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후의 환경과학의 태동과 환경연구 1-환경용어 최초 사용은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1968년
공해라는 단어에서 환경이란 단어로 넘어가는 시대
환경용어 최초 사용은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1968년
환경위생학회 1971년, KIST 환경계획연구실 1972년
환경(環境, Environment)이란 용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인위적(인공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오늘날 핵심 용어로 정착되었다. 공기,물,토양,동식물, 인간의 생활 공간등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지금은 공식적인 용어로 잘 사용되지 않는 공해(公害, Pollution)라는 뜻은 인간 활동으로 인해 자연환경이 오염되어 사람과 생물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환경이란 용어보다는 극히 제한적이다.
산업화로 인해 자동차, 산업폐수, 공기오염, 쓰레기등이 발생하여 먼지, 수질오염, 소음공해, 대기오염등이 이에 속한다.
공식적으로 공해방지법이 1963년 법률 제 1435호로 공포되어 공해가 공식 정부행정용어로 사용되었으며 1964년 공해방지법시행령이 시행되고 1973년 오물청소법이 제정된다. 1970년에는 보건사회부 위생과를 차관 직속의 위생관리관으로 승격하고 공해담당관이 공해업무를 관장하게 했다.
여기까지가 공해라는 용어가 정부의 조직이나 법률에서 활용되었다.
1968년에는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가 정부보다 빠르게 환경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는 90년대까지도 일상적으로 공해연구소로 소통되었다.
1971년에는 대한보건협회 산하의 학회인 한국환경위생학회(현 환경보건학회)가 창립되었다. 1972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환경계획연구실이 설립되어 정부 산하기관에서 최초로 환경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대학에서는 1973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이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중화학공업지구에서 환경오염 피해가 빈발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6월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를 주재하면서 ‘공해 대책은 과학기술처가 담당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과기처는 첨단 원자력 연구를 하던 한국원자력연구소로 하여금 공해 문제를 담당하게 하여 웃지 못할 촌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정부조직에서 환경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1975년 보사부 위생관리관체계를 환경위생국으로 개편하고 공해과가 신설되면서 환경이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환경위생국 공해과가 대기보전과와 수질보전과로 분리되고 공해관리관도 환경관리관으로 개편된다. 민간영역에서는 한국환경보호협의회가 1975년 발족된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환경문제를 거론하면서 정부가 자연보호 운동을 범국민 운동으로 전개하라고 하여 ‘자연보호협의회’가 구성되었다.
이후 1977년 공해방지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환경보전법이 제정되고 공해담당관을 환경관리관으로 변경되었으며 1978년 공해방지법이 폐지되고 국립환경연구소가 설립된다. 1980년 환경청이 발족되어 보사부의 환경관리관 제도는 폐지된다.
학계에서 환경이란 용어를 사용한 학과가 개설된 것은 서울대 환경대학원(환경설계학과)이 1973년에 학계에서는 최초로 학문적 전공과목으로 설정된다. 1980년에는 영남대 환경대학원(환경관리,환경공학,환경과학과), 서울시립대는 1974년 설립한 위생공학과를 환경공학과로 명칭을 변경한다.(1회 졸업생 박철휘 시립대 명예교수),홍익대 환경대학원(환경설계학과)은 1981년, 한양대 환경과학대학원(환경계획,환경공학)은 1982년 설립된다.
민간단체에서는 천주교와 기독교 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1982년 ‘공해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1984년에는 대학생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반공해운동협의회’라는 사회운동단체가 결성되었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1983년 ‘한국수도신문’(발행인 김순용,현 환경경영신문)이 창간되어 물을 중심으로 한 환경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문학잡지에서는 1991년 문학평론 계간지 ‘녹색평론’(대표 김종철)이 창간되어 문학계에도 환경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녹색평론은 김종철 영문학교수가 해외의 사회평론중 환경문제를 번역하여 국내에 파급시키는 중심역할을 했다.
<땅의 사람들의 존엄성을 위한 행진>(이그나치오 라모네/파리대학교수),<‘아니오’의 아름다움>리 호이나키/도미니크회 신부)등을 번역하여 정신문화적 세계관을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수돗물불소화에 대해서도(당시 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은 수돗물 불소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자는 시민운동을 펼쳤다.) 반론의 글들을 담았다.
