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거벽 등반사와 등반가들 글: 임성묵 Part- 1 서문: 다양성의 한축으로서의 거벽등반 현대 거벽 등반의 개념의 이해. 현대 거벽 등반은 마터호른 초등 후 은(銀)과 철(鐵)의 시대를 지나 현제에 이르고 있다. 지금부터 114년 전인 1881년 유럽 알프스(Alps) 침봉 중 가장 어려운 봉우리중의 하나인 에끼유드 크레뽕(Aigyille de Grepon, 3.489m)을 머메리가 초등한 후 그는 새로운 등반사조를 탄생시킨다. 머메리즘(Mummerism)은 그 당시 능선 등반에서 벽 등반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얼마나 새롭고, 어렵게 오르느냐가 큰 화두였다. 쉬운 노말 루트를 버리고 어려운 벽으로 향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순수성이 중요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히말라야(Himalaya)의 몇몇 능선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벽 등반보다도 위험성과 어려움이 더 한 것으로 평가 된다.등반방식과 등반개념, 탐사와 정보의 취득이 일부 등반사조를 변화시키는 큰 요인임을 주지한다. 현대 고산거벽등반방식의 양축은 캡슐 스타일(Capsule style)의 거벽등반과 원 푸시(One push) 알파인 스타일(Alpine style)등반일 것이다. 이 외에도 신 루트의 개척과 동계등반, 무 산소등반 등이 한국 산악회 가 앞으로 추구해야할 과제들이다. 하지만 막연한 등반방식의 개념 이해는 자칫 실제 거벽 등반의 곤란함과 대상 산의 어려운 정도, 루트의 합리적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한국 산악 계는 먼저 등반 방식과 개념의 정확한 정립 후에, 앞으로 지행해야할 거벽 등반에 나서야 할 것이다. 개념정립의 실패는 등반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시행착오를 가지고 온다. 먼저 거벽 등반 방법(Method)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등반방법에는 실제 많은 종류의 등반방식과 형태가 존재한다. 크게 등반의 형태에 따른 등반은 순수 암벽등반과, 빙벽등반, 설벽등반, 혼합등반, 인공등반(Aid climbing)등이 될 수 있다. 또 등반 방식에 따라 순수 알파인 스타일 등반, 세미 알파인 스타일(Semi Alpine style)등반, 극지법 또는 포위전법(Siege Tactics), 거벽등반과, 대 암벽 등반, 고산거벽등반, 고산등반, 단독등반 등이 될 수 있다. 또 여기에 동계등반과 무 산소 등반 신 루트의 개념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등반 방식의 개념의 이해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등반 형태에 따른 등반은 후에 말하기로 한다. 먼저 등반방식에 따른 개념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등반 방식에 따른 개념의 이해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 대담성과 창의성 그리고 길 찾기의 어려움과 하강의 위험이 공존하는 전위적인 등반 방식이다. 1995년 라인홀드 메스너와 피터 하벨러는 카라코람산맥(Karakoram mountains)의 가셔브룸2(Gasherbrum 2, 8.035m) 북서벽을 3일 만에 알파인 스타일로 루트 초등을 기록한다. 알프스에서 행하여지던 대담한 등반을 히말라야에서 시도했고 순수 알파인등반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국제산악연맹(UIAA)에서 정의한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기준은 아래와 같다. 1. 등반인원은 6명 이내 2. 등반용 로프는 팀당 1-2줄 3. 고정로프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팀이 이미 설치한 고정로프도 이용하지 않는다. 4. 사전 정찰 등반을 하지 않는다. 5. 고소 포터나 셀파 기타지원조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6. 산소기구를 휴대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극지법 또는 포위전법: 대규모 인원을 이용하여 전진캠프와 정상으로 향하는 각각의 캠프를 설치하여 등반에 필요한 식량과 장비를 운반하여 순차적으로 루트를 개척하여 정상에 오르는 방법. 하지만 극지법의 등반이라고 하여 모두 등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렵고 위험한 초등루트를 안전을 확보하며 오르기에는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이 너무 위험할 수 있다. 이런 루트의 안전을 확보하며 오르기 위하여 히말라야의 거벽에서는 아직도 극지법의 등반이 많은 원정대에 의하여 시도되고 있다. 단 어렵지 않은 노말 루트의 등반에서 많은 원정대가 매번 같은 방법의 등반이 행하여지는 우리 산악계의 현실은<새롭고, 어렵게> 등반의 순수성을 주창한 머메리즘과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세미 알파인 스타일: 알파인 스타일과 극지법의 등반을 절충한 방식으로 일정한 고도까지 장비와 식량의 수송을 마친 후 고정 로프를 설치하지 않는 알파인 스타일에 근접한 등반방식을 이용하여, 빠르게 정상으로 향하는 방법. 최근의 원정대가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합리적 등반방식이라고도 한다. 이유는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이 실패 할 경우 차선으로 이 방법의 선택을 고려할 수 있고, 대상 산에 대한 특성을 먼저 이해한 후 등반에 나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알파인스타일에 비교하여 과감성이 감소한 등반이다. 거
거벽등반이란? 첫째 : 눈, 얼음, 암벽이 위주이다. 둘째 : 벽의 길이가 수 백 미터 이상이다.(유럽에서는 500m이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 임.) 셋째 : 상당한 경사를 가지고 있다. 넷째 : 짧게는 하루에서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거벽(Big Wall)의 종류 가) 낮은 고도의 거벽(low altitude): 요세미테의 앨캡피탄, 하프돔 나) 중고도의 거벽(medium altitude): 악수, 세레또레 다) 높은 고도의 거벽(high altitude): 에베레스트 남서벽, 트랑고 타워 대 암벽등반 대 암벽 등반 (Big Wall Climbing) 큰 암벽을 오르는 행위를 말하며 그 큰 암벽에는 벽의 크기, 고도, 기후, 암질의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른 등반방식이 적용되고 등반 자에게는 좀더 풍부한 기술과 경험을 필요로 하며 강한 인내력과 정신력, 그리고 완벽한 조직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암벽용어로써 대 암벽의 일반적인 의미도 스포츠가 발전함에 따라 약간씩 변해왔다. 대 암벽 등반이 미국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전반기 사이의 요세미티) 에서 처음 시작되었을 때 대 암벽이란 등반 시 거의 인공등반기술을 요구하며 등반을 완료하는데 2일 이상을 소요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난 15년 이상 동안 몇몇의 대 암벽 루트는 자유등반이 되어왔다. 그리고 몇몇의 인기 있는 루트는 하루에 등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대 암벽 등반은 2일 이상의 등반시간이 소요된다고 본다. 고산거벽등반: 위의 거벽등반과 대 암벽등반에 자연적 등반의 제약요소인 높은 고도가 더해진 등반형태이다. 자연적, 인위적 제약 요소가 많은 등반일수록 높은 가치의 등반으로 평가된다. 낮은 고도에서도 쉽지 않은 거벽 등반을 높은 고도에서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 얼마의 고도가 고산거벽에 속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지만 5000m 이상의 산에서 행하여지는 거벽등반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고산거벽등반은 강력한 정신력과 합리적인 루트의 이해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거벽등반의 꽃이다. 고산등반: 높은 고도의 산을 오르는 형태의 등반이다. 일반적으로 고산등반방식은 걷기와 어렵지 않은 등반이 주가 된다. 예로 에베레스트(Everest, 8.850m)의 노말 루트의 어려운 정도는 설악산 죽음의 계곡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높은 고도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강풍과 눈사태, 강한 체력과 지구력 저산소로인한 각종 고산병은 고산등반에서 반드시 극복해야하는 문제들이다. 고소에 쉽게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등정과 사망이라는 극단을 달리고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단독등반: 단독등반도 많은 종류의 등반방식이 존재한다. 로프를 사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필요 할 때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작은 암벽에서부터 거대한 대 암벽에서의 등반까지, 하지만 거벽 단독등반의 의미는 조금 더 복잡하다. 혼자 등반한 다는 것은 실로 많은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만에 하나 1%의 불확실성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에는 전위를 꿈꾸는 단독등반가들이 그들의 영역을 알프스와 요세미티, 남미 히말라야의 거벽까지 확대하고 있다. 단독등반은 살아남았을 때 그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상이 등반방식에 따른 등반의 종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무산소 등반과 동계등반 또 여기에 우리 산악계가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 무산소등반과 동계등반의 개념정립이다. 무 산소 등반 먼저 무 산소등반에 대하여 이야기 해본다. 8000m 이상의 거봉을 등반한 등정 자들의 등반경력을 보면 8.400m - 8000m 이상의 산에 대하여 간혹 무산소 등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 등반에서 서구의 여러 나라의 산악인들은 이미 이러한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또 자이안트봉의 무 산소 등반을 에베레스트, K2, 로체, 칸첸중가, 마칼루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8.400m 이상의 산을 무 산소 등반의 영역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예로 카라코람산맥의 가셔브룸2봉은 8.000m 가 조금 넘는 8.035m이다. 또 한국 산악회가 97년 서벽 중앙 립으로 초등한 가셔브룸4(7.925m)는 겨우 8000m에 75m낮은 산이다. 등반의 곤란함은 논의 할 필요도 없이 가셔브룸4가 높다고 하겠다. 또 저 산소로 인한 행위의 곤란함도 치열한 벽 등반이 주가 되는 가셔브룸4가 가셔브럼2봉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예는 거의 같은 고도에서 이루어진 지극히 다른 형태의 등반을 통하여 어떤 등반에 대하여 높은 가치부여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산악계는 앞으로 펼쳐질 8.000m 이상의 산에 대한 무 산소등반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통한 의견정립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동계등반. 동계등반의 혹독함은 이미 많은 등반대들의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대륙별로 그 혹독함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네팔,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나라들의 동계 등반조건은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네팔(Nepal) 히말라야와 중국의 쿤룬산맥의 일부분 또 쓰촨성과 윤남성에 위치한 다쉐산맥, 또 부탄(Bhutan)히말라야는 혹독한 추위와 제트기류를 제외하고 순수 등반조건은 안정된 날씨 속에서 등반을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이들의 산맥이 북위 27도에서 31도 사이에 위치해 여름이면 인도양에서 더워진 공기로 인하여 발생하는 몬순(monsoon)의 영향에서 벋어나 맑은 날씨가 지속될 수 있다. 물론 동계의 혹독한 추위와 자연적 위험요소는 하계 등반에 비교하여 훨씬 높고 등반의 어려움과 가치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카라코람과 펀잡(Punjap)히말라야의 북쪽지역 또 가르왈(Garhwal)히말라야의 북쪽지역은 전혀 다른 동계등반 조건이 전계된다. 여름철 몬순이 그레이트 히말라야라는 대 장벽에 막혀 카라코람산맥과 힌두쿠시(Hindu Kush)산맥, 힌두라지(Hindu Raji)산맥, 펀잡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 8.126m)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사막 같은 기후가 지속된다. 여름철에도 등반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동계에는 전혀 다른 기상조건을 보인다. 이유는 네팔 히말라야와 비교하여 위도가 5도 정도 높은 이유로 겨울이면 상상할 수 없는 추위와 많은 적설량, 강한 바람 등의 이유로 발토로(Baltoro GL)빙하는 헬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베이스캠프 접근마저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전 세계를 통하여 힌두쿠시를 제외 한, 카라코람산맥의 동계등반에 성공한 팀은 한 팀도 없다. 또 카라코람과 펀잡 히말라야의 북쪽지역, 가르왈 히말라야의 북쪽지역, 텐산산맥의 서쪽지역, 쿤룬산맥의 서쪽 끝 지역의 6000m 이상의 봉우리에 대한 동계등반의 가치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신 루트와 변형루트 그리고 초등루트 지난 몇 년 간 한국 등반대는 많은 거벽에서 새로운 루트개척을 통한 등정과 초 등정등 괄목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몇몇의 원정대는 정상등정을 하지 않고 하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지와 학술지에 신 루트개척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주저함이 없었다. 또 이에 대한 어떠한 반대의견 제시도 없었다. 이들이 개념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등반 성과의 포장을 위해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거벽등반을 위해서 정확한 개념정립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국제산악 연맹에서 잠정 제시한 신 루트와 변형루트의 개념은 아래와 같다. 1. 정상까지 3분의 2이상 개척된 루트를 신 루트라고 본다. 2. 정상을 기준으로 3분의 1이상 개척된 루트를 변형루트로 본다. 3. 8000m 이하의 산에 대한 신 루트의 명명은 원정대 자율에 마낀다. 1990,1995년 스페인의 등반 팀은 그레이트 트랑고(Great Trango Tower, 6286m)의 북서능에 등반거리 2700m의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 150m전에서 후퇴를 결정한다. 이들은 이후 이 루트를 등정 시도라고 말하지 신 루트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후 2004년 여름 미국의 2인조 등반대는 스페인 루트와 스페인 팀이 가지 못한 150m을 더 등반하여 정상에 선다. 이들의 이 루트에 ‘가진 아짐 리지’ 라고 명명했다. 위의 예와 같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전례를 남길지 지금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상은 명확해야한다. 단 한마디를 가지 않았어도 이것이 초등루트 이거나, 신 루트 일 때는 ‘등반성이 없어서’라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신 루트를 시도하거나 초등 루트를 시도하는 원정대는 정산사진 또는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정상의 상황증거를 남겨야 한다. 또 변형루트를 신 루트라 칭하는 잘못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상이 각종 등반 형태와 등반 의 개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것은 등반의 가치평가이다. 등반에는 실로 많은 종류의 등반 형태가 존재한다. 리토 테자다 플로레스(Lito Tejada Flores)는 그의 평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등반 규칙은 부정적으로 규제할수록 그 목표는 긍정적이다.’ 이 말을 조금 확대 해석하면 제한하는 등반에 높은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1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황금 피켈상 후보로 오른 한 사람은 스페인의 강력한 여성 클라이머인 실비아 비달(Sibia Bidal)이었다. 