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02
잘못된 과학지식이 부른 비극
서울공대 상상 예비 Winter vol .26
과학 기술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과학 기술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글: 신동욱, 화학생물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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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박보경, 전기정보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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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고대부터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사회에 널리 퍼진 지식 중에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낭설이 꽤 많은데요. 실제로 잘못 알려지거나 검증되지 않은 과학 지식을 무분별하게 이용할 경우 큰 사회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이렇게 잘못된 과학 지식으로 인해 끔찍한 피해를 입었던 사례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방사성 원소인 라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897년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 원소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빛을 방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로 인해 라듐은 발견 초창기 시계의 야광 도료용으로 쓰였고 어두운 곳에서도 빛나는 성질에 열광한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곳곳에 라듐을 사용하였습니다. 최근의 ‘은나노’, ‘미네랄’ 열풍처럼 라듐이 첨가된 초콜릿, 좌약, 생수 등을 만들었던 것이죠. 라듐 야광도료를 칠한 시계도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휩쓸던 시대적 상황을 타고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그러나 시계의 도장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차례로 암에 걸리면서 라듐이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조그마한 손목시계에 도료를 칠하려면 매번 붓끝을 뾰족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이때 노동자들이 입으로 붓을 모으고 도료를 찍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라듐을 지속해서 섭취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라듐이 첨가된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의해 일반세포가 암세포로 변하고, 칼슘 대신 뼈에 흡수된 라듐으로 인해 뼈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것이지요. 결국 야광도료는 삼중수소로 대신하였고 다른 제품에도 라듐 사용을 금하였지만, 이미 라듐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후였습니다. 방사선 원소의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로선 상상하기 힘든 방사선 피폭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였네요.


[그림
1](왼쪽) 1918년
미국의
한
지역
잡지에
실린 라듐
화장품
광고
[그림
2](오른쪽) 시계에
라듐
도료를
칠하는
노동자의
모습
두 번째 사례는 약의 주 성분으로 사용된 ‘탈리도마이드’입니다.
1950년대 후반~1960년대까지 판매했던 ‘탈리도마이드’를 주성분으로 한 약은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에서 판매한 ‘콘테르간’, ‘케바돈’이 대표적입니다. 해당 약은 두통, 감기, 불면증에 주로 사용하였으며 임산부들에게는
입덧 완화제로 처방하였습니다. 판매 당시 제약회사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동물들에게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 없는 기적의 약’이라는 선전 문구를 내걸었습니다.

[그림 3] 탈리도마이드의
광학
이성질체.
R이 수면유도제이며, S가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부터 약을 복용한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하면서 그 위험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탈리도마이드는 분자 구조에 의해 두 가지 광학 이성질체●를 가지는데, 이 중 하나가 임산부의 입덧 진정 작용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임산부가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약을 복용할 경우 태아의 세포가 성장하고 분화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이 만들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는 결국 팔과 다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기형아를 출산하는 ‘phocomelia’의 원인이 되지요.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 중에서는 ‘두 이성질체를 완전히 분리, 정제하여 약을 만들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신 분들이 있을 텐데요. 하나의 이성질체만을 복용하더라도 체내에서 다른 이성질체로 상호 전환되기 때문에 두 이성질체를 분리하여 복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답니다.
