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연방의 협공으로, 동유럽의 육군 대국이었던 폴란드는 한달여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동년 겨울, 소련은 영토 문제를 명분으로 핀란드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다.
1940년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브라질 재무부는 자국 헤알화에 대한 화폐가치 절하를 실시하였다.
이는 신흥 공업국 브라질의 수출실적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종료될 것이라 여겨졌던 유럽에서의 전쟁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어,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기에 이르렀다.
5월 4일에는 서부전선의 독일군이 베네룩스 3국의 국경을 넘기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브라질 국민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독일도 글러먹었구만. 그거 그 '슐리펜 계획' 그대로 써먹은 거잖아.
이번에도 우리는 영국 쪽에 줄 서겠네그려.
- 브라질 시민, 상파울루의 한 주점에서
하지만 그러한 인식과는 반대로, 독일군은 1차대전 당시 무너뜨리지 못했던 베르됭을 너무나 빠르게 접수하고
롱위 방면의 프랑스군에 대한 포위섬멸전에 들어가고 있었다.
국경 지대의 프랑스군이 패퇴하고 독일군이 파리에 근접하자,
이탈리아는 독일과의 군사동맹에 가입하여 프랑스 남부 및 이집트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고,
당초 보르도로 이전하여 항전해보고자 했던 프랑스 정부는 비시에서 길을 멈추고 독일에 항복한다.
육군대국 프랑스마저 허무하게 무너지자 그야말로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고, 브라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1940년 8월, 브라질 국무회의.
"현재 유럽의 패권이 영프로부터 독일로 넘어가고 있는 듯 싶소...
향후 외교의 방향은 어떻겠소?"
"각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미국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만일 영국마저 무너진다면, 우리 또한 종래의 외교 정책을 전면 전환해야겠으나...아직까지는 관망이 필요합니다."
프랑스의 장성 샤를 드 골은, 독일에게 항복해버린 프랑스 본토에서 탈출하여 프랑스 망명정부를 구성했다.
1940년 11월 5일, 바르가스는 징병 정책 실시를 전격 발표하였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여, 브라질의 국익 수호를 위하여서는
종래의 병역 제도를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전환함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금일부로 만 18세에서 30세까지의 모든 브라질 남성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신체검사의 대상이 되며,
이들 중 현역 복무에 적합함이 판정된 신체 건강한 남성은 3년 간 브라질 육, 해, 공군에서 의무 복무하게 됨을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1941년 6월, 또 한차례의 헤알화 평가절하가 실시되었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야기되었고, 주요 대도시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으나, 경찰에 의해 곧 진압되었다.
1941년 10월 3일-
프랑스 비시 정부는 독일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같은 날,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였다.
다음 날 미합중국 행정부와 의회 또한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결의함으로써
양국간 전쟁이 시닥되었다.
항공모함 전술 개발에 주력하던 브라질 해군 인사들은, 이 날 항공모함을 이용한 일본의 공습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영국에 반기를 들고 독일과의 군사동맹에 가입했던 이라크는
자유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1942년 5월 2일,
독일은 소련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소식은 곧 브라질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되었다.
독일, 소련 침공
-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은 휴지조각으로
어제 독일군이 소련과의 국경을 넘어 진격함이 확인되었다...(중략)
...핀란드와의 지난 전쟁에서 여러 결점을 보인 붉은 군대가 과연 독일군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이에 대해 영미 연합국은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1942년 5월, 수년간의 연구 끝에 드디어 해군은 항모전단 건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발주된 함선은 1945~1946년에 건조가 끝날 것으로 계획된 상태.
한편 중국 전선에서는, 전열을 가다듬은 중국 국민당군의 대대적인 반격이 이루어져
9월에는 만주가 탈환되기에 이른다.
독일군은 카렐리야 전선의 핀란드군과 더불어 소련 영내로 빠르게 진격하였다.
정글과 습지가 많은 중남미의 지형에 적합한 새로운 특수 병과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브라질 해군은 이미 미국과 일본 등에서 운용되고 있던 해병 전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1943년 1월, 영국은 브라질 주재 대사관을 통해 연합국 가입 요청 의사를 타진하였다.
1차대전 때처럼 브라질산 커피 구매를 보장하고, 공업 및 군사 관련 기술을 이전하는 조건이었으나
바르가스는 국무회의를 통하여 해당 제의 거절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