그녀는 파키스탄의 후시 계곡의 아민부락의 1300m 수직 벽에 A5의 아주 어려운 루트를 개척했다 .하지만 심판진의 평가는 냉혹했다. ‘ 아직도 고산에서의 인공등반이 필요하지만 접근이 쉽다’ 는 이유로 수상의 영예를 놓쳤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실비아 비달이 수상의 영예를 놓친 것은 그녀의 등반방식 즉 등반 규칙을 부정적으로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장비를 이용한 인공등반으로 등반을 이어 같기에 심판진의 평가는 작은 가치의 부여였다. 이 후 실바아 비달은 이런 방식의 등반을 자제하고 자유등반에 열중하고 있다. 거벽등반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또 거벽 등반 뿐 아니라 등반의 규칙을 부정적으로 규제하는 등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한다. 현대 등반은 각각의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상호 보안 적 관계를 가진다. 즉 거벽등반은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전체 등반방식의 한 부분이다. 진정 높은 가치의 등반은 등반장비와 등반시간, 등반인원, 등반식량 등을 제한하는 등반이다. 거벽등반은 이런 등반의 큰 틀 안에 있으며 다양성의 한 축이다. 자연환경에 따른 등반방식의 변화와 거벽등반. 인공등반의 기술과 난이도는 화강암 수직벽으로 유명한 60-70년대 요세미티에서 그 기술과 난이도의 비약적 발전을 가지고 왔다. 반면 유럽의 등반가들은 눈 발린 60-70도의 경사에서 그들의 주특기인 알파인 스타일을 더더욱 발전 시켰다. 이것은 지리적 자연환경의 여건이 등반 스타일을 결정해 왔다고 하겠다. 카라코람과 히말라야에서도 미국 클라이머들은 주로 요세미티와 비슷한 조건의 대상지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트랑고산군과 라톡등 주로 화강암 침봉에서 뛰어났던 반면 유럽의 클라이머들은 눈 발린 벽에 자신의 식량과 장비를 모두 지고 단 1m의 고정자일도 사용 않는 진정한 알파인 스타일로 많은 봉우리의 초등의 영예를 안았다. G4, K2, 탈레이사가르, 낭가파르밧등이 대표적 예인 것이다. 그럼 현대 거벽 등반의 주류는 무엇일까. 그 두 끝은 아직도 캠슐 스타일의 거벽등반과 원 푸시 스타일의 알파인 등반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21세기 등반을 최첨단에 서서 이끌고 있는 독일의 토마스 후버 형제의 등반일 것이다. 이들은 알프스에서 뛰어난 등반을 해낸 후 요세미티로 도미 인공등반의 기술을 익힌 후 엘캡피탄 최고 난이도의 인공등반 루트를 등반하고 기존의 샬라테 월을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괴력을 보였다. 미국과 유럽의 등반 스타일로 무장한 이들은 라톡의 신 루트, 쉬블링의 직등루트를 오르며 많은 산악인들을 놀라게 했다. 바로 이런 등반이 현대 거벽 등반의 진수라고 생각된다. 그럼 두 가지 형태의 등반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요세미티 식의 등반은 어렵지만 안전하다는 것이고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은 빠르지만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 큰 형태의 두 가지 등반을 절충한다면 쉬블링의 알렉스 후버처럼 완만한 하단에서는 빠른 자유등반을 통한 알파인 스타일로 상단의 어려운 암벽에서는 요세미티 식의 고난도 등반으로 꾸준한 속도를 유지 체력과 힘을 아끼는 등반을 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현대 거벽등반에서 독립된 형태로의 등반은 존재하기 어렵고 다양한 형태의 등반 중 가치 있고 요긴하게 쓰여 질 때 그 의미는 더욱 빛난다 하겠다. 또 어떤 면에서 거벽등반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이나 단독, 무 산소등반, 초등등반을 같이 기술한다. 어려운 시도와 도전이라는 명제는 단지 거벽등반에만 적용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각 대륙별 등반 사는 아래와 같다. Part- 2 각 대륙별 거벽등반사와 등반가들. 1900년 알프스에서 시작된 경량화와 속공등반, 직등주의 등의 등반사조는 이 후 20세기에 접어들며 광역화되기 시작한다. 이미 전 세계의 유명한 거벽등반 대상지들은 거의 모든 봉우리가 초등되었고, 21세기 들어 더 세밀한 신 루트의 개척과, 문명의 이기를 배제하고 또 등반 방식의 제약을 통한 대담한 등반들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각 대륙별로 다른 기상조건에 기인한 등반방식과 등반사조의 차이점을 이해해야한다. 알프스를 시작으로 미국, 파키스탄, 중국, 인도, 네팔, 남미, 북극권과 기타의 거벽 등반사와 훌륭한 거벽 등반가를 소게한다. 또 어쩌면 거벽등반 보다 더 어렵고 위험한 초등정과 단독등반, 무산소등반등의 어렵고 새로운 등반을 같이 소개한다. 1. 알프스 거벽 등반 사. 1881년 샤모니의 침봉 가운데 가장 어려운 봉우리인 에끼유드 크레뽕을 초등한 머메리는 ‘등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에 의해 주도된 알프스 황금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어렵고, 새롭게’라는 머메리즘이라는 새로운 등반사조를 탄생시킨 것이다. 장비의 발달과 북벽시대(철의 시대) 1900년에 접어들면서 암, 빙벽 장비의 급속한 발전과 더 붙어 인공등반이 주 가 된 직등등반이 행하여진다. 당시의 장비와 기술로는 수직의 거벽에 자유등반이 불가능했다. 1908년 영국의 오스카 에켄 슈타인(Oscar Ecken Stein)이 10발 짜리 최초의 아이젠을 개발했으며, 1933년에는 로랑 그리벨(Laurent Grivel)이 프론트 포인트(Front point)가 장착된 12발의 아이젠을 개발한다. 1910년 오토 헤르조크(Otto Herzog)는 카라비너를 개발한다. 이러한 등반장비들을 바탕으로 북벽시대가 막을 연다. 1925년 에밀 솔레더(Emil Solleder)와 구스타프 렌덴 바우어(Gustav Letten Bauer)가 이태리의 푼타 치베다(Punta Civetta)북벽을 등반한다. 또 1933년 에밀리오 코미치(Emilio Comici)와 디아미르(Diamir)형제에 의하여 치마그란테 디 라바레도(Cima Grande Lavaredo)북벽이 초등된다. 4년 후 코미치는 어려운 오버행이 포한된 이 루트를 3시간 30분 만에 단독 등반으로 재등 함으로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코미치는 어려움을 추구하기위한 직등(Direttissima climbing)을 처음 주장하였다. 또 북벽 시대를 이끈 인물 중 뛰어난 등반가였던 빌로 벤젤바하(Willo Welzenbach)는 1932년 세계최초의 근대적인 등반등급 체계를 창시한다. 이 후 등반에 대한 어려움의 표현이 좀 더 간략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35년에는 이태리의 리카르도 캐신(Ricardo Cassin)과 비토리오 라티(Vittoorio Ratti)가 돌로미테의 치마오베스트 디 라바레도(Cima Ovest Di Lavaaredo)북벽을 오른다. 이들은 폭풍설 속의 악천후에도 등반을 감행 500m의 수직 벽을 돌파한다. 이 등반을 두고 당시 산악계는 ‘이탈리아의 영광.’이라 칭송했다. 아이거 북벽은 초등 전까지 10여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당시로서는 마의 벽이었다. 하지만 1938년 마침내 독일과 오스트리아 대에 의하여 초등된다. 이 등반대의 대원이었던 하이인리 하러(Heinrich Harrer)는 초등 20년 후인 1958년 <하얀 거미>라는 당시의 등반기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더욱 새롭고 어렵게 철의 시대의 재 개막 2차 대전으로 주춤했던 알프스 침봉에 대한 도전은 종전 후 프랑스대가 그랑드 조라스와 아이거 북벽을 재 등하며 철의 시대의 재 개막을 알렸다. 1945년 프랑스의 가스통 레뷔파(Gaston Rebuffat)는 그랑드조라스의 워커능을 재 등하였고, 1947년 프랑스의 리오델 테레이는 아이거 북벽을 9년 만에 재 등하며 앞으로 펼쳐질 알프스 북벽에서의 단독등반과 동계등반이라는 슈퍼 알피니즘 실현을 예고했다. 1955년 드류(Dru) 서남필라가 월터 보나티에 의해 단독 초등된다. 보나티는 이 등반에서 단 한 개의 볼트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장비와 식량을 담을 자루를 이용해 이것을 끌어 올리면서 등반을 이어간다. 이 홀링(Hauling)방식은 요세미티보다 10년 앞서 그가 개발한 기술이었다. 1961년에는 토니 하벨러(Tony Hiebeler)가 아이거 북벽을 동계 초등을 기록한다. 또 벨기에의 클라우디오 바르비에(Claudio Barbier)는 돌레미티의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의 다섯 개 북벽을 단 하루 만에 단독등반 한다. 또 몽블랑 프레네(Freney) 중앙릉이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 아이언 크라우흐(Ian Clough), 돈 윌란스(Don Whillans)와 폴랜드의 잰 드쥬그로쯔(Jan Djuglosz)가 초등한다. 1965년 발터 보나티가 마터호른 북벽을 동계 단독 직등으로 오른다. 1968년 프랑스의 르네 드메종(Rene Desmaison)이 많은 원정대가 실패한 그랑드조라스의 수루(Shruod)를 등정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신 루트 개척만큼 힘든 속도등반이 1974년 라인홀드 메스너에 의해 시도된다. 그는 아이거 북벽의 1800m거벽을 10시간 만에 완등하는 슈퍼 알피니즘을 선보인다. 이렇듯 1900년부터 1974년까지 알프스 산맥에서 주창된 머메리즘은 등정시대를 지나 등반의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새로운 등반사조로 인해 모든 북벽과 어려운 루트들이 초등되고, 동계등반과 단독등반이 행하여지며 알프스 등반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마이크로 루트 개척과 더 과감해진 알파인 스타일 1986년 3월에 유고의 토모 체센(Tomo Cesen)이 알프스 3대 북벽을 동계에 혼자서 연속 등반에 성공한다. 그는 아이거 북벽, 쉬라우드(Shroud, 그랑드죠라스), 마터호른 북벽을 4일 만에 완등 했다. 속도와 과감한 등반의 진수를 보여준 등반이었다. 1991년에는 프랑스의 프랑스의 카트린 데스터벨은 여성의 몸으로 드류 서벽에 A4급의 신 루트를 개척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유명한 남자 등반가도 힘들어했던 가장 어려운 거벽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컸다. 또 같은 해 제프 로우(Jeff Lowe)는 아이거 북벽에 메타노이아라는 신 루트를 개척한다. ‘자살등반’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감했던 이 등반의 나이도는 (5.10, A5)급의 단독 등반이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슬라브코 스베티칙은 알프스 최후의 과제로 간주되던 그랑드조라스 제 2봉 왼쪽 측릉에 마니투아(1,700m 최난도 VII+급)라는 루트를 단독으로 개척했다. 카탈랜 등반가 엔릭 루카스(Enric Lucas)와 닐 보히가스(Nil Bohigas)가 안나푸르나 중앙봉의 남벽을 미리 캠프를 설치한다거나 고정로프를 사용치 않고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하여 9일간 등정 및 하산을 완료했다. 1992년 프랑스 여성 산악인 카트린네 데스티벨이 17시간 만에 동계 아이거 북벽 여성단독 초등하였다. 1994년 프랑스 여성 산악인 카트린네 데스티벨이 단독으로 마터호른 북벽의 보나티루트(65년 초등)를 동계 2등 함으로써 알프스 3대 북벽 동계단독등반을 모두 이룩했다. 1995년 크리스토프 라파엘리는 아이거를 포함한 알프스 10대 알파인 벽을 15일 만에 단독 등반한다. 단독등반의 멀티피크 등반의 시작이었다. 그는 또 드류 서벽에 A5급의 단독 신 루트를 개척했다. 1996년 스위스의 클라우 레미 형제가 레스 데아블러 레즈(Les Diablerets)북서벽을 동계 초등하고 스키하강을 기록한다. 또 영국의 알리슨 하그리브스는 동게 아이거, 그랑드조라스, 마터호른 북벽을 여성으로서 최초 단독등반에 성공한다. 이처럼 근래에 들어서면서 알프스의 거벽등반은 더 세밀한 루트와 과감한 시도로 머메리즘의 극대화에 나서고 있다. 2.미국의 거벽 등반 사 미국의 대 암벽 역사는 요세미티 계곡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 계절 내내 맑은 기후와 온화한 날씨로 등반에 좋은 기상조건을 제공한다.1000m에 달하는 거벽들이 모여 있는 이 계곡에서 미국 등반가들은 독창적인 등반기술(인공등반 기술)과 장비, 난이도 체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히말라야와 알프스 등의 거벽에서도 뛰어난 등반을 해낸다. 후에 이런 등반방식을 요세미티 등반 스타일이라고 불리게 된다. 새로운 등반사조를 탄생시킨 것이다. 요세미티의 황금시대 1947년 존 살라테(John Salathe)와 안톤 넬슨(Anton Nelson)이 로스트 에로우 침니(Lost Arrow spire)를 초등하며 요세미티 계곡의 황금시대를 연다. 1950년 앨랜 스텍(Allen Steck)과 존 살라테가 4일 동안 센티널 록(Centinel Rock)북벽을 오른다. 이 등반은 요세미티 최초의 빅 월 등반으로 기록된다. 이에 앞서 1937년 시에라 클럽(The Sierra Club)에서 암벽등반의 어려운 정도를 표현할 수 있는 십진 체계를 만든다. 이 후 1950년 현재와 같은 요세미티 등급체계(5.10체계)를 완성시킨다. 1953년 로열 로빈슨은 제리 갈 워스 등과 함께 센티널 북벽 샤라테 루트를 이틀 만에 재등 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또 1956년에는 워랜 하딩, 로열 로빈슨 등이 하프 돔(Half Dome)북 서벽을 초등한다. 이 등반은 당시 미등으로 남아있던 앨케피탄(띠 Capitan)의 초등경쟁을 가속화한다. 1958년 11월 드디어 엘케피탄이 워렌 하딩과 죠지 위트모어 등이 37일간 등반하여 1000m의 거벽을 초등한다. 1964년 척 프래트는 이본 취나드와 함께 마운트 워드킨 남벽을 초등한다. 1970년 워렌 하딩은 하프 돔의 남벽과 엘캡의 다운 월 초등을 기록한다. 하지만 이 등반은 수많은 볼트의 사용으로 자연적 선의 등반을 주창한 로열 로빈슨등과 대립 관계를 야기 시킨다. 이 등반으로 요세미티의 황금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는데 이 기간동안 미국의 인공등반 기술은 세계초고의 수준이었으며 독창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인공등반으로 인한 자연파괴라는 부정적 영향도 이때에 제기된다. 클린 클라이밍과 자유등반의 열기로 고조된 요세미티 70년대에는 하딩의 등반 후 요세미티는 클린 클라이밍의 새로운 등반사조가 자리를 잡는다. 뛰어난 인공등반가 이었던 짐 브리드웰도 1971년 나비스코 월(5.11a)을 자유등반으로 오른다. 존 롱은 워싱턴칼럼의 아스트로맨(Astroman·5.11c) 오버행 루트를 자유등반 한다. 그리고 레이 자딘일행은 40m길이의 오버행 크랙 피닉스(Phoenix·5.13)를 자유등반 했다. 캐나다 클라이머 크로프트는 아스트로맨을 프리솔로로 올랐다. 1987년 아치 록(Arch Rock)에 펀치라인(Punchline)을 개척했는데, 한편 인공등반(aid climbing)도 꾸준히 발전하여, 1972년 짐 던은 코스모스(Cosmos·A3+/5.8)를 단독 초등했고, 포터는 노즈 상부 좌측의 가파른 오버행 7피치 쉴드(Shield·A2+/5.9)와 북아메리카벽 우측의 500m 오버행 절벽인 조디악(Zodiac·A2+/5.8)을 단독 초등했다. 1975년 짐 브리드웰 일행은 노스 아메리카 벽 좌측에 퍼시픽 오션 월(Pacific Ocean Wall·A3+/5.9)을, 그리고 1978년 그의 일행은 퍼시픽 오션 월과 노스 아메리카 사이에 꿈의 바다(Sea of Dreams·A4+/5.9)를 초등했다. 초등 당시의 인공등반의 난이도는 죽음의 등급인 A5였다. 당대 최고의 여성 등반가인 린 힐은 동료와 쉴드를 등반했다. 1990년대 엘캐피탄에 플라스틱 서저리 디자스터(Plastic Surgery Disaster·A5-/5.8), 레티센트 월(Reticent Wall·A5/5.9), 걸프 스트림(Gulf Stream·A4/5.10), 콘티넨탈 드리프트(Continental Drift·A4/5.9)등이 개척됐다. 하지만 레티센트 월같이 자연적인 선을 무시하고 개척한 루트는 등반가들의 외면 속에 억지 루트라는 문제를 제기시키기도 하였다. 거벽에서의 속도 등반도 한층 가열됐다. 일본의 유지 히라야마는 노즈를 2시간48분20초 만에 등정했다. 독일의 볼프강 퀄리히는 세퍼릿 리얼리티를 프리솔로로 등반했다. 1993년 린 힐은 동료와 팀을 이루어 노즈를 자유등반 했고, 다음 해 그녀는 23시간 만에 마의 대 천장 구간을 넘어 정상에 선다. 린 힐은 노즈를 자유등반으로 오른 최초의 등반가로 기록된다. 1995년 독일의 알렉산더 후버(Alexander Huber)와 하인즈 자크(Heinz Zak)는 한 번의 비박 끝에 살레테 월을 자유등반으로 오르며 미국 등반가들을 놀라게 한다. 같은 해 유지 히라야마는 동료들의 확보를 받으며 살라테월을 헤드 월까지는 온 사이트로, 그리고 헤드월은 레드포인트로 돌파해 38시간 만에 정상을 선다. 1998년 알렉산더와 토마스 후버 형제는 살라테 월의 헤드월 대신 좌측의 변형 루트인 프리 라이더로 15시간23분만에 살라테 월을 레드 포인트로 올랐다. 같은 해 후버 형제는 엘캐피탄 남동벽에 위치한 콘티넨탈 드리프트, 뉴저지 턴파이크, 북아메리카벽, 꿈의 바다의 일부와 여러 개의 변형 루트를 이용하며 레드 포인트 등정에 성공했는데. 이 등반 선을 엘니뇨라 명명했다. 2002년 유지 히라야마는 엘니뇨를 13간만에 오른다. 이 등반의 거벽에서 자유등반이 얼마나 강력하고 빠른 등반방식인가를 보여준 뛰어난 등반 이었다. 21세기 들어서며 요세미티는 기존의 인공등반 루트의 자유등반시도와 속도등반과 클린등반을 통한 보다 모험적인 등반이 이루어지고 있다. 3.