결국 해당 약품은 판매가 중지되었지만 전 세계 46개국에서 만 명이 넘는 기형아 출산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으며 의약품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당시 단 17건의 부작용 사례만 보고되었는데 이는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서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약 판매를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판매 허가 심사를 맡았던 프랜시스 켈시 박사는 약품의 독성과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실험, 연구 자료가 부족한 점을 들어 판매를 허가하지 않았는데요. 이렇게 철저히 심사를 진행한 캘시 박사 덕분에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동물 시험에서 부작용이 없다면 인체에도 무해할 것이라는 임상시험에 대한 당시 과학계의 시각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동물 임상 시험 외에도 여러 단계를 거쳐 안정성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의약품 허가 절차를 변경하였고 약효가 뛰어나더라도 명백한 부작용이 있는 경우 판매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자리 잡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최근에는 탈리도마이드의 혈관 생성 억제 효과가 암세포를 죽이는 역할이 있음을 발견하여 한센병●●, 다발성 골수종●●● 등의 치료만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생학’을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우생학’이란 인간의 지적, 도덕적 능력이 환경의 영향과 관계없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학문입니다. 유전자에 대해 많은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우생학은 학문보다 하나의 사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요. 고대 그리스 시대, 플라톤은 우수한 자손 번식을 통한 국가의 발전을 주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하층 계급의 출산율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19세기에 들어 다윈의 진화론을 접한 영국의 골턴에 의해 발전합니다. 그는 1883년 선택적인 출산을 의미하는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이를 ‘인종을 개선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합니다. 골턴은 ‘자연 선택’ 과정에서 인간종에 이로운 계층을 늘리고 해로운 계층을 줄이기 위해서는 진화론의
수단인 생식으로만은 부족하며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는데요. 인종의 유전적 차이에 관한 초기 유전학 연구를 이용해 과학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당시 실업, 빈곤 등 영국의 사회 문제들 때문에 생겨난 인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용했기 때문에 우생학은 단순한 이론에서 벗어나 사회적 실천까지 이르는 하나의 운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발전한 우생학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인종 및 정치 문제와 엮이면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19세기 말 인종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우생학 관련 운동이 인종주의적 성격을 띠었고, 이민제한법과 강제적 불임수술을 허가하는
법이 여러 주에서 통과되었습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우생학이 1920~1930년대 나치 체제에서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는 개념을 생산해 안락사를 옹호하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신체 및 정신적 장애가 있는 아동을 대상으로 시작한 이 ‘안락사 프로그램’은 결국 유대인을 비롯한 여러 인종의 건강한 성인까지 대상으로 한 집단 학살에 이르게 되는데요. 나치의 ‘홀로코스트(대학살)’라고도
부르는 이 참극은 당시 우생학을 제창하던 학자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유전적 차이에 의한 인간 서열화와 통제를 주장하던 우생학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현재 우생학이라는 단어는 나치를 떠오르게 하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인해 거의 쓰지 않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우생학이 기반을 두었던 유전자에
의해 형질이 결정된다는 과학적 사실은 현재 유전자 치료의 형태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적 지식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그를 어떻게 응용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그림 4] 탈리도마이드에
의해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들의
모습.(출처: Evening Standard)
지금까지 여러 사례를 통해 잘못된 과학 지식 또는 그 이용이 큰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읽고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물론 잘못된 과학 지식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결과는 미래 공학도를 꿈꾸는 여러분들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프랜시스 켈시 박사의 이야기와 우생학의 사례처럼 합리적인 사고와 올바른 이용을 통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상 독자 여러분이 올바른 과학, 공학 지식을 통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공학도가 되길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 이성질체는 분자식이 같으나 서로 다른 물리, 화학적 성질을 갖는 분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특히 광학 이성질체는 공간상에서 원자의 배열이 달라서 생기는 이성질체로, 마치 두 이성질체의 구조가 서로 거울을 마주 보는 것 같은 대칭이라고 해서 ‘거울상 이성질체’라고도 말합니다.
●● ‘나병’이라고도 부르며 박테리아에 의해 감염되는 병입니다. 처음 감염 시증상이 없으나 수년간의 잠복기 이후 신경계, 기도, 피부 등에 염증이 생기고 감염이 반복되며 신체 일부가 썩어나가게 됩니다.
●●● ‘형질세포’라는 항체를 생성하는 백혈구에서 생기는 종양을 일컫는 말입니다. 종양이 생겨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백혈구에서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형질 세포가 골수 내 다른 혈액 세포들을 대체하면서 빈혈, 백혈구 감소증, 혈소판 감소증 등의 증상을 보이는 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