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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지금 어떤 삶을 경험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칭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다. 한 남자가 약속 장소를 향해 서둘러 차를 운전해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가는 차가 거의 거북이 수준이었다. 경적을 울...리고 헤드라이트를 깜빡여도 속도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려는 찰나, 차 뒤에 부착된 작은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남자는 금방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급함도 사라졌다. 오히려 그 차와 운전자를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약속 장소에 몇 분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남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차에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았다면 참을성을 발휘했을까? 빨리 비키라고 더 심하게 경적을 울리며 욕을 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등에 붙어 있는 투명한 스티커를 알아보지 못한 채 섣불리 판단하고 쉽게 화를 내는 것일까? 이를테면 이런 스티커들 말이다.
우리 모두는 이 보이지 않는 스티커들을 등에 붙인 고독한 전사들이다. 따라서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참고' 친절해야 한다. 내가 아는 인도인 중에 아말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다. 음악가인 삼촌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타블라(인도, 파키스탄, 네팔의 대표 타악기)를 배운 아말은 음악대학에 들어간 스무 살 무렵에 이미 모두가 인정하는 타블라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같은 대학에 시타르 전공자인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아말의 타블라 연주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반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아말의 연습실을 찾았다.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 속에서 아말은 그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 순간부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연주의 차원이 달라졌다. 그녀가 앞에 있으면 혼을 다 쏟아부었으며, 그 힘과 열정은 북의 두꺼운 가죽을 찢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키르 후세인이나 라추 마하라즈의 연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아말 혼자만의 사랑이었는지, 그 여학생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말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랑에 온 마음을 바쳤고, 그 감정을 온전히 타블라 연주에 담았다. 사랑의 환희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타블라만큼 잘 표현할 악기가 또 있겠는가. 두 번째 손가락으로 심장(북) 가장자리를 날카롭게 두드리는 음, 왼손 손바닥 끝으로 가슴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문지르는 음, 오른손 끝 손가락 두 개로 심장 중심 부근을 가볍게 튕기는 음,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가슴을 치는 음, 손바닥으로 심장 한가운데를 때리는 음...... 그러나 연주는 거기서 갑자기 멈췄다. 감동적인 피날레와 청중의 환호는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 여학생은 부모의 주선에 따라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아말은 큰 충격을 받았고,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심장이 부서졌다. 타블라도 함께... 그 후 아말은 다시는 타블라를 연주하지 않았다. 음악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그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모두가, 그의 가족조차 그를 실성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느 날 노천 찻집에서 내가 짜이를 권하며 '타블라 연주를 한 번만 들려달라.'고 부탁하자, 아말은 야윈 빰에 번질 듯 말 듯한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 북인도 바라나시의 뒷골목에 가면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느릿느릿 걷는 한 남자를 지나치게 될 것이다. 보통의 키에 갈색 피부,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품위 있는 곡선의 얼굴을 한, 그러나 시선이 약간 바보처럼 보이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바쁘게 오가는 행인들과 순례자들과 여행자들과 소들에 걸구치면서 그는 그냥 이 세상 영혼이 아닌 것처럼 망연자실 걸을 뿐이다. 그가 바로 아말이다. '나는 사랑에 전부를 걸었어요. 그리고 전부를 잃었어요.'라고 적힌 투명한 스티커를 등에 붙인. 그를 떠다밀거나 비키라고 소리치지 말 일이다. 당신도 그처럼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 보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