<불소화의 법적,윤리적,정치적 함의>(폴 메코믹/영국 변호사)에서는 “불소화는 여러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불소화는 도덕적 우월성을 가정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불소화가 유익할 것인가 가 아니라 공공의 물공급체계를 불소화할 권리가 국가에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브라이언 마틴(오스트레일리아 사회학자)은 ‘과학적 반론의 억압-불소화’에서“불소화의 배후 핵심적인 추진세력은 치과 전문집단이다. 그 배후에는 산업게의 이해관계가 있다. ▴불화물 폐기물을 재이용하여 생산할 수 있는 알루미늄사업(한국의 남해화학)▴치약판매에 있어서 불소의 선전적 가치가 있는 치약회사▴불소가 충치에 대하여 마술같은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홍보로 설탕의 충치유발 작용에 대한 걱정을 돌려놓을 수 있는 설탕을 많이 사용하는 식품회사들이다.”등을 담았다.
전문도서에서 환경이란 단어가 사용된 것은 육군사관학교 전용교과서인‘환경공학’이 조광명교수가 1969년 출간된 것이 최초이다.
이후 조광명,최의소교수의 공저인 ‘환경공학’이 1976년 청문각에 의해 출판되었다.
환경이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68년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가 기원이라 말할 수 있다. 1967년에 홍익대 환경개발연구원이 설립되었으나 관련 분야는 주로 건축설계, 도시설계, 실내설계등 건축학이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1971년 대한보건협회 산하 환경위생학회(현 한국환경보건학회), 1972년 KIST의 환경계획연구실, 1973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1975년 보사부 환경위생국, 환경관리관, 한국환경보건협의회,부산수산대(현 부경대) 해양환경학과(1979년 환경공학과), 1977년 환경보전법, 1978년 국립환경연구소,한국환경공학회, 환경보전협회(현 환경보전원), 1980년 환경청설립, 영남대 환경대학원,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명칭변경(1974년 위생공학과), 동아대 환경대학원, 1981년 홍익대 환경대학원, 1982년 한양대 환경과학대학원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에 넘어 오면서 공해라는 단어는 기억 저편으로 떠나고 환경이란 용어가 사회적 용어로 스며들게 된다.
최초의 환경 용어 공식명칭 역사
| 연도 |
| 비고 |
| 1967년 | 홍익대 환경개발연구원 | 초대원장 김중업(건축,실내,도시설계) |
| 1968년 |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 초대소장 -권숙표박사 |
| 1969년 | 전문교과서 ‘환경공학’ | 육군사관학교 교과서,조광명 |
| 1971년 | 한국환경위생학회)현 한국환경보건학회) | 초대- 정문식박사 |
| 1972년 | KIST환경계획연구실 | 초대 연구- 신응배박사 |
| 1973년 | 서울대 환경대학원 | 초대원장 노융희박사 |
| 1975년 | 보사부 환경위생국,환경관리관 | 초대국장 박준익, 김정현(환경청차장) |
| 1975년 | 한국환경보건협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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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 부산수산대(부경대) 해양환경학과 | 1979년 환경공학과 |
| 1976년 | 전문도서‘환경공학’ | 조광명,최의소 공저 |
| 1977년 | 보사부환경보전법 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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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 국립환경연구소설립 | 초대소장 성유운(전 보사부 보건국장) |
| 1978년 | 한국환경공학회 | 초대회장 김동민교수 |
| 1978년 | 환경보전협회 | 초대회장 태완선(대한상의 9대회장,1915년생), 현 환경보전원 |
| 1980년 | 환경청설립 | 초대청장 박승규(80.1-80.7월) |
| 1980년 | 서울시립대환경공학과 | (1974년-위생공학과) |
| 1980년 | 영남대환경대학원 | (1979.12월 인가, 초대 진갑덕원장 |
| 1980년 | 동아대학교 환경공학과 | 1966년12월 위생공학과,김의종학장 |
| 1981년 | 홍익대 환경대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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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경영신문 http://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