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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ONE WORLD TRAVEL MAKER 5불생활자 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레인보우90
2007년 11월 2일
비자 만료 기간이 가까워져서 더 이상 한국행을 늦출 수 없었다. 나는 지난번 만주대장정의 마무리로 장춘, 단동, 집안, 대련, 통화 등을 보러 가기로 했다.
가장 비행기표가 싼 대련행 비행기를 끊었기에 어차피 이곳 연길에서 대련까지는 가야 한다. 그 중간중간을 지난번에 갔던 것처럼 중간도시를 거쳐가며 진짜 여행을 하며 갈 생각이다. 내 계획은 이러하다. 일단 연길 - 장춘 - 심양 - 대련 도착하여 한국으로 갔다가 한국에서 돌아올 때 다시 대련 - 단둥 - 집안의 광개토왕비와 장군총 - 통화 - 백두산이 있는 이도백하 - 연길 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번 여행까지 포함해서 나는 만주와 동북삼성의 거의 전 지역을 둘러보는 셈이다.
이번 중국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버스로 여행하며 중국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냥 비행기를 타고 와서 관광지만 보고 사진만 찍고 가는 관광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지난번 여행을 통해 많이 배웠으며 이번 여행을 통해 또 더 많이 느낄 것이다.
일단 장춘행 버스를 타고 연길을 벗어나기로 했다.
지난번 여행은 가볍게 손가방 하나만을 메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한국에 귀국하는 길이라 여행용 캐리어를 갖고 다녀야 한다.
여행을 함에 있어서 조금은 번거롭겠지만 튼튼한 내 체력을 믿고 그냥 갖고 다니기로 했다.
중국에서 시외버스는 대부분 기차역 주변에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외버스 정류장과 기차역이 다른 곳에 있는데 중국 동북삼성 지역은 거의 모두가 기차역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같이 있다. 물론 시외버스터미널이라고 해봐야 그냥 버스 몇 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11월 2일 오전 11시 나는 장춘행 버스를 탔다.
이번 귀국길에 시간이 좀 있었다면 통화를 거쳐서 집안 - 단동 - 대련 코스를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 관계상 일단 빨리 귀국한 후 다시 연길에 올때 단동을 거치기로 했다.
중국에서 조금 생활하다 보면 돈 가치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 있을때는 한달 전화비 10만원 정도는 아까운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전화비 200위안(한화 25000원)이 나오며 엄청나게 많이 나온 느낌이 들어서 아끼려는 생각이 든다.
식비와 교통비도 무조건 절약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사소한 택시비도 깍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중국 여행은 나를 검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더 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과거 내가 적은 메모장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십원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야 진짜 중국여행이지..’
그렇다. 중국에서 현지인들처럼 여행하다보면 어느새 10원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때가 온다. 그러면 그때가 중국을 조금은 알게 되는 때인 것이다.
장춘행 버스는 6시간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장춘은 큰 도시로 여기의 왕빠(피씨방)는 담배를 못피우게 해서 좋다. 그러나 곧 그것을 무시하고 피워대는 사람들을 보기는 했지만...
인터넷으로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자 내일 점심 경에 차가 있다는 얘기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시내를 조금 구경하다가 사우나에 가서 잠을 자기로 했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내가 알려줄 TIP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가장 핵심이 바로 사우나이다. 중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는 사우나가 있다. 이 사우나에서 잠을 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침을 해결할 수 있으므로 여행자에게는 가장 저렴한 숙박수단이 되는 것이다.
일반 호텔의 경우는 아무리 싸더라도 100위안~200위안 사이를 오가는데 사우나의 경우는 10위안 ~ 50위안이면 충분하다. 더구나 어떤 사우나의 경우는 할인권을 주기도 해서 그것을 제시하면 5위안 정도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나는 실제로 연길에서 생활할 때는 6위안짜리 금강성 사우나를 자주 갔었고 다른 도시에도 그 정도의 사우나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사우나를 숙소로 채택하게 되면 여행의 피로가 훨씬 줄어드는 효과가 나게 된다. 지난번 하얼빈 여행때 엄청난 강행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롭게 충전될 수 있었던 것은 사우나의 힘이 크다. 저녁때 땀 푹 흘리고 사우나에서 대자로 뻗어 자다보면 다음날 아침 개운한 기분으로 새출발을 할 수 있다.