파키스탄의 거벽 등반 사. 파키스탄은 파미르(Pamir)에 뻗어 내린 카라코람산맥과 힌두쿠시, 힌두라지, 산맥을 비롯하여 펀잡 히말라야의 서쪽 끝을 품고 있다. 그레이트 히말라야에 비하여 몬순의 영향에서 빗겨나 있어, 여름철에도 등반이 가능하다. 사막 기후가 만들어낸 화강암의 암 탑과 침봉들, 그리고 어려운 알파인 스타일 등반대상지로 인하여 전위적인 등반가들에 의하여 첨예적인 거벽등반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파키스탄의 주요 거벽 등반대상지는 발토르 무즈따그의 발토로빙하, 비아포 빙하, 마셔브룸 산군, 바투라 산군등 이다. ‘빛나는 벽 가셔브룸4봉의 초등.’ 1956년 4명의 영국 등반가들이 피라미드 형상의 인상적인 무스타그 타워(Mustagh Tower, 7,237m)를 방문하였다. 짧고 가파른 북서릉을 따른 죠 브라운(Joe Brown)과 아이언 맥나우트 대이비스(Ian McNaught Davis)가 서봉등정에 성공한다. 영국등반대의 경우 고산에서 성공한 최초의 암벽등반이 된다. 히말라야 초등경쟁이 한창이던 1957년 리카르도 캐신이 이끄는 이태리원정대는 발토르 빙하 전면에 솟아있는 ‘빛나는 벽’ 가셔브룸4봉을 초등한다. 보나티와 마우리는 북 동릉을 통하여 정상에 서게 된다. 이 등반은 히말라야에서도 등정보다 과정의 어려움이 더 중요하다는 거벽등반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초등이후 30년간 재 등이 되지 않았다. 같은 해 영국원정대는 카라코람 라카포시(Rakaposhi, 7.788m)소스번 산군의 최고봉 라카포시를 등정한다. 서부 카라코람의 최고봉 등정이었고, 표고 차 4000m을 극복한 뛰어난 등반이었다. 1962년 독일대는 낭가파르밧 서벽을 초등 통산 이산의 2등을 기록한다. 1970년 일본 원정대는 카라코람 마셔브룸 산군의 K6(7.282m)을 초등한다. 이 K6봉은 사방이 모두 어려운 등반루트로 둘러 쌓여져있어 이전까지 등반에 성공한 팀이 없는 산이었다. 같은 해 라인홀드 메스너 형제는 독일대가 3번이나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낭가파르밧의 루팔 벽을 시도 해 루트초등을 기록한 후 서벽 즉 디아미르계곡으로 하산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 등반에서 메스너는 동생 균터를 눈사태로 잃는 슬픔을 격어야 했다. 과감한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을 통한 거벽의 완등 1973년 안드레이 자와다가 이끄는 폴란드 팀이 힌두쿠시산맥의 노 샤크(7.492m)를 동계 초 등정한다. 이 등반은 히말라야최초의 동계등반이며, 히말라야 어느 지역보다도 동계등반이 힘든 힌두쿠시산맥에서 행하여졌다는 큰 의미가 있는 등반이었다. 1974년 잰 프레헬이 이끄는 6명의 프랑스 원정대가 올리비아호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들은 북서 필라로 등반 정상 100m전에서 폭풍으로 등반을 포기한다. 트랑고 빙하의 암 탑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현대 거벽등반의 상징이 된 트랑고 빙하의 등반 사는 아래와 같다. 주: 트랑고 빙하의 등반 사는 쉽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함. 이후 트랑고 산군의 등반 사는 둥게빙하의 등반사만 기술함. 트랑고 빙하의 등반사 1937년 에릭 쉽튼(Eric Shipton)이 이끄는 영국 탐험대는 트랑고 빙하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그의 저서 'Blank on the map'에서 지금의 쉽튼 스파이어(Shipton spire, 5968m)와 트랑고 주위산군을 묘사했다. 이후 40년이나 지난 후 이 거대한 화강암 침봉 군에 대한 서구 여러 나라들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에릭쉽튼이 내다본 다음 세대의 등반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74년 프랑스대의 올리비아호 타워 동벽등반, 76년 영국대의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Nameless tower, 6239m) 서벽 초등, 77년 그레이트 트랑고 타워(Great trango Tower,6286m)초등 등.. 현대 거벽에서의 직등주의, 신 루트 등반, 단독등반, 고산에서의 자유등반 등 높은 가치의 벽 등반이 이 작은 빙하에서 시작되었다. 1) 올리비아호 타워 동벽(East face of Uli Biaho Tower, 6109m,올리비아호(6527m)와 구별) 1. 1974년 잰 프레헬이 이끄는 6명의 프랑스 원정대가 올리비아호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들은 북서 필라로 등반 정상 100m전에서 폭풍으로 등반을 포기한다. 2. 1979년 로스캘리(Roskelley)가 이끄는 미국 원정대는 타워 정면의 가장 길고 가파른 1100m의 동벽을 포타랫지를 이용 초 등정에 성공한다. 이후 이 루트는 아직까지 재등이 되지 않고 있다. 3. 1988년 여성이 동참한 아주 강력한 이탈리아 원정대가 동벽보다 짧은 남벽 800m를 시도 등반에 성공한다. 4. 90년대 중반 스페인대가 벽으로 어프로치도중 상단의 눈사태로 3명의 대원이 사망했다. 90년 이후 거의 등반 팀이 찾지 않는 위험하고 어려운봉우리이다. 2) 그레이트 트랑고 북서벽(Northwest face of Great trango Tower,6286m) 북서벽: 표고차 1500-2000의 거벽이다. 공교롭게 1999년 미국과 러시아대가 이벽의 초등을 위해 베이스에 모였다. 알렉스 로우(Alex Lowe)가 이끄는 미국의 드림팀은 하단 900m를 개척한 후 마의 오버행 해드 월을 넘어 악전고투 끝에 서봉정상 5m전에서 등반을 마친다. 위험한 눈 침봉을 오르지 않은 것이다. 북 서벽에 처음으로 길고 긴 60마디의 등반 선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서봉 등정은 미국 팀 바로 옆에서 등반하던 알렉산더 오딘트소브(Alexander Odintsov)가 이끄는 러시아등반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 강력한 러시아등반대는 미국대가 서봉정상 5m전에서 후퇴한 10일 후 62마디를 캡슐 스타일로 25일간 등반한 결과 서봉 정상을 넘어 북벽으로 하강을 성공한다. 북 서능: 1990년과 95년 바나나, 망고 믹스 필름(Banana mango mix film)에서 후원하는 스페인등반대가 북 서능의 2000m의 등반을 해 해드 월에 도착하지만 악천후로 정상150m전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한다. 하지만 이들의 등반은 영화로 만들어져 스페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04년 미국 2인조가 이 서벽 리지를 정상가지 연결시키며 루트 초등을 기록한다. 3) 쉽튼 스파이어 남동벽(Southeast face of shipton Spire,또는 Hainablak Central Tower 5850m) 1. 96년 그랙 차일드가 이끄는 미국등반대가 정상 5m전까지 36마디 7급,5.11,A4의 발티스 펠콘(Baltese Falcom)을 개척한다. 하지만 등정의혹이 불거지면서 쉽튼 스파이어는 전 세계 산악인의 관심을 받는다. 2. 97년 제레드 오그댄(Jared Ogden)이 이끄는 미국대가 위험한 설벽을 올라 정점에 선다. 하지만 미국등반대는 남은 3m(30피트와 100피트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초등을 그렉 차일드에게 돌린다. 하지만 정점에 선 것은 분명 오그댄 이였다. 3. 2001년 이탈리아의 최고의 테크닉션인 부부(Bubu)는 서벽에 모든 마디를 자유등반으로 신 루트(Woman and chalk,6급,5.13b)를 개척하며 1150m을 올라 미국등반대에 이어 2번째 자유등반 등정자가 된다. 4) 트랑고 네임리스타워 서벽(West Face of Trango Nameless Tower,6239m) 마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화강암의 거대한 기둥바위는 1976년 영국등반대에 의해 초등된 후 거의 10년이 지난 후 유고팀에 의해 서벽이 재등 된다. 이후 92년 2번의 실패를 딛고 3년 만에 그랙 차일드가 서벽 신 루트로 등정한 후 더 이상의 신 루트는 나오지 않고 있다. 1. 76년 조 브라운이 이끄는 영국대는 서벽의 가장 오목한 부분을 시도 전년도의 실패를 딛고 초등에 성공한다. 75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성공이었다. 2. 87년 유고등반대는 서벽 신 루트로 재등을 한다. 이 루트는 매우 자연적인 선으로 이후 제프로우(Jeff Lowe), 볼프강 퀄리히에 의해 전 마디가 자유등반이 된다. 3. 92년 그렉 차일드는 3년 연속 서벽에 도전 드디어 92년 유고루트 오른쪽의 공제선에 가까운 곳에 1200m의 자신의 신 루트를 만들며 등정에 성공한다. 5) 하이나브락 서봉/켓츠 이어 스파이어(Hainablak Eest Tower,5700m / Cat's Ear Spire/ 5640m) 2000년 저니 코프(Jonny Copp)와 마이크 페닝스(Mike Pennings)는 쉽튼 베이스에서 속도와 기술 등반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켓츠 이어 스파이어를 3일 만에 초등하고 이후 하이나 브락 서쪽 타워를 역시 신 루트로 3일 만에 재등을 한다. 다시 쉽튼 스파이어의 인샬라(Inshalla,7급, 5.12,A1)루트를 3일 만에 재등에 성공한다. 고산 거벽에서의 자유등반이 얼마나 강력한 속도와 힘인가를 보여주는 등반이었다. --------------------------------------------------------------------
능선종주와 슈퍼 알피니즘 또 1975년에는 메스너와 하벨러가 가셔브룸1봉 북 서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초 등정한다. 8.000m급 산에 대한 최초의 알파인 스타일의 과감한 등정이었다. 1977년 비아포 빙하의 바인타브락1봉(7.285m)을 더그 스코트와 보닝턴이 초등한다. 하산 중 더그 스코트의 다리골절 후 기적적인 생환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같은 해 미국대는 그레이트 트랑고(Great Trango, 6.294m)남 서벽(둥게 빙하)으로 초등한다. 요세미티 등반 스타일을 유감없이 카라코람에 적용한 등반 이었다. 1983년 한국의 악우회팀은 카라코람 비아포 빙하의 미등봉 바인타브락2봉(6.960m)을 초등한다. 임덕용, 유한규대원이 악천후 속에 정상공격을 감행 7월16일 정상에 선다. 재등팀 조차 경의를 표한 뛰어난 거벽등반이었다. 또 같은 해 스위스와 폴란드등반대는 8000m급 등반 중 가장 어렵고 위험한 능선종주와 연속등정에 성공한다. 스위스 대는 가셔브룸1봉과 2봉, 브로드피크를 알파인 스타일로 연속 등정한다. 멀티 피크등반을 히말라야에서 성공시킨 것이다. 폴란드 대는 가셔브룸2봉 남동릉 - 남서릉 종주에 성공한다. 또 폴란드등반대는 1984년 쿠르디카, 쿠쿠츠가라는 세계최강의 등반조가 브로드피크 북봉 - 중앙봉 - 주봉을 종주 등반한다. 또 메스너와 그의 새로운 파트너 한스 카머랜더와 가셔브럼2봉 - 1봉 종주에 성공한다. 종주등반에 관한 폴란드와 이태리대의 약진이 돋보인 80년대 초반이었다. 1985년 쿠르디카와 샤우워는 가셔브럼4봉 전면벽인 서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신 루트를 만들며 등반 정상 80m을 남기고 탈진과 생명의 위협을 느껴 북릉으로 하산을 한다. 하지만 이 등반은 순수한 가치의 벽 등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고, 등정보다 뛰어난 등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듬해인 1986년 그랙 차일드가 북 서릉으로 가셔브룸4봉 재등에 성공한다. 초등 후 30년만의 재등 이었다. 1987년 영국의 뛰어난 거벽등반가인 믹 파울로(Mick Fowle)는 스펜틱(7.027m) 북서 필라를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주창한 그는 어떠한 스폰서 없이 자신의 경비로 자신의 휴가를 이용 등정에 성공한다. 1992년 일본대가 낭가파르바트 라키오트 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에 성공한다. 이 루트는 신 루트임에도 노말 루트보다 더 안전한 루트로 평가받은 자연스러운 루트였다. 1994년 멕시코의 카를로스 카르솔리오는 브로드피크 서면을 신 루트로 단독 등정한다. 1996년 당시 카라코람 미등 봉으로는 최고봉인 울타르2봉(Ultar2, 7.409m)이 일본등반대의 야마자끼등 2인조가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1997년은 한국 산악회 원정대가 가셔브룸4봉 서벽 중앙 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유학재등이 정상에 오른다. 이 산의 3등을 기록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이 해 발토로 빙하에서 행하여진 등반 중 가장 뛰어난 등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해 미국등반대는 마의 라톡(7.109m)서벽을 초등한다. 그레이트 트랑고 에서도 한국 등반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최승철, 김형진, 신윤정 이 혼성 3인조는 그레이트 트랑고 타워 하단에 ‘코리아 환타지’라는 A4급의 변형 루트를 만들며 등정에 성공한다. 1999년 체코등반대는 후쉐지역의 미등봉인 아민부락(Amin Brakk, 5.870m)을 초등한다. 5000m급에서의 벽 등반의 좋은 전형을 제시한 등반이었다. 같은 해 한국 등반대 문성욱, 안조능 2인조는 같은 산군의 브락상(Brakk Zang, C5200m)에 A4급의 신 루트를 추가한다. 2000년에는 같은 산군의 미등봉 그레이트타워(Great Tower, 5900m)에 한국 산악회 황영순등이 초등에 성공한다. 2001년 한국 대(대장 서기석)가 한 시즌에 6000m급의 산 하나를 포함한 5000m급 5개산을 등반 2개봉의 초등과 3개의 신 루트 등반시도를 한다. 토마스 후버등이 라톡 서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2003년 발레리로 로프가 이끄는 러시아등반대가 후쉐계곡의 아민부락에 신 루트를 개척한다. 체코루트와 스페인루트사이에 31마디 새로운 선을 등반한 것이다. 이렇듯 파키스탄의 거벽 등반사는 가셔브룸4봉의 신 루트 개척으로 시작해 8000m급산에 대한 능선종주, 알파인 무산소등반과 신 루트개척으로 붙어5000m급의 벽 등반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형식과 과감한 등반시도가 있었다. 4. 중국의 거벽 등반사. 중국은 파미르에서 기원한 쿤룬산맥과 텐산산맥, 다쉐산맥, 아삼 히말라야의 일부분 또 수 많은 미등봉의 보고인 대협곡 지대(Land of Great corrugation)와 카라코람과 그레이트 히말라야의 일부분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중국의 거벽 등반 사는 거벽 등반대상지가 많은 쓰촨성과 초등경쟁이 치열했던 신강성과티베트지역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참고로 중국의 산맥 채게는 아래와 같다. - 쿤룬산맥: 파미르 동쪽 즉 신강위구르 자치구 서쪽 끝에서 발원한 길이 2,500km의 대 산맥이다. 최고봉은 무즈타그산[木孜塔格山:7,723m]이다. 북쪽으로는 아얼진[阿爾金]산맥에 이어지는 치롄[祁連]산맥 이외에 코코실리산맥 등 여러 개의 지맥으로 갈라진다. 동부 북쪽에 타림분지(盆地), 서부 지맥 사이에 차이다무 분지 등이 있다. 톈산산맥과 더 붙어, 중국의 주요 산맥은 대부분이 쿤룬 산계(山系)에 포괄되어 있어 중국의 지형 상 쿤룬산맥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 다쉐산맥: 쿤룬산맥의 일부가 남쪽으로 꺽어저 인도차이나산계로 이어지는 부분으로 칭짱 고원[靑藏高原(천장고원 또는 시짱고원)],의 남동부 변두리를 이룬다. 쿤룬산맥의 주맥은 칭하이성 [靑海省(청해성) ,Qinghai]과 쓰촨성 [四川省(사천성) , Sichuan]의 경계에 뻗어있는 비얀하르산맥(최고봉 비얀하르산.5267m)을 거쳐 천서고원의 주산맥인 다쉐산맥에 이르러 미니아콩가(Minyakongka 또는 Gongga Shan.7556m)를 솟구치고 급격히 고도를 낮춘다. 쿤룬의 다른 한 지맥인 탕구라산맥 [唐古拉山脈(당고랍산맥)]은 히말라야 동쪽과 맞물려 헝돤산맥을 이루어 인도차이나로 빠지게 된다. - ?라이산맥: 쿤룬산맥의 동쪽 끝, 즉 다쉐산맥의 북동쪽 끝단에 솟아있는 5000m대의 산맥으로 청두(Cheng Tu)서쪽 235km에 위치한 작은 산맥이다. 쓰구냥이 이산에 속하며 유명한 어메이산 [峨眉山(아미산.3092m)]도 이 산맥에 속한다. - 헝되안산맥: 티베트의 중부에는 카일라스산맥(강디쓰[岡底斯]산맥이라고도 함)이 동서방향으로 뻗어 짱베이[藏北] 고원과 짱난 곡지[藏南谷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쿤룬산맥 외의 여러 습곡산맥은 티베트 동부지역으로 몰렸다가 갑자기 방향을 남북으로 바꾸고 거기에서 여러 개의 높은 산맥과 깊은 협곡이 엇갈리면서 고산협곡지구를 이루는데, 이것을 헝돤산맥 이라고 부른다. 1.쓰촨성: 쓰구냥(Siguniang Shan.6250m)등의 산이 속해있는 ?라이(Qionglai Mountains
