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어원은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나온 말이다. 설의 뜻은 새해에 대한 인식이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삼가고 조심하여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음력설의 다른 이름으로는 구정(舊正), 정월(正月) 초하루, 한자어로 신일(愼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 원일(元日) 등이라고 부른다. 음력설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21대, 279년∼500년)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1896년 조선 건양(建陽) 원년에 양력이 시행되면서 음력은 폐지하게 되는데, 오랫동안 음력에 맞춰 살아 온 사람들은 상당히 낯설었기에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생각해 차례 등을 지내게 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공식적인 새해의 첫날은 양력 1월 1일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음력설 풍습은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초기에 들어서며 양력설(신정)인 1월 1일∼3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게 된다. 음력 1월 1일은 공휴일이 아니었지만 많은 기업들과 국민들은 여전히 음력에 맞춰 제사와 성묘, 세배를 하는 풍습이 유지되었고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1985년 음력 1월 1일 하루를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공휴일로 지정하게 된다. 이후 4년이 지난 1989년, 설날로 호칭을 변경, 연휴 기간을 3일로 연장하기로 결정한다. 대신 1990년 신정연휴를 3일에서 2일, 1999년부터 1월 1일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하게 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2014년부터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 공휴일이 되었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이날을 즐겼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조선 헌종15년(1849)에 홍석모(洪錫謨)가 우리나라의 세시풍속들에 대해 기록한 책)에 따르면, 1년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빗상자 안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며 나쁜 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쪽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 야광귀
설날 밤에 ‘야광귀’(신발을 좋아하는 밤귀신)이란 귀신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다. 신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해 운수가 불길하다고 하여 모두들 신을 감추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체(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밭거나 거르는 데 쓰는 기구)를 마루 벽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면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날이 밝으면 도망쳐 버린다고 한다.
• 설빔
설날에 남녀노소(男女老少)할 것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갈아입은 새 옷을 ‘설빔’ 또는 ‘세장’(歲粧)이라고도 한다. 설빔은 섣달그믐 이전에, 색깔이 있는 화려한 옷으로 마련하여 대체로 대보름까지 입는다.
• 설음식
설날 차리는 음식은 ‘세찬(歲饌)’,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설날이 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세배하러 온 손님에게도 대접하는데, 이때 반드시 떡국을 차린다. 흰쌀을 빻아 만든 떡국은 설날 아침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로 차리거나 손님에게 차려 내는데, 새해 때마다 떡국을 먹으므로 아이들이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설날 흰떡을 사용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듯하다. 떡국 외에도 쇠고기 산적, 떡갈비, 식혜, 수정과 등을 먹는다.
소지왕(비처왕, 479년〜500년)
‘소지(炤知)’나 ‘비처(毗處)’가 다 ‘비치’로 읽은 것이지만, 비처는 원래 쓴 ‘이두(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자(字)이고, 소지는 불경(佛經)에 맞추어 고쳐 만든 ‘이두’자(字)이다.
[참고문헌 : 네이버지식백과/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