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약속 - 축복이 시작되다 (찬 323)
1. 아브라함은 셈의 자손이고 데라의 아들이다.
데라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건너편에서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이었다(수 24:2).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란으로 이주하였을 것이다. 그후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으로 계속 나아갔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땅, 새로운 민족, 그리고 개인적인 위대함을 약속해주시면서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이 약속들은 일차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땅 위의 모든 족속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 약속 가운데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는 말에서 앞의 저주와 뒤의 저주가 다른 단어이다.
앞의 저주라는 말은 ‘소홀히 여기다, 깔보다, 함부로 말하다’ 혹은 ‘저주하다’라는 뜻이고, 뒤의 저주는 말 그대로 강한 저주를 의미한다. 즉, 누구든지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축복의 자리에서 제거되리라는 것이다. 결국 땅의 모든 족속의 축복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이 구원을 받고 심판을 받을 것을 의미한다.
이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복 안에 들어오게 될 때 완성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본질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타락한 인류 가운데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시작이고, 완성을 약속한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부르심의 의미요, 오늘날 교회도 이 부르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아브라함의 기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은 순종임을 보여준다. 1~5절 사이에 ‘가다’ 혹은 ‘떠나다’라는 동사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보라. 이것들이 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강조이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4). 이것은 노아가 보여주었던 순종을 생각하게 한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살이었다는 점도 그의 순종의 가치를 더해준다. 그는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갔다(5). 아마 ‘얻은 사람들’이란 이미 하란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증거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얻은 개종자들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람들’이 노예나 자녀들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다(6).
히브리어 ‘모레’는 선생을 의미하는데 어쩌면 이 장소는 고대에 가르침이 베풀어지던 고대의 사원이거나 가나안 제사장들이 신탁을 선언하던 장소나 그 나무일 수도 있다. 즉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도착하게 된 곳은 바로 이방 이교의 영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고 기록한다(6). 앞의 창세기 기록에서 가나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의 세력으로 등장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땅은 바로 이교들의 땅이었고, 그의 믿음은 끊임없이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이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와 얼마나 흡사한 상황인가!
3.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에 대해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나타내심으로 응답하셨다(7).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예배였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표현은 창 4:26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8). 이 표현이 다른 구약 성경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마틴 루터는 ‘설교하다’로 이것을 번역했고 이것은 문맥의 의미를 잘 전달하는 번역이다. 이 아브라함의 최초 사건은 11장의 바벨론에서처럼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불명예스런 이름을 얻게 되지만, 믿음의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려는 사람은 영예를 얻을 것을 교훈한다.
4. 그러나 곧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10~20).
땅에 기근이 들어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옮겨갔다. 여기서 ‘거류하려고’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머문다는 의미를 전달한다(10). 이 행위 자체는 불신앙도, 신앙도 전달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아마도 자기 생명을 보존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 사래에게 그곳의 왕이 아내를 원하게 되면 누이라고 속일 것을 요구했다. 결국 바로는 사래를 원하게 되었고 아브라함은 사래 대신에 많은 선물을 바로로부터 보상받았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깨어질 위기에서 행동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일로 하나님은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고, 바로로 하여금 사래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깨닫게 하셨다. 결국 바로에게 거짓말에 대한 책망을 받은 후 애굽에서 추방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망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무익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계교와 거짓말도, 바로의 절대권력도 하나님의 계획을 깨뜨릴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실 것이고, 때가 차면 아들을 보내사 그 구원의 축복을 모든 민족 가운데 이르게 하실 것이다.
5.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사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깨뜨릴 수 없음을 알고, 삶의 모든 순간에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종하고 따라가는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