다쉐산맥, ?라이산맥의 거벽 등반사. 쓰촨성 최고봉 미니아콩가에 대한 등반시도는 놀랍게도 1980년 중국정부가 중국의 산을 개방하기 이전으로 올라간다. 1929년 펜더(Pandas)곰을 찾기 위한 미국탐사대는 이 지역을 탐사한 후 1932년 율륭계곡에서(4570m) 고개를 넘어 부추계곡으로 진입 한 달 만인 10월28일 오후2시40분 테리스 무어와 딕 버드설이 등정한다. 중국등산협회에서는 정상의 성조기 미발견등의 이유로 등정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분명 사천성은 물론이고 중국본토에서의 첫 번째 등정으로 기록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80년 드디어 중국의 산들이 개방되고, ?라이산맥 등반의 서막이 올랐다. 80년 미국대의 세레스트리얼 피크(Celestial peak 또는 Ponyu. 5413m)등반이 이 지역에 처음으로 기록된 등반이었다. 81년 일본등반대는 이 지역 최고봉인 쓰구냥 주봉을 시도하게 된다. 7월28일 루트개척 3개월 만에 4명의 대원이 이 산군 최고봉에 서게 된다. 이해 가을 미국등반대는 쓰구냥 북벽 직상루트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난다. 83년 일본대 역시 이 북벽에서 처참한 실패를 경험한다. 한편 깨끗한 암봉인 세레스트리얼 피크가 미국 대에 의하여 초등되고 97년 다시 등정된다. 2001년에는 이태리 원정대가 서남능을 통해 5200m까지 진출한다. 2002년 영국의 믹 파울러(Mick Fowler)는 많은 원정대가 실패한 쓰구냥 북벽을 7일간 알파인스타일로 직상 루트를 뚫으며 등정 전 세계 벽 등반가들의 찬사를 받는다. 이 등반으로 프랑스의 권위 있는 황금 피켈상도 수상했다. 또 이 등반으로 이 지역이 거벽등반 대상지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앞으로 많은 등반가들의 등반시도가 예상된다. 이처럼 ?라이 산맥은 그간 미국과 일본대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지역별 등반 사는 다음과 같다. 장평구(29km)의 거벽 - 쓰구냥 남벽(The south face of Siguniang, 벽 길이 1800m) 81년 일본의 동지사대학 등반대(대장 카와다 데츠지) 6명이 이산의 초등을 노리고 4월에 남면 베이스켐프(3850m)를 설치한 후 3개월 만인 7월28일 남 동릉으로 1,2차 등정 조 7명이 등정을 한다. ?라이산맥의 최고봉 초등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 원정대는 3개월간 3번의 대원을 바꾸어가며 등반을 이어갔다. 1차원정대원이 5월까지 5620m까지 루트를 개척한 후 귀국하면, 다시 일본에서 새로운 대원이 들어와 다시 등반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등반을 한 특이한 원정대였다. 이후 10년만인 92년에는 역시 일본대(대장 요시무라 치하루)가 남서 버트레스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난이도는 (5.10b, A2)정도로 평가했다. 이들은 벽에 세 개의 캠프를 설치하고 7월24일,25일 7명의 대원이 정상에 섰다. 1997년에는 미국의 찰리에 파울러(Charlie Fowler)가 남 서벽을 하루 만에 등정하는 괴력을 보인다. 이는 일본대가 세 달 만에 초등한 등반선보다 더 어려운 등반선이여서 등반능력에 따른 등반기간의 차이가 경이로웠다. - 쓰구냥 북벽(The north face of Siguniang.벽 길이 1800m) 쓰구냥 남벽이 초등된 81년 10월 네 명의 미국 등반대가 북벽초등을 노리고 4570m에 전진캠프를 설치한 후 11일간 까가지는 북벽중앙 버트레스에 메 달렸지만 5300m진출로 만족해야했다. 북벽의 어려움은 미국의 요세미티의 엘캡피탄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이 까가지는 1800m의 수직 벽에 대한 도전은, 20년이 지난 2000년 이태리 쓰구냥 북벽 등반대 7명이 8월에 북벽직상을 노리고 등반을 시도했지만 이들의 상황은 불분명하다. 다만 등정에 실패했고 미국대의 우측의 등반 선을 시도한정도이다. 2001년에는 다시 중앙 버트레스로 일본팀이 시도하지만 등반개념의 실패로 벽 초입인 5200m에서 철수를 한다. 2002년 영국의 믹 파울러와 파울 램스댄(Paul Ramsden) 이 이 인조는 마의 북벽에 다시 도전한다. 히말라야와 카라코람등지에서 빗나는 개척등반만 해온 믹 파울러는 그간 북벽 등반 팀이 너무 위험해서 시도하지 못한 눈사태 위험이 큰 북벽 쿨르와르 400m와 800m 수직빙벽 그리고 정상부 400m의 눈 처마를 돌아서 올라 북벽 직상에 성공한다. 등반개시 7일 만에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북벽등반이 시도 된지 22년만의 등정이었다. 이 등반으로 2003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황금피켈상을 수상하며 쓰구냥산군이 거벽등반 대상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영국대는 불법으로 등반을 해 공식적으로는 중국등산협회에서 아직도 등정을 인정받지 못하는 오점을 남겼다. 여러 가지 이유 중 믹 파울러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에 입각해 등반을 해오고 있다. - 세레스트리얼 피크(Celestial peak 또는 Ponyu 5433m. 벽 길이 1000m) 쓰구냥 북서쪽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이 봉우리는 화강암의 피라미드형 암 봉으로 전면 벽에는 등반선이 없지만 네 개의 능선을 통해 등반이 이루어졌다. 1983년 요세미티출신의 7명의 등반 팀은 볼트와 캠 장비를 이용 등반개시 4일 만인 10월8일 남 서벽과 능선을 통한 초등을 기록한다. 5.10C의 난이도로 신화사통신에서 외신으로 10월21 전 세계로 타전한다. 85년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의 케이스 브라운(Keith Brown)은 단독으로 남 동릉에 신 루트를 뚫으며 정상에 선다. 그의 등반길이는 26마디였고, 역시 등반개시 삼 일만에 정상에 섰다. 이때 정상에서 고도측정을 해 5700m라고 추정했지만 공인되지는 못했다. 97년에는 미국의 제프 홀랜버그(Jeff Hollenbangh)는 다시 남 서능에 도전했고, 그는 등반 후 이산은 많은 등반가들이 등반 할 수 없는 산이라고 평가했다. 이유는 많은 등반선이 될 크랙이 없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 기타의 산 97년 단독으로 쓰구냥 남벽을 신 루트로 오른 챨리에 파울러는 이 등반 후 장평구 계곡 끝에 솟아있는 5666peak와 5484peak, 5383peak를 모두 단독으로 초등해 쓰구냥에서 멀티피크 등반의 장을 열었다. 그는 단독등반으로 한 시즌에 루트초등포함 5개의 초등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쌍교구(33.8km)의 거벽 장평구와 달리 쌍교구는 일주 포장도로가 산 바로 밑까지 이어져 마치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연상시킨다. 이곳의 암질은 화강암이 주로 된 수직의 암 봉이라 장평구와 달리 거의 등반시도가 없었다. 이유는 까가지는 수직 벽에서 등반선이 될 크랙이 잘 발달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벽의 길이는 1500m 내외로 아주 어려운 인공등반이 필요한 산군이다. 몇몇의 원정대가 등정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거의 미등봉으로 남아있다. 쓰촨성 서부의 거벽. 2002년 미국의 뛰어난 거벽 등반가인 마크 시노트, 제라드 오그덴등은 쓰촨성과 동부 티베트의 경계의 자진자보(Jarjinjabo) 산군의 잠보 스파이어(Jambo spire)의 남 서벽 초등을 기록한다. 13마디의 화강암 침봉을 초등한 것이다. 하지만 이 등반은 미국의 요세미티 스타일로 오를 수 있는 전 세계의 등반대상지가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유명한 거벽 등반가들이 500m 남짓의 침봉에 대한 등반시도가 시사하는 바가 큰 등반이었다. 2001년에는 일본의 등반대가 이 산군의 5842봉과 5760봉의 초등을 기록했다. 신장 자치구와 티베트(Tibet)지역 중국 정부가 중국 내의 고산을 개방한 1980년부터 서방과 일본의 등반대가 이 지역의 초등경쟁에 나선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대의 약진이 뛰어났다. 또 이 지역은 에베레스트와 K2, 초오유등의 8000m급의 벽에서도 뛰어난 등반이 이루어진 곳이다. 이를 같이 소개한다. 1978년 미국등반대의 릭 릿지웨이, 존 로스켈리등이 K2 북동릉을 무산소로 초등한다. 1981년 크리스 보닝턴, 피터 보드맨, 죤 테스커등이 신장지역의 콩구르(7.719m)를 초등한다. 같은 해 일본등반대는 칭하이성과 북부 티베트의 경계인 암네마친(6.217m)을 초등한다. 이보다 한발 늦은 미국대는 이 산의 북동릉을 알파인 스타일로 3일 만에 재등하며 루트 초등을 기록한다. 또 독일 - 오스트리아 합동대는 동벽 신 루트로 등정 후 북동릉으로 하산 이 산의 첫 횡단등반에 성공한다. 1982년 독일대는 티베트의 창체(7.553m)를 초등한다. 또 더그 스코트는 알렉스 멕킨타이어와 시샤팡마 남서벽을 신 루트로 등정한다. 1983년 세계 산악계는 세계 최고봉에서 전해진 소식에 놀란다. 미국대는 에베레스트 최난벽 중의 하나인 동벽(캉슝벽)을 초등한다. 로우버트레스를 포함한 3.000m의 암.빙벽을 올라 사우스 콜을 경유 남동릉으로 루트 초등을 이룬다. 1985년 미 - 중 합동대가 신 강성의 울루 무즈타그(Ulugh Muztagh, 6.977m)를 초 등정한다. 1987년 스페인의 가르도는 초오유를 티베트 쪽에서 동계 단독 초등하는 대 기록을 세운다. 1988년 미국- 영국 - 캐나다 합동대의 4명의 대원은 에베레스트 최난벽인 캉슝벽(티베트쪽)에 또 하나의 신 루트를 개척하며 4명의 대원 전원이 무 산소등반으로 최고봉을 오르는 괴력을 보인다. 또 독일대가 초오유 서면을 알파인 스타일로 오른다. 한편 크리스 보닝턴은 세계에서 가장아름다우며 기술적으로 어려운 미등 봉으로 평가되어온 멜룽체(7.181m) 서봉을 초등한다 하지만 이 등반대는 주봉등정에는 실패한다. 1989년 일본 대는 그간 미등의 능선이었던 신강성의 콩구르 북릉에 신 루트를 만들며 초등한다. 1990년 일본대가 신강성으로 접근 K2 북서벽 - 북벽 신 루트로 등정한다. 1991년 브로드 피크에 도전한 스페인 - 이태리 - 오스트리아 합동 대는 동릉을 통한 최초의 티베트 쪽에서 등정을 노렸지만 6500m 진출에 그친다. 스페인의 피에르 베긴외 1인이 K2 북서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1992년 슬로베니아의 마르코 프리젤리와 안드레이 스트렘 페리 2인조가 그간 많은 등정시도에도 함락되지 않은 멜롱체 주봉을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같은 해 스페인이 주도한 국제대가 티베트 쪽에서 브로드 피크 동릉을 통해 중앙봉(8.106m)초등에 성공한다. 1993년 한국대의 허영호가 노스콜에서 북동릉으로 올라 남동릉(티베트쪽)으로 하산 무지원 북 - 남 종단기록을 세운다. 폴란드의 비엘리키가 시샤팡마 남서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단독등정에 성공한다. 일본대가 초모렌조(7.816m) 북서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에 성공한다. 1992년 일본의 야마노이 야스시가 초오유 남서벽을 신 루트를 개척하며 단독등반에 성공한다. 1995년 일본대가 마칼루 티베트루트인 북동릉 - 동릉으로 초등에 성공한다. 1996년 한국의 대한산악연맹팀이 티베트의 미등봉 충모강리(7.048m)와 룽모강리(7.816m)를 초등한다. 1997년 발레쿠신이 이끄는 러시아등반대는 그동안 수많은 원정대에 의하여 시도된 에베레스트북벽(티베트쪽)을 초등한다. 북벽의 왼쪽립을 등반한 후 북릉과 연결되는 신 루트를 개척한 후 노말 루트로 정상에 선다. 2002년 한국대의 박정헌등이 시샤팡마의 남서벽에 ‘코리아 하이웨이’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한국 최초의 8000m급에 대한 신 루트 개척이었다. 이렇듯 중국의 티베트와 신강성에서는 서구 여러 나라와 일본의 초등경쟁과 8000m급에서의 신 루트개척과 무 산소 알파인등반등의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었다. 앞으로도 이 지역에 산재한 많은 미등봉의 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또한 초오유와 시샤팡마를 제외한 에베레스트 동벽과 브로드 피크, K2북릉, 등이 한국산악계의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5. 네팔의 거벽 등반사. 네팔은 그레이트 히말라야의 중심에 있고, 이곳에는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안나푸르나, 칸첸중가, 마칼루, 마나슬루, 다울라기리, 로체까지 7개의 8000m 봉우리와 육천에서 칠천 미터의 많은 산들이 존재한다. 이곳의 거벽등반의 시작은 중국이 시샤팡마를 초등함으로서 8000m초등경쟁이 막을 내린 1970년 영국대의 안나푸르나 남벽 초등부터라고 하겠다. 이 등반 후 8000m의 거벽이 하나둘 초등되고 더 과감한 시도의 등반이 현제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8000m이하의 산은 파키스탄의 카라코람산맥과 달리 순수 암봉 보다는 눈과 얼음이 혼합된 어렵고, 위험한 등반시도가 몇몇의 유명한 거벽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산들은 타워체, ?라체, 쟈누 등이다. 네팔의 거벽 등반사는 아래와 같다.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로체남벽의 초등 1962년 캉첸중가 주변에서 가장 첨예적인 침봉인 쟈누(Jannu, 7,710m)가 프랑스 가이드 등반대(대장 리오넬 테레이)에 의해 등반됨. 1964년 중국의 시샤팡마 등정으로 자이언트봉의 초등 경쟁이 막을 내린 1970년 크리스 보닝턴이 이끄는 영국등반대는 안나푸르나 남벽을 초등하며 자이언트봉의 벽 등반 시대를 개막한다. 보닝턴은 듀갈 헤스턴과 돈 윌란스를 5월27일 정상에 올린다. 1972년 오스트리아등반대는 마나슬루 남벽을 초등한다. 1975년 역시 보닝턴이 이끄는 영국 원정대는 그간 많은 원정대가 실패했고 보닝턴 자신도 72년에 실패한 마의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재도전한다. 더그 스코트와 피터 보드맨등이 남서벽을 넘어 정상에 선다. 최난의 루트를 통한 최고봉의 등정이었다. 같은 해 유고원정대는 마칼루 남벽을 무산소로 오른다. 1976년 일본원정대는 그간 일본 산악계의 오랜 숙제였던 자누 북벽을 초등한다. 같은 해 영국의 조 테스커와 피터 보드맨은 칸첸중가 서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하며 영국의 극지법에 의한 히말라야 등반에 자극제가 된다. 1977년 네덜란드등반대는 안나푸르나 북면 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이들은 이 루트를 ‘더치 립’으로 명명한다. 1978년 세계 산악계는 에베레스트에서 날아온 소식에 경악한다. 라인홀드 메스너와 피터 하벨라가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 산소 등정에 성공한 것이었다. 세계는 실로 경이로운 기록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같은 해 영국대는 자누 남릉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다. 1979년 미국의 알렉스 로우는 아마다블람 남벽을 단독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같은 시기 프랑스등반대 또한 이 산의 북릉을 초등 아마다블람에는 두 개의 신 루트가 개척된다. 영국대는 북벽 - 북릉을 초등한다. 1980년 안드레이 자와다가 이끄는 강력한 폴란드 대는 그 간의 실패를 딛고 드디어 에베레스트 동계 초등을 기록한다. 같은 폴란드대의 쿠르디카와 멕킨타이어 등은 다울라기리 동벽에 알파인 스타일로 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1981년 쿠르디카와 멕킨타이어가 이끄는 강력한 폴란드등반대는 다시 안나푸르나의 남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실로 폴란드등반대가 네팔의 거벽등반을 주도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한편 또 한명의 강력한 폴란드 등반가인 쿠쿠츠가도 마칼루 북서릉을 단독 등정한다. 1982년 데이브 브레셔어즈(Dave Breashears)와 제프 로우(Jeff Lowe)는 꽁데(Kwangde)의 훈고(Hungo)/북벽에서 알파인 스타일로 1500m의 얼음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다. 전체적인 등반 난이도가 Ⅵ급인 그 루트는 그때까지 주요 히말라야 봉우리에서 행해진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등반들 중 하나이다. 한편 로우는 푸모리 남벽을 동계에 단독 등반했다. 영국의 조 테스커, 피터 보드멘이 에베레스트 북동릉에서 실종된다. 순수 거벽등반만 추구해온 전위적 등반가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이 애도했다. 폴란드대의 약진은 그치지 않았다. 폴란드대는 다시 마칼루 서벽을 초등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직등루트가 아니어서 아직도 마칼루서벽의 직등루트는 숙제로 남아있다. 1984년 폴란드등반대는 마나슬루를 동계 초등한다. 또 일본등반대는 칸첸중가 남봉 - 중앙봉 종주에 성공하면서 주봉도 등정한다. 카탈랜 등반가 엔릭 루카스(Enric Lucas)와 닐 보히가스(Nil Bohigas)가 안나푸르나 중앙봉의 남벽을 미리 캠프를 설치한다거나 고정로프를 사용치 않고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하여 9일간 등정 및 하산을 완료했다. 줄곧 어려운 이 루트는 1982년에 알랙스 맥킨타이어(Alex MacIntyre)와 리네 귀리니(Rene Ghilini)가 시도했던 루트이다. 그때 맥킨타이어는 낙석으로 사망했다. 1986년 스위스의 로레탕이 에베레스트의 북면을 39시간 만에 등정함으로 최고봉의 속도등반에 불을 붙인다. 독일등반대는 아마다블람에 신 루트를 개척한다. 1987년 폴란드의 에지 쿠쿠츠카가 안나푸르나 동계등정에 성공한다. 1988년 조형규대장이 이끄는 한국의 경남연맹이 눕체 북서봉 동계 초등을 기록한다. 체코등반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최초로 알파인 스타일로 시도해 정상에 서지만 하산 중 4명의 전 대원이 실종된다. 1989년 89년은 로체 남벽과 칸첸중가 서벽에서 들려온 뉴스에 전 세계가 놀란다. 미슬로프스키가 이끄느 구 소련대등반대가 칸첸중가 서봉, 주봉, 중앙봉, 남봉에 이르느 3km의 정상능선 돌파에 성고하며 4개봉 모두 정상에 오르는 극지법 최대의 등반성과를 기록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고의 토모 체슨은 하말라야 벽 중 가장 어려운 벽의 하나인 자누(7.710m)북벽을 단독 직등으로 오른다.2700m의 벽을 23시간 만에 등반해낸다. 