하얼빈의 한 사우나에서는 양말과 속옷을 세탁하는 서비스까지 해줘서 세탁의 불편도 덜 수 있었다. 혹자는 사우나에서 잠을 잘 경우 짐을 보관하거나 분실의 위험이 있지 않느냐고 걱정하는데 중국에서 조금 생활해본 나로서는 호텔과 비교하여 별 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튼 사우나를 숙소로 활용하여 중국여행을 한다면 비용 뿐만 아니라 체력적인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장춘에서 제일 크다는 따푸하오 사우나를 찾아가서 여장을 풀었다.
중국의 사우나는 우리나라보다 규모면에서 더 크다. 일단 거기서 피로를 풀고 다음날의 일정을 생각해보았다. 지금 생각으로는 장춘에 오래 머물기 보다는 빨리 대련으로 가서 대련을 좀 더 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빨리 대련으로 가야 비행기 스케쥴을 확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길에서는 대련발 서울행 왕복권을 구할 수가 없었다. (조금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나의 여행은 일정을 미리 확정짓지 않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특성이기 때문에 내일 대련으로 갈지 안 갈지는 내일이 되봐야 알 수 있다.
일단 오늘은 사우나에서 푹 쉬기로 했다.
다음날인 3일 아침 9시. 사우나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아침밥을 먹고 나와서 일단 기차역으로 가보았다. 대련으로 가는 기차표를 확인해보기 위해서이다. 딱 적당하게도 점심때인 12시 35분 차가 있었다. 이것을 타면 대련에 저녁 9시 반에 도착하게 된다.
나는 일단 이 기차를 타기로 했다. 장춘은 오래 있기에는 조금 매력이 부족한 느낌이다. 내가 과거 체류했던 심양과 비슷한 모습이라서 그랬나?
아무튼 장춘의 매력을 볼 기회는 다음으로 넘기고 말았다. 서울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었고 또 어머니가 사라고 한 짐들이 많은 상태여서 이동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여차하면 장춘에서 그냥 서울로 비행기 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나 비행기 값이 대련에 비해 2배 가량이나 되는 것을 보고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11월 3일 12시 35분 기차로 대련으로 출발했다.
언제 도착하는지는 확인 안하고 탔는데 이 기차가 어디에서부터 오는지는 확인하는 것이 좋을걸 그랬다.
이 기차는 만주리에서부터 오는 기차로 장춘에서 나를 태우기까지 무려 30시간 이상을 운행해온 상태였다. 당연히 기차는 그 동안 사람들이 먹고버린 쓰레기와 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중국기차라지만 이 정도로 환경이 열악할 것은 생각도 못했다. 거기에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나는 먼지 가운데서 말소리도 내지못하고 그냥 창밖만 내다볼 뿐이었다. 점심을 먹지 못했기에 귤과 바나나, 빵 등을 싸갔는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물만 먹고 말았다.
중국의 기차는 기차의 종류에 따라 그 속도가 현저히 다르다. 같은 연길 - 대련행 기차라도 어떤 것은 21시간이 걸리고 어떤 것은 그보다 훨씬 빠르게 오는 것이 있다.
내가 탄 기차는 느리게 오는 기차였는지 대련까지 가는데 무려 9시간이 걸린단다. 나는 그 사실을 타고 나서야 알았는데 아마 미리 알았더라면 기차보다는 버스를 택해서 갔을것이다. 버스라면 7시간이면 대련에 도착한단다.
나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별로 얘기를 하지 못한다. 물론 내 중국어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왠지 말을 이어나가기가 마땅치 않다.
인터넷을 보면 많은 여행자들이 중국여행을 하며 중국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기차를 타고가며 참 힘들었다. 아무리 중국생활에 단련된 나지만 이렇게 먼지와 혼잡스러움은 참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사방해서 피워대는 담배, 사람이 있건말건 먼지를 쓸어대는 차장. 기차는 먼지와 소음으로 뿌옇게 된 상태였다. 나중에 기차에서 내리고 보니 내 옷과 신발위로 하얗게 먼지가 올라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중국사람들은 전혀 불편함없이 잘 버틴다.
그들의 인내심은 참 대단한 것 같다. 과연 적응의 민족이다. 고통 끝에 낙이 온다고 이들이 만개할 때가 곧 올것이다. 중국이 개벽천지할 때가 곧 올 것이다.
대련에 저녁때 도착하자 일단 나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사우나를 찾았다. 대련에는 큰 사우나가 많이 있는데 그중 제일 좋다는 것이 랑토샤 안머우와 일항호텔 뒤편의 쉬우시둔이다.
