벗하는 이들의 음료인지고’ 이러한 찬사와는 달리 커피를 반대하는 여성들의 모임이 단체로 커피를 탄원한 글은 잔혹함을 넘어 저주까지 묻어난다.
‘(왜 남자들은) 시커멓고 탁하고 맛도 고약하고 쓴데다 냄새도 불쾌한 흙탕물 같은 그런 걸 끓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허비하는지 모르겠다. 각성하라!’ 오래 전 5일간의 싱가포르 여행에는 말레이시아 투어가 하루 들어 있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만으로는 닷새를 다 소화할 수 없어서 가까운 나라까지 넣은 줄 알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커피농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으니 참으로 유익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느 나무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커피나무지만 농장에서 직접 만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일상에서 늘 접하며 애용하는 커피이니 그 나무를 늦게 찾은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원래 커피나무는 에티오피아 고원의 산기슭 열대 우림 속에서 자라던 관목이었다.
커피나무의 늘 푸른 상록수 잎은 반들반들한 타원형 모양이었다. 잎사귀도 열매와 같이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고 했다. 농장에서는 볶지 않은 상태의 커피 열매인 생두와 볶은 열매인 원두까지 손으로 직접 만져보았고 생산지 커피를 즉석에서 맛보는 체험까지 이루어졌다. 커피 생두도 땅콩처럼 한 쌍이 마주보며 자란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반세기 전 커피를 지나치게 탐하다가 받은 대가는 혹독했다. 벽걸이 달력 크기만 한 엑스레이사진을 서너 장 판독한 코쟁이 군의관은 위장에 천공boring이 생겼다는 진단결과를 알려주었다. 위장에 구멍이 났다면 환자의 생사가 걸린 문제지만 냉랭하게 대하는 미군 장교에게 영어가 짧아서 어찌해볼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주는 대용량 암포젤엠 물약 한 병만 들고 부대로 돌아와야 했다. 발병원인이 커피 때문이었다는 것을 의사에게 자백할 순 없었지만 통증으로 며칠을 고생하면서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고 있을 무렵의 남포동 다방에선 커피 한 잔이 120원이었고 당시 봉급은 칠팔천 원에 불과했다. 그러니 한 달 월급으로 커피 70잔도 못 마신다는 계산이 나온다. 봉급이 턱없이 낮았든지 커피가 턱없이 비쌌든지 둘 중의 하나였지만 그런 걸 따질 게재도 못되었다. 그래서 커피는 항상 그림의 떡이었고 범접할 수 없는 기호식품이었다. 그렇게 귀했던 커피를 원도 없이 마실 수 있는 세상을 만난 건 한국군에서 상등병을 달고 넘어간 미군부대에서였다.
호텔 레스토랑처럼 잘 꾸며진 부대 안 식당엔 커피와 우유 오렌지주스까지 나오는 기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골라서 먹을 수 있도록 벽면을 따라 나란히 붙어 있었고 초콜릿우유도 들어 있었다. 일과 중에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마실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쓰디쓴 커피를 마시면 얼마나 마셨겠는가. 문제는 식사의 분량에 있었다. 입이 짧고 비위가 약한 탓에 매일 빠지지 않고 식단에 나오는 칠면조 고기나 베이컨 같은 육류는 질려서 잘 먹어내질 못하면서도 미군 병사들을 따라 커피를 겁도 없이 자주 마셔댄 것이 화를 불렀던 것이다. 그때 위장병으로 몇 개월이나 고생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자체는 악몽이 아닐 수 없었다.
중독이 될 정도로 즐기던 커피를 하루아침에 끊고 치료를 받아야했으니 제대로 살맛이 났을 리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미제 위장약을 꾸준히 복용했고 한창 젊은 몸이었기에 그나마 회복이 되어 저승 행을 면할 수 있었다. 나라경제가 좀 나아지면서 직장 사무실마다 커피자판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30년 전이었다. 젊은 날 군대에서 커피에 호되게 쏘이고도 다시 하루에 대여섯 잔씩 커피를 마셔댔다. 자판기커피는 설탕과 크림이 우리 입맛에 딱 맞게 배합되어 순식간에 직장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커피 과용이 인체에 미칠 해악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모른다.
본인이 몸담은 사무실에서야 출근해서나 점심식사 후에 하루 보통 한두 잔 마시게 된다. 그런데 업무가 연관된 다른 사무실을 방문하면 묻지도 않고 커피를 내왔다. 그래서 마시다보면 과용이 되기 일쑤다. 담배까지 사무실에서 마음대로 피우던 시절이라 흡연 후의 커피 맛은 몸에 짜릿한 전율까지 일으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에도 크림이 든 자판기커피가 인체의 혈관에 끼치는 악영향을 경고하고 있었지만 커피 마시기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급기야는 코리아의 믹서커피가 지구촌 전체로 뻗어나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기호식품으로 떠올랐다. 해외에서 고국을 방문하는 교민들도 가장 먼저 챙기는 귀환선물은 봉지에 든 믹서커피란다.
요즘도 커피의 유혹에 이끌려 늦은 오후나 밤중에 겁도 없이 마시고는 카페인을 이기지 못해 밤을 하얗게 새우게 될 때는 당장 커피를 끊어야지 하면서도 날이 새면 금세 다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커피를 끊고자 녹차를 비롯한 국산차를 사들여 놓고도 의지가 약한 탓에 작심삼일이 되고 있다. 70대는 달마다 늙는다고 한다. 앞서 살아본 분들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니 우스개로 넘길 일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달마다 늙는 것이야 조물주의 섭리니 어쩌겠는가만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려면 아무래도 '커피를 반대하는 여성들'이 경고한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255C435719717D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