이 등반은 어떤 알파인 스타일 등반보다 높게 평가되어 그는 ‘현대의 보나티’라는 칭호를 얻는다. 미국의 제프 로우는 존 로스켈리와 함께 타워체 북동벽의 거대한 암벽을 초등하며 등로주의의 선두에 선다. 또 이해 히말라야의 철인 예지 쿠쿠츠가가 로체남벽 8.400m지점에서 추락사하는 큰 아픔이 있었다. 1990년 히말라야의 최 난벽으로 군림해온 로체(8.516m)남벽이 4월 중순 유고의 토모 체슨이 단독 등정했다는 소식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한 해였다. 로체 남벽은 15년간 전세계 산악인들이 13회 등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남공불락의 벽이었다. 체슨은 낙석과 눈사태를 피하기 위하여 야간에만 등반을 감행 총 62시간 만에 정상에 섰다고 주장했지만 같은 해 산소를 사용하며 이 벽을 재등한 러시아등반대에 의하여 등정의혹이 제기된다. 이 후 이 등정시비는 미제로 남는다. 한편 크리스토퍼 비엘리키가 표고 차 2000m의 다울라기리 북동릉을 6시간30분만에 등정 후 곧바로 동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16시간 만에 이 벽을 초등한다. 1991년 일본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동계 초등한다. 1993년 러시아/영국 합동대가 다울라기리 북벽에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였다. 8명이 알파인스타일로 등반을 감행, 7,300m대에 걸려 있는 록밴드를 넘어서서 7,700m에 올라선 후, 북서릉으로 올라 BC출발 7일 만인 5월 11일 1명만 탈락하고 7명(이중 6명은 소련, 1명은 영국인)이 정상에 섰다. 1994년 영국의 여성등반가 엘리슨 하그리브스가 에베레스트 북릉을 무산소로 단독등정에 성공한다. 또 일본대는 그간 미등의 북동릉을 초등한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피너클 구간을 우회하여 등반 아쉬움을 남긴다. 영국대의 믹 포우러가 이끄는 원정대가 타우체(6.501m)북동 필라를 초등한다. 세르게이 에피모프가 이끄는 러시아등반대가 마칼루 북서쪽의 바룬체(7.129m)에 신 루트를 추가한다. 또 프랑스대가 ?라체(6.440m)북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에 성공한다. 1996년 최대경사 90도에 이르는 아마다블람 북서벽을 슬로베니아등반대의 토마스 후마등이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러시아등반대가 에베레스트의 북릉과 북동릉 사이에 신 루트를 추가한다. 프랑스의 샤모니 가이드 팀이 푸모리 남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다. 1997년 러시아대가 마칼루 서벽에 변형루트를 개척하며 등정에 성공 서벽 직등 가능성을 연다. 슬로베니아의 야네그 예글릭이 눕체 서벽을 단독 등정한 후 실종된다. 1999년 슬로베니아의 토마즈 하마 3600미터 표고의 다울라기리 남벽에 단독으로 신루트 개척. 2002년 일본의 유명한 단독등반가인 야마노이 야스시가 가충캉(7952m)북벽을 단독 신 루트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6.인도의 거벽 등반사. 인도는 가르왈 히말라야와 시킴 히말라야, 펀잡 히말라야와 캐시미르를 포함한 카라코람 산맥(씨아첸 빙하)의 일부분을 끼고 있다. 여름이면 인도양에서 더워진 공기로 인하여 발생하는 몬순의 영향으로 등반이 어려워 봄과 가을철에 주로 등반이 이루어진다. 또 지금까지의 거벽등반 시도는 주로 가르왈 히말라야중 에서도 강고트리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지역은 많은 산들이 화강암의 침봉과 급경사의 아름다운 벽으로 이루어져 서구 여러 나라의 획기적인 등반시도가 있었다. 인도의 거벽 등반사는 아래와 같다. 초등정 시대 1933년 영국대가 강고트리 산군의 바기라티 3봉(6.454m)을 초등한다. 1936년 빌 틸만이 이끄는 미국 - 영국 합동대는 난다데비(7.816m)를 초 등정한다. 1939년 스위스 등반대가 두나기리(7.066m)를 초등한다. 1947년 스위스대가 강고트리 지역의 캐다르나스 돔(6.813m)을 초등한다. 1973년 인도, 티베트 합동대가 사세르캉리 1봉(7.672m)의 어려운 남릉을 초등한다. 같은 해 영국대가 브라마 1봉(6.416m)를 초등한다. 이렇듯 30년대부터 70년대 까지는 이 지역의 아름다운 미등 봉들이 하나, 둘 초등되면서 앞으로 펼쳐질 보다 어려운 미등의 거벽등반시대를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창가방과, 탈레이 사가르, 두라기니의 직등루트 개척 1974년 강고트리의 창가방(Changabang, 6,864m)이 발완트 샌드후(Balwant Sandhu)와 크리스 보닝턴(Chris Bonington)이 이끈 인도/영국 합동 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6명의 등반가들이 정상에 선다. 1975년 영국의 죠 태스커(Joe Tasker)와 딕 랜쇼우(Dick Renshaw)가 듀나기리(Dunagiri, 7,066m) 남벽을 가을 시즌 6일 동안 초등하였다. 똑같은 루트로의 하산하는데도 그들은 이 벽에서 5일을 더 보내야 했다. 한편 일본대는 칼랑카(6.931m)를 창가방과 같은 루트로 시작 쉽튼 콜을 넘어 남벽으로 등반 서릉을 통하여 초등에 성공한다. 1976년 영국의 유명 산악인 패터 보드맨과 죠 태스커가 인도 히말라야 난다데비 산군에 솟은 명봉 창가방 서벽(6860m)을 초등한다. 일본 - 인도 합동대가 난다데비 동봉 - 주봉 종주등반에 성공한다. 또 일본대는 인도, 파키스탄 국경의 시아첸 빙하의 압사라사스(7.247m)를 초 등정한다. 미국대 또한 난다데비 북서벽 - 북릉 종주에 성공한다. 1978년 창가방 남벽 버트레스가 영국/폴란드 합동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쿠르티카(V. Kurtyka), 알렉스 맥킨타이어(Alex MacIntyre), 포터(J. Porter), 쥬?(K. Zureck) 등이었으며, 알파인 스타일로 행해진 기술적으로 어려운 등반이었다. 1979년 미국대가 가르왈 지역의 탈레이사가르(6.904m)를 초등한다. 이 후 이산의 북벽은 전 세계등반가들의 많은 도전을 받는다. 1980년 일본대가 강고트리 산군의 메루(6.627m)주봉을 초등한다. 하지만 중앙봉은 그 당시 미등봉으로 남는다. 또 다른 일본대는 바기라티 1봉(6.856m)을 초등한다. 1981년 영국, 프랑스, 인도 합동 대는 쉬블링 동릉 알파인스타일로 초 등정함. 더그 스코트, 그랙 챠일드, 릭 화이트와 죠르지 버탬버그가 12일 만에 정상에 섰다. 이태리대가 창가방 남릉을 초등한다. 또 체코대가 난다데비 북동벽 초등에 성공한다. 1983년 스페인등반대가 바기라티 3봉 남서벽을 초등한다. 1985년 이태리 - 프랑스 합동대가 샤토판스(7.075m)북동릉을 신 루트로 초등에 성공한다. 또 장 클라우드 마르미에가 이끄는 인도 - 프랑스 합동팀이 카멧(7.756m)서릉 신 루트를 개척한다. 1986년 이태리대가 쉬블링 북동벽을 신 루트로 등정한다. 1987년 유고대가 트리슐 서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에 성공한다. 또 영국 - 인도 합동대가 라닥, 동부카라코람의 사세르 캉리 4봉(7.415m)초 등정에 성공한다. 1990년 유고대가 바기라티 3봉 서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다. 영국대가 동부 카라코람 최후의 독립 미등봉인 총 쿰 단 1봉(7.071m)을 초 등정한다. 1991년 헝가리의 페터 데카니(Peter D k ny)와 아틸라 오스바트(Attila Ozsv th)가 탈레이사가르(Thalay Sagar, 6904m) 북벽에 오르다. 하지만 쉘지대를 빗겨 올라 직등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또 일본대가 칸첸중가 북동릉 - 북벽 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1992년 영국대가 탈레이 사가르 남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1993년 일본대가 시킴 히말라야의 피라미드 피크(7.126m)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다. 또 이태리등반대 2인조가 쉬블링 북릉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다. 1994년 영국 등반대가 난다데비 동봉(7.434m)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다. 1996년 미국등반대 2인조가 쉬블링 동릉을 15년만에 제등한다. 1997년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호주 등반가 2명(Andrew Lindelade와 Athol-Whinp)이 9월에 알파인스타일로 1주일 만에 북벽을 직등 하였다. 이제껏 북벽 상단의 검은 삼각바위가 미등인 채 남아 있었지만 이들이 바위 중앙으로 직등 했던 것이다. 1998년 카를로스 부흐러, 이반 두샤린, 안드레 볼코프, 안들이 마리에프, 파벨 샤바린이 창가방 북벽에 신 루트 개척한다. 한국등반대의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이 3인조는 탈레이사가르북벽에 도전 헝가리팀이 우회한 침니를 돌파하며 사실상 이 산에 완벽한 직등루트를 개척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상 설릉 에서 원인불명의 추락사를 한다. 1999년 영국의 믹 포우러가 아르와 타워를 초등한다. 2000년 독일의 토마스후버와 스위스의 이완울프는 쉬블링(6.543m)북벽 1500m에 쉬바스라인을 개척 황금 피켈상을 수상한다. 2003년 탈레이사가르에는 세 개의 신 루트가 개척되었다. 네덜란드 팀의 북 동벽의 신 루트를 비롯하여 불가리아등반대의 중앙 버트레스, 프랑스등반대의 중앙 쿨르와르에 각각 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선다. 이와 같이 강고트리지역에서 많은 거벽들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특유의 불안정한 날씨로 인하여 등정성공률은 다른 히말라야지역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진다. 또 거의 미등 벽에 신 루트가 개척되어 앞으로 이산군의 신 루트개척은 더욱 더 어려운 등반이 예상된다. 7. 한국의 거벽 등반사. 바인타브락 초등의 영광 1977년부터 악우회의 주력 부대인 윤대표, 허욱, 임덕룡, 유한규등에 의하여 알프스 3대 북벽이 등정되면서, 그간 히말라야에만 집중되었던 원정방식과 등반형태의 변화를 가지고 온다. 더 새롭고 어렵게 또 등정과정의 순수성에 큰 가치를 두는 거벽등반의 장이 열린 것이다. 1981년 악우회에 의해 시작된 알프스 거벽등반에 유기수대장이 이끄는 은벽 - 에코합동대가 가세한다. 이들은 드류 서벽을 등정하며 알프스거벽 시대를 이끌어간다. 한편 악우회는 이해 알프스북벽의 완 등 여세를 몰아 한국 최초로 카라코람산맥에 진출한다. 대상산은 77년 크리스보닝턴이 이끄는 영국대에 의하여 초등된 바익타브락산군의 미등봉 바인타브락2봉(6.960m)이었다. 주봉은 영국대에 의하여 등정되었지만 2봉은 아직 미등인 체로 남아있었다. 신의섭대장의 지휘아래 윤대표, 허욱, 임덕용, 유한규등 당대 최고의 등반가들로 구성되었다. ‘사람잡아먹는 귀신’ 이라는 별명답게 가파른 설벽과 위험한 암벽지대를 어렵게 등반 정상직하의 6900m에 도달하지만 해드 월은 그들의 장비로 등반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파른 벽이었다. 60m을 남기고 눈물을 삼키고 하산을 결정한다. 하지만 등반대는 6700m지점에서 이정대대원이 실족사하는 커다란 아픔을 격어야만 했다. 1982년은 한국최초의 히말라야 초등정과 동계등정을 성공시킨다. 대전 자일클럽은 쿰부 히말라야의 고줌바캉(Gozumba Kang, 7906m)초등에 도전한다. 원정대는 네팔정부로부터 허가받은 등반기간이 거의 만료되는 시기인 11월2일 김영환등반대장과 2명의 셀파가 정상공격을 시도하여 이날 6시5분 처녀봉의 정상에 선다. 한국도 이로서 히말라야 초등대열에 끼게 되었다. 또 같은 해 남선우가 이끄는 푸모리 동계원정대가 마지막 캠프로부터 700m의 표고차를 극복하고 동계 푸모리 정상에 올라섬으로서 한국 최초의 히말라야 동계등정을 성공시킨다. 1983년 악우회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비아포빙하로 향한다. 그들의 목표는 역시 바인타브락2봉의 초등이었다. 2년 전 정상을 불과 60m을 남기고 돌아서며 이정대 대원을 잃는 슬픔을 격은 악우회는 이 벽에 다시 루트개척을 시작 계속되는 악천후로 잠시 고전하지만 기다리지 않고 악천후 속에서 정상공격을 감행 마침내 7월15일 임덕용, 유한규대원이 처녀봉의 정수리에 선다. 그간 일본대와 영국대의 끈질긴 도전에도 정상을 내주지 않던 처녀봉이 마침내 등정된 것이다. 고산에서의 거벽등반을 통하여 초등이라는 값진 성과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1984년은 히말라야의 거벽에서 다양한 시도의 등반이 이루어진 한해였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경남공고 OB 산악회가 다울라기리 산군의 서쪽 끝의 푸타 히운출리(Putha Hiunchuli, 7.246m)를 제등 한다. 마지막 캠프에서 700m의 암벽지대를 돌파 12일 만에 등정을 이루는 소규모, 속도등반의 가능성을 제시한 등반이었다. 같은 해 김병준대장이 이끄는 외국어대산악회는 쿰부지역의 바룬체(Baruntse, 7.129m)북서벽을 등반한다. 이는 당시 이산의 노말루트인 남릉을 버리고 어려운 북서벽을 등반의 목표로 삼아 악우회에의해 시작된 히말라야 거벽의 등로주의를 이어간다. 이들은 75도 경사의 800m의 북서벽을 돌파 북봉과 주봉을 모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또 샤르체 남서벽에서도 좋은 소식이 전해진다. 이용호대장이 이끄는 알파인 가이드협회가 쿰부지역의 사르체 남서벽에 신 루트를 만들며 등반 5월7일 윤대표, 곽효균대원이 정상에 선다. 74년 독일대의 초등 후 10년만의 등정이었다. 또 남가주 산악회의 푸모리 동벽원정도 비록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고산거벽의 좋은 전형을 제시한 등반이었다. 김기환대장의 지휘아래 동벽의 초등루트보다 직선의 등반라인을 만들며 등반 9월20일 주영등이 동벽을 돌파하고 정상능선에 선다. 하지만 장비부족 등의 이유로 정상을 포기하고 하산한다. 하지만 어려운 800m의 동벽에 직등루트를 개척하는 성과를 거둔다. 또 이해 겨울 전국 합동 대는 히말라야의 괴봉 쟈누(Jannu, 7710m)동계 초등에 도전한다. 긴 카라반과 높은 난이도로 인하여 그간 동계 등반이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이 산에 김기혁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12월6일 7.100m지점에 마지막 캠프를 설치한 후 2번의 정상등정을 시도하여 동계초등을 이룬다. 하지만 이 원정대는 정상사진을 제시하지 못해 훗날 등정의혹에 연루된다. 1985년 현대중공업 히말출리 북봉원정대는 82년 고줌바캉, 83년 바인타브락 2봉 초등에 이어 또 하나의 초 등정을 이룬다. 마나슬루 산군의 마지막 미등 봉으로 남아있던 이산의 초등을 위해 한국과 폴란드등반대의 초등경쟁이 시작된다. 한국등반대는 북동릉을 택하여 등반 6800m에 설동을 파고 비박한 후 정상등정을 시도 이재홍대원이 이 산의 초등에 성공하는 값진 성과를 이룬다. 또 같은 해 박영배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가 동계 이벽의 초등을 노리고 도전하지만 거벽의 한계를 느끼며 7.500m에서 후퇴를 결정한다. 1987년 전남대의대 산악회는 쥬갈 히말라야의 최고봉 렌포강(7.083m)서벽에 도전한다. 전입미답의 렌포강 서벽은 극심한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미등의 벽이 항상 그렇듯 눈사태와 세락의 붕괴 위험을 극복해야했다. 세 개의 캠프를 설치한 후 9월27일 정상등정에 성공한다. 이들이 개척한 서벽은 ‘하늘길’로 명명되었고 등정보다는 등반의 어려움을 추구하는 등로주의의 전형을 제시한 등반이었다. 같은 해 한국산악회의 허영호가 에베레스트동계등정을 이룬다. 77년 고상돈의 등정이후 10년 만에 최고봉에서 선 것이었고, 또 동계에 이루어진 등정이기에 큰 가치가 부여되었다. 1988년 대전 자일클럽은 세계 17위의 고봉 갸충캉(7.952m)남서벽에 1500m의 신 루트를 개척하며 이 산의 세 번째 등정국가가 된다. 같은 해 조형규대장이 이끄는 동계 눕체 북서릉 원정대는 쿰부 빙하의 험봉 눕체 북서봉(7.745m)동계 초등에 도전한다. 강한 바람과 추위를 극복하며 동계에 단 한번의 정상도 내어주지 않던 이산의 정수리에 전봉권대원을 올린다. 하지만 동계초등의 영광 뒤에는 불행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대원이 동상으로 인하여 손과 발과 코를 잘라내는 희생이 뒤따랐다. 1989년 배승렬대장이 이끄는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광운대산악회의 바기라티3봉(6.454m)원정대는 한국대로서는 처음으로 인도 강고트리 산군에 진출한다. 이들은 화강암의 험봉 바기라티3봉 남서벽으로 등반을 감행 1300m의 표고차를 기록하는 이벽을 10일간 등반 9월7일 마침내 정상에 오른다. 이 등반은 3명의 소수인원으로 행하여진 거벽에서의 멎진 속공등반을 보여준 등반이었다. 1991년 발토르빙하의 암봉 파이유(6.610m)피크에 도전한 포항제철팀은 루트 파인딩 부족과 개념의 실패로 후퇴를 결정한다. 1992년 선우중욱대장이 이끄는 남가주 한인산악회가 발토로빙하에 솟아있는 ‘현대 거벽등반의 상징’ 트랑고 타워(Trango Tower, 6.239m)서벽의 유고루트를 등반 한국 초등에 성공한다. 이 원정대는 1300m의 서벽을 등반하면서전 구간은 아니지만 많은 마디를 자유등반으로 오름으로서 고산 거벽에서의 자유등반을 실현한 뜻 깊은 등정이었다. 또 김재수대장이 이끄는 부산의 솔뫼산악회는 쿰부 히말라야의 로부제(6.119m)동벽에 도전장을 낸다. 남릉은 쉬운 트레킹피크지만 이들은 1000m의 수직의 어려운 동벽을 택하여 등반 950m의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반 9월15일 김재수대장등이 뜻 깊은 정상에 선다. 