나는 지도상에서 일항호텔을 확인하고 그 호텔 뒤편에 있는 쉬우시둔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얼빈에서 하던대로 지도를 찾아가며 거리를 샅샅이 훑으려고 했는데 여기는 하얼빈과 달라서 거리를 찾기가 조금 더 어려웠다. 그리고 시간 여유가 없다보니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며 풍경을 볼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일단 시내버스를 타고 거리를 조금 조망해본 후 쉬우시둔으로 가기로 했다.
쉬우시둔은 인터넷에 나온것과는 다르게 조금 실망스러웠다. 사우나의 크기도 생각보다 작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마음 상한 것은 바가지였다. 중국 사우나의 경우는 그냥 입장료는 무지 싸다.
그러다보니 사우나측에서는 입장객이 음료수나 수건, 잠옷 등을 사서 부가적인 수입을 올려주길 바란다. 여기서도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 필요도 없는 잠옷을 사라고 해서 기분이 조금 상했다. 한국사람이면 모두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고급 잠옷을 사기를 바란다. 나는 그냥 공짜로 주는 사우나 반바지면 되는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들이 너무 권하기에 그냥 고급잠옷을 사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잠옷이 58위안이나 해서(사우나 이용료는 18원)나는 기분이 잡친 것이다.
여기서 내가 알려주는 중국여행의 TIP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 그 여행지에 관련된 내용을 다음카페, 네이버블로그 등에서 찾아서 미리 정보를 알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도시를 그냥 방문하는 것 보다는 훨씬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 보다는 론리플래닛 등의 여행소개책자를 들고 다닌다. 물론 이것도 좋은 정보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에서 생생하게 올린 정보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책자에는 나오지 않는 여행경로, 경험담 등이 나오기 때문에 나 같은 여행방법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하다.
지난번 목단강에 갔을 때 인터넷에 있는 목단강 관련 사이트를 점검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이트에 나와있는 풍부한 자료들을 보며 나는 목단강에 대해서 충분히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고 짧은 시간에 제대로 도시를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많은 여행자들에게 인터넷은 충분한 정보의 제공처가 될 것이다.(물론 이정도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대련에 와서 놀란것은 기후이다.
대련의 날씨는 서울과 비교해서도 훨씬 온화하다. 위도상으로는 엄청 북쪽인데 날씨가 이렇게 따뜻하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해안이라 그런가보다. 연길에 있을때는 벌써부터 추웠고 하얼빈은 50일 전인데도 엄청나게 추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11월 초순에도 전혀 춥지가 않은 것이다. 이러니 일본인들이 이곳을 좋아하는게 이해가 됐다.
대련은 일본인들이 많다. 과거 만주를 일본이 침공할 때 대련과 여순항을 그 기점으로 했었다. 그래서 많은 일본인들이 대련을 근거지로 살아가고 있다.
대련시내에는 유달리 일본음식점들이 많고 일본 풍 건물들이 많다. 심지어는 일본사람들을 전문으로 접대하는 술집이나 유흥업소들이 곳곳에 보일 정도이다.
대련에 있는 관광지로는 러시아 풍정한 거리와 3.8광장, 해안광장 등이 있고 조금 멀리 가려면 여순 등으로 가야 한다. 가장 큰 시장으로는 따샹이란 곳이 있는데 우리나라 말로 큰 가게 이다.
나는 이곳 대련에서 어머니가 부탁한 선물을 사야 했다. 어머니는 한국에 올때 무소뿔로 만든 빗과 녹두, 흑미 등을 사달라고 했었다. 중국에서는 싸다고 꼭 사달란다.
대련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쉬고 다음날인 4일 나는 우선 비행기를 끊으러 나갔다. 비행기는 넉넉하게 좌석이 있어서 당일날 가도 그리 어려움없이 표를 살 수 있었다.
5일 아침 8시20분에 서울가는 왕복행을 2450위안에 살수 있었다. 연길에 비하면 3분의 1가격이다.
그 표를 산 후 일단 시장을 돌아보며 어머니의 소원을 해결해줘야 했다.
대련에서 가장 크다는 대상을 갔는데 거기는 작은 소매시장이 아니라 도매상을 위한 전문판매점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녹두나 콩 등을 사기에는 적당하지 않았고 아무리 둘러봐도 살 수 없었다. 아무래도 택시운전사에게 속은 느낌이다. 이 사람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전화를 하고는 찾아준 시장인데 아무래도 나를 속인느낌이다. 이 시장에서는 물건을 사지 못하고 그냥 꿀 한통만 사갔다. 빈속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빈속일때 꿀을 먹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단 포기한 상태로 시내로 들어와서 거리구경을 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조금 돌아보니 대련에 있는 특이한 전차가 보인다.
