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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스포츠 게시판 태종 이방원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jogh11 추천 0 조회 2,862 12.07.15 23:05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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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7.15 23:14

    첫댓글 조선시대 최고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종이 없었으면 세종도 없었을것이고. 세종이 왕이 즉위한뒤에도 뒤에서 악업은 혼자 처리하면서 세종이 원하는 정치를 실현시켜주었죠. 특히 왕권강화를 통해 정도전과 같은 개국공신을 내치면서. 사회를 안정시켰고,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이라하면 너무 왕권을 강하게 만들어서 신하들이 바른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6조직계제 때문에 신하들은 거의 있으나마나한 존재들이 되었죠.

  • 12.07.15 23:34

    아무리 그래도 세종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태종이 없었으면 세종도 없었으니 세종 이상가는 최고의 왕이란 논리는 아무리 뛰어난 왕이라도 그 왕의 부왕이 더 뛰어난 왕이란 얘기가 되버리죠. 정도전을 제거한 것도 잘한 일은 아닌거 같구요. 왕권강화란 측면에서만은 최고의 왕이죠.

  • 12.07.15 23:17

    기꺼이 필요악이 되었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긴한데.. 요즘 시대면 독재자라고 불리겟죠?ㅎ

  • 독재자라고 보기는 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태종의 살육전은 같은 지배층, 즉 정적이나 그 잠재세력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까요 당시 시대가 왕조체제였으며 정적을 제거할때 '살해'라는 요소가 뒤따르는게 일반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600여년전의 관점을 지금에 대입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나쁘게 보면 독재자가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최대한 적용해본다면 또 다른 형태의 정치인이 나왔을 수 있겠죠

  • 12.07.16 00:22

    아.. 그렇죠. 시대상황이라는게 있을테니 그 정도되는 인물이면 현대상황에 맞게 행동했을 수도 있고요. 다만 그대로 왔다면.. 이란 거죻ㅎ

  •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좀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는데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고려말은 당시 사료들을 통해서 보면 정말 한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도가 문란해지던 시점에 원간섭기까지 겪으면서 사실상 제도는 거의 붕괴되었고 그나마도 원간섭기가 끝남과 동시에 왜구와 여진, 홍건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난리가 났었죠 무신정권기에는 무신이 반란을 통해 최고권좌에 올랐지만 이 시기에 최영이나 이성계는 순전히 자신들의 무관으로서의 공로만으로 문하시중과 수문하시중에 오른것만 봐도 그것을 알 수가 있죠

  • 조선은 고려조의 혼란이 여전하던 시기에 역성혁명을 통해 세워졌는데 사실상 지도자와 그 계층(그나마도 이미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 측이 정계를 주도)만이 바뀐 것으로 보면 혼란 역시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태조 치세는 짧기도 하거니와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으로 혼란은 잡기에 충분치 못했고 그것은 정종 때도 마찬가지였죠 려말의 혼란은 태종때부터 제대로 수습할 수가 있었다고 봐야 할겁니다 어떤 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개 '건국공신'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게 되는데 이 '건국공신'들의 세력이 커지면 당연히 왕권은 이를 견제하려고 하죠 이는 태종도 마찬가지였는데 굉장히

  • 냉혹하고 비정하기도 했으며 과도한 형태이기는 했지만 짧은 기간(태종의 치세가 약 16년 정도일겁니다) 동안에 굉장히 빠르게 권력구조를 정돈하고 나라를 안정화의 방향으로 잡아갔습니다 사실 그 살육전은 태종에게도 억울한 면이 있죠 예를 들어 고려의 경우도 3대 왕인 정종- 4대왕인 광종(둘다 2대 혜종의 동생, 1대 왕건의 아들)도 호족공신 및 왕족을 상대로 태종 이상의 살육전도 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그 여파가 5대인 경종(왕건의 손자)때까지 이어지죠 부인이 29명이나 되었던 왕건의 후예가 후에 김치양의 난 당시에 왕좌에 오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 사생아인 현종뿐이었다는 것만 봐도

  • 그 살육의 범위는 능히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태종의 경우는 이런 케이스에 비하면 기간도 범위도 굉장히 짧은 편이죠 더불어 태종은 단순히 살육만 한 것이 아니고 정치구조 등도 개편해서 왕권 중심의 구조를 갖추어 나가기도 하는등의 모습도 보여주었으니까요 태종이 안정된 사회에서 나라를 만드는 능력은 어떠했을지 모르겠습니다(다만 이방원의 경우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학식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혼란기의 나라를 단기간내에 빠르게 안정세로 만들었으며 그것이 세종조의 기틀을 만들어냈다고 봐야겠죠

  • 12.07.16 00:29

    알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태종 그 자신이 고려 시대의 문관출신이죠. 무관 출신이라고 오해받기 쉽상인데 태조 이성계의 아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려조 문과 급제 출신입니다.

  • 그렇죠 다만 과거급제를 이야기 안한 것은 일단 15세라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인데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범주이기도 하지만 당시 고려말의 과거제도도 상당히 문란해져서 어린 급제자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학문적 수준에 대한 평가가 높은 것은 자주 발견되고 당시의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흥사대부들과도 교우관계를 맺고 있었고 조선건국에 있어서도 굉장히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죠 (오히려 선죽교 사건위주로만 부각되는게 안타까운..)

  • 12.07.15 23:49

    제가 저 시대에 살았으면, 이런 말 절대 죽어도 몬하겠지만, 한 국가의 창업을 위해 꼭 필요한 군주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 않나요.