이들은 이 루트를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안 루트’로 명명한다. 한편 알레스카의 침봉인 키차트나 스파이어(2.793m)에 도전한 한국산악회 팀은 이 산의 동벽에 신 루트를 만들며 유학재등이 등정 거벽등반의 영역을 북미까지 확대시키는 좋은 등반을 선보인다. 1993년 히말라얀클럽의 허영호는 세계최고봉 초모랑마를 북면으로 올라 남면으로 무 지원으로 종단하는 모험적인 등반을 성공시킨다. 같은 해 인도 강고트리의 험봉 탈레이사가르(6.904m)에 대구 합동대가 도전장을 낸다. 하지만 이들은 기상악화 등의 이유로 6400m을 최고 도달고도로 기록하며 후퇴한다. 1994년 손광윤대장이 이끄는 한국 산악회가 키르키즈공화국의 파미르 알타이 악수(5.217m)북벽 트로시나앤코 루트에 도전장을 낸다. 신상만, 정민영대원등이 이 루트등반에 나서 11일 만에 신상만, 이동윤대원이 외국대로는 최초로 이벽의 정상에 선다. 또 이 등반대는 인근의 보스턴 피크(4.810m)도 등정한다. 이 등반은 거벽 등반의 무대를 파미르까지 확대시키며, 미지의 불확실한 벽에 도전하는 거벽등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한편 경남연맹팀은 한국에 5번의 실패를 안겨다준 안나푸르나 남벽을 드디어 등정한다. 70년 영국의 초등루트를 따라 등반하던 원정대는 6.300m부터 변형루트를 개척하며 박정헌대원등이 마의 록 밴드를 돌파한 후 그 다음날 10시간의 사투 끝에 박정헌대원이 정상에 선다. 비록 셀파 세명과 함께한 등반이었지만 8.000m의 고도에서 어려운 벽 등반을 통해 정상에 서는 값진 성과를 거둔다. 한 편 알레스카 메킨리의 최난 루트인 어메리카 다이렉트루트에 도전장을 낸 돌비알 산악회는 이 루트의 세계 3등을 기록하며 이해 멕킨리 최고의 등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다시 경남연맹등반대는 최강의 전력을 구성하고 한국대가 6번의 실패를 기록한 에베레스트 최 난벽인 남서벽에 도전장을 낸다. 이들은 45일간의 긴 시간을 소모하며, 8300m의 5캠프를 출발 마의 록 밴드를 돌파하며 남봉을 거쳐 마침내 지구의 용마루에 박정헌, 김영태대원이 선다. 셀파들도 겁낸 록 밴드를 박정헌이 주도적으로 이끌며 등정 박정헌은 일약 거벽등반의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8.000m에서의 거벽시대를 연 뛰어난 등반이었다. 1996년 삼천포 알파인 아카데미팀의 박정헌, 김동완대원이 몽블랑 최난루트인 프레네이 중앙필라를 최초로 등정한다. 이들은 40시간동안 어려운 오버행 천장을 넘어 정상에 선다. 같은 해 경상대학교 탈레이사가르운정대는 이벽의 북벽을 통한 등정을 목적으로 등반에 나섰지만 이들 역시 기상악화와 장비부족 등으로 아쉬운 하산을 한다. 이로서 탈레이사가르는 5번의 실패를 한국에 안겨주며 반드시 넘어야할 벽으로 인식되어지기 시작한다. 한편 파키스탄의 미등봉 울타르(Ultar2)2봉 세계초등에 도전한 명지대 산악회는 서기석대장의 지휘아래 혹한의 10월까지 등반을 이어갔지만, 5번의 눈사태와 낙석 또 벽 등반 보다 어려운 능선등반의 한계를 절감하며 철수를 결정한다. 이 산은 많은 원정대의 도전이 있었지만 이 해 여름 일본등반대가 초등에 성공한 험봉이다. 한편 문종국대장이 이끄는 광주전남학생연맹은 트랑고 타워의 쿠르디카 - 로레탕 루트로 등정을 한다. 3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소규모원정대가 다시 뜻 깊은 거벽의 정상에 선 것이다. 1997년은 세계가 놀랄 등반이 파키스탄의 발토로 빙하에서 펼쳐진다. 조성대대장이 이끄는 한국산악회의 가셔브룸4봉(7.925m)원정대는 ‘빛나는 벽’ 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산의 서벽 중앙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재등 후 12만에 신 루트로 등정을 기록하며 통산 3등을 기록한다. 가셔브룸4봉은 리카르도 캐신이 이끄는 이탈리아의ㅣ 원정대에 의해 초등된 후 86년 그랙 차일드에 의하여 재등이 이루어진 후 12년간 등정자가 없는 험봉이었다. 한국산악회 등반대는 2.500m의 표고차를 기록하는 서벽의 중앙립에 세 개의 캠프와 두 번의 비박 끝에 유학재등이 정상에 서는 빛나는 성과를 거둔다. 1998년 대산련 전남연맹 미니아공가(7556m) 원정대가 11월 14일 북동릉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루트 초등이라는 값진 성과를 기록한다. 하지만 하산 중 7250미터 지점서 오종락 대원 강풍에 추락사하는 아픔을 겪는다. 또 정승권씨가 미국 요세미티의 A5급 루트인 씨오브 드림을 한국 초등한다. 한 편 대한산악연맹 경기북부지부 구조대가 주관한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 원정대의 신상만, 최승철, 김형진 대원, 9월 28일에 북벽 마지막 정상설원 등반 중 의문의 추락사 한다. 한국 거벽등반을 선두에서 이끌던 이들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2000년 문성욱, 안종릉 이인조가 파키스탄의 낭마빙하의 브락상 피크에 A4급의 인공등반 루트를 개척하며 이벽의 정상에 선다. 5000m급의 벽 등반에 좋은 전형을 제시한 등반이었다. 또 대한산악연맹등반대가 아비 가민 봉(7,355m) 남서벽 루트 세계 초등한다. 2001년 서기석대장이 이끄는 멀티피크 원정대가 한 시즌에 6.000m 봉우리 한 개를 포함한 5개봉우리의 등반을 시도한다. 이 팀은 3개봉우리의 초등과 3개의 산에 신 루트를 만들며 등정을 시도했다. 카라코람뿐 아니라 한국최초로 힌두라지 산맥에서도 좋은 등반을 선보였다. 2002년 포스코 산악회는 쉬모캉리 세계 초등에 성공한다. 또 정승권 대장이 이끄는 쎄로또레 원정대가 이벽의 초등루트로 한국초등을 기록한다. 2003년 파키스탄 탐험대(대장 김창호)는 딜리상사르(6,225m)?아타르코르(6,189m)?하이즈코르(6,105m)?빅마브락(6,150m) 단독으로 초등하는 성과를 거둔다. 누구나 할 수 없는 뛰어난 등반이었고 단독등반의 문을 연 뛰어난 등반이었다. 또 김세준 대장이 이끄는 익스트림라이더 등반대가 낭마빙하의 나와즈 브락(5.800m)에 A5급의 어려운 신 루트를 개척한다. 7. 기타의 거벽 등반사. 넓은 의미의 히말라야 지역의 거벽등반을 제외하고 세계각지의 거벽에서도 많은 새로운 형식과 어려운 시도의 등반이 이루어졌다. 이를 소개한다. 1954년 프랑스대가 7일간의 사투 끝에 남미 안데스의 최고봉이자 표고 차 3,000미터의 대 암벽을 가진 아콩캉구아(6,960m) 남벽을 등반하였다. 높은 고도에서 행하여진 최초의 어려운 거벽등반이었다. 1959년 이태리의 새사레 마에스트리(Cesare Maestri)가 파타고니아의 세로 토레(Cerro Torre, 3,128m)를 초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강 중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오스트리아의 토니 에거(Toni Egger)와 함께 정상에 도달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정상증거도 없었다. 이 후 등정의혹이 제기되며 마에스트리는 다시 쎄로또레를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1965년 노르웨이 트롤리젠(Trollryggen)의 북벽 트롤 월(Troll Wall)이 영국 등반가들에 의해 등반되었다. 하워드(A. Howard), 아메트(J. Amatt), 트위달(B. Tweedale)은 다섯 번의 비박 끝에 올랐다 1971년 마운틴 케냐(Mt. Kenya, 5,199m)에서 의 유명한 다이아몬드 꿀루와르(Diamond Couloir)가 호웰(I. Howell)과 스니더(P. Snyder)에 의해 등반되었다. 마에스트리(Cesare Maestri)가 세로 토래(Cerro Torre)를 다시 등반했다. 그의 1959년 등반을 증명하기 위하여 위해 남동릉에서 콤프레샤를 이용 많은 볼트를 남발하며 정상에 오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연파괴라는 비판을 받는다. 1992년 파타고니아에선 스위스 팀이 피츠로이 동릉에 70일 동안 끈질기게 등반해 새 루트를 냈다. 이탈리아루트와 프랑스루트 사이에 뚫은 이 루트는 길이 1,400m로 서, 이 지역 등반사에 길이 남을 만한 등반으로 평가된다. 또한 슬로베니아팀은 피츠로이 산군의 세로 아델라 중앙봉에 동계인 6월에 1,200m의 긴 루트를 개척했다. 1993년 크리스 보닝턴은 짐 로더, 롭 퍼거슨, 그레이엄 리틀과 함께 그린랜드의 레몬산군의 주봉인 메이슬레(2,340m) 북벽(1,000m, 알파인 D+급)을 13시간 만에 오르는 등 리틀비콘(2,300m) 북벽(D급), 아이보리타워(2,100m) 북동벽(TD, 5b, 16피치), 트라이던트(2,300m) 북동벽, 니들(1,900m) 남서필라(22피치, ED2)를 등반하면서 모두 초등을 거두었다. 1994년 슬로베니아 산악인 반자 푸를란이 뉴질랜드 마운트 쿡에서 단독으로 이 산의 남벽(1,000m)을 단독으로 3시간 만에 새 루트를 개척하고 오른 그는 정상 능선을 횡단해 북동릉으로 10시간 만에 하산을 완료했고, 타스만봉(3,498m) 서벽에도 새 루트를 내는 등 6개 벽을 오르고 4개벽을 하강했고 연봉종주도 해냈다. 1995년 남미 칠레의 파이네 북봉에 슬로베니아의 마르코 프레젤리와 안드레이 스트렘렐리가 동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였다. 또한 피츠로이(3,410m) 북서 버트레스에선 안드레아 사르치, 로랜조 나데리, 마오로 지랄디 등이 1월 22일 - 26일 사이에 엔슈에노(Ensueno VI 6c/7a AI, 2,500m) 루트를 초 등반했다. 그리고 콘래드 앤커, 스티브 제르베르딩, 롤랜드 가러보티가 1월 11일에 세로 스텐하르트에서 새로운 변형루트를 경유하여 토마호크(Tomahawk V 5.9 A2 WI5) 루트를 초등했다. 폴 개그너와 릭 러브리스가 캐나다 베핀 섬의 동부 피요르드 위키시타델 남동벽(표고차 1,200m)에 새로운 루트를 추가했다. 미국 알래스카 남동쪽에 위치한 스티킨 아이스캡의 버켓니들이 30년 만에 댄 코튼, 그렉 컬럼, 그렉 포레이커 3인조에 의해 새 루트(A3+, 사우스 필라)로 재등 되었다. 알래스카의 루스 빙하에 위치한 존슨봉(8,460ft)이 5월 31일에서 6월 3일 사이에 미국의 잭 태클과 더그 샤보에 의해 에레베이터 샤프트(알래스카 등급 6, WI5+, 5.7 A3급)라는 새로운 루트로 재등 되었다 1996년 6월 23일 미국의 스티브 하우스가 맥킨리 웨스트 버트레스 상의 북 서벽에 새로운 루트(90도의 빙벽과 5.8급의 암벽으로 이뤄진 혼합등반, 알래스카 등급 5급)를 추가했다. 남극해 스미스섬 최고봉 포스터봉(약 2,100m)이 1월 29일 브루스 도릭과 랜드리스, 댄 매닉스와 로저 톰슨에 의해 초등되었다. 마크 시노트, 워랜 홀링거, 제프 채프먼이 북극해의 베핀섬 폴라선 스파이어(샘포드피요르드)의 1,340m 거벽을 40일 동안 끈질기게 등반하여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다 1998년 강력한 러시아 팀 1월 16일 알래스카 데날리 동계 등정. 또 스위스 2인조 파타고니아 지역의 에스쿠도 동벽에 신 루트(900m, VI 5.10 A4) 개척. 독일의 K. 알버트와 B. 아놀드 파타고니아의 생텍쥐페리 동벽에 신 루트(5.12+/13) 개척. 1999년 마이크 테너 외 3명의 영국팀 캐나다 배핀 아일랜드의 스튜어트 계곡에 위치한 시타텔 초등. 마이크 리베키 배핀 아일랜드 동쪽 피요르드에 위치한 스코트 아일랜드의 십스프라우 북벽에 단독으로 신 루트 개척. 2000년 브레디 로빈슨과 벤 길모어 피cm로이 노스 필라에 신 루트 ‘디에드르 다이렉트’(5.10/A3, 32피치) 등반한다. 또 캐나다의 코니 아멜룬젠과 션 스턴 칠레 파이네 동봉의 남동 버트레스 초등한다. 루트명 하스(Hoth, 5.10+/A4/27피치) 미국의 케빈 마호니, 벤 길모어 맥킨리 남벽 체코 다이렉트 루트 7일간 알파인 스타일 등반. 한 달 후 마크 트윗, 스티브 하우스, 스코트 베케스 65시간 동안 연속 등반함. 2003년 미국의 딘 포터는 쎄로또레 콤프레셔 루트와 파이네 중앙봉 슈퍼 쿨르와르를 단독으로 오른다. 이렇듯 세계 여러 곳의 거벽들에서도 일파인 스타일등반과, 신 루트 개척, 단독등반등 더욱 과감한 시도의 등반이 진행되고 있다. Part - 3 세계의 거벽 등반가들. 1. 월터 보나티 월터 보나티의 등반 중 뛰어난 등반은 1958년 여름 카라코람 산맥에서 행하여진 가셔브룸4봉의 초등일 것이다. 또 1955년 드류 북서 필라의 단독등정, 마터호른 북벽 동계 단독등반 등 실로 과감하고 전위적인 등반의 선두주자였다. 월터 보나티는 1930년 6월22일 이태리 베르가모에서 출생 19세에 등반을 시작한다. 이 후회계원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1956년 알파인 가이드 자격증을 획득한 후 가이드 생활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954년 그는 이태리 K2원정대에 선발되었다. 그 당시 그는 23세의 가장 어린대원이었다. 이 등반에서 그는 리노라치델리와 아칠레 꼼파그로니가 정상에 설수 있도록 산소통을 날라주었고, 이 후 그는 거의 8000m의 고도에서 침낭 없이 비박에 들어가 추위와 돌풍과 싸우며 힘겹게 베이스캠프로 하산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정상에 서지 못하였다. 또 그는 산소를 정상캠프까지 수송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아야했다. 대규모 원정에 염증을 느껴 한동안 산을 멀리했지만, 1995년 그는 그 당시 알프스 최 난 루트였던 드류 남서필라를 단독으로 등반하여 정상에 선다. 그는 1958년 리카르도 캐신이 이끄는 가셔브룸 4봉의 원정에 참가해 마우리와 이 빛나는 벽의 정상에 선다. K2의 정상보다 더 값진 정상을 얻었다고 그는 항상 말한다. 하지만 1961년 몽블랑 프레네이 중앙필라를 악천후 속에 등반하다 세 명의 동료의 죽음 지켜보아야했다. 이후 그는 극한의 알피니즘에서 은퇴하기 전 마지막 등반으로 어려운 등반을 해내기로 했다. 마터호른 북벽에서 대담한 동계 단독등반이었다. 그는 정상에 섰고 그의 나이 34세에 극한등반을 단념한다. 그의 삶은 19세 때에 시작한 거벽등반 후 15년간 세계각지의 거벽에서 살아온 이태리 최고의 거벽등반가이다. 2. 리카르도 캐신 보나티가 15년의 짧은 등반가의 길을 걸었다면 리카르도 캐신은 이와는 반대로 50년간이나 극한의 무대인 거벽에서 삶을 살아온 등반가이다. 1908년 이태리 사보가그나에서 출생한 그는 1926년부터 등반을 시작한다. 1933년은 그의 등반방식의 큰 변화를 가져온 해이다. 당대 최고의 등반가인 에밀리오 코미치에게서 전수받은 새로운 인공등반 기술로 돌로미테의 새로운 인공등반 루트 개척에 나선다. 바딜레 북동벽과, 치마 오베스타 북벽 초등, 그랑드조라스 워커능 초등등 많은 신 루트 개척을 이어갔다. 등반을 시작하면 후퇴를 모르는 강한 개성 때문에 1953년 이태리의 K2원정대에서 제외됐지만, 1957년 가셔브룸4봉의 원정대장으로 월터 보나티와 칼로 마우리를 정상에 올린다. 또 알레스카로 눈을 돌려 1961년 메킨리의 캐신리지를 초등한다. 또 1969년 남미의 새로운 등반대상지인 안데스의 지리산카 서벽 등반대의 원정대장으로 젊은 등반가들을 정상에 올리며 더 큰 벽 등반을 준비해간다. 그 치밀한 준비는 그의 나이 67세이던 1975년 로체남벽으로 향했다. 라인홀드 메쓰너를 포함한 강력한 등반대였다. 하지만 두 번의 강력한 눈사태로 그는 생애 첫 패배를 맞본다. 이 후 그는 등반장비를 제작하는 사업가로 변신하였다. 캐신은 50년이 넘도록 치열한 거벽에서 그의 삶을 불태웠으며 많은 원정등반 중 단 한번의 실패만을 기록한 치밀하고, 빈틈없고, 결단력 있는 세기의 거벽 등반가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원정대장 이었다. 3. 카트린 데스티벨 거벽등반은 남성 등반가들도 극한의 인내심과 노력이 있지 않고서는 쉽게 정상에 도달할 수 없는 극한의 영역이다. 하지만 카트린 데스티벨은 역사상 남성 등반가보다 더 과감하게 미지의 벽을 오르면서 거벽 등반사의 큰 획을 그은 여성 거벽등반가이다. 카트린은 1960년 7월 24일, 알제리의 오란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적 그의 등반은 파리 외곽지역의 어려운 암벽들을 남성들과 같이 또는 더 쉽게 완등 해 냄으로 더 큰 벽에 도전하고 싶은 꿈을 키워 그녀는 알프스로 진출한다. 1976년 패티트 드류의 아메리칸 다이랙트 루트를 7시간 만에 등정한 것도 이 때다. 그 직후, 데스티벨은 물리치료사의 길을 가기 위해 등반을 그만둔다. 그러나 단조로운 일상으로 인해 그녀는 다시 등반세계로 돌아왔고 등반영화에도 출연한다. 데스티벨은 이태리 발도네시아에서 열린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에 참가하여 자신도 예상치 않은 우승을 차지했다.1987년, 다시 스포츠 클라이밍계에 돌아온 그녀는 그레노블에서 열린 세계 실내 암벽대회에서 좌절을 겪어야 했다. 등반 규칙으로 인해 그녀는 경기 등반계를 떠난다. 바로 그때 제프 로우가 1990년 트랑고 타워 원정에 그녀와 함께 하기를 청한다. 제프로우와 그녀는 선등을 바꿔가면서 5.12a 구간들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유고 루트의 두번째 자유등정을 이루어냈다. 이에 거벽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페티트 드류의 보나티 필라를 택하여 1990년 가을에 단 4시간 만에 그 루트를 자유등반 한다. 보나티가 6일 만에 등정한 벽을 여성으로서 단 4시간 만에 성공한 것이다. 또 그녀는 한걸음 더 나아다 드류 서벽에 A4급의 신 루트를 만들며 다시 드류를 등정 세상을 놀라게 한다. 또 1992년 3월 아이거 북벽에서 행한 그녀의 대담한 동계단독등반은 다시 한번 그녀의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준 대담한 등반이었다. 데스티벨은 등반가이다. 그녀에게 여성과 남성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녀는 단지 뛰어난 거벽등반가이다. 4.보이텍 쿠르디카 1947년 7월25일 폴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쿠르디카는 특히 히말라야 거벽에서 새롭고 또 어려운 뛰어난 등반을 해냈다. 1969년부터 알프스의 고전 루트들을 섭렵하면서 그는 거벽등반에서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1970년 그는 드류와 그랑드조라스에서 새로운 등반루트를 개척한다. 1972년 쿠르디카는 그의 첫 번째 고산등반인 힌두쿠시 원정에서 이탈 아커쵸치(Acher Chioch)를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한다. 1977년에는 힌두쿠시 산맥의 코이반다카(Kohi Bandaka)북동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한다. 