궤도차인데 대련 중심지를 관통하는 기차로 생각보다 재미있고 거리구경하는 맛이 났다. 너무 짧은 것이 흠인데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다보면 대련시내에 대한 느낌이 다가온다.
중간쯤에서 내려 적당한 시장을 찾아서 걸어갔다. 가다보니 꽤 번화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의 일본식당에서 라면을 먹자 왠지 기운이 생기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번화가를 걷고 있는데 내 눈앞에 무소뿔을 파는 노점상이 보였다. 물어보니 첨엔 50위안을 부르다가 내가 기겁을 하고 돌아서자 나를 붙잡고는 20위안으로 깍아준다. 나는 가격을 조절하다 3개를 40위안에 사기로 했다. 그런데 그 빗을 사고나자 바로 근처에 고급 무소뿔 파는 가게가 보인다.
이 가게의 빗은 한 눈에 봐도 고급이라는 느낌이다. 선물은 모름지기 고급을 사야한다는 신념이 있던 나로서는 조금 안타까웠지만 일단 가격을 보기로했다.
여기서는 흑단으로 만든 빗이 100위안에서 1000위안까지 한다. 나는 제일 비싼 1000위안짜지를 갖고 가격흥정을 시작했다. 그 가게에서는 절대 가격을 깍아 줄 수 없단다.
무슨소리인가 지금껏 중국에서 물건을 수없이 사면서 대부분은 가격을 깍았는데 전혀 깍아줄 수 없다니..
나는 500위안으로 절반가격을 불렀으나 그들은 절대 안된다고 웃으면서 거절한다. 내가 돌아서면 다시 잡겠지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그들은 잡지 않는다.
나는 그냥 돌아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 빗을 꼭 사기는 사야겠는데...
나는 다른 가게가 있나 조금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1시간을 걸어도 그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깍아주지 않는 것에 조금 화가 나서 나는 그냥 빗을 안사고 가려고 했는데 이때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목이 말라서 그 앞 가게에서 생수를 사는데 2원이란다. 내게 잔돈은 1원짜리 한 장과 10전짜리 동전들뿐이었다. 나머지는 100위안짜리라 잔돈을 거스르기가 귀찮은 상황이었다. 난 별 기대없이 그 청년에게 1위안과 나머지 동전들 50전에 생수를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청년은 웃으며 그렇게 하라고 한다.
난 그가 꽤 고마웠다. 그리고 생수를 마시고 걸어가는데 거리에서 생기찬 음악이 들린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며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청년으로 인해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봉사는 큰 것이 아니다. 남을 기쁘게 해주면 그것이 봉사인 것이다. 내가 물건을 사준다면 그 가게 아저씨도 좋아하겠지..’
나는 다시 한번 그 가게로 가보았다.
아까 있던 부부 중에서 아주머니는 어디가고 아저씨만 남아 있다. 그 아저씨는 내가 비싸다고 하자 진지한 얼굴로 ‘헌 하오’라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제품을 선전하던 사람이다.
난 ‘타절 이씨에 마’라고 하며 조금 깍아 달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흠칫 거리더니 진지한 얼굴로 750위안이라고 한다.
난 700위안으로 깍아서 그 빗을 샀다. 내가 더 비싸게 산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로 인해서 이 부부가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좋게 물건을 산 하루였다.
목표하던 빗을 사자 이제는 녹두와 흑미만 사면 되었다.
이것들은 도저히 어디서 사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녹두라는 말을 중국사람들은 모르는 듯 했다. 내가 녹두라고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고 나 또한 ‘녹두’의 중국발음을 정확히 얘기하지 못했다. 그냥 물건 파는 시장, 농산품 파는 시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다 저 건물 지하로 내려가라기에 내려가니 큰 농수산슈퍼 같은 곳이 나온다.
거기에 내가 찾던 고급 녹두와 홍두, 흑미, 깨 등이 있었다. 나는 종류별로 다양하게 어머니가 요구하는 품목들을 샀다.
다 사고 나니 내 캐리어는 너무 무거워져서 들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아마도 35키로는 되는 듯했다.
비행기 탈 때 추가요금을 내지는 않았지만 10키로 정도가 규정에서 초과했다고 얘기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져서 시내를 걷다가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갔다. 대련항까지도 가보았는데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배를 타고 가는 것도 좋은 기억이 될 듯하다.