  • 12.07.15 23:52

    양녕 이민우 연기 진짜..ㅎㄷㄷ

  • 12.07.16 00:39

    다른무엇보다도 태종이라는 묘호는 중국에서도 몇명없습니다 태종의 치세가 없었다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없었을겁니다 무엇보다도 세종의 치세에 커다란 초석을 닦아놓은거죠 태종의 대단한점은 외척과 공신의 도움을 받긴했으나 그들을 모조리 숙청해 세종시대 까지 왕권이 이어져 갔다는것이죠 세조를 보면 태종과 비슷하지만 태종과 도저히 비교할수 없는게 있다면 외척과 공신을 대하는 태도죠

  • 12.07.16 00:45

    세조는 외척과 공신들을 너무 많은 요직에 앉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세조치세에 커다란 짐으로 작용하죠 공신들의 힘이 너무나 커지니깐 신진관료를 등용해서 공신들과 대치시키려고 하는데 이 관료들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운 자리를 준게 문제였죠 후사를 준비하긴 해야하는데 너무나 공신들의 힘이 커지니 세조도 어찌할수 없었죠 그래서 세조가 구축한 왕권은 세조가 죽자마자 무너집니다 이에 반면 태종은 후대를 위해선 과감한 숙청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면 태종이 끊임없이 자괴감에 빠진 기록이 나옵니다

  • 12.07.16 00:52

    이로볼때 태종의 경우는 조선왕조의 기틀을 위해 자기가 후대의 비난을 감수하는걸 두려워하지 않았다는거죠 그리고 세조와 비교할수도 없는건 자신들이 숙청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인데 정몽주의 경우 자신이 직접 신원을 회복해줍니다 정도전의 경우 사람은 미워했으나 정책들은 고스란히 받아들여 자신의 치적에 반영하며 정도전의 장남 정진의 경우는 요직에 중용합니다 자신들의 처남들은 훗날에 제사를 직접 지내주었으며 심온의 경우 처자는 관노로 떨어뜨리나 대우는 예전과 같이해줍니다 이숙번의 경우도 그렇고 멀리갈거 없이 형인 회안대군 방간같은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간들은 자꾸 탄핵하는데 태종이 계속 형제를

  • 12.07.16 00:59

    죽일수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보호해줍니다 또한 자신이 죽인 방석과 방번에게 시호를 내려주고 왕자의 신분을 회복해줍니다 하지만 세조는 계유정난때 죽인사람들과 사육신의 식솔을 모조리 노비로 만들어 공신들에게 나눠주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로 볼때 태종과 세조는 비교할 가치가 없습니다 태종이 만든 조선이고 태종이 닦은게 조선왕조 이니까요 그래서 묘호가 태종인겁니다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이 세종이라면 최고의 명군은 태종인거죠 세조는 특별히 한게 없습니다 다만 세조가 만든 왕권을 제대로 득을본건 다름 아닌 성종이지만요

  • 12.07.16 03:06

    태종은 공신을 모조리 숙청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태조때에 비하면 좀 챙겨주는 편이었죠. 사람 1~2죽이고 그런게 문제가 아니라..토지제도라던가 인사제도같은걸 자세히 보면 교묘하게 공신쪽에 힘을 실어줍니다. 차라리 공신의 힘을 억누르려고 한쪽은 태조쪽이 더 철저했습니다. 괜히 태조가 자신의 수족과 같았던 공신들한테 배신당한게 아닙니다. 공신들 입장에선 토사구팽당할것 같으니까 그래도 좀 챙겨주는 태종한테 협조한거죠. 세조에 비할문젠 아니라고 봅니다만.....태종은 공신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보여주기 식으로 1~2명을 작살낸다거나 하면서....그들을 철저히 통제하긴 했지만요.

  • 12.07.16 03:12

    태종이 대단히 냉정한 것같고,숙청을 많이 한것 같지만....실제로 태종시대에 작살난 가문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끽해야 처가쪽 사람들 몇사람들인데....그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해서 임팩트가 있어보이는거지.....공신 전체를 숙청했다고 보기엔 무립니다. 태종이 공신을 제대로 숙청하고 싶었으면 그들(공신 세력)들의 경제권부터 틀어줬을거고....당시 경제권은 토지문젠데...토지문제에 관해선 애초에 태조(정몽주가 설계한)시절보다 좀 후퇴한 경향이 크고,공신들 편을 들어주는 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태종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공신들을 통제한겁니다. 제거하려든게 아니라요.

  • 12.07.16 00:44

    용의 눈물에서의 유동근이 연기한 이방원도 장난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론 뿌리 깊은 나무의 태종의 대사가 인상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내가 내 손에 더러운 피를 묻혀 가며 조선을 만들었다.. 내가 조선을 만들었다. 나의 조선이다!

  • 12.07.16 00:54

    마키아벨리가 봤음 진짜 좋아했을것 같아요.
    위에 써있는대로 어떤 악업도 마다하지 않고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던 왕.
    단지 정도전하고 잘지냈으면 좋았을것 을 하는 아쉬움이..

  • 12.07.16 09:28

    제가 학사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태종을 선택했고, 왕권강화책에 관한 논문을 읽고 그것에 따라 논문을 썼는데 참 대단했던 왕이라고 새삼 느꼈습니다..왕권과 신권의 극한 대립속에 자칫 하다간 고려말처럼 신권이 강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왕권을 강화시켰죠..그리하여 조선 왕조가 확립할 수 있도록 그 기틀을 잡았구요..훌륭한 왕이란 할 수 없지만 분명 그가 없었으면 조선 초기에 제대로 자리 잡는 시간은 길어졌을거라 봅니다..

  • 12.07.16 09:33

    세종과는 또 다른, 왕 같은 왕 이었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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