그의 등반능력은 이때에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1978년 창가방 남벽과 1980년 다울라기리 동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에 성공한다. 당시 8.000m급 봉우리의 피크헌팅에 빠져있던 주류 산악계에 경종을 울린다. 1982년 그는 쿠크추카와 등반대를 꾸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등반대라는 평가를 받으며 8.000m급 거벽에 역사에 남을 위대한 등반을 이어간다. 1982년 가셔브룸2봉의 남동릉과 1983년의 브로드피크 남서벽에 신 루트를 개척한 후 브로드피크와 가셔브룸2봉의 횡단 초 등정, 84년에 브로드피크 횡단에 성공한다. 당시 8.000m산에서의 능선종주는 실로 진보적인 등반이었다. 이후 쿠크츠카가 8.000m 14좌 완등에 나섬으로 그는 새로운 등반동료인 로버트 샤우워와 파키스탄 발토르 빙하의 ‘빛나는 벽’ 가셔브룸4봉 서벽에 신 루트등반을 시도한다. 그들은 역경을 무릅썼으며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등반을 이어간다. 하지만 정상 바로 밑에서 후퇴를 결정한다. 그저 살아서 내려 올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 등반은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등반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상등정보다 값진 과정을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 그는 에라드 로래땅과 같이 파키스탄 바로토로빙하의 트랑고 타워 동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한다. 높이 보다는 등반의 어려움을 택한 등반이었다. 1990년 그는 시샤팡마 남벽을 하루 만에 등정 속도등반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 1994년 미등의 벽 K2서벽을 시도했다. 그의 등반은 항상 새롭고 어렵게 극한의 대상지에 도전했으며, 명예난 돈 보다는 진정 그가 하고 싶은 등반에만 영정을 불태운 가셔브룸4봉 만큼 빛나는 거벽등반가이다. 5. 라인홀드 메스너 우리는 단지 히말라야 14좌를 최초로 완등 한 그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등반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한계를 추구했으며 새롭고 어려운 도전들을 통하여 거벽등반의 미래를 제시했다. 70년대와 80년대 그가 히말라야에서 보여준 거벽등반은 속공등반과 알파인 스타일등반 단독등반등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극한의 등반들이었다. 이태리 남부에서 1944년 태어난 그는 60년대 서부 알프스와 이태리의 거벽들을 등반하며 거벽등반의 경험을 축척한다. 물론 이때에도 말모라다 남벽의 단독등반, 몽블랑 프레네이 중앙필라를 단독으로 등정하는 등 과감한 등반을 시도한다. 1970년 그의 히말라야 첫 원정은 낭가파르밧의 루팔벽 이었다. 그는 동생 균터와 3.000m의 거대한 루팔벽의 등반에는 성공했지만 하산 중 동생이 눈사태로 실종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는 또 이 등반으로 인하여 발가락 6개를 잃었다. 1972년 그는 마나슬루 원정에서도 동료 2인을 잃는 불운을 맞본다. 그는 상심했고 대규모 원정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1974년 홀로 남미의 최고봉 아콩가구아를 찾은 메스너는 남벽을 단독으로 오르며 초등에 성공한다. 또 1975년 로체 남벽을 시도했지만 눈사태로 포기해야했다. 1975년 그는 피터 하벨러와 가셔브룸1봉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다. 알프스에서 행하여지던 과감한 시도를 히말라야에 시도하여 성공한 최초의 등반으로 기록된다. 그들은 더욱 더 대담한 계획을 세워 1978년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르는 최초의 인류가 된다. 또 낭가파르밧의 단독등반에도 성공한 메스너는 K2또한 무산소로 오르기 위해 발토로 빙하로 향한다. 나쁜 날씨 속에 등반을 감행 세계2위봉도 무산소로 오르며 슈퍼 알피니즘의 선두에 선다. 1982년 그는 한스 카머랜드와 함께 가셔브룸 1,2봉을 횡단했고, 1986년 그와같이 로체 서벽을 등반함으로써 8.000m 14좌를 완등 한 최초의 등반가가 되었다. 그가 행한 높은 고도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슈퍼 알피니즘 이상 가는 것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는 대담한 만큼 치밀한 등반가였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는 아직도 생존해있다. 알프스의 거벽에서 시작한 그의 등반은 히말라야에서 꽃을 피웠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자유로운 등반선을 강조했다. ‘난 내 일생에서 이제까지 단 한통의 산소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잔 하나의 볼트도 사용하지 않았다.’ 6. 더그 스코트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과 멀티 피크등반의 선구자인 더그 스코트는 1941년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처음 등산을 시작 17세에 몽블랑과 샤모니의 여러 봉우리를 등반했다. 그가 오로지 등산가의 길을 걷기 전까지 그는 세계 오지의 산과 이국적인 곳으로 여행을 하며 여름휴가를 보냈다. 또 안정된 교사생활을 포기하고 1975년 크리스 보닝턴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최고봉의 최난의 벽이었던 남서벽을 완등하며 지구의 용마루에 올라선다. 또 하산 시 8.000m이상의 고도에서 산소와 침낭 없이 죽음의 비박을 감행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동상을 피하며 베이스캠프로 무사히 복귀한다. 이 등반으로 더그 스코트는 지구 어느 곳에서도 무사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어 경량의 알파인 스타일등반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그의 도전은 1976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같이 올랐던 듀갈 헤스톤과 메킨리의 남벽에 신 루트를 개척한다. 또1977년 크리스 보닝턴과 같이 파키스탄의 비아포 빙하의 바인타브락 주봉에 도전 초등 후 하산 과정에서 하강 중 부주위로 양쪽 발목이 부러져 등반 역사상 가장 끔직한 하산을 시작해야했다. 그는 안정한 비아포 빙하까지 거의 모든 하산 길을 무릎으로 기어 내려왔다. 이후 그는 1977년 칸첸중가 북릉과 눕체북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오르며 경량 속공등반의 선두적인 등반가로 자리 잡았다. 또 그는 등정을 목적으로 한 산을 오르기 전 그 보다 고도가 낮은 산을 오른 후 목표가 되는 산을 오르는 멀티피크 등반방식을 채택하여 인도의 쉬블링의 동릉과 시샤팡마 남서벽을 등정함으로 경실을 맺는다. 1983년 그는 보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등반을 위하여 그랙 차일드와 함께 파키스탄의 거벽 롭상 스파이어를 등반한다. 또 네팔의 바룬체와 참낭 리모2봉을 시도한다. 더그 스코트의 등반에 대한 열정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위험스러운 상황을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등산의 본질이라면’ 더그 스코트는 분명 순수하게 이를 따르고 자신의 가치를 실행하고자 몹시 어려운 거벽들을 주저 없이 도전해온 순수한 거벽 등반가이다. 7. 크리스 보닝턴. 그는 영국의 거벽등반을 이끌어온 가장 영향력 있는 대장중의 한명이다.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안나푸르나 남벽등반의 성공은 가히 얕잡아볼 수 없는 업적으로 기록된다. 원정대를 조직하고 성공시키고 또 때로는 보닝턴 자신도 등반에 참여하는 이런 여러 가지의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은 보닝턴처럼 능숙한 솜씨로 발휘한 등반가는 드물다. 1934년 영국의 햄프 스태드에서 태어나 16세에 암벽등반을 시작 한 후 급성장을 거듭하여 당시 정상급의 등반능력을 가진 등반가로 자리매김한다. 보닝턴은 1956년부터 6년간 군에서 등산하교 강사 등으로 생활한다. 그는 1958년 드류 남서필라를 영국인으로는 처음 올랐다. 1960년 영국 - 인도 - 네팔 군 합동원정대에 참가 안나푸르나2봉을 등정한다. 이 등반에서 보닝턴은 원정대장인 로버트에게 원정전반에 관한 등반전술과 원정대의 운영 등을 배워 그 후 자신의 원정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1961년 그는 군을 떠났고 1962년 아이거 북벽을 영국인 최초로 올라 작은 명성을 얻는다. 그 후 그는 큰 원정대를 조직하는 것을 원했고 그는 드디어 안나푸르나 원정대를 조직 남벽으로 향한다. 당시는 안나푸르나 남벽을 등반한 다는 자체가 미지에 대한 도전이었다. 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오나벽하게 원정대를 운영하여 1970년 5월27일 듀갈 헤스톤과 돈 월란스가 이 남벽을 넘어 정상에 선다. 안나푸르나 남벽 원정에 고무된 그는 안나푸르나보다 더 위협적인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할 계획을 세우고 1972년 이 벽에 도전하지만 강풍과 추위로 인하여 실패한다. 마침내 1975년 이 벽에 도전한 더그 스코트, 듀갈 헤스톤, 피터 보드맨등 당대 최고의 등반가들을 최고봉 정상에 올리며 히말라야 남벽등반의 새 역사를 만들어간다. 또 그는 2년 후 더그 스코트와 같이 카라코람 비아포 빙하의 미등봉 바인타브락에 도전 초등을 일구며 그도 정상에 선다. 보닝턴은 1976년 미등의 K2서릉을 등반하기 위하여 발토로 빙하로 향하지만 그는 친ㄱ 닉 에스코트를 눈사태로 잃는 슬픔을 겪는다. 1981년 그는 중국의 신강성의 콩구르를 초등한 후 1982년 피터보드맨, 조 테스커와 같이 미등의 에베레스트 북동릉에 도전한다. 이 등반에서도 그는 피터 보드맨과 조 테스커를 잃고 원정에 실패한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1983년 인도 강고트리의 쉬블링 서봉으로 이어진다. 이 산을 5일간 알파인 스타일로 올라 정상에 선다. 이 후 오지의 미등 봉에 계속적인 도전을 하였으며, 1993년에는 그린랜드의 아이보리타워 북동벽을 등반하는 등 계속적인 탄사와 등반을 이어가고 있다. 8. 제프 로우 미국 등반 계에 제프로우는 빙벽등반의 방식과 혼합등반의 새로운 장을 연 등반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새로운 빙벽등급체계를 만들며 이 분야에서는 분명 새로운 등반사조를 확장시키는 전도사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는 단지 작은 빙벽위에서 가치를 구현하는 것 보다는 이런 기술들이 극한의 고산거벽등반으로 이어지는 가치의 확장을 원했다. 그런 이유에서 아직까지 실행에는 옮겨지지 않았지만 로우는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마칼루 서벽의 단독등반을 계획했었다. 로우는 15세 때 처음 빙벽등반을 시작 이후 그렌드 테튼의 블랙아이스 쿨르와르와 서벽을 1970년에 콜로라도의 브레달 베일폭포를 처음으로 단독등정 한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1982년 그는 네팔의 1.500m의 빙벽을 포한한 꽁테 북벽을 초등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고난이도의 순수 빙벽등반을 히말라야에서 시도한 것이다. 1983년 푸모리 남릉에 단독등반을 시도 변형루트를 개척했고, 1986년에는 캉테카 북서벽을 등반하는 등 그의 등반영역을 히말라야 거벽까지 확장시킨다. 그는 빙벽등반뿐 아니라 암벽등반과 혼합등반에서도 최고의 기술을 발휘하며 1978년 파키스탄의 험봉 라톡 북릉을 등반 정상 바로 밑에서 되돌아선다. 1987년 그는 타워체 북동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정한다. 이 무시무시한 북동벽에 온갖 등반방식을 적용하며, 창의성을 발휘한 뛰어난 등반이었다. 1990년에는 프랑스의 뛰어난 여성 산악인인 카트린느 데스티벨과 트랑고 타워 유고루트를 두 번째 자유등반으로 오른다. 또 그는 1991년 ‘자살등반’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위험한 등반을 해내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아이거 북벽을 단독으로 등반 ‘메타노이아’라는 신 루트를 개척한다. 이 루트의 난이도는 A5급으로 아이거에서 행하여진 가장 어렵고 위험한 등반이었다. 지극히 자유스럽게 등반을 해온 제프로우지만 그 이면에는 숨조차 쉬기 어려운 극한의 난이도의 얼음과 암벽에서 그는 그의 기량을 다해 등반했다. 진취적이고 선구자적인 등반기술을 개발 히말라야까지 적용시킨 최고 기량의 거벽등반가이다. 9. 로얄 로빈슨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등반과 자연스러운 등반선을 선호하는 그의 등반은 진정 등반가라면 반 듯 생각해야 될 많은 문제들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로얄 로빈슨은 이르몸소 실천한 등반가로 기억된다. 1850년 캘리포니아에서 등반을 시작한 그는 1952년 당시 암벽등반 최고난이도인 5.9급의 타퀴즈록의 오픈 북(Open Book)을 선등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는 그 후 요세미티로 시야를 돌렸다.1957년 그는 하프돔 북서벽을 초등하며 요세미티의 거벽등반의 새 장을 연다. 196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암벽등반으로 평가되는 샤라테 원릉 초등햇고 1964년 엘캡의 노스 어메리칸 월을 초등한다. 1967년 거대한 오버행을 포함한 린링 타워를 단독 초등하고 1968년 엘캐피탄의 단독 초등을 이루어 낸다. 이렇듯 요세미티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요인물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후 로빈슨은 존 하딘과 같이 프랑스 알프스의 페티트 들 서벽 직등루트를 개척하고 1965년 같은 벽에 수퍼 다이랙트 루트를 개척한다. 요세미티 등반방식을 알프스 거벽에 적용시키며 미국 등반가들이 전 세계 거벽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그는 알프스 외에도 세계 곳곳의 오지에 거벽을 등반했다. 1964년 짐 멕카시등과 함께 캐나다 북서지역의 프로보스시스 남동벽에 신 루트를 개척했고 1968년에 카나다 마운트 에리스 북벽을 단독으로 초등한다. 또 그는 자연보호와 등반윤리 문제에도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 불필요한 볼트 사용의 배제와 자연적인 등반선을 선호하는 자연보호, 클린 클라이밍에도 엄격한 대변자가 되었다. 또 현대 거벽등반에 쓰이는 중요한 많은 기술들을 개발했으며, 그 기술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거벽들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여 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요세미티 등반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10. 토모 체슨 토모 체슨이 보여준 로체 남벽을 자유등반을 통한 단독등반은 등반역사에 가장 뛰어난 등반으로 평가 되어 지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이 등반은 어려운 벽을 넘어섰다는 의미 보다는 그가 이 등반을 위하여 철저한 준비와 헌신적인 자기노력이 뒷받침 되었고 시도했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 등반이었다. 체슨은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나 1975년 16세 때 등반을 시작하였다. 등반을 좋아하였지만 1979년까지 그리 진지하게 등반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남미 안데스 산맥의 알파마요 남벽을 초등하며 어려운 등반을 해낸다. 1980년부터 알프스 고전루트를 오르며 등반가로서의 미래를 준비한 체슨은 1983년 파미르 코뮤니즘 북벽을 등반했다. 1985년 유고 원정대에 참가 칸첸중가의 서봉인 알룽캉 원정은 체슨에게 중요한 계기가 된 등반이었다. 어려운 북벽을 초등하고 하산 중 체슨은 그의 동료 보루트 벌젠트의 추락을 목격한다. 그는 살기위해 하산보다는 비박을 결정 이 때부터 4일간 음식을 먹지 못하고 이틀간은 무도 먹지 못한 체 필사적 탈출을 감행 다음날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이 등반 후 그는 바로 알프스 3대 북벽인 아이거, 마터호른, 그랑드조라스북벽을 1986년 동계에 4일 동안 연속 단독등반에 성공한다. 또 브로드 피크를 단독등반을 해낸다. 체슨은 이 등반이 끝나자마자 K2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남동 스퍼를 단독 등반하여 83년 더그 스코트가 도달한 최고 지점을 통과했을 때 나빠지기 시작한 날씨로 인하여 정상을 버리고 재빨리 후퇴한다.1987년 다시 체슨은 로체 샬의 대규모 원정에 참가하지만 극지법 등반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다시 알프스로 돌아온다. 