오늘밤은 어제 안 가 본 량타오샤 안머우를 가보기로 했는데 이곳은 대련에서 가장 좋다는 사우나중의 하나이다.
가보니 역시나 시설이 훌룡하고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나는 푹 쉬면서 이곳의 시설을 구경했는데 몇 개 층에 걸쳐 있어서 무슨 시설이 있는지 다 알지 못할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8시 2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는 아침 6시에 나와야 했다. 비행장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려서 도착했고 나는 편하게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대련은 비행기표도 풍부하고 늘 아무때나 가도 표를 살 수 있다. 그리고 값도 유달리 싸다. 왕복이 17~25만원대에 언제나 살 수 있다.
왜 대련의 비행기 값이 다른 중국도시에 비해서 현저히 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마도 기내식이 부실하게 나오는 것 때문이 아닐까? 대련에서 인천가는 비행기의 기내식은 내가 본 기내식중에서 최고 저가로 보였다.
서울에 도착하자 서울의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중국에서 오래있다 보니 서울공기가 다 좋게 느껴지다니...
과거에는 서울에서 어떤 사람이 조선족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조금만 보면 누가 조선족인지 구별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도 바로 구별할 수 있었고 지하철에서도 내 눈에는 조금 구별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중국교포들이 있었다.
12월 4일 월요일
나는 조금 더 서울에 머물고 싶었지만 센터를 너무 오래 비워 둔 데다가 한 달 밖에 안 되는 비행기티켓의 유효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늦어도 5일에는 출발을 해야했다.
나는 12월 1일 금요일 날 비행기를 타려고 했는데 그날 비행기 티켓의 원본을 잠깐 분실하는 바람에 탈 수가 없었다.
깜박 잊고 복사기 위에 놓고 왔는데 그 때문에 그날 비행기는 탈 수 없었다. 나로서는 이틀간의 휴식이 더 생긴 셈이라 좋았지만 센터가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빨리 가려고 생각하고 점심 비행기에 탔다. 중국국제항공의 경우는 점심 12시와 저녁 9시 반에 비행기가 있었는데 저녁 것을 타려다가 아침 것을 탄 것이다.
대련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대련 행 비행기의 기내식은 정말 최악이다. 지난번에 대련에서 서울 올때는 달랑 샌드위치 하나가 나오더니 지금은 또 편의점 도시락 같은 것을 하나 줄 뿐이다.
물론 거리가 가깝다보니 식사를 준비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대련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봐두었던 단동행 버스타는 곳으로 갔다. 대련도 기차역 앞에 시외버스들이 모여서 먼 길가는 손님들을 맞이하곤 한다.
단동행 버스는 13시 30분 출발이어서 바로 타야할 실정이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대련을 보는 기회는 나중으로 미루고 단동으로 향했다.
단동은 북한의 신의주와 붙어 있는 곳으로 신의주가 개방되게 되면 크게 발전할 가능성도 있는 곳이다.
양빈이라는 중국인에게 김정일이 신의주에 경제특구를 만들게 한다는 뉴스가 났을때 단동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사례가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단동은 분명 더 발전할 것이다. 북한과 인접해 있다는 점 외에도 환경이나 주변 여건이 참 좋게 느껴졌다.
대련에서 탄 단동행 차는 4시간 만에 단동에 도착했다. 거리를 생각했을때 무지 빨리 온 셈이다.
대련에서 단동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서 차량들의 소통이 원활해 보였다. 향후 북한이 개방되게 되면 단동은 그 중계지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을 늘 중요시 하는 나로서는 부동산을 구입할 때 늘 고려하는데 단동은 자연환경과 공기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중국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중국은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지는 것 같다. 느낌인지 모르지만 아침에 훨씬 더 빨리 해가 떠서 5시 반이면 밝아오고 저녁 5시면 어두컴컴해 진다.
겨울철이 되자 해가 훨씬 더 빨리 떨어져서 단동에는 5시가 넘으면 완전히 밤이 되고 만다.
단동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30분이었다.
그러나 역 앞에 내려주지 않고 그냥 길바닥에 내려줘서 어디가 어딘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단동지도가 없는데다가 거리가 어두워서 관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대련까지는 추운 줄 모르고 지냈는데 단동에 오자 확실히 추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리털파카의 모자를 뒤집어써야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연길은 더 춥다는데 걱정이다.
일단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조금 거리를 걸어보았다.
