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 쪽
이용악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시집 『분수령』, 1937)
[작품해설]
이용악은 일제 강점기에 대규모로 발생했던 국내외 유이민(流移民)의 비극적
삶을 깊이 통찰하고, 이를 빼어난 시적 감수성과 튼튼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작
품화한 시인이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막혀 40년이 넘게 논의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가 단행괸 이후에서야 비로소 1930, 40년대
우리 시문학사의 빈약한 공간 속에 우뚝 자리 잡게 된 위대한 민족 시인의 한
사람이다.
이 시는 ‘고향 상실감’에 대한 독특한 시적 정서가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패배
주의와 절망의 몸짓만이 두드러진 박용철의 ‘고향(1931)과도 다르고, 개인의 회고적
서정에 머무르고 만 정지용의 ’고향‘(1932)과도 차별되는 특유의 시적 정조가 단 6행
속에 명료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그의 ’고향은 단순한 향수 대상이 아닌, 현실
상황을 총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고통 받는 현실적 삶과 역
사의 시적 등가물로 치환되어 있는 고향이다.
이 시는 화자의 내면 감정을 표백하는 독백의 성격을 지닌다. 화자는 지금 자신의
고향이 위치한 ‘북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다. 시름에 찬 화자의 내면은 마지막
구절인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로 명징하게 제시되어 있
으며,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 다시 풀릴 때’ 라는 묘사적 표현은 화자의
고향인 ‘북쪽’의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암시하는 동시에 화자의 근심어린 마음을 반영
하고 있다. 이처럼 ‘북쪽’을 향하여 시름에 찬 화자의 내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시키는
가운데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라는 객관적 서술이 2행에 삽입되어 있다. 이
구절은 ‘북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화자로 하여금
시름을 겪게하고 있는 동인(動因)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는 경우, 화자의 주관을 배제시킨 채 객관적인
서술로 표출하게 되면, 보편성돠 객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물론 그 구체적인 사건이란
다름 아닌 당대의 사회 · 역사적 상황, 즉 일제하의 우리 민중들이 겪는 고난과 수탈의
비극적 상황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시는 고향을 그리는 주관적 표출과 함께, 그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비극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표현 방법을 배합하여 개인
의 주관적 서정을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닌 사회적 차원의 정서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거
두고 있다.
[작가소개]
이용악(李庸岳)
1914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36년 『신인문학』 3월호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여 등단
1939년 일본 상지대학 신문학과 졸업
김종한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발간
1939년 귀국하여 『인문평론』 기자로 근무
1946년 조선문락가동맹에 가담
1950년 6.25때 월북
1971년 사망
시집 :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이용악』(현대시인전집)(1937), 『이용악시전집』(1988),
『북쪽은 고향』(1989),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