그랑드조라스의 로시에스터(5.11a)를 빙벽화를 신고 단독 등반한다. 이 후 그는 1989년 네팔의 거대한 자누 북벽으로 홀로 향한다. 얇은 얼음지대와 A2구간ㄷ 문제였지만 7000m의 고도에서는 엄청나게 가옥 한 5.10급의 자유등반 고비사이를 통과 23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한다. 이 때까지 행하여진 가장 어려운 단독 등반중의 하나였다. 이 후 그는 더욱 대담하고 세밀하게 로체남벽을 연구했다. 그리고 해답을 얻는다. 밤에만 등반하여 로체의 악명 높은 눈사태와 낙석을 피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고 그는 거대한 로체 남벽을 돌파 1990년 4월24일 이 벽의 정상에 섰다. 히말라야의 마지막 위대한 과제가 해결된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즌 이 벽을 등반한 러시아 등반대에 의하여 등정의혹이 제기되며 그의 등반이 조작되었다는 많은 냉정한 판단들이 뒤따른다. 11. 믹 포우러 믹 포우러는 순수 알피니즘의 신봉자이다. 그는 어떠한 스폰서나 제정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등반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등반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등반은 아무래도 2003년 중국의 쓰촨성의 쓰구니앙 북벽에서 행하여진 등반일 것이다. 그는 수직의 800m의 빙벽을 돌파 위험한 정상 세락지대를 오름으로 이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하는 기록을 남긴다. 이로 인하여 그는 황금 피켈상을 수상한다. 믹 포우러는 영국 산악계에선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며, 점진적으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다. 그는 어린시절 부친에게 암벽등반을 배운 후 13세 때에 알프스의 여러 산들을 오르며 산악인으로서 내실을 다진다. 현제 걸출한 모험등반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극한상황이 펼쳐지는 오지의 거벽에서 기술적이고도 모험적인 등반들을 즐겨한 인물이다. 그는 1982년 이후 보다 본격적인 등반활동들을 펼쳤는데, 그의 주요한 등반들은 러시아의 유쉬바, 파키스탄의 레이디핑거, 스팬틱 북벽 골덴 필라와 훈자 피크, 인도 가왈히말의 창가방과 아르와 타워 그리고 네팔의 타우체 등이었다. 크리스 보닝턴은 믹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분명 자신의 방면에선 라인홀드 메스너만큼 뛰어나다. 하지만 결코 진부한 기록적인 면에 결코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 대신에 엄청난 신중함과 특출한 개성을 요하는 신 루트들만을 추구하고 있다.'그는 알프스 산맥의 클럽의 과거의 부사장 및 에베레스트 산하단체의 관리 위원이다. 12. 야마노이 야스시 21세기 가장 전위적인 단독등반가 중의 하명인 야마노이 야스시는 1965 년 도쿄에서 출생 중학 3년 때에 일본 등반 클럽에 입회하면서부터 등산을 시작한다. 그는 믹 포우러와 갗이 보여주기 위한 등반은 하지 않았다. 그저 끈임 없이 고난이도의 자신의 산을 찾아 등반에만 열중했다. 여름에는 후지산의 기상관측소에 짐을 옮겨 주며 돈을 모아 등반을 나서는 그런 스케줄의 삶을 택했다. 그 에게 중요한 것은 돈도 명에도 아닌 등반 그 자체였다. 1984년부터 시작된 그의 요세미티 생활에서 최고 난이도의 인공등반과 수많은 자유등반을 실현한다. 물론 단독등반도 포함된다. 그는 1987년 드류 서벽의 프랑스 다이렉트를 단독으로 등정한다. 또 1990년 피츠로이를 단독으로 오름으로서 그의 단독 등반영역을 전 세계로 확대해 나간다. 1991년 원정비용의 문제로 대규모 브로드 피크 원정에 참가해 정상에 오르지만 그는 그리 기쁘지 않았다. 대규모 원정에 대한 회의만 늘뿐이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의 고난도의 클라이밍 실적, 또 탁월한 솔로 클라이밍 기술은, 국내외에서 세계 굴지의 등산가와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그는 네팔의 메라피크 서벽·직등루트에 단독 도전하고, 아마다브람(6812m) 서벽동계 단독초등을 이룬다. 1993년 파키스탄의 가셔브룸 4봉(7925m) 단독 도전하지만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그는 가셔브룸2(8034m)에 등정한다. 1994년 티베트의 초오유(8201m) 남서벽에 신 루트를 만들며 단독 등정에 성공하며 단독등반가로서의 역량을 넓힌다. 1995년 요세미티엘캡의 남동벽인 로스트·인·미국(5.10/A5)을 등반한 후 그는 바로 파키스탄의 레이디 핑거 남서벽에 신 루트를 만들며 초등을 기록한다. 1998년 그는 마나슬루(8163m) 북서벽 초 등반을 목표로 해 등반을 이어가지만 6200 m부근에서 눈사태에 만남, 기적적이게 생환 한다. 2000년 그는 세계 2위 고봉인 파키스탄 K2(8611m) 남남동릉을 단독 초등하며 세계 최고 기량의 단독등반가로 서의 길을 걷는다. 2002년 그는 운명의 산 갸충캉(7.952m) 북벽에 신 루트를 만들며 등정에 성공하지만 동상으로 인하여 10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고 재활 훈련 중이다. 그는 이해 아사히 스포츠 대상, 2003년의 우에무라 나오미 모험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순수한 단독 등반가이며 모든 장르의 등반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말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뛰어난 정신력을 가진 등반가이다. 13. 그랙 차일드 호주에서 태어난 그랙 차일드는 최고나이도의 벽등반을 히말라야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뛰어난 거벽 등반가이다. 그의 뛰어난 등반 중 최고의 등반은 역시 가셔브럼4봉의 북릉을 통한 통산 2등을 기록하며 정상에 선 순간이다.A5급의 거벽등반과 히말라야 8천미터봉 등반, 그리고 5.13급에 이르는 스포츠 클라이밍 등 그렉 챠일드는 모든 형태의 등반을 두루 섭렵한 올라운드 산악인이다. 1977년에 그는 킴 캐리건과 함께 요세미테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퍼시픽 오션 월(VI 5.9 A4)'을 7일 만에 오른다. 또 그는 탐험가로서도 아주 훌륭한 기록을 남긴다. 그는 인도와 티베트의 경계지역의 미등봉을 찾아 나서 이 지역의 정보를 세상에 첫 공개한다. 이후 그는 1981년에 요세미티에서 '오로라(VII, A4)' 루트를 개척했으며, 그는 이해 더그 스코트와 같이 인도의 가르왈지역의 창가방 동릉을 통하여 초등을 기록한다. 1983년 파키스탄의 미등의 거벽 롭상 스파이어를 초등한 후 1984년에는 랜디 리빗과 엘켑의 최고 인공루트인 '로스트 인 아메리카'를 탄생시켰다. 1990년 K2를 무산소로 올라 거벽뿐 아니라 8.000m의 고봉에서도 그의 등반능력을 보여준다. 1992년 그는 세 번의 실패를 딛고 파키스탄의 트랑고 타워 서벽에 신 루트 개척에 성공한다. 1996년 트랑고 빙하의 최후의 미등벽인 쉽튼 스파이어를 등반 정상 30m을 남기고 하산한다. 그는 등반경력 30년 동안 자신의 등반기를 책으로 내 아메리칸 알파인 클럽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엔 'Postcards from the Ledge'로 벤프 산악도서 축제에서 산악문학상인 존 와이트 상을 받았다. Part - Ⅳ 한국 거벽등반의 과제와 미래 과거 거벽등반에 대한 개념의 정립과 새로운 등반의 이해 그간 한국등반대는 8.000m이상의 벽 등반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어왔다.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안나푸르나 남벽 또 시샤팡마의 신 루트 개척등 로체 남벽과 초오유 남벽을 제외하면 높은 고도에서 뛰어난 등반을 해냈다. 하지만 지금의 전 세계의 등반형식은 소수의 인원을 통한 , 무 산소, 속공, 경량등반이라고 할 때 박정헌의 시샤팡마 중앙봉 알파인 스타일 등정을 제외하고는 이런 속공, 경량의 등반시도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고산 거벽에서의 불확실성은 가히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의욕을 앞세운 무모한 등반보다는 지금부터 착실히 고산에서의 경량, 속공등반을 준비해야 될 시기라고 본다. 이에 하나의 방법으로 낮은 고도부터 이런 바람직한 등반방식을 적용함으로 차후 펼쳐질 8.000m이상의 산에 대한 새롭고, 어려운 시도를 준비해야 된다. 또 8.000m 이하의 산에 대한 거벽등반의 시도는 그간 다양하고 많은 시도들이 있었고, 가시적인 몇몇의 성과도 올렸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등반에 대한 적당한 평가보다는 언론 혹은 각 언론 매체에 의하여 의미가 부여되는 경향이 많았다. 등반대가 학술지나 전문지에 기사를 게제 한다는 것은 이등반의 평가를 받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평가를 바라는 등반대는 정확한 정황증거의 제출과 등반의 의미를 꾸밈없이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그간의 원정대가 행한 거벽등반의 문제점을 제시한다. 기존의 루트와 겹치지 않는 신 루트를 개척하며 등반한 팀 또는 초등에 도전한 등반대의 정상등정 문제다. 지난 몇 년간 히말라야의 신 루트와 초등을 목적으로 거벽 등반을 시도한 등반대는 분명 정상에 가지 못했음에도 이러한 등반기를 전문지에 개재했다. ‘등반성이 없어서, 어려운 벽 등반은 모두 끝났다.’ 국제 산악 연맹에서는 명확한 신 루트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필자도 여러 번의 히말라야 등반에서 정상을 불과 50m 남기고 후퇴한 적이 있다. 이들의 논리라면 필자가 등반한 파키스탄의 아딜피크 북서벽과 힌두라지 산맥의 무스듬의 등반은 신 루트개척을 통한 초등으로 기록되어져야 한다. 이 문제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개념의 정확하지 못한 이해와 다른 하나는 등반을 포장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에 몇 가지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전에 초등 혹은 신 루트 개척에 나선 등반대의 등반에 대한 명확한 가치부여가 선행되어야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 보다는 이런 토론 혹은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하며 이에 대한 진지한 의견의 교환이 필요하다. 앞으로 많은 후배 등반가들이 세계오지의 거벽에서 뛰어난 등반을 하고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악순환을 우리는 차단해야한다. 또 앞으로 초등과 신 루트에 도전하는 등반대는 분명히 정상사진과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최고도달지점의 정확한 증거자료를 남겨야한다. 물론 등반은 순수하게 등반 자를 믿어주는 풍토도 필요하다. 하지만 등반대가 등반에 대한 평가를 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의미는 달라진다. 이를 주지한자. 한국 거벽등반의 숙제 탈레이사가르 북벽. 또 그간 한국산악계는 히말라야와 세계 곳곳의 오지에서 거벽등반을 통한 가시적인 성과도 올렸다. 1983년 악우회의 바인타브락 초등과 1997년 한국 산악회의 가셔브럼4봉 서벽 중앙립 신 루트개척, 경남연맹의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안나푸르나 남벽등반, 한국 도로공사 산악팀의 시샤팡마 신 루트개척이 대표적인 성과라고 하겠다. 하지만 거벽등반의 등반형태와 성공 확률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던져준다. 한국 거벽등반의 형태는 10년 전과 비교하여 별반 다르지 않은 등반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인도 가르왈지역에서는 1989년 광운대 산악회의 바기라티 원정대와, 경기 북부 구조대의 탈레이사가르 북벽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단 한 팀의 성공도 없었다. 먼저 등반형식의 문제점은 히말라야에서 행하여진 한국등반대의 등반은 요세미티 등반방식을 제외하고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방식이 적용되는 거벽에서는 박정헌의 시샤팡마 중앙봉 알파인 스타일 등정, 2001년의 카라코람 멀티피크 원정대의 힌두라지 산맥에서 행하여진 알파인 스타일등반과 파키스탄 아딜피크 원정, 김창호의 6.000M급 세 개 봉우리의 단독등반을 통한 초등 등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는 순수 암벽이 위주가 된 거벽에서는 예측 가능한 등반속도와 인위적인 위험요소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눈사태와 낙석의 위험 등 자연적인 위험 요소가 많은 알파인 거벽에서는 안전 위주의 극지법등반을 선호하는 문제점을 제시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도 탈레이사가르 북벽이다. 한국등반대는 10여 차례에 걸쳐 이 북벽을 목표로 했지만 경기북부구조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원정대가 거의 같은 최종도달지점을 보인다. 등반능력을 제외하더라도 이는 같은 실수를 충분한 검토 없이 해 마다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산에서부터 소수, 경량의 과감한 순수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을 시도한다면 탈레이사가르 북벽의 완등도 그리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또 이런 등반의 정확한 가치의 부여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거벽 등반의 개념을 순수 암벽등반에만 집중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등반의 형식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앞으로 고산에서 펼쳐질 거벽등반은 극한의 자유등반과, 능선종주, 단독등반, 보다 첨외한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등반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여건을 조성하고 또 학습을 통하여 실행해야 한다. 정보의 공유를 통한 미등봉의 초등 한국 등반대의 히말라야에서의 거벽 등반 대상지는 그리 광범위 하지 못하다. 주로 잘 알려진 거벽에서의 등반이 주를 이루어 왔다. 물론 이런 벽들은 일반적으로 등반의 가치가 높다. 분명 앞으로도 우리산악계가 더 어려운 시도를 해야 될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병행되어야할 것이 탐사를 통한 정보의 획득과 이런 정보의 공유를 통한 더 나은 등반의 준비이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세계 여러 곳의 탐사와 등반이 필요한 지역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 티베트 국경지역과, 동부, 서부 티베트의 제한지역, 파키스탄 - 인도 국경지역(시아첸 빙하), 텐산산맥과 쿤룬산맥의 오지 등이다. 이런 지역의 탐사를 통하여 미등봉에 대한 정보의 수집과 공유를 통하여 더 새롭고 어려운 시도를 먼저 시작해야 된다. 이는 지금의 등반가들 뿐 아니라 더 새로운 등반을 펼칠 후배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들이다. 새롭고 어려운 등반. 한국은 외형적으로는 8.000m 완등자를 세 명이나 보유한 산악강국이 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 한국 거벽등반가들은 역량과 기술의 빠른 발전을 보여 왔다. 이제 세계각지의 거벽에서 이런 기술과 역량을 펼쳐야 할 때이다. 등정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새롭고 어려운 시도로 내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될 때이다. 실패의 부담보다는 과정의 어려움을 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참고문헌: 월간 산, 월간 사람과산, 아메리칸 알파인 저널, 대산련 발행 등산, 남선우저 역동의 히말라야, 클라이밍지, 하이지, 산과계곡, 한국산악, 각종 원정보고서 등 임성묵 등반경력 1998 토왕, 대승, 소승폭포 등반 1999 단양 장회암 20여곳의 암벽루트 개척 2000 파키스탄 브락상 피크(5200m) 변형루트로 등정 2001 갱기좌벽 "친구에게" 신루트 개척 2001 설악산 노적봉 북서벽 초등 2001 파키스탄 카체브랑사 북봉(5400m)초등 2001 파키스탄 혼보로 피크(5650m) 신루트 개척 2001 힌두쿠시 무수듬 피크(5700m)신루트 개척 2002 소토왕골 신루트 개척 2002 파키스탄 아딜 피크(5300m) 북서벽 신루트 개척 2003 " 네임리스 트랑고 타워 서벽(6239m) 신루트 등반 2003 파키스탄 아딜 피크(5300m) 남벽신루트 등반 2003 울릉도 송곳산 신루트 개척 2003 주왕산 무명폭 혼합등반 루트 개척 2004 중국 사천성 총라이 산맥 쓰구냥(6250m)동계등반 2004 파키스탄 트랑고 타워(6.239m) 등반 2004 중국 사천성 쉐바오딩2봉 신루트 개척과 등정 * 제2회 02년 알파인 클라이머 상 수상 * 현재 사람과 산 빅월 클라이밍 전문기자 * 고산거벽 등산학교 강사로 활동
|
출처: From K2, To K2 원문보기 글쓴이: ti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