중국에서 식사는 원칙이 있다. 전혀 모르는 것은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인데 중국 전통음식을 시킬 경우 한국인의 경우 애를 먹을 수 있다. 차라리 잘 아는 것을 시키면서 하나씩 새롭게 추가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나는 중국에 있으면 중국음식도 많이 먹지만 이탈리아 음식이나 일본요리도 잘 먹는다.
중국에서는 이들 요리가 한국에 비해서 월등히 싸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갈 수 있다.(물론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예외^^)
지난번 하얼빈 여행에서도 러시아 레스토랑을 요긴하게 이용했었고 길림시에서도 일본요리를 맛있게 먹었었다.
단동에서도 거리를 걷다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유로파’란 식당이었는데 꽤 괜찮았다. 따뜻한 스프와 새우요리를 먹자 몸이 녹아내리는 듯 하다.
스파게티까지 먹으려다가 살찔까봐 그냥 꾹 참는다. 지난번 중국에서 몇 달 있었더니 3키로나 불어나서 한국에서 살빼느라고 무지 고생했다. 때문에 이번엔 과식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일단 찜질방을 가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므로 시내버스를 타고 조금 거리를 보기로 했다. 아쉬운 것은 이미 너무 어두워져서 거리를 충분히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동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하였다는 점은 의의가 있었다. 단동은 이미 꽤 큰 도시였다. 내가 중국을 제대로 보기 전에는 중국의 소도시들은 아주 작고 초라한줄 알았다. 우리나라의 지방도시인 순천, 양양, 거제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단동, 길림, 목단강, 하얼빈, 대련 등의 도시는 우리나라의 부산, 대구, 광주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고 어쩌면 더 클지도 모른다.
단동만 해도 작은 변방도시로 생각되지만 빌딩숲을 이루고 있고 대단지 아파트 촌을 이미 형성하고 있는 도시이다.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빠르게 거대화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향후 50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내 생각은 그와 다르다. 나는 30년 안에 중국이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금융 쪽의 발달이 더뎌서 그렇지 경제 생산 면에서는 조만간 세계 최대국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복받은 나라다. 주변에 중국과 같은 성장국, 일본과 같은 기술국이 있어 그들의 장점을 다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중국의 성장을 이용해서 우리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단동에서 지도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버스를 타며 시내를 보기로 했다.
시내는 그리 크지 않아서 종점에서 종점으로 한번 가면 별게 없다. 시내는 밤이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다만 심양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낮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단동에서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태평불가마사우나를 가보기로 했다. 아마도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듯 한 사우나인데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찜질방으로 생각하면 된다.
역 앞에 있다고 해서 역을 찾는게 우선이었다. 근데 역전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버스를 타면 분명 역을 지나칠 것이라 생각되어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을 몇 번 거치는데 도무지 역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버스정류장에서 청소년들에게 역 앞에 이 버스가 가냐고 물어보니까 너무 적극적으로 손짓까지 하며 이 버스를 타라고 도와준다.
근데 그만 나는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서도 내리지를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종점에 가서 버스운전사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역을 가자고 하니까 이 아저씨도 흔쾌히 안내해주겠다고 하는데 결국 이 아저씨도 2정거장이나 지난 다음에 부랴부랴 생각난 듯이 나를 내려준다.
최종적으로는 택시를 타고 역 앞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 자체가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 운전수 아저씨는 너무나 미안해했지만 나는 이렇게 거리를 거니는 것 자체가 내 여행의 목적이므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삶도 이런것이 아닐까?
너무 목적만 갖고 움직이면 갈등이나 고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목적보다 과정을 중시하면서 느긋하게 그 과정을 즐기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야 뭐 대부분 대동소이한 것이니까..
이렇게 과정을 중요시하는 삶을 산다면 설령 버스 내릴 곳을 놓치더라도 화나거나 걱정하지 않고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역 앞에 도착하자 태평불가마사우나를 찾아야 했는데 바로 역 얖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타이핑 써나’ 하면서 자는 시늉을 하니까 바로 저기 있다고 알려준다. 중국에서 이제 살아가는 법은 걱정 없을 듯하다.
조금 시설은 열악했으나 워낙에 저렴한데다 충분히 쉴 수 있어서 나쁜 선택은 아니다.
12월5일 8시 30분 집안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단동을 좀 더 보고는 싶었지만 하루를 더 머무르기에는 좀 길다는 생각이었다. 단동의 날씨가 생각보다 차갑고 또 빨리 연길에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단원들을 생각하면 너무 늦출 수가 없었다.
지도를 샀으니 인터넷의 여행기들을 조합해보면 내가 원하는 정보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단동을 보고 싶었던 것은 단동의 부동산 가격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동에서 부동산을 산다면 분명히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단동에 하나 정도 사 놓을 의사가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는 분명 부동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가격 추이도 그렇고 발전 속도로 봐서도 분명 부동산은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집안행 버스를 타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동역앞에 있는 버스들 가운데 집안이라고 적혀 있는 버스를 타면 되기 때문이다.
집안은 그럼 어떤 곳인가? 말로만 듣던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 국내성터 등이 있는 곳이다. 집안은 오래된 무덤이 12000여개나 있단다. 워낙에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다 보니 과거 번성했을 때의 무덤과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
단동에서 집안으로 직접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 집안으로 가는 사람들의 경우는 대부분 심양이나 장춘에서 출발해서 통화를 거쳐서 집안으로 간다.
그러나 나는 단동에서 바로 집안을 거쳐서 통화로 가는 코스를 택했는데 거리상으로는 이것이 최적의 거리이다. 이상하게도 단동에서 바로 집안으로 가는 여행코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굳이 통화를 거쳐서 가는 코스보다는 바로 집안으로 가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맞는다는 생각이다. 한국사람에게 있어서 통화를 갈 이유는 없지만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집안은 꼭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집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의외로 집안행 고속도로의 길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길이 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길은 잘 뚫려 있고 의외로 빠르게 간다.
더군다나 압록강을 따라서 가는 길이므로 압록강 너머의 북한을 보면서 갈 수 있어서 보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
버스는 3시간 넘게 달리자 차츰 산길로 다니기 시작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며 우리나라의 대관령 같은 고개를 넘자 드디어 집안 시내로 가는 길이 나온다.
집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정도.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습관적으로 사우나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여기서 유적지들을 다 보고 자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어본 택시운전사의 답변은 의외이다.
굳이 여기서 잘 이유가 없다고 충고한다. 장군총이나 광개토대왕비는 모두 한 곳에 몰려 있으므로 택시를 대절하면 금새 다 볼 수 있단다. 그럼 굳이 다른 일을 할 게 없으므로 그냥 통화로 가서 거기서 이도백하 가는 저녁 9시 반 기차를 타고 연길로 가는게 낫다고 한다.
그 말이 일리가 있게 여겨져서 나는 아저씨 택시를 대절해서 관광지들을 잠깐 둘러보고 그냥 통화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저씨의 적절한 충고가 고마워서 이용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50위안 달라는 것을 30위안으로 깍았다.
원래 이런 식으로 관광지를 택시로 잠깐 둘러보고 나오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들 중에 하나인데 연길로 가는 시간표가 너무 적절하므로 그 일정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택시를 타자 10분만에 광개토대왕비에 도착했다. 버스에 캐리어를 놓고 나 혼자 보러가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운전수 아저씨를 믿고 광개토대왕비로 갔다. 입장료는 안내도 되었을것 같은데 꼭 사야 한다고 해서 30위안을 내고 표를 끊었다.
50미터 정도 걸어가자 광개토대왕비가 보였는데 유리벽안에 가로막혀 있어서 생각보다 웅장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표면에 이런 저런 글씨들이 박혀 있는것이 보였고 그 중에 몇 개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남부를 지배했었다는 임나설이어서 크게 논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큰 논쟁거리가 아닌게, 이 비석 자체가 고구려에서 자신의 왕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것이므로 너무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임나일본부 설이 나오게 된 근거는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가야지역을 광개토대왕에 내려가서 몰아내어 주었다’는 한 문장 때문에 그런 것인데 이것은 너무 확대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곳 중국에서 광개토대왕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너무 확대해석해서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라고 충고한다. 광개토대왕비에 적힌 글씨들은 광개토대왕이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것이므로 사실에 기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석에 새긴 글자 한문장으로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중국에서 광개토대왕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의견들이다.
아무튼 광개토대왕비를 보고나서 그 위에 있는 고분묘를 보고나니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 오래 있고 싶어도 뭐 할게 없는 것이다.
바로 장군총으로 이동하자고 하니 장군총도 약 5분정도 택시를 타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장군총으로 들어가는 것도 30위안을 내야 한다고 해서 난 굳이 들어가 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밖에서 보고 사진만 찍기로 했다.
정말 패키지 관광객처럼 하고 말았다.
굳이 가봐야 인터넷에서 나와 있는 사진들과 똑 같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내려오니 중간에 석실고분묘가 있단다. 그것도 그냥 밖에서 보고 지나치고 말았다. 통화가는 버스가 4시정도에 있다고 해서 그 버스를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저씨는 이곳에서 택시 가이드를 많이 해본듯 중요한 지점들을 설명해 준다.
석실고분을 지나쳐서 버스터미널로 오는 길에 국내성터를 보여주는데 그 유명한 국내성터가 도심에 돌벽처럼 방치되어 있어서 조금 염려가 되었다. 좀 더 관리를 해주면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살아날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택시 아저씨와 헤어져서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었다. 다행이 4시발 통화행 표를 살 수 있었다.
통화로 가는 길은 무지 험했다. 지금까지는 좋은 길들이었지만 통화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2시간 반 정도 가서 6시 반에 통화에 도착한다.
통화에서 9시 반에 이도백하로 가는 차가 있다고 했으니 그것을 사려고 나는 기차역으로 갔다. 표 파는 아줌마가 경좌, 연좌를 얘기하길래 경와도 있냐고 했더니 경와도 있단다. 그래서 이번엔 침대차를 한번 타보고 가기로 하고 경와를 끊었다.
거리상으로는 대련에서 집안 가는 거리가 훨씬 먼데 시간상으로는 통화에서 백하가는 것이 훨씬 더 걸린다. 이제부터는 험준한 산길이라서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기차로 이 길을 가는데 버스로 갈 경우는 비포장 도로라서 힘들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봤다.
아무튼 표를 끊고 나서 시간이 좀 남길래 시내를 버스타고 좀 보고나서 피씨방에서 이도백하와 집안의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다.
침대차를 타고 보니 생각보다 허름했다. 이왕 침대차를 사려면 연와를 사는 건데 경와여서 조금 힘들었다. 나는 먼지 많은 곳이 싫은데 이곳 침대차는 먼지로 꽉 찬 느낌이었다. 거기다 기차간 안에서까지 누가 담배를 피우는지 담배연기도 자욱했다. 내가 중국에서 가장 싫은게 뭐냐면 바로 담배연기이다. 버스 안에서, 피씨방에서 너도나도 담배를 피는 통에 정말 힘들었다.
나는 갑갑했지만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인간은 강인한 게 이런 상황에서도 잠은 오더라는 것이다.
다음날 내릴 시간은 5시 45분이었다. 나는 이럴 때는 정확히 한시간전에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 입자 기차에 불이 켜지고 차장에 왔다갔다한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차장이 알아서 내릴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백하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역전앞에서 버스들이 기다리며 연길 갈 사람들을 찾는다.
나는 조금생각해보다가 그냥 연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른 한국인들이라면 백하에서는 당연히 백두산을 보러 간다. 여기서 백두산은 한시간 정도면 가는 거리이다. 그러나 나는 백두산을 이미 봤으므로 굳이 또 갈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빨리 연길로 가서 센터업무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길로 가는 버스는 4시간 정도 걸려서 연길에 도착했다.
연길에 도착한 나는 먼저 은행에 들러서 카드로 돈을 찾은 다음에 일단 사우나에 가서 피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길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시내 모든 곳은 몇 달 살면 다 알게 될 정도로 오밀조밀하다. 아직도 중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연길은 내가 중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곳이다.
이제 중국여행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조금 생길것 같다.
지금까지 동북 3성의 만주지역을 여행하면서 나는 철저하게 현지인과 동일한 여행을 택하였다.
버스를 타고 현지인과 동일하게 움직였고 현지에서 중요히 여기는 관광지를 놓치지 않았다.
이런식의 여행은 나중에 충분히 남는게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의 여행도 이렇게 현지화된 여행을 할 계획이다.
다음 여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중국쪽을 더 여행할지 아니면 중앙아시아를 볼지...이번 만주여행을 끝마치고 나면 조금 쉬면서 다음 여행지를 생각해볼 작정이다.
[에필로그]
2007년 12월 19일 나는 중국에서 귀국하게 되었다.
예상보다 빨리 귀국한 것이기에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중국을 조금 더 이해했다고 생각했기에 뿌듯한 마음이 더했다.
귀국하는 그 순간까지도 쉽지는 않았다.
연길에서의 비행기는 워낙 적은데다가 예약이 쉽지 않았다. 25일까지 모두 만석으로 예약되어 있다고 해서 공항에 나가 웨이팅을 해야 했다.
17일 공항에 나갔지만 한끝 차이로 놓치고 19일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타게 되었다.
늦게 탄 보람이 있는지 1등석을 주어서 최고급 기내식을 먹을 수 있었다.
공항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중국에서는 한국에 가는 것이 큰 일이다.
출국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비장감마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